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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로우] 침묵에게 전하는 말

팥_ 2014. 5. 6. 15:07



  옆 반에 걔 있지, 죽은 애 있잖아. 포트거스 에이스말야. 걔 사실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더라? 칼이랬나, 총이랬나… 방법은 모르겠고 아무튼 살해당했다던데? 걔 원래 소문 좀 별로였잖아. 몰랐어? 깡패들이랑 일한다는 소문 많았거든. 무슨 조직 밑에서 제일 말단으로 일하다가 자금 횡령한거 들켜서 살해당했다던데? 대박이지? 마약까지 빼돌렸다는 소문도 있…


  “지랄들 해요.”


  쉼 없이 재잘거리던 한 여자 아이의 목소리를 가로챈 것은 그 뒷자리에서 책상 위에 엎드려 팔에 얼굴을 묻고 있던 로우의 한 마디였다. 그 한 마디에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처럼 아슬아슬하게 속닥거리던 목소리가 끊겼고, 로우는 그대로 일어나 교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몸이 싸늘하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살아있을 땐 말 한 번 안 해본 것들이 죽으니까 별 지랄 맞은 소리로 물고 씹고 날뛰지. 로우는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더 깊게 찔러 넣었다. 깡패? 그 녀석이? 웃기지도 않았다. 로우는 당장이라도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입술을 이로 짓씹으며 거친 발걸음을 옮겼다.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저 되도 않는 헛소문이 들리지 않는 곳이면 됐다. 


  거친 바람이 얇은 교복 사이를 파고들어 가뜩이나 식어버린 몸을 더 얄궂게 괴롭혀왔다. 아까 전부터 주머니 안에서 손에 잡혀오는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 시간대에, 이 차림으로, 이 거리에서 대놓고 불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우는 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은근하게 밀려오는 한기에 좋지 않은 생각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그 녀석은 따뜻했는데, 같은 생각들.


  에이스가 조직에 몸을 담고, 그 조직의 룰을 어겨 살해당했다니. 로우는 코웃음 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그 멍청하게 착한 놈이 깡패질은 무슨. 그러나 그 소문이 실제로 돌고 있다는 사실 역시 로우는 알고 있었고, 그 소문의 원인이 되는 이유 또한 로우는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머리가 끓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 소문의 원인은, 트라팔가 로우 자기 자신이었으니까. 


  살해당했다는 소문까지 거짓이면 좋으련만, 사고사라는 포장이 진짜였으면 좋으련만. 로우는 떨리는 손을 자각하곤 일부러 주머니 안으로 더 깊게 찔러 넣었다. 할 수만 있다면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을 만큼 끔찍한 기억이었다. 하지만 로우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널 기억해 줄까, 하는 흔한 신파극의 이유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에이스의 죽음의 원인마저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트라팔가 로우는 이 근방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세력을 넓히고 있는 돈키호테 조직의 조직원이었다. 조직원이라는 호칭이 과분할 정도로 그저 많고 많은 말단 중 하나였지만.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다. 그 나이대 애들이 하는 철없고 질 낮은 장난 같은 것처럼. 거기 좀 위험해 보여. 에이스는 분명히 그렇게 로우에게 충고했었다. 그러나 로우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 조직이 생각보다 무서운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그 후의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경찰의 시야를 벗어나기도 쉬운 학생들을 데리고 온갖 비밀스런 일을 하는 조직이었다. 로우가 맡게 된 일은 마약 운반이었고, 항상 겁에 질려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로우를 옆에서 겨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게 에이스였다. 나서서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떨고 있는 로우를 안아주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섣불리 조직을 나갈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외의 다른 학생 신분인 조직원이 조직을 나가겠다고 했다가 어떤 처분을 받는 지 로우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었다. 로우와 에이스는 계획을 세웠다. 로우는 제 일처럼 손수 나서서 저를 도와주는 에이스에게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에이스는 그저 고마우면 키스나 해달라는 실없는 듯한 농담을 건넬 뿐이었지만.


   왜 그 때는 고작 학생 둘이서 거대한 조직 하나를 속여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혹은 정해진 수순대로 에이스와 로우는 잡혔고 그들의 보스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잔인한 사람이었다. 사람의 정신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배신자는 두 명이 아닌 단 한 명, 트라팔가 로우일 터였다. 차라리 두 명이라면 조금 나았을 지도 몰랐다. 


  마지막까지 웃고 있던 에이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가려진 눈으로 뭐가 보인다고 그렇게 웃었을까 너는. 손이고 발이고 전부 묶여진 채로 웃던 에이스는, 마찬가지로 전부 묶여 발버둥치고 있던 로우의 앞에서 그대로 피를 뿜어내며 시들어갔다. 어려서 봐준다던 말은 아무래도 단번에 급소를 노려 준다는 말이었을까. 


  로우는 발걸음이 닿아 멈춘 곳을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이럴 줄 알았지, 내가. 내가 갈 곳이 어디 있다고. 허름하지만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눈앞의 집은 에이스의 냄새를 잔뜩 품고 있었다. 어째서 문손잡이까지 따뜻할까, 너는 대체 뭐길래. 차마 문을 열 용기가 없었다. 문손잡이를 잡은 로우가 그대로 손을 놓고는 문에 등을 기대 주저앉았다.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은 로우가 잔뜩 구겨져 제 형체를 잃은 담뱃갑을 꺼냈다. 몇 개 남지 않은 담배들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 입에 물어 불을 붙인 로우가 깊게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어쩐지 담배에서 짠맛이 나는 기분이었다. 


  “넌 억울하지도 않냐.”


  허공에서 흩어지는 연기와 함께 로우의 목소리가 흩어졌다. 짠맛이 나던 담배는 슬슬 익숙한 맛으로 바뀌고 있었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그리운 맛.


  “멀쩡하게 살던 너 죽여 놓고 나는 아직도 거기서 일한다. 일 년만 더 버티면 네 시ㅊ… 흠, 음, 몸 돌려준다니까. 죽고 싶어도 어쩌겠어, 살아야지. 누가 살려준 목숨인데. 누가 대신한 목숨인데.”


  담배를 들지 않은 손으로 로우는 제 입술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허전하네 역시. 이쯤이면 키스해줄 타이밍인데. 어설프게 웃은 로우가 다시 담배를 물었다가 떼어냈다. 


  “너보고 애들이 깡패래. 조직 자금도 빼돌리고, 마약도 빼돌려서 살해당했다고 그러더라. 웃기지? 억울하고. 깡패는 난데.”


  로우는 더 이상 혼잣말도, 입에 다시 담배를 물지도 않았다. 침묵 속에서 조용히 담배만 불을 내며 타들어갈 뿐이었다. 타오르는 담배의 끝이 손가락에 닿을 정도로 짧아지고 나서야 로우는 바닥에 담배를 내던지곤 세워 모은 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억울하면 돌아와줘.”


  여기 앉아서 이렇게 담배 피고 있으면 네가 담배 대신 네 입술을 물려주곤 했는데. 입술에서 쓴맛이 가득 배어나왔다. 


  “보고싶어… 포트거스.”


  염치없고 뻔뻔한 거 아는데, 제발 이번에도 부탁할게. 얼른 와서 나 좀 도와줘. 늘 네가 도와줬잖아. 나는 이제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면 좋을지,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 도와줘, 에이스.


  버려진 담배꽁초의 끝이 새빨갛게 물들었다가 이내 거리를 뒤덮는 땅거미와 함께 어둠에 잠식당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