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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수평선

팥_ 2016. 3. 22. 02:14




  오늘따라 오이카와의 걸음이 빨랐다. 카게야마는 연신 곁눈질로 오이카와를 훔쳐보며 빠르게 그의 뒤를 따랐다. 카게야마의 입술이 두어 번 달싹였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소리는 없었다.

  “토비오.”

  오이카와가 카게야마의 이름을 불렀다. 멈춰서지는 않았다.

  “전에 사귀었던 여자애들이랑은 제일 오래 간 게 겨우 반 년 이었다?”

  카게야마가 살짝 걸음을 멈추자 오이카와가 자연스럽게 카게야마의 손목을 붙잡고 걷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계속해서 카게야마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근데 너랑은 벌써 이 년째잖아.”

  오이카와의 말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의 시선은 여전히 정면이었지만.

  “갑자기 문득 이유가 궁금해져서 어제 혼자 생각해봤어.”

  오이카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도로는 한없이 직선이었고, 오늘따라 유난히도 마주 걸어오는 사람이 드물었다. 

  “다른 여자애들과 나는 수직적인 관계였어.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한없이 받는 애정에만 익숙해져서 굳이 내가 마음을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 그러다보니 자연히 관계가 비틀어지더라. 위 아래로 서있다 보니 마주보기도 힘든 관계. 당연한 거지.”

  카게야마는 계속해서 물끄러미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토비오, 너랑은,”

  오이카와는 처음으로 걸음을 멈추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잡은 손목에 당겨지듯 따라 걸음을 멈추었다. 오이카와의 눈이 곧게 카게야마의 눈을 응시했다. 살짝 높은 눈높이였지만 마주보기엔 무리가 없었다.

  “우리는 수평선에 서있어.”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은 오이카와의 손이 움찔거렸다.

  “나는 그게 내가 너를 좋아하는 이유고, 우리가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 네가 마음을 주는 대로 나 역시 너에게 마음을 주고, 내가 마음을 주는 대로 너 역시 나에게 마음을 줘. 내가 말을 하면 너는 나를 쳐다보지. 그게 무슨 얘기건 간에. 이해하고 말고는 상관없어. 그저 너는 말을 하는 내가 중요한 거야. 그리고 너는 이해하지 못해도 고개를 끄덕일 테지. 나는 네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네가 좋아서 계속 말을 이어. 지금처럼.”

  오이카와의 마지막 말에 카게야마가 머쓱한 얼굴을 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바라보며 입매를 당겨 웃었다.

  “우리는 많은 게 다르지만 그만큼 같은 거야.”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지 않은 다른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어려운 말들이 필요한 거예요?”

  우리 사이를 얘기하는 데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저는 그냥 오이카와 선배가 좋아요.”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던 오이카와의 손이 멈췄다.

  “다른 건 모르겠어요. 그냥 선배가 좋아서 사귀고 있어요.”

  카게야마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단정한 머리 사이로 드러난 양쪽 귀가 보일 듯 말듯 물들어있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머리에 올려놓았던 손을 내려 자연스레 카게야마의 볼을 감싸 쥐었다. 희미한 열기가 서려있었다.

  “그렇네.”

  오이카와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나도 그래.”


  오이카와는 나름대로 수많은 생각을 했었다. 비슷한 것보다 다른 점이 더 많은 저와 카게야마의 관계에 대해서. 오늘 카게야마에게 말한 말들은 전부 나름대로 힘겹게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모든 사고를 단 한 마디로 일축했다. 카게야마의 한 마디는 짧았지만, 오이카와의 머릿속에 남겨져 있던 수많은 생각들을 전부 지워내었다. 

  오이카와는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