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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시라] 연애소설

팥_ 2017. 10. 26. 00:58




  카페에 앉아 좋아하는 커피를 시키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으려니 누군가 다가와 앞에 슥 앉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책장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 넣었다.

  “늦었잖아.”

  “미안, 촬영이 늦게 끝나서.”

  “그 선글라스는 또 뭐야.”

  앞이 보이긴 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짙게 선팅이 된, 처음 보는 선글라스였다. 내 말에 타이치가 씩 웃으며 선글라스의 다리를 잡아 살짝 내렸다. 선글라스 뒤로 친숙한 눈이 드러났다.

  “이거 안 쓰면 다들 알아본다고.”

  “그게 더 튀는데요.”

  “진짜?”

  “응. 근데 넌 안 써도 튀어. 키 때문에.”

  분명 처음에는 평범한 모델이었다. 처음에는. 이제는 같은 소속사의 모델 겸 배우인 사람이 맡기로 했던 작은 조연을 대신 맡게 되며 ‘평범한’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계약이 다 끝난 상태로 사고가 나서 위약금 안 물려면 꼭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다나 뭐라나. 타이치는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을 했었다. 

  네가 하고 싶으면 해. 근데 모델이랑 배우는 또 다르잖아. 연기 못한다고 인터넷에서 까여도 쉴드 안 쳐준다. 

  그렇게 말했던 게 무색하게도 타이치의 인기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첫 화만 해도 ‘카와니시 타이치는 누구?’ 같은 기사가 포털사이트 메인에 떠있었다면 요새는 그냥 카와니시 타이치의 기사가 떠있었다. 별 비중이 없는 듯했던 역할도 타이치의 인기에 탄력을 받아서인지 무리해서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같았다. 

  “밥 뭐 먹을래?”

  “글쎄. 먹고 싶은 거 있어?”

  “나 파스타 먹고 싶어.”

  “맨날 먹던 데?”

  타이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연스레 타이치가 의자에서 내 겉옷을 들어 건네주었다. 매너 좋은 척 하기는. 내가 투덜거리자 그걸 또 들었는지 싱글싱글 웃었다. 선글라스 아래로 올라가는 입꼬리가 괜히 얄미웠다. 


  평일이고, 점심시간도 지나서인지 레스토랑은 한가했다. 외식을 하고 싶을 때 종종 찾는 집 근처의 식당이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내부에 맛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타이치가 여기 크림 파스타를 좋아했다. 

  나는 명란 파스타를 포크로 둘둘 감으며 타이치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짙은 선글라스가 벗겨져있었다.

  “사람들이 알아본다며.”

  “여긴 사람 없잖아.”

  크림 파스타를 입에 넣고 우물대던 타이치가 마무리로 피클을 베어 물었다.

  “선글라스 끼면 네 얼굴 잘 안 보여.”

  “……제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 하지 말아줄래?”

  “왜. 설레?”

  “응. 심장 터진다.”

  나는 대충 대답하며 잘 말린 파스타를 한입에 넣었다. 조금 컸나, 씹기가 버거웠다. 

  “아까 읽던 책 뭐야?”

  “그냥 연애소설.”

  “연애소설 안 좋아하잖아.”

  “베스트셀러는 다 읽어봐야 직성이 풀리거든.”

  인터넷에서 꽤 화두에 올랐던 소설이었다. 하루아침에 대스타가 되어버린 남자친구를 둔 여자를 화자로 한, 담백한 문체가 인상적인 소설이라고 했다. 사실 타이치한테 저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소설 소개를 보고 나니 본능적으로 손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지금은 중간까지 읽었고, 슬슬 주인공이 혼자 고뇌하는 중이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바빠서 연락이 안 되는 일이 잦고, 한 번 연락하기가 그렇게 어렵고, 쉬는 날에는 밀린 잠을 자느라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 연애를 계속 해도 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타이치.”

  “응?”

  “오늘 촬영 또 있어?”

  “아니, 이제 끝났지. 왜?”

  타이치의 되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책에 비하면 타이치는 아직 스타라고 하기도 민망한 정도였지만, 나날이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불안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분명 배우들은 다들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만 모여 있겠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누가 뭐래도 타이치의 눈에는 내가 제일 잘났을 테니까. 고등학생 때부터 늘 타이치에게 들어온 말이었다. 내가 살면서 봐온 사람들 중에 네가 제일 예뻐, 켄지로. 들을 때마다 낯간지러웠지만 늘 내 자존감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카와니시 타이치가 나를 사랑한다고.

  “내일도 바쁘지?”

  “내일은 화보 촬영 있어서 늦을 거야.”

  타이치는 그렇게 말하고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무슨 일 있어?”

  하여간 눈치는 빨라가지고. 나는 한 번 더 모른 척 할까 하다가도 따라서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냥.”

  “그냥이 아닌 것 같은데.”

  “……하루 종일 같이 있어본 거 오래된 거 같아서.”

  작게 중얼거리면서도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그럼에도 타이치의 시선이 뜨겁게 느껴졌다. 괜히 그런 책을 샀다. 뒤늦게야 후회가 몰려왔다. 나와 그녀는 다르고 타이치와 그도 다른데, 왜 그런 책을 골랐을까. 볼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렇네.”

  타이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는 다시 포크를 들고 아까보다 더 많이 면을 끌어 모아 돌돌 감았다. 포크에 감긴 면은 거의 실타래 수준이었다.

  “이번 주 목요일 어때?”

  “뭐가?”

  목적어도 뭣도 없는 물음에 나는 면을 말던 걸 멈추고 타이치를 올려다보았다. 타이치는 턱을 괴고서 부드럽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거.”

  “…….”

  “그 날 스케줄 없다고 말하는 거 깜빡했어.”

  같이 있을 거지? 확인하듯 물어오는 부드러운 질문에 나는 아무런 담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크게 말아버린 면을 억지로 입에 욱여넣을 뿐이었다. 켄지로?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타이치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다 읽지 못한 소설의 결말은 모르겠지만 우리의 사랑은 꽤 오래갈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