onepiece/글 17

[에이로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20130630 눈 앞이 흐릿해져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 게 슬슬 한계가 오려나 생각했다. 사실 별로 살고자 하는 이유도 없었다. 너 없이 도플라밍고를 버텨내는 삶은 아무리 다잡고 다잡아도 버티기 힘들기만 했다. 정상전쟁에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아 나온건 그저 네 부탁 때문이었다.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너의 말만 아니었다면 널 그렇게 만든 아카이누에게 달려들어 개죽음을 자처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말이었기에. 너와 한 마지막 약속이었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살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어지러운 몸을 간신히 가눠가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꽤 많이 베여져 나간 듯 싶었지만 그 만큼의 머릿수가 다시 충당되어 처들어왔다. 사실 지금의 상태로는 이 검을 휘두르기도 벅찼다. 아마 곧 룸을 유지할 정신도 남아..

onepiece/글 2013.12.24

[도플로우] 712 네타 보고나서

20130627 눈에 띄게 몸이 떨린다는 걸 깨달았지만 쉽사리 멎질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적의 무서움이 고작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야알로 본능적인 공포가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대체 이 남자는 뭐란 말인가. 이 남자를 알아온지 십 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간단한 패턴조차 예측하지 못했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그같은 남자가 순순히 칠무해와 왕위를 놓을리도 없었다. 그 도플라밍고가. 고작 배신한 잔챙이 하나 때문에 그럴리가 없었다. 나는 왜 그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는가. 내가 상대하고 있는 남자가 돈키호테 도플라밍고라는 사실을 어째서 잊었는가. 그가 웃으며 나에게로 걸어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선 후 재빠르게 룸을 펼쳤다. "똑똑한 로우. 이제 슬슬..

onepiece/글 2013.12.24

[에이로우] 꿈

20130623 눈부셔. 손을 들어 햇빛을 가려봐도 손가락 사이사이로 부서지는 햇빛이 눈에 들어온다.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나오려 든다. 손가락을 붙였다 벌렸다를 반복해 본다. 햇빛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감춰졌다, 쏟아졌다. 손을 내렸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눈부심도 잠시, 감은 눈의 시야가 어두워진다. 눈을 떴다. 아… 넌. 햇빛보다 더 눈부신 얼굴이 거기 있었다. 아래로 흐트러지는 검은 머리칼에, 자잘한 주근깨, 눈이 안 보여라 웃고 있는… 너. 오랜만이야. 소리를 내려 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아 입을 벙긋거리기만 했다. 네 얼굴이 가까워져, 혼자서 벙긋거리고 있는 내 입술 위에 네가 내려앉는다. 뭐가 오랜만이야, 어제도 봤는데. 키득거리는 너의 웃음이 내 입술을 간질이고 나는 머리가 ..

onepiece/글 2013.12.24

[도플로우] The Game

20130620 "침입자를 잡았습니다. 지하로 데려갈까요?" "여기로 데려와 봐. 구경이나 하자." 짙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호기롭게 웃으며 잔에 든 술을 들이켰다. 정체모를 침입자에 의해 성은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남자는 눈썹을 씰룩였다. 웬 쥐새끼가… 남자는 성의 주인이었다.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그것이 남자의 이름이었다. 돈키호테 패밀리의 명성에 흠이 갈 만큼 성을 난장판으로 만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작은 소란을 일으킬 정도라니, 직접 얼굴을 봐줄만한 가치가 있었다. 웬만한 쥐새끼들은 제 귀에 작은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저 아래에서 조용히 처리될 터였는데. 꽤 소란스러운 걸 보니 제법 쓸 만한 쥐새끼거나 혹은 아랫놈들이 일을 소홀히 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도플라밍고는 느리게 턱을 매만..

onepiece/글 2013.12.24

[도플로우] 낙인

20130619 왠지 모르게 목덜미가 간지러운 기분에 고개를 돌렸더니 역시나 집요한 시선이 잔뜩 나를 간질이고 있었다. 책에 빠져 조용한 줄만 알았더니. 하여간 뭐 하나에 빠지면 다른 건 생각도 안하고 그대로 집중해 버리는 저 집중력은. 이번엔 뭐에 빠졌길래 집중력 대상 1순위인 책을 꺾었으려나. 고개를 돌려 부러 눈동자를 쫓아가 마주하는데도 꿈쩍을 안한다. 결국 내가 먼저 얼굴을 붙잡고 가볍게 입술에 입 맞추고 나서야 꼬마 녀석의 시선을 내 눈으로 겨우 돌려냈다… 고 생각한 것도 잠시. 다시 눈동자가 돌아가는 게 너무나도 똑똑히 보여 나는 그냥 꼬마 녀석의 턱을 잡고 억지로 내 얼굴을 들이댔다. "이번엔 또 뭐에 빠지셨을까, 꼬마 의사양반." "……이거." 그리고 꼬마 녀석의 손이 닿은 건 내 귓불이었..

onepiece/글 2013.12.24

[에이로우] 폭풍의 시작

20130618 처음에는 그저 약한 꼬맹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당당하게 다른 해적의 본거지에 쳐들어와서는 무례한 인사를 해대는 꼬맹이의 목숨을 조금 연장시켜줬을 뿐이었다. 내가 중간에서 걸러내지 않았더라면 베르고에게 넘겨져 예절교육이라며 종일 얻어맞았을 게 뻔했으니. 칠무해의 소굴에 들어와서는 무섭지도 않나? 내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하도 어이가 없어 5년이 지나도록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칠무해가 뭔데? 난 동료를 구하고 있을 뿐이다. 너 강하냐? 그 말에 나는 룸을 펼치고 녀석의 작은 배를 두 동강 내는 작은 쇼를 보여주었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눈동자가 커졌고, 곧 분노로 얼룩져가는 광경을 난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 녀석이 무단 침입 했을 때의 광경을 생각해보면..

onepiece/글 201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