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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로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팥_ 2013. 12. 24. 00:24

20130630


  눈 앞이 흐릿해져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 게 슬슬 한계가 오려나 생각했다. 사실 별로 살고자 하는 이유도 없었다. 너 없이 도플라밍고를 버텨내는 삶은 아무리 다잡고 다잡아도 버티기 힘들기만 했다. 정상전쟁에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아 나온건 그저 네 부탁 때문이었다.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너의 말만 아니었다면 널 그렇게 만든 아카이누에게 달려들어 개죽음을 자처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말이었기에. 너와 한 마지막 약속이었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살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어지러운 몸을 간신히 가눠가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꽤 많이 베여져 나간 듯 싶었지만 그 만큼의 머릿수가 다시 충당되어 처들어왔다. 사실 지금의 상태로는 이 검을 휘두르기도 벅찼다. 아마 곧 룸을 유지할 정신도 남아나지 않겠지. 어쩌면 살고자 하는 정신은 이미 없을테지만. 

 

  이제 그냥 놔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티고 살아온 것 같다. 내가 여기서 비참하게 죽어버린다면 그건 나에게 끝까지 살아남으라는 약속을 강요하지 않은 네 탓이다. 애초에 그깟 도발을 못 참고 넘어가 개죽음을 당한 네 탓이다. 내가 보고 있을 거란 걸 알면서도 죽음을 향해 달려간 네 탓이다. 내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버린 네 탓이란 말이다. 이제는 두 발로 버티고 서 있는 것 조차 힘들어져 갔다. 몇 번을 쓰러질 뻔 했던가. 아차, 하는 순간 발이 꼬여버렸다. 아마 여기서 쓰러지는 순간 개떼들처럼 내 위로 달려들겠지. 너의 죽음보다 더 비참한 죽음이 될 것이었다. 적어도 너는 대장에게 죽지 않았는가. 점점 땅이 가까워져 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고 동시에, 누군가가 나를 잡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그 곳에는… 붉게 타오르는 불로 만들어진 벽이 있었다. 거대하고 뜨거운 벽이 나와 나를 받치고 있는 사람을 둘러 싸고 보호하고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벌써 누가 너의 열매를 취했단 말인가. 그 열매는 평생 너의 것일 줄만 알았는데. 고작 너의 기술에 마음이 동해버리는 나는 뭔가 말인가. 다른 사람이 먹은 이글이글 열매라니, 상상도 하기 싫었는데. 이렇게 내 눈 앞에 나타날 줄이야. 나를 받쳐 안은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하. 자조적인 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헛것을 다 보네. 내가 중얼거리자 그 사람, 너와 똑같이 생긴 그 사람이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문신마저 너와 같은 사람이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나 있는가. 벽이 더 뜨겁게 타올랐다. 그 사람이 나를 안았다. 남들보다 뜨거운 체온까지 너와 같았다. 품에 차오르는 느낌마저 너와 같았다. 이게 무슨 고약한 장난이란 말인가. 거대한 불로 이루어진 벽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인지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 했다. 

 

  "미안."

 

  목소리마저. 나는 그의 품에서 떨어져 똑바로 얼굴을 응시했다. 장난스러운 미소마저 너와 같았다. 그는, 너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너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익숙한 촉감이었다. 천천히 너의 얼굴을 쓰다듬던 나의 손이 너의 입술까지 옮겨갔다. 남자다운 미소가 걸려있는 입술을 나는 느리게 매만지고, 다시 매만졌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시야가 아득해졌다. 아무리 이 세계에선 믿을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지만 이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기묘한 상황이었다.

 

  "…늦었어."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아득해져가는 정신을 그만 놔버렸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건, 쓰러지는 나를 고쳐 안던 너의 품과, 나의 입술에 맞닿던 너의 입술이었다. 

 

 

 

 

 

 

 

 

가장 빠르다.

아직 늦지 않았어 에이스 얼른 돌아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