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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우시] 감기와 짝사랑의 상관관계

“감기 같은 거예요.” 시라부는 종종 그렇게 말하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낫잖아요.” “…얼마나 걸릴 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언젠간 나아요.” 시라부는 늘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시라부의 가치관을 존중했지만 언제나 한 곳만을 바라보는 그가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감히 시라부에게 무어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아이가 품은 감정은 내가 가벼이 입에 올릴 것이 아니었다. 시라부가 팀원들 중에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아마도 ‘나’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경기에 관한 대화라면 단연 와카토시겠지만, 시라부가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언제나 벽을 하나 두르고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던 시라부는 이상하게도 내게는 스..

hq/글 2015.07.26

[우시카게]

"우시지마 씨, 사살해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탈출해 정보를 빼돌릴 지 모르는," 다급하게 외치던 남자는 우시지마의 손짓에 입을 다물었다. 우시지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 앉은, 정확히 말하자면 강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저를 노려보는 앳된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등학생인가? 아마 끽해야 20대 초반이겠지. 시한폭탄이 터지기 만을 기다리는 적막 속에서 우시지마는 천천히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단단하게 물린 재갈 사이로 마지막 발악 같은 비명이 새어나왔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일 뿐이었다. 적막 속에 울리는 비명은 더더욱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성할 뿐 그 이상의 역할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우시지마는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저를 노려보는 아이의 턱을 쥐고 들어..

hq/글 2015.07.25

[시라우시] The Way of Love (For. 뎅 님)

키워드 : 짝사랑 “밥 안 먹고 뭘 그렇게 봐?” 감자기 들려온 친구의 목소리에 나는 턱을 괴고서 물끄러미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친구에게로 옮겼다. 친구는 내 앞에서 식어가고 있던 식판을 턱으로 가리키며 감자 샐러드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냐, 먹어.” 언제부터 그곳을 보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내 기억은 고작해야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와카토시는 밥 안 먹는대?” 나는 젓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하던 것을 멈추고 친구를 바라보았다. 친구의 시선은 내가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곳을 향해 있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당분간 식단 관리 때문에 도시락 먹는다고 했어.” 나에게 했던 말대로 그는 다른 쪽 식탁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쟤는 2학년 아냐?” ..

hq/글 2015.06.22

[쿠니카게] 두 번의 이별

몸을 옭아오는 서늘한 감촉에 쿠니미는 감겨있던 눈꺼풀을 느리게 들어올렸다. 잠들어있던 다섯 가지의 감각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쿠니미는 제 몸을 파고드는 서늘한 온도에 그것을 확인하려 눈동자를 돌리는 것보다도 먼저 청각을 곤두세웠다. 툭, 투둑, 툭, 쏴아아아… 역시 비가 오는구나. 쿠니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일이었다. “쿠니미…….” 품속에서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흡사 어미를 잃은 어린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소리였다. 쿠니미는 눈을 감은 채로 몸을 돌렸다. 비 때문인지 끈적거리는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몸이 맞닿은 부분만은 끈적거림도, 눅눅함도 없었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울 뿐이었다. 쿠니미는 조용히 제 품에 들어온 서늘한 몸을 끌어안았다..

hq/글 2015.06.20

[킨카게] 잃어버린 말

카게야마를 처음으로 왕이라고 부른 것은 나였다. 처음엔 그저 작은 혼잣말로 시작된 것이었다. 내 토스 속도에 맞추라고! 2군과의 합동 연습경기에서 화를 내던 그를 보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왕이 따로 없네. 내 혼잣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다음 연습부터 카게야마는 ‘왕’이 되어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그 혼잣말을 꼽을 것이다. “카게야마.” 미닫이문을 열며 카게야마를 불렀지만 카게야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최근 몇 달간 내가 가장 많이 본 그의 모습이었다.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전부인 창밖을 뭐가 그리 재밌다고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는지 모를 그의 옆모습. 카게야마가..

hq/글 2015.06.13

[우시카게오이]

"토비오쨩!"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이름에 우시지마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시지마는 인상을 쓰고서 느리게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잘생긴 얼굴로 교내 여학생들에게 꽤나 인기를 끌고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있었다. 우시지마의 수업을 들은 적은 없는 학생이었지만, 워낙 유명한 얼굴과 이름이었기에 우시지마 역시 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부른 이름의 주인공은… 우시지마는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그란 두상, 그리고 윤이 나는 검은 머리카락.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카게야마가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이카와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카게야마의 어깨에 묵직한 제 팔을 걸칠 뿐이었다. "어디 가?" 오이카와가 친근하게 물었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표정은 한결같이 무덤덤했..

hq/글 2015.05.03

[오이카게] 삼백육십오 번의 죽음

같은 문장으로 첫 문장 / 끝 문장 연성하기문장 : 또 다시 오늘을 버텨냈다. (열님 제공)퍄님의 끝 문장 연성은 이쪽으로 → http://526119.tistory.com/73* 센티넬버스 AU 또 다시 오늘을 버텨냈다. 카게야마는 멍한 눈으로 침대 옆에 놓인 디지털시계의 숫자가 59에서 00으로 바뀌는 것을 바라보다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늘도 참 길고 무의미한 하루였다. 카게야마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끌어 올리고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버텨냈다, 이 단어가 과연 맞는 단어일까. 버텨내고 싶지 않은 하루를 다시 버텨내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카게야마는 입술을 깨물고 가슴께의 옷을 그러쥐었다. 멀쩡하게 심장은 뛰고 있었다. 억울해. 카게야마는 그렇게 읊조리며 눈을 감았다. 카게야마는 진작 죽을..

hq/글 2015.05.02

[오이카게우시] 오이카와 토오루의 우울 下

* 오이카게 교류회에 가져갔던 원고입니다.* 카게야마 in 시라토리자와 설정.* BGM 有* 上 - http://eternal-recurrence.tistory.com/127 꿈을 꾸었다. 카게야마가 나왔다. 작은 몸집, 짧은 앞머리. 중학교 1학년 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라토리자와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제 몸에 걸쳐진 것은 남색의 유니폼이었다. 키타가와 제1 중학교의 유니폼. 오이카와는 손을 뻗어 유니폼 중앙에 크게 프린팅 된 숫자 1을 만지작거렸다. 카게야마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토비오쨩, 그 옷 왜 입고 있어?’ 오이카와는 만지작거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물음에 크게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hq/글 2015.04.11

[오이카게우시] 오이카와 토오루의 우울 上

* 오이카게 교류회에 가져갔던 원고입니다.* 카게야마 in 시라토리자와 설정.* BGM 有 “들었어? 쿠니미랑 킨다이치가 입학하기로 했대.” 책상에 엎드려 휴대전화로 바쁘게 게임을 하던 오이카와는 제 옆에 앉으며 말한 이와이즈미의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와이즈미는 딱히 오이카와를 바라보지 않고서 책가방을 뒤적거리며 교과서와 필통을 꺼내고 있었다. “잘 됐네, 그 애들은 잘하니까. 바로 주전으로 들어올 수 있을 거야.”오이카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 죽었어!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썼다.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물론 그럴 만도 했다. 키타가와 제1 중학교에서 주전으로 활동했던 아이들은 대부분 아오바죠사이로 진학했고, 쿠니미와 킨다이치..

hq/글 201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