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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공큐] 구원

팥_ 2015. 12. 6. 23:08




  본드는 침을 꿀꺽 삼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처 매뉴얼들을 천천히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아마 이건 얼마 되지 않은 본드의 더블 오 요원 인생 중 최악의 사건임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해봐도 단연 일 순위일지도 몰랐다. 본드는 제 체구보다 조금 큰 파자마를 입고서, 삐뚤어진 안경 너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어린 아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순전히 이건 제 실수였다. 처음에는 먼저 아이가 있는 지에 대한 여부를 알려주지 않은 백업 팀에게 화가 났지만, 어찌됐건 눈앞에 있는 이 남자를 처리하기 전에 다른 목격자가 될 만한 인물은 없는지 살피지 않은 제 실수였다. 아차.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도로록 굴러가는 순간 본드는 급하게 남자의 시신을 겨누고 있던 총을 아래로 내렸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지도, 울지도 않았다. 본드는 그래서 더욱 불안해졌다. 총을 쥔 손에 땀이 차올랐다. 아이가 울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무자비한 킬러라도 됐다면 그냥 저 애까지 처리해버리면, 아니, 이건 아니다. 본드는 지급받은 무기 중에 기억을 지우는 총 같은 게 없었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있을 리가 없었다. 

  “……죽었나요?”

  작은 목소리가 차갑게 식어가는 공기를 뚫고 흩어졌다. 본드는 흠칫 놀라며 재빠르게 총을 다시 움켜쥐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본드는 바싹 말라버린 입술을 혀로 훑으며 짧은 시간동안 고민했다.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여기서 잠든 것뿐이라는, 지나가던 개도 믿지 않을 거짓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본드는 곧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 아이는 여섯 살 정도 되어보였고, 그만한 나이의 어린아이를 속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본드는 입을 여는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지도, 울지도 않았다. 본드는 총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본드의 머릿속에선 바쁘게 사이렌이 울렸다. 하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작은 입술을 끌어올려 살짝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런 웃음을 짓는 아이는 처음 본다고 본드는 생각했다. 그건 해방감 같은 것에서 비롯된 미소였다. 본드는 살짝 접히는 아이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이의 입술이 벙끗거렸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고, 본드는 그것을 읽지 못했다. 그대로 아이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마룻바닥에 내려앉는 작은 몸은 그다지 큰 소음을 내지도 않았다. 본드는 급하게 총을 내던지고 아이에게로 달려갔다. 애초에 본드는 이것저것 재는 성격이 아니었다. 순전히 본능에 의거한 행동이었다. 본드는 작은 몸을 품에 안아들었다. 얼굴에서 안경이 흘러내렸다. 본드는 안경을 들어 조심스레 다리를 접고는 제 안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본드의 입에서 하얗게 얼어붙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늘 밤 내가 두 번째로 저지르는 실수가 되겠군. 본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를 어깨에 둘러메었다.


  낯선 천장. 아이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나갔다. 남은 기억은 아주 짧은 것들이었다.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코끝에 풍겨오던 짙은 비린내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맡아본 냄새였고, 처음으로 느껴본 공포였다. 나도 죽는 건가? 아이는 자문했다. 그와 동시에 닫혀있던 방문이 열렸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일어난 거 다 봤어.”

  본드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러자 몸 위로 덮인 이불이 흠칫 떨려왔다. 어쩌자고 이곳에 데려왔을까. 하지만 그곳에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본드는 그렇게 자신을 위안했다. 그렇다고 해서 본부에 이 아이를 데려온 사실을 보고한 건 아니었다. 사실 그 정도로 떳떳하지는 못했다. 아마 M의 잔소리가 쏟아질 터였다. 자네 사실 애 아빠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닌가? 놀랍게도 귓가에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본드는 살짝 몸서리를 쳤다. 

  “이름이 뭐지?”

  본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직 쇼크가 남아있을 법도 했지만 본드는 그 정도로 배려심이 넘치는 아니었다. 아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손을 뻗어 협탁 위를 더듬거렸다. 아. 본드는 어젯밤에 꺼내 놓았던 안경을 서랍에서 빼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작은 손으로 주섬주섬 안경을 쓴 아이는 아직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듯 아직도 찌푸린 얼굴로 본드를 바라보았다. 또 다시 안경 한 쪽이 흘러내렸다. 아이는 그걸 올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일상적인 일인 듯했다.

  “Q.”

  “본명이 그거라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본부에는 아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신원 조회를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이름은 몰라요. 그냥 어릴 때부터 그렇게 불렸어요. ……그 사람한테요.”

  본드는 Q가 말한 ‘그 사람’이 자신이 어제 죽인 남자라는 걸 직감했다. 본드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Q는 고개를 돌려 매섭게 본드를 쳐다보았지만 본드는 Q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간밤에 열이 오른 아이 때문에 파자마를 벗기고 찬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이의, Q의 몸은 또래 아이들보다 더 작고 앙상했다. 이 정도면 아동 학대 수준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가슴과 배를 닦아낸 본드가 등을 닦아내기 위해 아이의 몸을 뒤집었을 때, 본드는 그대로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작고 마른 등 위로 시뻘건 흉터가 가득했다. 이미 오래 된 흉터인지 갈색의 문신처럼 변해 있는 자국들도 많았지만 그 위를 뒤덮고 있는 건 피가 터지고 물집이 솟아난 상처 자국들이었다. 긴 채찍이 수십 번 가량 아이의 몸을 베어낸 것처럼 보였다. 일그러진 얼굴로 한참동안 상처들을 바라보던 본드는 그 상처 사이에 남겨진 작고 붉은 자국들을 발견했다. 익숙한 자국이었다. 본드는 설마 싶은 마음으로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손목엔 무언가에 꾸준히 결박당해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하반신은 더욱 가관이었다. 엉덩이며, 허벅지 안쪽이며 매질을 한 흔적과 함께 예의 그 붉은 자국이 하반신을 전부 뒤덮고 있었다. 그런 표정을 지을 만도 하군. 본드는 경악스러운 얼굴로 생각했다. 힘없이 입술을 벙끗거리던 아이가 어른거렸다. 이 몰골을 보고 나니 아이가 중얼거리던 말을 알 것도 같았다. 다행이다. 사람의 죽음을 본 어린 아이가 내뱉을 만한 말은 절대로 아니었다.

  “나이는?”

  “……열한 살.”

  본드는 살짝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여서 일곱 살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에 비해 훨씬 많은 나이였다. 아무리 제가 어린 아이에 대해 무지하다고 해도 그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만큼 Q는 작고 마른 상태였다. 아마 어느 누가 보더라도 많이 쳐봐야 여덟 살 정도로밖에 보지 않았을 것이다. 본드는 말없이 Q를 쳐다보았다. 햇살을 받은 Q의 눈은 오묘한 빛을 띠고 있었다. Q는 본드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본드는 의도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서 ‘위압적이다’라는 평을 듣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본드가 한참을 쳐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눈을 돌렸다. 하지만 Q는 아직도 본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Q의 눈은 고요했다. 일렁거림이 없었다. 마치 바람이 불지 않는 호수 같았다. 본드는 오히려 제가 눈을 피하고 싶어졌다. 사람을 대하는 건 쉬웠지만 아이를 대하는 데에는 취약했다. 본드는 아무래도 일단은 본부에 실토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M이 알아서 치료사며 상담사며 다 붙여주겠지. 조금은 ―사실은 조금 많이― 욕을 먹게 되더라도 그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본드가 연락을 취하기 위해 자리를 나서려는 찰나, 본드는 무언가에 옷을 붙잡히고 말았다. 의자에서 못이라도 튀어나왔나 싶었지만 저를 붙든 건 놀랍게도 Q의 작은 손이었다. 본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Q를 바라보았다. 그 오묘한 눈이 다시금 저를 꿰뚫고 싶었다. 본드는 욕이라도 한바탕 하고 싶어졌다.

  “저도 죽는 건가요?”

  그리고 Q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본드를 괴롭히기에 아주 적절한 말이었다. 본드는 인상을 쓰고 Q를 빤히 쳐다보았지만 Q는 역시 본드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먼저 고개를 숙인 건 본드였다. 그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툭하고 떨어졌다.

  “아니.”

  본드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제 옷을 붙잡은 Q의 손을 떼어놓았다. 그리 힘을 주지 않고 있었던 건지, 혹은 그만한 힘이 없었던 건지 Q의 손은 손쉽게 떨어져나갔다.

  “그 집으로도 돌아가는 일도 없을 거야.”

  본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몸을 돌려 일어섰다. 직전에 보인 Q의 얼굴에 안도의 얼굴이 떠오른 것도 같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째서 자신이 그런 말을 내뱉었는지도 몰랐다. 본드는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본부에 연락을 취한다면 아마도 각종 정신 검사며, 육체적 검사며, 지능 테스트, 갖가지 검사들을 받아야 할 테고, 본드는 그 과정들이 끔찍하게도 싫었지만 저 아이에게는 처음으로 맛보는 천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드는 주머니 속에 들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메일함을 열어 익숙한 M의 메일 주소를 채워 넣었다. 적어도 전화보다는 이 편이 나을 것이다. 본드는 한숨을 쉬며 텅 빈 내용란을 천천히 적어 내려갔다.






#00Q_전력60분

주제 ; 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