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적 3

[적우] 조각글 모음

짤막하게 이곳 저곳에 썼던 조각글들을 모아 백업했습니다. 하야마 코타로는 심장이 없는 남자였다. 여러가지 의미로. 아카시는 그런 하야마를 죽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심장이 없는 남자를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야마는 툭 하면 제 가슴을 칼로 찔러오는 아카시에게 단 한 번도 저항한 적이 없었다. 미친놈. 아카시는 생각했다. 여느 때처럼 하야마의 가슴팍에 섬뜩하게 번쩍이는 칼을 박아 넣은 아카시가 이번에는 곧장 칼을 빼내지 않은 채 하야마의 눈을 마주했다. 거짓된 웃음 뒤로 일그러진 표정이 훤히 보였다. 궁금한게 있어. 아카시가 입을 열었다. 심장이 없다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나를 막지 않지? 아카시의 서늘한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치던 하야마가 칼 손잡이를 쥔 아카시의..

kurobas/글 2014.06.04

[하야아카/엽적] 새

* 적우(아카시 오른쪽) 합작, 커플링 으로 제출한 글입니다.http://marvelpinks2.wix.com/akashi-rightside “아카시!” 짭조름하면서도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카시의 옆으로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뛰어오는 인영에 아카시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가 펼쳐진 책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 넣고 책을 덮었다. 가까이서 들려오는 몰아쉬는 듯한 숨소리와 함께 벤치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이내 비어있던 벤치의 다른 한 자리에 온기가 자리 잡았다. 아카시는 덮은 책을 제 왼쪽 옆자리에 놓고 온기가 가득히 자리 잡은 오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그 온기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감기 들어, 코타로.” 마치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는 충견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아카시를 바..

kurobas/글 2014.04.15

[하야아카/엽적] 관계의 끝

20131030 그 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쏟아지는 하얀 눈송이 사이에서 겨울 방학식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곧, 우리들의 은퇴식이기도 했다. 기어이 밖에서 식을 진행하고 마는 고지식한 학교 덕분에 머리고 어깨고 몸에 한 가득 굵은 눈이 쌓여있었다. 앞이 뿌옇게 보일 정도로 시야를 가리는 눈보라 속에서 나는 연신 눈동자를 굴리며 사람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형식적인 방학식따위 애초에 아무도 참여하고 있지 않았고, 내게 중요한 것은 그보다도… 찾았다. 다행히 우리 반이 서있는 줄은 2학년 쪽과 붙어 있었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보다도 하얗기만 한 세상에서 붉게 흩날리는 머리칼 덕분이었겠지만. 눈에 뒤덮여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오직 아카시만이 다른 세계에 서있다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반..

kurobas/글 201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