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piece/글

[에이로우] 새벽의 어느 찰나

팥_ 2014. 1. 9. 02:51

  좋아해.


  포트거스 에이스가 내게 고백을 했다. 꽤 시간이 늦은 새벽, 책을 읽느라 잠을 미뤄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크를 하는 소리가 나서 누구냐 물었더니 포트거스였다. 내가 깨어있었다는 사실에 어째 더 놀란 것 같았지만, 어쨌든 방 안으로 들어왔고 꽤 한참을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말할 생각이 없다면 더 이상 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한 마디 던지자 그제야 포트거스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쳤다. 흠흠. 몇 번 목소리를 가다듬은 포트거스의 입에서 이윽고 흘러나온 소리가 바로 저 말이었다. 대뜸 이 시간에 찾아와 한다는 말이 저 말이라니. 누구라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결국 책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놓고 책을 덮었다. 꽤 두꺼운 책이었기에 책 덮는 소리가 본의 아니게 크게 났는지 포트거스가 흠칫 몸을 떠는 게 슬쩍 시야에 들어왔다.


  “그걸 꼭 이 시간에 찾아와서 말했어야 했나?”

  “…갑자기 불타올라서. 갑자기라고 말은 했지만, 꾸준히 좋아했어 트라팔가. 내가 처음 이곳에 발 디뎠던 그 날부터 쭉. 스페이드 자리까지 기를 쓰고 일 년 만에 올라온 것도 너 때문이야. 동등한 자리에 서고 싶었다. 물론 같은 간부라고 해서 너와 내가 동등할 리는 없겠지. 넌 도플라밍고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까.”

  “총애라니. 이런 총애라면 너나 가져. 난 필요 없으니까.”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 끄트머리로 자리를 옮기자 또다시 포트거스가 내 작은 행동 하나에도 반응하는 게 보였다. 새벽에 대뜸 좋아한다고 고백하러 찾아온 거나, 저렇게 당돌하게 고백해놓고는 계속 눈치 보고 있는 걸 보니 확실히 포트거스가 어리긴 어리구나 싶었다. 처음 들어왔을 땐 내 발 끝에 겨우 미치던 놈이, 이제는 나와 대등한,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강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이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속도였다. 그것 역시 어린 나이의 특권이겠지. 물론 단지 어리기 때문만은 아니고, 선천적인 실력과 후천적인 노력에 어린 나이라는 장점이 더해져서 나온 결과물이겠지만.


  “그래서?”

  “어?”

  “연인이라도 되어달라는 건가? 글쎄, 네가 도플라밍고를 감당할 자신이 있을지 모르겠군. 아마 그 남자라면 진작 네가 날 좋아하고 있던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고. 아, 그렇다고 내가 도플라밍고의 연인이라든가 그런 끔찍한 건 아냐. 다만 지금껏 나에게 접근한 여자들은 전부 도플라밍고에 의해 제거됐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길 바라. 그래도 여전히 나와 연인이 되길 원하나? 물론 난, 네가 감당한다면 연인이 되어줄 수 있어. 별거 아니니까. 도플라밍고도 심심했을 거야, 요즘은 직접 나설 일이 없었거든.”


  천천히 다리를 꼬고 포트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착각인지 포트거스의 몸에서 살짝 불꽃이 일었던 것도 같았다. 여기서는 곤란해 포트거스여. 책이 다 타버릴 거야. 웃으며 말하자 불꽃이 사그라지는 걸 보니 착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신 양 주먹이 하얗게 질려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손바닥에 상처가 날지도 모르겠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찰나 포트거스가 성큼성큼 걸어 내 앞까지 다가왔다. 덕분에 나는 고개를 조금 치켜들어야만 포트거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자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포트거스는 내 목 부근의 가운자락을 잡아왔다. 어찌나 세게 잡던지 불이 붙을까봐 걱정될 지경이었다.


  “그런 식으로 연인이 되는 건 바라지도 않아. 적선하는 식의 교제는 나도 사양이라고, 트라팔가. 그리고 도플라밍고라면 상관없어. 어차피 난 곧 이곳을 뜰 거다. 만날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

  “그럼 난 그냥 거절하면 되는 건가?”

  “…나중에 다시 고백할 때는 이런 식의 승낙이 아니라 진정 좋아서 승낙하게 만들 거야. 적선하듯 사귀는 게 아니라, 너도 날 좋아하게 돼서 나를 받아들이게 만들 거니까. 기다려.”


  꽤 흥미로웠다. 고백하는 자들은 그저 교제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고백하는 건 줄 알았더니, 기껏 승낙했더니만 고백한 쪽에서 싫다고 내치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어찌 됐건 교제한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포트거스의 얼굴에는 상처받았다는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승부욕도, 자존심도 많이 센 녀석이었지. 그나저나 내가 저를 좋아하게 만들 거라니. 역시 어려서 그런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은 나오는 걸까. 나는 팔을 뒤로 뻗어 침대를 짚고 상체를 조금 뒤로 젖힌 채 다리를 바꿔 꼬았다.


  “그래, 해봐. 기대되네.”


  용감하게 도전을 걸어오는 자의 도전은 받아줘야지. 그 도전의 결과가 어찌 됐건 딱히 손해 볼 일도 없을 것 같으니까. 올려다본 포트거스의 얼굴에는 내가 너무 순순히 대답한 탓인지 당혹스러움이 어려 있었다. 자신 있게 말할 때는 언제고, 그런 표정 지으면 못쓰지. 


  “이만 자야 할 것 같아. 너도 들어가서 자도록 해, 포트거스야. 앞으로 시간은 널렸으니까.”

  “어, 어? 어…. …아무튼 새벽에 방해해서 미안했다. 잘 자, 트라팔가.”


  당돌하게 굴던 모습은 어디 가고 슬며시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나가는 모습이 웃겨 나는 슬쩍 웃으며 침대 위에 올려져 있던 책을 협탁 위에 가지런하게 올려놓았다. 불도 꺼주고 나갔으면 좋았을 걸. 이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이 자리에 오른 뒤로 지루했던 이곳에서의 삶이 조금 즐거워질 것 같았다.








붉은 밤 4편이 안 써져서 손푸는 용으로 적은 에이로우... 의식의 흐름으로 적은 글. 하도 앵슷 찌통 에이로우만 썼더니 그냥 안 슬픈 에이로우도 좀 써보고싶어서... 근데 달달한 걸 쓰려니까 나도 안하는 연애를 얘들이 하고 있다는 생각에 현타와서 못쓰겠더라 그래서 그냥 고백하는 에이스가 보고 싶었다... 연하답게 패기 넘치는 에이스 좋음. 앞뒤 생각도 안하고 그냥 무작정 실행하는 에이스. 그리고 재고 계산하기 바쁜 로우... 에이로우 결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