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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아카/청적] 붉은 비

팥_ 2014. 6. 4. 00:00

테이코 청적데이 기념 청적 합작 <글> 부문으로 제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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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지독한 비가 내렸다.


  장마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 한 달간 일본의 하늘은 단 한 번도 햇살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한 달 내내 비가 그친 적이 없는 장마라니. 매일같이 뉴스와 신문들은 일본 사상 초유의 사태라며 앞 다투어 기상 전문가들을 모셔 보도하기 바빴고, 우리들은 젖은 운동화와 옷들을 말리기 바빴다. 가뜩이나 입시 준비로 우울한 교실에 햇빛이라도 좀 들면 얼마나 좋을까. 한없이 가라앉은 교실 분위기에 나는 습관적으로 딸깍이던 볼펜을 가만히 책상 위에 내려두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가라앉은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하긴, 그럴 만도 한 것이 오늘은 전에 본 중요한 모의고사의 성적표가 배부된 날이었다. 그나마 아까까진 교실 여기저기서 여자애들의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질 않더니 지금은 집에 갈 때가 다 되어 진정된 건지 많이 침착해진 분위기였다. 


  학교를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고, 다시 약간의 활기를 되찾은 교실이 바쁘게 움직였다. 내일 봐, 아오미네. 나를 향해 건네는 몇몇 아이들의 인사를 대강 받아치고 나는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교실에 남아 간단하게 책상을 정리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런 날 주번이기까지 하다니 운수 하고는. 사실 남아서 교실을 정리해야 하는 주번은 두 명이지만, 함께 주번인 다른 여자애는 앞이 보일지 궁금할 정도로 눈이 부어 있길래 그냥 먼저 보내고 나 혼자 정리하게 된 것이었다. …정말 울고 싶은 사람은 난데.


  오늘은 정말이지 최악의 하루였다.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와 있길래 급히 달려가 탔더니 끝자리가 살짝 다른 버스이질 않나, 깨달은 순간 내려 본래 탔어야 할 버스의 대기 시간을 보니 15분이나 남았질 않나, 어쩔 수 없으니 기다리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거나하게 구정물을 온몸에 흩뿌리며 지나가질 않나. 결국 지각해서 벌점 받고, 요즘 성실해진 듯 싶더니만 또 시작이냐는 잔소리도 듣고. 그걸로 끝났으면 차라리 행복했겠지. 저번 모의고사는 정말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한 모의고사였다. 실제로 가채점 결과도 예전보다 성적이 많이 올라 평균을 넘나드는 정도로 나왔었고. 그랬기에 솔직히 성적표 배부일을 약간 기다린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가채점이랑은 전혀 다른 터무니없는 결과가 성적표에 찍혀 보란 듯이 내게 웃고 있었다. 마킹할 때 시간이 없어 급하게 허둥지둥했더니만 기어코 밀려 쓴 게 분명했다. 이 모든 일을 하루에 다 겪고 난 느낌은 글쎄, 현실성이 없어 욕보단 헛웃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마치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랄까. 


  교실 정리를 마무리 짓고 가방을 멘 후 나는 한숨을 쉬며 교실 뒤쪽의 우산꽂이로 향했다. 그래, 애들 다 가고 집에 가니 내 우산 찾겠다고 난동 피울 걱정은 없겠네. 라고 생각하며 우산꽂이를 본 순간, 나는 줄 위에서 현실로 떨어짐을 느꼈다.


  완벽하게 최악인 하루로구만. 어떤 새끼가 가져갔는지 몰라도 진짜… 나는 이를 악물고 현관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다 못해 쏟아지고 있었다. 어쨌든 집에는 가야겠으니 1층 현관까지 나오긴 했는데, 뭘 뒤집어쓰든 아무 소용도 없을 것처럼 쏟아지는 바에 차마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부모님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이 빗속을 헤치고 나가는 것밖에 답이 없어 연신 입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람 반 짜증남 반으로 거칠게 뒤를 돌아보자 웬 붉은 머리를 한 낯선 남자애가 곱게 접힌 삼단 우산을 내게 내밀고 있었다.


  “…뭐야?”

  “내 우산. 난 필요 없으니까 너 써.”


  아무리 봐도 낯선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평범한 얼굴인 것도 아니었다. 어느 무리에 있건 인상에 강하게 남을 법한 그런 얼굴이었다. 그러나 단언컨대 나는 이 학교에 3년째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얼굴을 한 사람을 본 기억이 없었다. 게다가 이 남자아이는 우리 학교 교복 차림도 아니었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멀끔한 사복 차림이었다. 일단 얼굴만 봐서는 우리 또래의 나이 같기는 한데.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닌 애가 왜 갑자기 내 등 뒤에서 나타나 우산을 건넨단 말인가.


  “너는?”

  “난 필요 없어.”

  “…….”

  “…내가 초래한 일이기도 하고.”

  “무슨 말이야?”


  내게 한 말이 아니라 혼잣말처럼 뱉은 작은 목소리에 나는 바로 되물었지만, 그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살며시 웃으며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는 그대로 장대비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뭐하는 거냐고 그 녀석을 붙잡는 것보다 녀석을 둘러싸고 펼쳐진 기이한 광경이 먼저였다. 녀석의 몸에는 비가 닿지 않았다. 마치 온몸을 얇은 보호막이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녀석이 존재하는 부분만 제외하고서 비가 흐르고 있었다. …잘못 본 거겠지. 나는 눈을 세게 감고 고개를 탈탈 털었다가 다시 눈을 떠 녀석이 걸어가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왼손에 쥐어진 우산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꿈이라도 꾼 것 같았다. 이 우산이 아니었으면 꿈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르지. 나는 정갈하게 접힌 우산을 펼쳐 쓰고 빗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기하게도 비가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우산 밖의 세상과 한 겹 막을 둘러놓은 것처럼 고요할 뿐이었다. 


  그 후로 나는 늘 우산을 두 개씩 챙겨 들고 다녔다. 내가 쓰고 다닐 우산과 그 녀석에게 받은 우산, 이렇게 두 개씩.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닌 것 같으니 언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혹시나 그때처럼 갑자기 학교에서 마주칠까 싶어 언제든지 바로 돌려줄 수 있게 말이다. 사실 이제는 이 우산을 보고 있더라도 그 날 있었던 일이 꿈은 아닐까 싶었다. 묘하게 몽환적이던 그 녀석의 생김새도 그렇고, 그 말도 안 되는 일도 그렇고. 꿈이 아니라면 내가 잘못 본 것이겠지. 어찌 됐건 제대로 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은 그 녀석을 다시 만나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언제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어디서든 그 붉은 머리를 보며 당장 뛰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 일이 있은 지 정확히 일주일 후, 나는 결국 그 붉은 머리카락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여느 때처럼 능숙하게 우산을 펴고 기관총처럼 우산을 때려대는 빗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교문 가는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습관대로 두리번거린 시야에 결국 붉은 머리카락이 들어온 것이다. 벤치에 앉아 빗줄기를 따라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그 뒷모습은 분명 그때 그 녀석이 틀림없었다. 나는 그 녀석이 맞다고 굳게 확신하자마자 그대로 그 뒷모습을 향해 달려가 녀석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놀랄 만도 한데 녀석의 몸은 흠칫거린다거나, 움찔거린다거나 그런 류의 반응도 없었다. 곧 녀석이 천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반응도 없던 몸과는 다르게 얼굴에서는 놀란 기색이 살짝 엿보였다. 


  “…내가 보여?”

  “이게 누굴 장님으로 아나.”


  놀란 얼굴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는 참 그 녀석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녀석답다고 하기엔 녀석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뭐랄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든지, 현실에서 동떨어진 그 느낌 같은 것들이 말이다. 나는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을 녀석 쪽으로 기울이고는 가방을 열어 늘 들고 다니던 그 우산을 꺼내 들었다. 녀석의 미간이 살짝 움찔거렸다.


  “이거나 받아. 이거 돌려주려고 일주일 내내 무겁게 우산 두 개 들고 다녔다고.”

  “…날 기억해?”

  “내가 바보냐? 그럼 지는 비 다 맞으면서 남한테 우산 주고 간 애를 기억 못 할까.”


  정말로 이상한 녀석이었다. 보이는 게 당연하고, 기억하는 게 당연한 것을 저렇게 놀랍다는 식으로 물어볼 건 뭐란 말인가. 녀석은 여전히 놀랍다는 표정을 하고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뭐랄까…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미인형의 얼굴이었다. 그래, 이런 얼굴이 우리 학교에 있었다면 진작 난리가 났겠지. 역시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닌 게 분명했다. 녀석은 놀랍다는 표정을 바꿔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더니 곧 손을 뻗어 내가 내민 우산을 쥐었다. 그리고 그 날처럼 살짝 웃어 보였다. 


  “고마워. 정말 필요는 없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 우산이 필요가 없으면 대체 뭐가 필요하냐?”

  “글쎄. 보다시피 이런 체질이라서.”


  녀석은 지금껏 보여주던 미소보다 약간 더 환한 웃음 ㅡ그래봤자 조금 더 눈을 접어 웃는 것 정도지만ㅡ 을 짓더니 내가 씌워준 우산 밖으로 손을 뻗어 내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빗줄기가 녀석의 팔을 피하며 흐르기 시작했다. 그 날 봤던 그 기이한 광경은 꿈도 착각도 아닌 사실이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멍청한 표정이라도 지었는지 녀석은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가볍게 웃더니 천천히 팔을 흔들어 보였다. 녀석이 팔을 흔드는 대로 빗줄기의 방향은 시시각각 바뀌며 기묘하게 녀석의 팔만 피해 내렸다. 이게 사람으로 가능한 일인가? 아니… 사람이긴 한 건가.


  “너… 뭐야?”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런 내 질문에 녀석은 이제 재밌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머리색만큼이나 붉은 눈동자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시선에 나는 조금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녀석의 입술이 천천히 달싹였다. 나는 머리카락 끝까지 힘을 줄 정도로 집중을 해서 그 입술을 빤히 바라보았다.


  “신.”


* * *


  문제집 구석에 낙서를 끼적이던 나는 결국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책상 위에 샤프를 크게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았다. 공부를 하던 몇몇이 나를 돌아보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돌려 제 책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녀석을 다시 만난 이후로 내 문제집 구석구석에는 그 녀석의 얼굴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이것 또한 녀석 때문에 생긴 습관이었다. 녀석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래서 다시 보기 위해서.


  ‘나는 신이야. 비를 다스리는 신.’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다른 놈이 그렇게 말했으면 아마 미친 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말했을 터였지만 그 상황, 그 순간에서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렇다. 인간이고서야 어느 인간이 제멋대로 빗줄기를 피하겠는가. 신 정도는 되어 줘야 납득이 되지. 


  ‘신이라고 해서 아예 볼 수 없는 존재인 건 아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는 당연히 볼 수 있지만 보통 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 중 하나인 거지. 어쩌다 인지한다고 해도 그걸로 끝이야. 기억하지 못하니까. 근본적으로 우리는 사람의 기억에 남지 못해. 물론 신이라는 그 존재는 남겠지. 하지만 자신이 본 신의 생김새, 신과 나눈 대화, 행동 이런 것들은 전부 금세 잊게 돼. 그게 순리인 거지. 그러니까 오늘 네가 설사 나를 인식했다 하더라도 전에 나를 만났다는 사실이나, 내가 준 우산 같은 것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게 원래 정상이야. …가끔 예외도 있지만.’


  예외도 있다는 말을 할 때 보였던 녀석의 표정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복잡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떠올리자 나는 다시 억지로 만든 습관대로 샤프를 손에 쥐고 다른 문제집의 구석에 녀석의 얼굴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제가 좋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녀석은 바로 표정을 바꾸고서 농담 비스무리한 것을 내게 던졌다. 농담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 것 같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다. ‘공부도 썩 잘하지도 않으면서 쓸데없이 이런 기억은 잘하네.’ 그 말을 하던 녀석의 표정이 왜 조금 기뻐 보였는지. 사람의 기억에 남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분명 함께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상대는 저를 기억하지 못하고 저만 상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럼 너는 비의 신이라면서 왜 한 달 내내 이 짓거리냐? 이놈의 비 좀 어떻게 해보라고.’


  그 말에 기쁜 듯한 표정을 짓던 녀석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지더니 이내 고요를 되찾았다. 그냥 일반적인 무표정과는 조금 다른 표정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문제집 구석에 그때 그 녀석이 지은 표정을 그려 넣고 있었다.


  ‘나도 그치게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돼.’


  또각.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는지 샤프심이 제법 큰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비의 신이라는 녀석이 비를 그치게 하지 못한다니. 꽤 심각한 일이 아닌가. 그리고 예상대로 정말 심각한 일이었는지 녀석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얼굴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녀석의 주위를 둘러싼 기류가 우리 둘을 얽매여오는 느낌이었다. 그런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자 녀석은 곧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얼마 전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뒤로 계속 이 꼴이네.’


  그 말을 내뱉는 녀석의 얼굴은 아까보다도 훨씬 평안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점점 빗줄기는 거세져만 갔다. 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인간적인 이유 아닌가. 신은 인간의 염원에서 태어나 인간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더니 그 때문일까. 하긴, 내 눈앞에서 자유자재로 빗줄기를 다루는 모습만 아니었어도 녀석이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녀석에게 직접 듣지 않는 이상 먼저 생각할 일이 없었을 정도로 인간과 외관상의 차이점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러니 딱히 미술에 소질 없는 나도 이렇게 녀석의 얼굴을 그리고 있을 수 있는 거겠지.


  ‘그 사람도 너처럼 나를 볼 수 있고,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좋은 사람이었는데.’


  지독히도 과거형인 그 한탄과도 같은 말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말이라곤 바보 같은 소리뿐이었다.


  ‘그치만… 너 신이라며. 뭔가 방법이 있었을 거 아냐?’


  그 말에 녀석은 헛웃음과도 비슷한 웃음을 짧게 터뜨렸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질문이긴 했다. 어쩌겠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는데.


  ‘비의 신이 무슨 수로?’

  ‘…….’

  ‘다 그런 거야. 사람은 결국 죽으니까. 나는 네 나이의 몇백 배를 살아왔어. 그동안 연인을 몇 번 잃었을 거라 생각해?’

  ‘…….’

  ‘장마가 길어지는 건… 미안하게 됐어. 그럼 다음에 보자. 네가 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경우의 이야기지만.’


  그 말을 마친 녀석은 살며시 웃어 보이곤 눈앞에서 서서히 흐려졌다. 빗줄기에 물들기라도 하는 듯 느리게 녀석이 사라진 자리엔, 홀로 젖지 않은 벤치의 한 자리만이 꿈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기억을 못할 리가 없지. 하지만 녀석이 자꾸만 기억 운운하는 게 거슬려 혹시나 녀석을 잊어버릴까 싶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나는 그 날 이후로 틈날 때마다 녀석의 얼굴을 곳곳에 그리는 습관을 들였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잊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어쩌면 쓸데없는 일에 자존심을 세우는 내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고. 확실한 건, 녀석을 잊는다는 것이 싫다는 것이었다. 


* * *

 

  두 번째로 녀석을 만난 지 일주일 째, 녀석은 또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억 하나 못하나 시험이라도 해보겠다는 거야 뭐야. 이런 불만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지만 딱히 토로할 곳도 없으니 그저 삭힐 뿐이었다. 왠지 언제 어디서 말해도 녀석에게 전달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는 것 같으니까. 가방을 챙겨 내려가기 전에 늘 하던 대로 창밖을 내려다보았지만 붉은 머리카락의 끝자락도 보이질 않았다. 오늘도 안 오려는 건가. 두 번째로 만났던 날도 첫 번째로 만난 날로부터 딱 일주일 후였기에 내심 조금 기대를 해봤는데. 1층 현관으로 내려오자 보이는 광경은 창밖에서 본 광경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형형색색으로 움직이는 우산 몇 개들, 끝을 모르고 내리는 비. 나는 짧게 한숨을 쉬고 신발을 갈아 신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동시에 눈앞에 흰 다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생각할 것도 없이 녀석일 터였다. 나는 급하게 고개를 들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안녕, 다이키.”


  얼굴도, 표정도, 목소리도,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숙인 허리를 펼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녀석을 올려다보다 녀석이 풉, 하고 웃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대충 신발에 발을 밀어 넣고 서둘러 허리를 폈다. 괜히 머쓱한 기분에 나는 툴툴거리는 소리로 녀석에게 화답했다.


  “일부러 놀래키려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거냐?”

  “와, 안 잊었네.”


  아이를 다루듯 놀리는 듯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 은은한 기쁨이 묻어나오는 것이 느껴져 나는 공연히 짧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성대한 칭찬이라도 받는 기분이라 괜히 민망해졌다. 


  “당연하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근데 난 이름 알려준 적 없는 거 같은데. 신이면 다 아는 거냐?”

  “그럼. 신이니까.”

  “불공평해.”

  “뭐가?”


  사실 녀석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과 나는 통성명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내가 녀석을 부르는 호칭이 ‘녀석’이나 ‘너’말고는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난 네 이름도 모르는데 너만 안다는 게.”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아. 전혀 검색해볼 생각은 안 해봤는데. …생각해보니 그랬다. 녀석은 신이고, 신인 이상 사람들이 칭한 이름이 있을 터였고, 당연히 어느 곳이든 자료가 존재하겠지. 나도 모르게 넋 나간 표정이라도 지은 건지 녀석이 나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소리 내어 웃어 보였다. 동시에 녀석 주변의 물방울들이 가볍게 통통 튀기 시작했다. …웃지 마. 살며시 짓는 미소 말고는 잘 크게 웃지 않는 녀석이 어깨까지 들썩거려가며 웃자 잔뜩 민망해진 나는 괜히 운동화 앞 축으로 현관 바닥을 쿡쿡 내리찍었다. 


  “좋아, 웃었으니까 알려줄게.”


  곧 웃음을 멈춘 녀석이 늘 보여주는 미소로 다시 표정을 바꾸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미소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구석이 있는 표정이었다. 좀 더… 화사하다고 해야 하나. 비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꽤나 해사한 표정이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봤던 무거운 표정과 겹쳐 보여 나는 공연히 가슴이 저릿거리는 걸 느꼈다. 


  “통칭은 아카아메(赤雨).”

  “…시시하네.”

  “인간들이 붙이는 이름이 다 그렇지 뭐.”

  “근데 잘 어울려.”


  붉은 비.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무섭도록 강렬하면서도 따뜻할 것 같지 않은가. 녀석에게서 받는 느낌을 고스란히 말로 담아낼 수 있다면 바로 저 이름이 적격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잘 어울린다고 건넨 내 말에 녀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말이 없다기보단,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억지로 참는 느낌이었다. 몇 번을 계속해서 입술을 달싹거리던 녀석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칭찬 고마워. 녀석의 입에서 간신히 말이 새어나왔다. 하고 싶어 하던 말이 그 말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뻔히 알만한 것이었지만 나는 굳이 녀석에게 묻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앞에 통칭은 왜 붙는 거냐?”

  “인간들이 자기들 좋을 대로 신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다 보니 신들은 이름이 여러 개야. 나도 그렇고. 그중에서도 대표로 불리는 이름이 아카아메고. 거기에 인간들이 지어준 이름 말고도 진짜 내 이름이 있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이름.”

  “뭔데?”

  “비밀.”


  그렇게 말한 녀석은 현관의 처마 밖으로 가볍게 발을 디뎠다. 동시에 주변에 내리던 빗줄기가 춤을 추듯 제멋대로 방향이 바뀌었다. 멋대로 흐르는 빗줄기들을 향해 녀석이 손을 뻗어 강아지를 어루만지듯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쓰다듬자 점차 빗줄기들이 다시 얌전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굉장히… 신성한 느낌이었다. 마구잡이로 튀던 빗줄기들이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하자 녀석은 손을 내려놓고 나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미안하지만 정말 비밀이야. 신들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면 별로 안 좋거든. 우리의 존재, 본질과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알리고 지내.”

  “…….”

  “왜. 서운해?”

  “내가 애냐.”

  “왠지 너라면 알려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나중의 이야기지만. 녀석이 뒤이어 말을 덧붙이며 천천히 빗줄기 사이를 걸어 다녔다. 녀석에게는 빗줄기 사이를 걸어 다닌다기보다는 그냥 길을 걷는 느낌이겠지만. 적어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우산을 펼쳐 녀석을 따라 길을 걸을까 하다가 꼭 녀석을 방해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그냥 관두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빗속을 거니는 녀석은 세상에 딱 녀석 하나, 혼자 있는 그런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비를 그치게 하는 게 안 돼. 이거 완전 신으로서의 자격 실격인데.”

  “그… 마음을 비워본다든가…. 아직 그 사람을 너무 담아두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그렇겠지 아마도.”


  흐릿해진 목소리와 함께 녀석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일 분가량 지났을까, 번쩍 눈을 뜬 녀석이 느리게 검지만을 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허공에 글씨를 쓰듯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하긴 녀석과 함께 있을 때는 전부 기이한 일 투성이었지. 근처의 물방울들이 마치 전구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녀석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녀석은 미간에 주름이 파일 정도로 잔뜩 힘을 주고서 한 획 한 획 허공에 글자를 적어 나갔다. 마지막 획을 긋자 번쩍이는 빛으로 나타난 글자는 ‘終(마칠 종)’이었다. 순간적으로 빛을 발한 글자는 곧 사라져 다시 빗방울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곧 빗줄기가 아까보다 훨씬 약한 강도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렇게 변한 게 신기해서 나는 현관 처마 바깥으로 살짝 손을 뻗어보았다. 근 한 달간 내리던 비와는 다르게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제 손만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더 시간을 가져 보지그래?”

  “그러다 석 달 동안 비 내릴 수도 있어.”

  “천 년 넘게 신 자리 해 먹었으면 그것보단 능력 있다는 소리겠지.”


  그 말에 녀석은 작은 웃음을 던지듯 뱉어내고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너랑 있으면 자주 웃게 되네.”

  “내가 우습냐?”

  “조금?”


  이게 신이라고 말을 막 하네. 농담인 걸 알면서도 녀석의 기분을 띄워주고 싶어 괜히 툴툴거렸더니 녀석이 많이 풀어진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꼭 주인의 기분을 풀어주려 재롱떠는 애완견이 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녀석의 얼굴이 풀어진 걸 보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또 잘 기억하고 있어, 다이키.”

  “가려고?”

  “응. 비 그치게는 못해도 어느 정도 양 조절은 가능하니까 최대한 홍수 나지 않게 조절하러 다녀야지. 신이 한가한 게 아니거든.”

  “…그럼 언제 오는데?”


  묻고도 괜히 물었나 싶었다. 민망하니까.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게 느껴져서 나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괜히 가방끈을 고쳐 메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기다렸어?”

  “…네가 너무 예고도 없이 오니까. 나도 스케줄이라는 게 있다고.”

  “네 스케줄 다 알고 왔는데?”

  “……야 씨,”

  “한가하면서. 아무 때나 부르면 올게. 그럼 됐지? 안 부르면… 어쩔 수 없고. 원래 나는 잊혀지는 게 정상이니까.”


  녀석은 살짝 고개를 숙여 오른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놈의 잊는다, 잊는다 소리. 나는 현관 밖으로 걸어나가 연신 머리를 매만지고 있는 녀석의 오른팔을 잡았다. 따뜻한 비가 천천히 교복을 적시고 있었다. 상관없었다. 녀석의 시선이 올곧게 내게로 향해 닿았다.


  “안 잊어.”

  “…….”

  “부를게.”

  “…기다릴게.”


  녀석을 만나고 지금껏 봐온 녀석의 미소 중에 이번에 보여준 미소가 가장 어설픈 미소였던 것 같다.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썩 보기 좋지 않았다. 아까처럼 해사하게 웃는 게 훨씬 어울리던데. 녀석은 제 팔목을 잡고 있던 내 손을 떼어내고는 ‘잘 있어.’라고 입을 뻥끗 거리더니 곧 흐려져 갔다. 아카아메. 나는 속으로 조용히 녀석을 불러보았다. 아마도 닿았겠지. 닿았으면 좋을 텐데.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겨우 발걸음을 옮겨 교문 쪽으로 향했다. 우산은 필요 없었다. 비를 맞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 * *


  언제든지 부르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다음 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제 입으로 바쁘다고 말하기도 했고. 그렇게 사흘을 보냈다. 일단 여전히 비가 약하게 내리고 있는 걸 보면 아직 나쁘지는 않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좀 나아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결 좋은 머리카락이 빗줄기에 흔들리는 게 벌써 보고 싶기도 했고. …해사하게 웃는 모습이 보고 싶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미안한 마음과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차마 부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 어쭙잖은 감정들을 이겨낸 것은 불안감이었다. 내가 녀석을 잊었다고 생각할까봐, 그래서 나중에 내가 불러도 찾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그 불안감에 굴복하여 나는 결국 나흘째 되는 날 입 밖으로 녀석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렀다.


  “아카아메.”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려니 뻘쭘해 몇 번 주위를 둘러보고 근처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 녀석을 부를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진짜 나타나긴 하는 거야?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설마 신이 사람 상대로 거짓말을 할까. 아니나 다를까 몇 초 후, 녀석이 허공에서 반투명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곧 완전하게 형체를 갖춘 녀석이 어쩐지 꽤 뿌듯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까먹고 안 부르는 줄 알았네.”

  “나 바보 아니라니까.”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건 그렇고, 설마 무슨 일 있어서 부른 건 아니지?”

  “뭐… 별일 없지.”

  “보고 싶어서 불렀나?”


  녀석의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내가 대답을 서둘러 못하자 녀석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을 가볍게 한 번 퉁겼다. 그러자 주변의 빗줄기들이 녀석의 근처에서 뭉쳐 물로 이루어진 커다란 공을 만들어냈다. 녀석은 익숙한 듯이 점프해 그 공 위에 올라타 다리를 꼬고는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보이진 않았지만 얼굴 근처에서 느껴지는 열기로 미루어보아 아마 내 얼굴은 새빨갛게 타오르고 있을 터였다. 그럼 안 보고 싶은데 부르겠냐? 아니 뭐… 너 능력 회복하는 건 잘 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고 겸사겸사 지. 내가 중얼거리듯 뱉은 횡설수설한 말에 녀석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소리 내어 웃어 보였다. 아, 웃었다. 금방 웃음을 멈춘 녀석은 앉아있던 공 위에서 가뿐하게 바닥으로 내려오더니 내가 서 있는 현관 처마 밑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게 내밀어진 손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잊지 않고 불러준 게 고마워서 답례 하나 하려고. 별건 아니지만, 금방 가봐야 해서 짤막한 걸로.”

  “…뭔데?”

  “잡아봐.”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녀석의 손을 맞잡았다. 비의 신이라 차갑고 촉촉한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꽤 따뜻한 손이었다. 촉촉한 느낌인 건 정확히 맞췄지만. 따뜻하고 촉촉하면서 보드라운, 뭐 그런 느낌이었다. 녀석은 맞잡은 내 손을 손등이 위로 보이도록 뒤집더니 곧 내 손등 위에 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대충 ‘流(흐를 유)’ 자인 것 같았다. 녀석이 손가락을 떼자 글씨가 적힌 곳부터 시작해서 전신으로 미묘한 느낌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수영장 물에 오래 들어가 둥둥 떠 있을 때 느끼는 묘한 편안함, 그런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 미묘한 느낌에 내가 살짝 몸을 떨자 녀석은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나를 현관 바깥으로 끌어냈다.


  “잠깐 나 우산,”


  다급하게 말을 꺼내보았으나 차마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나는 처마 바깥으로 끌려 나와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머리를 가렸다. 그러나 머리를 가린 손등에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머리 위에 올린 손을 내려 허공을 향해 휘휘 저어보았다. 예전에 녀석이 내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자 빗줄기들이 전부 내 팔의 움직임을 피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상상했던 것보다도 묘한 기분이었다. 전신을 휘감는 그 짜릿하면서도 낯선 느낌에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은 웃으며 걸어보라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렇다면 또 응해줘야지.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위쪽을 바라보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무수한 빗줄기들이 내 눈동자를 향해 돌진했지만, 전부 튕겨 나갈 뿐이었다. 발밑도 마찬가지였다. 찰박찰박 웅덩이들이 찰랑이는 소리가 발걸음마다 요란스럽게 들렸지만 젖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마치 전신을 얇은 유리막으로 둘러싼 느낌이었다.


  “어때?”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내게 어느새 녀석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때?’라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바닥에 누워 제대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최고야.”


  마찬가지로 이런 간단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딱히 저것 외의 다른 적절하게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 말에 녀석은 살짝 웃으며 나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이지, 세상에 딱 나 혼자, 아니 어쩌면 딱 둘만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이게 바로 신이 된 기분일까. 신이란 거 해볼 만하네. 그러나 나는 곧 녀석이 몇천 년간 느꼈을 고독감과 소외감들을 떠올리며 그 생각을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매번 다른 이의 기억에서 지워져 사라지는 삶. 그 짓을 몇십 번, 몇백 번도 아닌 몇천 번 반복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직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녀석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녀석은 그렇게 한참을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래도록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만 보던 녀석은 곧 늦었다며 서둘러 내 손을 잡았다. 그 잡은 손 그대로 처마 밑까지 인도한 후 녀석은 아까 글씨를 적은 내 손등 위에 제 손을 올려놓았다. 곧, 손등에서 무언가 빠져나오려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어루만질수록 손등에 있는 무언가가 살갗을 뚫고 나오려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했는지 녀석이 내 손등 위에서 제 손바닥을 떼더니 손가락을 세워 손등에 박히듯 누워있던 글자를 잡아떼어냈다. 떨어진 글씨는 허공에서 흩어져 다시 본래 자기가 태어났던 물방울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글씨가 완벽하게 몸에서 떨어지자 몸을 둘러싸고 있던 유리막과도 같은 보호막이 사라졌는지 바닥에 튄 빗방울들이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나는 튀는 빗방울들을 피해 몸을 좀 더 안쪽으로 옮겼다.


  “고마워.”


  고맙다는 인사를 꺼낸 건 녀석이었다. 나는 녀석이 감사를 표하는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녀석은 아마 대부분 언제나 혼자였을 것이다. 혼자서 비 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이렇게 빗줄기의 방향을 제멋대로 조종하는 것도 전부 혼자였겠지.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데. 그러나 녀석은 그저 오로지, 이제 혼자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점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고맙다는 말을 중얼거린 녀석은 점차 흐려져 갔다. 나는 서둘러서 흐려져 가는 녀석을 급하게 붙들었다. 


  “부르면 또 오는 거지?”

  “응, 그럴게.”


  녀석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녀석의 팔을 잡았던 내 손엔 빗방울 몇 방울이 덩그러니 맺혀있을 뿐이었다. 차가웠다.


* * *


  하늘이 무섭게 돌변했다. 분명 요 며칠 쭉 약한 빗줄기를 유지하고 있던 하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치 어두운 밤처럼 시꺼먼 구름들이 하늘을 전부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곧 무섭도록 강한 장대비가 내렸다. 예전 같았으면 비가 많이 온다고 짜증부터 냈을 텐데 지금은… 걱정부터 됐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늘이 저 지경인지, 잘 회복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능력에 다시 차질이 생긴 건지.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나는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무섭도록 컸다. 아카아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어마어마한 빗소리에 목소리가 파묻혀 들리지 않을까봐 나는 큰 소리로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몇 분이 지나도록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카아메!!! 다시 한 번 더 크게 외치자 곧 허공에 서서히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겨우 달래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안녕, 다이키.”


  누가 들어도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다. 목소리뿐이 아니었다. 벌게진 눈을 하고서 핼쓱해진 얼굴로 나타난 녀석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휘청거렸다. 나는 급하게 녀석의 팔을 붙잡고 부축해 녀석을 벤치로 옮겼다. 거의 내게 끌려가다시피 벤치로 향하는 와중에도 녀석은 내가 한 손으로는 우산을, 한 손으로는 저를 부축해 가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내 손을 붙잡고 손등에 ‘流’자를 그렸다. 고마워. 나는 짧게 인사를 건네고 우산을 접었다.


  “무슨 일이야?”


  겨우 녀석을 앉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녀석에게 물었다. 어찌됐든 무슨 일이 있는 건 확실했으니까. 녀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재촉할 마음은 없었다. 굳게 다물린 입술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달달 떨리는 걸 보고서 어찌 재촉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가만히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녀석의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몇 분 정도 기다렸을까, 곧 녀석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먼저 배어나왔다. 


  “…오늘 그 애의 49재 날이야.”


  녀석에게서 들은 말 중 가장 건조함이 묻어나오는 말이었다. 차라리 젖어있었으면 마음이 덜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9재라면, 이제 정말로 그 애를 보내주어야 하는 때일 터였다. 나는 녀석의 상태가 왜 이 정도로 심각한지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달싹이는 녀석의 입술이 또 무언가 할말이 많은 듯 하여 나는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게 다 말해줬으면 해서. 


  “다이키. 너는 참 그 애랑 많이 닮았어. 외모도, 성격도, 다른 세세한 것들도.”

  “…….”

  “내 이름보고 시시하지만 잘 어울린다고 했었지. 그 애도 딱 그렇게 말했거든. 그 애도 너처럼 날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하고 또 말해줬고. 내 진짜 이름, 결국 그 애한테는 알려줬었어. 그리고 내가 너한테 그랬지. 알려줄 지도 모르겠다고. 솔직히 그 때 당시는… 그 애의 영향이 아주 없다고는 못 하겠어. 그렇지만 내가 너를 신뢰하고 있고, 너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건 그 애와는 별개로 사실이야.”


  아주 예측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녀석이 좋아했던 사람과 내가 닮았으리라고 얼추 짐작은 했었다. 이 정도로 닮았을 줄은 몰랐지만. 녀석의 목소리가 한층 더 잘게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에 따라 빗줄기는 더 강하게 퍼붓기 시작했다. 


  “내 능력, 왜 회복이 안 되는 줄 알아?”

  “…….”

  “내가 이 능력을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그렇게 말한 녀석은 몇 번이고 제 손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했다. 그 시선을 절대 손에서 떼지 않고서. 나는 살짝 그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곧 녀석의 손이 느리게 내 손을 붙들었다. 


  “그 애는 사고로 죽었어. 무지막지하게 비가 퍼붓던 날이었지. 빗길에 미끄러진 트럭에 치여서 즉사. 그게 그 애가 죽은 이유였어.”


  아. 무거운 것으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제야 왜 녀석이 능력을 제대로 회복하질 못하는 지에 대한 모든 이유가 똑바로 들어맞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의 시선을 파고들어 눈을 맞췄다. 자꾸만 피하려는 시선을 붙잡고, 또 붙잡아 기어코 내 시선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오갈 곳을 모르고 이리저리로 흔들리던 눈동자가 결국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아. 내가 비만 안 내렸어도, 아니 조금만 덜 내렸어도. 그 애는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를 원망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끊이질 않아. 밤이고 낮이고 어디서고 나를 괴롭혀. …그래서 너와 있을 때 겨우 웃을 수 있었어. 너와 있으면… 적어도 혼자 있을 때보단 조금은 생각이 덜 튀어나오니까.”


  내 손에서 제 손을 빼내려는 녀석의 손을 내가 붙들어 다시 세게 쥐었다. 건조했던 목소리에 조금씩 물기가 어리고 있었다. 비가 점점 더 강하게 내리는 것 같았다. 비가 몸에 닿지 못하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빗줄기가 몸을 때리는 것이 점점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손에 쥔 녀석의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때 녀석이 빗줄기를 달랬던 것처럼, 그런 비슷한 손놀림으로.


  “이제는 정말 그 애가 아무 데도 없는 거야. 정말로 보내줘야 하는데, 이제는 이 속에서 빼서 꺼내줘야 하는데. 나는 아직 못하겠어.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아. 남은 이의 미련이 절실하게 강하다면 49재가 지나고도 영혼이 이승에 머물러 이도 저도 아닌, 결국 악귀로 변해버리거든. 아는데… 아는데 안 돼. 나는 어디까지… 어디까지 그 애에게 잘못을 저지르려고 이러는 걸까.”


  점점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목소리는 결국 감정의 덩어리 같은 것을 뱉어내고 말았다. 녀석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뚝뚝 내 손등에 떨어졌다. 나는 더 이상 녀석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지고 말았다. 감정이 넘실넘실 넘쳐흐르는 눈동자를 보는 것은 정말이지 내겐 너무나도 힘들었다. 당장 나까지 그 감정 속으로 빠져 익사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녀석의 눈에서 눈을 떼고 입술을 짓씹었다. 녀석의 손을 쥔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내가 그 녀석이랑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대해왔어도 괜찮아. 그걸로 네가 좀 웃을 수 있었다면. 솔직히… 나는 너 웃는 게 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네가 환하게 웃었던 날 있잖아. 그냥… 그게 그렇게 가슴 속에 맴돌더라고. 어떤 이유에서건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었고, 마음이 편해졌다면 그걸로 됐어. 미안한 마음 갖지 마.”

  “…….”

  “그리고 네 능력, 끔찍한 거 아니다. 신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에 의해서 탄생해. 사람들이 비를 간절히 염원했기에 네가 탄생한 거야. 그게 어떻게 끔찍한 능력이겠어. 사람들이 원한 능력인데. 또… 네가 빗줄기 다루는 거 꽤 잘 어울리거든. 아마 그 녀석도 그렇게 생각했을 걸.”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진심을 전하고는 싶지만, 그 말을 정리하는 능력이 내게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뭐라도 좋으니, 작은 일부라도 좋으니 진심이 녀석에게 닿기를 바라고 최대한 많은 말을 뱉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심이라는 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된 것은 단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부디 전부 녀석에게 다가가 닿기를. 


  녀석의 몸이 더 들썩거리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손을 세게 쥐었다가 약하게 쥐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조금 몸을 틀어 녀석을 끌어안았다. 우는 사람 달래는 데는 젬병인데 말이야. 천천히 녀석의 등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렸다. 녀석의 흐느끼는 소리가 귓가 바로 옆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어.”

  “…….”

  “많이 외로웠지, 너. 몇십 년, 몇백 년, 몇천 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잊혀지고, 또 만나고, 또 잊혀지고.”


  귓가에서 터지는 녀석의 울음소리가 거의 오열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안은 팔에 더 힘을 주고서 녀석의 등을 쓰다듬었다. 제발, 닿아줘.


  “더 이상 널 알아봐 주는 사람을 힘들게 찾지 않아도 되게 해줄게. 내가 너 절대 안 잊을 거니까. 내가 너를 부르면 네가 언제든지 찾아오겠다고 했듯이 나도 그럴 거야. 네가 부르는 걸 내가 들을 수는 없으니까 그냥 네가 찾아와. 그러면 언제든지 있어줄게.”

  “…….”

  “그리고 그 녀석, 못 빼내겠으면 굳이 빼려고 하지 마. 안 빠지는 걸 억지로 빼내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다치게 되어있어. 안 빠진다면 밀어 넣어. 더 깊숙하게 밀어 넣는 거야. 그 위로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감정을 더 쌓아서 그 녀석을 보이지 않는 곳까지 밀어 넣으면 돼. 네 안의 비중을 줄여가는 거야 그렇게.”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녀석의 떨림이 잦아들고 있었다. 나는 크게 들이쉰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언젠가는 꼭 하려고 했던 말이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기에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마시고, 뱉고, 그리고,


  “그 새로운 사람이 내가 되었으면 좋겠어.”


  작게 뱉어진 말에 세상에 조용해진 기분이었다. 녀석의 흐느낌도 순간적으로 멎었는지 조용했고, 울음이 멎으면서 빗줄기까지 약해졌는지 온몸을 강하게 두드리던 빗줄기의 힘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무서웠다. 결국 나는 품에서 녀석을 떼어놓지 않았다.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확인하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녀석을 밀어낼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네가 내 기억 속에서 살아있었으면 좋겠어. 이제 그만 비도 그쳤으면 좋겠고, 네가 자유자재로 비를 다루는 것도 보고 싶고, 환하게 웃는 것도 다시 한 번 보고 싶고. 모든 건 천천히 진행될 거야. 너도, 나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천천히 네 안에서 점차 밑으로 내려가고 또 내려가서 결국 그 녀석을 빼낼 수 있게 될 거야. 내가 도와줄게. 나는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해줘.”


  참 웃긴 노릇이었다. 이렇게 인연이 꼬일 줄 누가 알았을까. 어느 날 갑자기 비의 신이라 말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질 않나, 그 남자가 웃는 거 한 번 보겠다고 난리를 피우질 않나. 잦아 들어가는 빗소리 사이로 내 심장이 뛰는 소리만 크게 허공을 메우고 있었다. 거절당해도 별 수 없었다. 애초에 신빙성도 없고, 근거도 없고, 그저 내 막무가내 같은 주장이니까. 하지만 나는 왜 거절당하리라 짐작 하고서도 녀석의 얼굴을 보는 것을 무서워하는 걸까. 비겁하네. 그리고 곧 녀석이 나를 천천히 떼어내었다. 그 얼굴을 보는 것이 끝까지 두려워 그냥 다시 와락 안아버리고 싶었지만 어쩐지 감히 녀석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신 대접 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람. 완벽하게 내 품에서 떨어진 녀석은 의외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약간의 눈물 자국과, 충혈된 눈을 빼면 말이다. 녀석의 입술이 느리게 떨어졌다. 


  “내 이름.”

  “…….”

  “아카시 세이쥬로야.”

  “…….”

  “잘 부탁해, 다이키.”


  아,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녀석을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 * * 


  오늘은 지독한 비가 그쳤다. 두 달간의 장마였다.







( * 신의 인지에 관련된 부분은 노라가미의 설정을 차용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