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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카게] 불씨의 순간

팥_ 2016. 5. 3. 20:06



카게른 4인 글합작에 키워드 '폭우' 와 '너를 찾다' 로 참여했습니다.

http://ktobioright4.tistory.com/





  비가 얼마나 쏟아지는 건지, 천둥소리가 아닌 빗소리에 잠이 깰 정도였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었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잠잠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몰아치기 시작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서늘한 공기에 살짝 몸을 떨며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켜곤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 어쩐지 소리가 크더라니. 열려있는 창문 틈으로 비가 들이닥쳤는지, 창가에 두었던 화분들 위에 물방울이 잔뜩 맺혀 있었다. 많이 맞은 거면 큰일인데…… 이와이즈미는 혀를 차며 열려있던 창문을 닫았다. 그러자 동시에 빗소리가 잠잠해졌다. 

  서늘하면서도 눅눅한 공기가 잔뜩 피부를 짓눌러 아무래도 이대로 잠들기는 무리이지 싶었다. 이와이즈미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느새 불이 희미해진 벽난로를 향해 걸어가려다, 그대로 발을 멈추었다. 창문을 닫았어도 여전히 들려오는 빗소리 사이로 낯선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무언가를 두드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찌푸리고 벽에 걸려있던 총을 조심히 집어 들었다. 산 아래에 자리한 집은 그럭저럭 만족스러웠지만 딱 하나, 야생동물이 문제였다. 족제비나 오소리 정도면 큰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었지만 가끔씩 멧돼지가 내려오는 경우가 있는 게 문제였다.

  다시 한 번 둔탁한 소음이 울렸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바라보았다. 나무로 된 문이 덜컹이고 있었다. ……사람인가? 그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게 현관문이라는 걸 인지하자마자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워낙 외진 곳이라 마을 자체에 사람이 거의 없었을 뿐더러, 이와이즈미의 집이 위치한 곳은 마을에서도 외곽이었고, 누군가를 집에 들일 정도로 마을 사람들과 교류한 적도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들었던 총을 놓지 않은 채로 천천히 문을 향해 걸어갔다. 

  “누구세요?”

  이와이즈미는 잠금장치를 쥐고 물었다. 무언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지만 빗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질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인내심을 가지고 되물었다. 희미한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들려온 목소리는 이름도, 신분도, 그 어떤 무엇도 품고 있지 않았다. 대답은 간단했고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바깥의 이는 이와이즈미가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 번 간단명료한 대답을 반복해서 대답했다.

  “저예요, 이와이즈미 선배.”

  이와이즈미는 조용히 문의 잠금장치를 열었다.


  이와이즈미는 멍하니 눈앞의 후배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비를 맞은 건지 젖었다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물에 빠졌다 나온 듯한 모양새였다.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설마 싶었다. 그러나 문을 열었을 때 눈앞에 보인 얼굴은 역시나 카게야마였다. 이와이즈미는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카게야마를 바라보다가 아차 싶었는지 재빠르게 욕실로 들어가 폭신한 수건을 들고 나와 카게야마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카게야마는 이와이즈미에게 수건을 받아들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가볍게 머리를 털었다. 이와이즈미는 또 한 번 넋을 놓고 카게야마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제정신이 들었는지 카게야마의 옷자락을 잡고 거의 불이 꺼져가는 벽난로 앞으로 향했다. 

  “여기 앉아서 일단 몸 좀 말려.”

  이와이즈미의 말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이곤 카페트가 깔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카게야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벽난로 위에 올려놓은 불쏘시개를 하나 꺼내들고 쭈그려 앉았다. 꺼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타오르는 불씨들이 서로 아우성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꾹 깨물고 불을 붙인 불쏘시개를 벽난로 안으로 던져 넣었다. 

  갑작스러운 카게야마의 등장은 얌전히 가라앉아있던 이와이즈미의 머릿속에 거대한 파문이 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카게야마를 본 게 언제였더라. 이와이즈미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도 병원에서 잠들어있는 얼굴을 본 게 마지막일 테다. 그로부터 7년 정도가 지났고, 이곳으로 이사 온 지는 약 2년가량이 지났다. 7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지만 지금 제 앞에 나타난 카게야마를 보자니 그것도 아니었다. 7년 전의 카게야마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7년 동안 한 번도 못 본 얼굴도 아닌데. 

  카게야마야 이와이즈미를 못 본 게 당연하지만, 이와이즈미는 달랐다. 카게야마는 완전히 국가대표 주전 선수로 자리 잡았기에 종종 뉴스를 틀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마저도 멍하니 몇 분 보다가 곧 다른 채널로 돌려버리는 게 보통이긴 했지만, 그래도 텔레비전 너머로 볼 때에는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20대 후반의 어른으로 성장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은…… 이렇게 먹먹한 얼굴을 하고서. 

  “이렇게까지 외진 곳에 계신 줄은 몰랐어요.”

  그러니까 몇 년 동안 못 만난 거겠지만. 카게야마가 혼잣말 비슷한 것을 덧붙였다. 

  “도시보다 좋더라고.”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불씨를 쿡쿡 쑤시며 대답했다. 영원히 만나지 않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부모님께는 종종 연락을 드리곤 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제가 머무는 곳이 알려질 거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사도 자주 했고, 부모님께도 머무는 곳은 그저 뭉뚱그려 답하곤 했지만 어떻게든 연락이 닿는 이가 있는 이상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역시 무리였다.

  이와이즈미는 제법 타오른 불길 속으로 장작을 하나 집어넣었다. 그러자 불길은 더욱 크게 타오르며 순식간에 공기를 데워주었다.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를 내며 활홡 타오르는 불꽃 앞에서 이와이즈미는 더 이상 카게야마와의 대면을 미룰 이유를 찾지 못했다. 허리를 피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머뭇거리다 카게야마의 앞으로 걸어가 주저앉았다. 

  카게야마가 저를 찾아온다면 못해도 2년 안쪽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를 떠난지 5년이 지났을 무렵,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인터뷰가 흘러나오는 텔레비전을 보며 생각했다. 널 다시 볼 일은 없겠구나.

  “너무 찾기 어려웠어요.”

  “…….”

  카게야마는 조금 전 이와이즈미가 건네주었던 수건을 목에 걸고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적막 속에서 벽난로 속의 장작만 타오르고 있었다.

  “7년 동안 계속 찾아다녔어요. 오이카와 선배, 킨다이치나 쿠니미, 그리고 다른 아오바죠사이 사람들은 물론이고 선배가 거쳐 갔던 모든 감독님들한테까지 몇 번을 물어봐도 아는 사람 하나 없더라고요. 선배네 부모님께도 수시로 연락드렸는데 매번 모른다고 하셨지만 저는 안 믿었어요.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니까요.”

  7년 동안 계속 찾아다녔어요. 그 말에 이와이즈미는 목구멍 안쪽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기분이었다. 묵은 상처가 다시 쿡쿡 통점을 찔러왔다. 카게야마가 자신을 찾지 않기를 바랐고, 이런 선택을 한 만큼 제 몫까지 더 잘 살아주기를 바랐다. 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카게야마의 소식들을 들으며 제가 원한 대로 다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자신처럼 그도 전부 정리했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고 제 본분에만 매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게야마는 그저 감추었을 뿐이었다.

  “선배.”

  “…….”

  “손……”

  카게야마의 시선은 어느새 이와이즈미의 오른손을 향해있었다. 제 손을 내려다본 이와이즈미는 눈에 띄게 어깨를 들썩이며 황급히 감추듯 왼손으로 오른손을 덮었다. 그래도 카게야마의 시선은 떠나질 않았고, 제 손의 떨림도 멎질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보란 듯이 덜덜 떨려대는 오른손이 짜증스러웠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근래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와이즈미는 연신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길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오른손에는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카게야마의 눈에는 7년 동안 홀로 이런 꼴을 하고 숨어 산 처량 맞은 사람처럼 보일까 겁이 났다. 이와이즈미는 급기야 주먹을 쥔 왼손으로 오른팔을 내려쳤다. 그리고 한 번 더 내려치려는 순간, 주먹은 차마 팔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멈춰 섰다.

  “…….”

  “…….”

  카게야마의 손목이 이와이즈미의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건 아주 강한 힘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의 힘도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말없이 이와이즈미의 눈을 응시했다. 짙은 푸른색의 눈동자에 서글픈 세월이 맺혀있었다. 명치 끝부분이 뜨거워졌다. 눈물을 참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카게야마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는 그의 첫인상과는 다르게 사람에게 애정을 퍼주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특정한 사람에 한해서였지만, 그러한 그의 성격은 쉽게 그를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게 만들기 쉬웠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사고였다. 완벽하게 상대방의 과실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그저 규정을 준수하며 운전을 하고 있었고, 카게야마는 그의 옆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카게야마가 정신을 차렸을 땐 병원이었다. 다행히 카게야마는 큰 이상 없이 가벼운 외상뿐이었지만, 이와이즈미는 달랐다. 카게야마가 정신을 잃은 동안 이와이즈미는 이미 수술에 들어간 상태였다. 카게야마는 보이는 대로 의사를 붙잡고 이와이즈미에 대해 물었다. 의사들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팔을 조금 크게 다쳤을 뿐이며 생명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카게야마를 달래려 들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끝이 없는 지하로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남자 배구 국가대표 주전 스파이커였다. 

  카게야마는 가벼운 검사 몇 가지를 한 후 빠르게 퇴원했지만 이와이즈미는 달랐다. 팔의 신경이 심각하게 훼손됐기 때문에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카게야마는 즉시 소속팀의 연습에 복귀했지만, 연습벌레처럼 굴던 전과는 달랐다. 정규 일과를 마치고 나면 곧장 이와이즈미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가 종일 이와이즈미와 함께였다. 아무리 이와이즈미가 그러지 말라고 당부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잠도 병실에서 잤고, 날이 밝는 대로 병원의 샤워실에서 가볍게 씻은 후 다시 훈련에 참가했다. 훈련이 끝나고 나면 또 반복이었다. 

  카게야마가 없는 동안 이와이즈미는 이미 오래전에 선고를 받았다. 재활에 성공한다고 해도 가볍게 물건을 드는 정도만 가능하기 때문에 선수 생활은 당연히 무리라는 의사의 말을 들으며 이와이즈미는, 가장 먼저 카게야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카게야마의 잘못이라곤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카게야마는 자신은 멀쩡하고 이와이즈미만 이렇게 됐다며 제 탓을 할 그런 아이었다. 갖지 말아야 할 죄책감을 만들어 한없이 저를 가라앉힐 아이였다. 이와이즈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한 배구를 그만둬야 한다는 사실보다도 더 먼저 카게야마를 떠올렸다. 카게야마에게 말할 자신이 없었다. 아직도 카게야마는 병원에서 경과를 지켜보며 재활훈련을 열심히 하면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 맹목적인 희망 하나로 제 옆을 지키는 카게야마에게, 자신은 이제 끝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걸 제 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결정한 게 도망이었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사는 게 삶의 목표였던 이와이즈미에게 인생의 큰 오점으로 남은 순간이었다. 별 수 없었다. 그 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도망친 후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도망으로 카게야마가 받을 충격이 그가 제 옆에서 평생 동안 죄책감을 안고 살며 얻을 고통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비가 오면 선배가 생각나요.”

  그것도 오늘처럼 이렇게 많이 내리는 날이면.

  카게야마가 쥔 이와이즈미의 팔은 어느새 차분히 바닥으로 내려와 있었다.

  “7년 동안 단 하루도 선배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

  “그래도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유난히도 선배가 떠올라버려서,”

  “…….”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저는, 아, 내가 선배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맞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기억…… 하죠?”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우리의 처음을. 카게야마는 눈치를 살피듯 이와이즈미에게 물었다. 내가 널 싫어해서 떠났을 거라 생각해?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날은 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이와이즈미와 카게야마가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길에 내린 비는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급한 대로 카게야마를 끌고 뛰어 큰 나무 밑으로 향했다. 잎이 무성한 나무여서 그런지 무섭게 비가 쏟아지는데도 새어나오는 빗물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비에 젖은 두 사람, 그리고 슬슬 습도가 높아지는 초여름의 공기, 고막이 터질 것만 같은 빗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 모든 것들이 작용해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휩쓸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 젖어버린 반팔만 입은 채로 흥건히 젖은 셔츠를 쥐어 짜내는 카게야마의 옆모습을 보며 이와이즈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좋아해.

  몇 번을 되뇌고 또 되뇌었던 말인지 모른다. 그렇게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간신히 폭우 속에서야 뱉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 카게야마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죄송해요, 비 때문에 소리가 안 들려서…… 마치 자신의 잘못인 마냥 우물우물 뱉어내는 카게야마 역시 사랑스러웠다. 이와이즈미는 웃으며 손을 뻗어 축축하게 젖은 그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털어주었다. 어쩐지 지금은, 빗소리에 기대지 않아도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고 그대로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카게야마는 놀란 얼굴로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귓가로 제 입술을 가져갔다. 

  좋아해, 카게야마.

  그 때만큼은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세상이 멈춰서, 이와이즈미의 목소리만 느리게 신경을 타고 흘러들어 오고, 쏟아지던 비들 역시 전부 허공에 멈춰 그들의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주는 듯했다. 그렇게나 아름다웠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봤는데, 오늘 저녁엔 폭우가 내린다고 하길래 그대로 선배네 부모님께 찾아갔어요. 오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처음으로 그 분들을 붙잡고 울었어요.”

  “…….”

  “저는,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카게야마의 덤덤한 목소리가 느리게 흘러나왔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어깨 너머에 있는 벽난로로 시선을 옮겼다. 장작이 제대로 마르지 않았던 건지, 벌써 불길이 꺼져가고 있었다. 저대로 두면 불길은 사라져 불씨가 되고, 그대로 사그라질게 분명했다.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저 불길을 살리지 못할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다시 시선을 돌려 제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보다는 덜했지만 여전히 떨림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가, 펴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배.”

  카게야마가 조금은 초조한 목소리로 이와이즈미를 불렀다. 이와이즈미는 대답 대신 벽난로로 걸어가 벽난로 위에 놓인 불쏘시개를 들어 다시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불쏘시개는 벽난로 안으로 던져졌다. 이와이즈미는 쌓인 재들을 옆으로 밀어내고 다시 마른 장작을 두 개 정도 꺼내 벽난로 안에 던져 넣었다. 그리곤 정성스레 입김을 불며 불을 지폈다. 몇 번 뒤적여주자 불은 언제 생기를 잃어갔냐는 듯 다시 커다랗게 부풀어 열기를 뽐내었다. 

  “이제는 인터뷰도 꽤 잘하게 됐더라.”

  이와이즈미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예전에야 어땠을지 몰라도, 이제는 네가 나보다 훨씬 어른이겠지.”

  내가 7년 동안 한 일이라곤 이런 곳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뿐이니까.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카게야마를 향해 걸어갔다. 고개를 높이 들고 이와이즈미를 바라보던 카게야마의 시선이 느리게 내려왔다. 이와이즈미는 카게야마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의 목에 걸린 수건을 쥐었다. 

  “넌 내가, 너를 많은 방면에서 가르쳤다고 말했지.”

  이와이즈미의 도망 이후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섰던 카게야마가 했던 말이었다. 카게야마 역시 그 사실을 떠올린 건지 짙은 푸른색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네가 나를 가르쳐야 돼.”

  이와이즈미는 수건을 들어 카게야마의 머리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손을 움직여 아직도 머리카락에 맺힌 물기들을 살살 털어내었다.

  “난 7년 동안이나 처박혀서,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 엄청…… 이상하고, 답답하고, 아무튼,”

  “이와이즈미 선배.”

  카게야마는 손을 들어 제 머리를 털어내던 이와이즈미의 손을 붙잡았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눈이 똑바로 이와이즈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

  “다, 괜찮아요.”

  이와이즈미는 물끄러미 카게야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빗소리가 잠잠해져 있었다. 집 안은 고요했고,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벽난로의 장작이 따뜻한 열기를 뿜어내며 부드럽게 타오르는 소리뿐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깨물고 제 손을 덮은 카게야마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꾹 다물렸던 입술이 조용히 느릿느릿 떨어졌다. 다,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