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robas/글

[아오아카/청적] 넌 너무 예뻐

팥_ 2013. 12. 24. 00:44

20131220


아카시 생일 기념 적우 합작 <청적/글> 부문으로 제출한 글입니다.

http://asbdaycollaborations.tistory.com/

 

 

 

  아오미네 다이키는 몇 번이고 지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부산스럽게 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아오미네의 연인인 아카시의 교제 이후로 처음 맞는 생일이었다. 아오미네는 두 달 전쯤, 아카시의 생일 선물로 아카시에게 어울릴만한 목도리를 점 찍어두었었다. 그러나 목도리 주제에 값이 꽤 나가 중학생의 용돈으로는 사기 벅찬 가격이었다. 그래서 아오미네는 무작정 용돈을 모았다. 먹을 거 덜 먹고, 살 거 덜 사고. 늘 모모이나 쿠로코와 함께 간식거리를 하나 손에 들고 하교하던 아오미네였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곧장 집으로 가서 대신 저녁을 두 배로 먹곤 했다. 아카시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느라 그렇다는 걸 유일하게 아는 쿠로코가 그러지 말고 그냥 조금 값싼 목도리를 사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건넸지만 아오미네의 의지는 확고했다.

 

  아오미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카시의 집은 자기 집보다 훨씬, 아주 훨씬 잘 사는 집이니까 생일 선물도 그에 걸맞게 줘야 한다고. 아카시는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쓸뿐더러, 아오미네가 아무리 비싼 걸 줘도 아카시에게는 껌값일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쿠로코는 애써 참았다. 현실을 파악하게 해주자니 아오미네가 너무 열의에 들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말 대단하게도 끝내 아오미네는 돈을 다 모았다. 목도리값과 케이크값을 합치면 딱 맞아 떨어질 액수였다. 아카시의 생일날 하교 후 데이트 약속을 잡고, 하교하는 길에 케이크와 목도리를 살 생각에 아오미네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없었다, 돈이. 늘 지갑 안에 곱게 모아놨던 돈이었는데 하굣길에 지갑을 열어보니 텅 빈 지갑만이 아오미네를 반길 뿐이었다. 몇 번이고 가방과 지갑, 온몸을 뒤져보았지만 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오미네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쿠로코를 쳐다보았다. 지갑을 꺼낸 일이 없으니 도둑맞은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잡아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아오미네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이었다. 아카시와의 약속이 당장 두 시간 후였고, 두 시간 동안 돈을 구해 아카시의 선물을 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테츠, 나 어떡해?”

  “뭘 어떡합니까. 그냥 아카시군에게 사실대로 말하세요. 생일 선물 사려고 돈 모았었는데 홀랑 도둑맞았다고. 원하신다면 증인이라도 서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카시군이 그런 걸로 삐질 사람은 아니잖아요.”

  “증인이고 삐지는 거고 문제가 아니라…”

 

  진짜 아카시 사주고 싶었다고, 그거. 괜히 쑥스러웠는지 아오미네는 뒷말을 얼버무렸다. 쿠로코는 아오미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혀를 찼다. 아오미네의 눈에는 그 목도리가 오로지 아카시 세이쥬로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아카시의 머리색을 닮은 붉은색 실로 섬세하게 무늬를 내어, 눈가루가 흩뿌려진 것 마냥 간간이 얇은 흰색 실이 섞여 들어간 목도리였다. 누가 매어도 예뻤을 목도리였건만 아오미네에게는 그저 아카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결국, 아오미네는 돈 찾는 것을 포기하고 쿠로코와 헤어져 아카시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텅 빈 채로 허공에서 흔들리는 손이 어찌나 짜증 나는지. 아오미네는 괜히 세게 주먹을 쥐고 걸었다. 예정대로였으면 한 손에는 곱게 포장된 목도리를, 한 손에는 예쁜 케이크 상자를 들고 아카시를 만나러 갔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아오미네의 손에 잡히는 건 차가운 공기, 그게 전부였다. 그 허전함은 아오미네의 발걸음마저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분명 아카시도 사람인데 기대하고 있을 거야. 테츠고 미도리마고 키세고 무라사키바라고 사츠키고 다들 아카시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선물 한 가지씩을 했는데 나만 안 했으니까. 분명 기대하고 있겠지. 서둘러서 만나자고 먼저 한 것도 나고. 생각할수록 아오미네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던 아오미네의 시야 저 끝 편에 아카시의 형체가 걸려오는 듯했지만 아오미네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아오미네의 고개를 들게 한 건, 아카시의 목소리였다.

 

  “땅에 뭐 떨어뜨리기라도 했어, 다이키?”

 

  맑고 또렷한 음성에 아오미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사실 그 몸짓은 그냥 고개를 들었다기보다는 거의 화들짝 놀란 듯한 몸짓에 가까웠다. 과한 아오미네의 반응에 아카시야말로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오미네를 바라보았다.

 

  “…내 말부터 들어봐 아카시.”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해봐 다이키.”

 

  아카시의 표정이 눈에 띄게 심각해지더니 이내 아카시가 아오미네의 손을 꼭 붙들었다. 아마 뭔지는 몰라도 아오미네가 저렇게 풀죽어있는 모습이라니 분명 큰일이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아오미네는 제 손을 잡아오는 아카시의 손에 흠칫 놀라는 듯하더니 제가 더 힘을 주어 아카시의 손을 잡았다. 

 

  “내가 두 달 전에 진짜 존나 예쁜 목도리를 발견했다? 진짜 니가 하면 존나 예쁠 거 같은 거야. 근데 좀 비싸더라고. 그치만 어차피 너한테 싼 거 사줄 수도 없으니까 나 진짜 열심히 용돈 모았거든. 먹을 거 다 끊고 맨날 집으로 칼귀가 해가면서 용돈 모으고 또 모았지, 니 생일선물 사주고 싶어서. 케이크도 사서 직접 목도리 둘러주고 파티해주고 싶었단 말야. 그래서 오늘까지 모아서 딱 선물 살 돈 마련했다? 근데…”

  “……근데?”

 “…잃어버렸어. 지갑 꺼낸 적도 없으니까 훔쳐갔겠지 누가. 어떤 새낀지 진짜 잡히기만 해봐, 가만 안 둬….”

 

  괜히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이는 아오미네를 아카시는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야, 아카시… 진짜 미안. 진짜 존나 매우 엄청 많이 미안. 우리, 그, 사귀고 첫 번째로 맞는 니 생일이니까 나도 진짜 존나 막 파티해주고 그러고 싶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렇게 풀죽어서 걸어온 거야, 다이키?”

 

  꼭 혼잣말처럼 궁시렁거리며 얘기하던 아오미네의 말을 끊은 것은 그 앞에서 아오미네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아카시의 목소리였다. 또렷하게 들리는 아카시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오미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아오미네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끌어당겨 살짝 웃은 아카시가 까치발을 들고는 아오미네와 맞잡지 않은 손을 들어 아오미네의 머리 위에 얹었다. 아오미네는 여전히 심통 난 표정이었지만 아카시의 다리를 위해서인지 순순히 허리를 약간 숙여주었다. 그런 아오미네를 보며 아카시는 살풋 웃었다가 천천히 손을 움직여 짙은 푸른색의 머리를 결대로 쓰다듬었다. 다이키. 아카시의 목소리에 아오미네는 말없이 아카시의 눈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난 딱히 비싼 선물 같은 거 필요 없어. 이미 집에서도 많이 받는데 너희한테까지 비싼 거 받아서 뭐하겠어. 목도리는 이미 많이 있기도 하고. 그리고 솔직히 너한테 선물 받을 거라고 기대도 안했는데 말야. 네가 그런 섬세한 짓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네.”

  “…너무 칼같이 말하는 거 아니냐 너? 목도리가 아무리 많아도 내가 준 건 더 특별하겠,”

  “목도리 쪽이라면 이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도리가 있기도 하고.”

 

  투덜거리는 아오미네의 말을 아카시가 자르고 들어왔다. 어엉?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선 되묻는 아오미네에 아카시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아오미네와 마주 잡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곧 그 손은 자연스럽게 아카시의 목을 두르게 되었다. 이윽고 아카시는 아오미네의 반대쪽 손도 잡아 올려 제 목을 감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아오미네는 양팔을 아카시의 목에 두르고 있는 모양새였고 아카시는 그런 아오미네의 품 안에 들어가 안겨있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아오미네의 품 안에서 고개만 살짝 들어 아오미네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아카시의 시선에 아오미네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는 사실은 입에 담았다간 아니라며 길길이 날뛸 것 같아서 혼자 조용히 알고 있어야겠다고 아카시는 생각했다. 

 

  “이거면 충분해 나는.”

  “…….”

  “그리고 너, 뭐 하나 빼먹은 거 같은데.”

 

  엉?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한 아오미네의 반문에 아카시가 웃으며 제 이마를 아오미네의 턱에 콩 하고 살짝 부딪쳤다. 오늘이 무슨 날이지? 아카시의 물음에 아오미네가 그제야 정답을 깨달았다는 듯 작은 탄식과도 같은 소리를 냈다. 그리고 제 목에 둘러진 팔에 더 힘이 실리는 걸 느낀 아카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오미네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생일 축하해, 아카시.”

  “응, 다이키.”

  “…흠흠. 태, 태어나줘서 고맙다.”

  “답지 않게 느끼해.”

 

  괜히 헛기침을 하고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며 말하는 아오미네에 아카시가 웃으며 아오미네의 등에 팔을 둘러 안았다. 

 

  “또 뭐 빼먹은 거 같아, 다이키.”

  “…빼먹은 거 아니고 아직 말 안 한 거야.”

  “난 생각처럼 그렇게 인내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야.”

  “아오, 기다려봐.”

 

  한숨을 푹 쉰 아오미네가 한숨을 쉬며 아카시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볍게 부딪치고는 부비적거렸다. 아카시, 흠흠, 그러니까… 그…

 

  “…사랑해.”

  “…….”

  “아 빨리 대답.”

  “…응. 나도 사랑해, 다이키.”

 

  웃으며 대답한 아카시가 살짝 까치발을 들고는 그대로 아오미네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겹쳤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아오미네가 입술을 타고 온몸으로 느껴져 아카시가 속으로 작게 웃으며 생각했다. 아마 여태껏 보낸 생일 중 최고의 생일이지 않을까, 하고.

 

* * *

 

  “…너, 그 목도리.”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어 아카시와 함께 밥을 먹으러 아카시의 반으로 찾아간 아오미네는 아카시의 목에서 낯선 목도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카시의 머리색과 같은 붉은색에, 눈이 뿌려진 듯한 목도리. 몇 번이나 보고, 또 보러 가서 이제는 안 보고도 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 목도리가 아카시의 목에 단정하게 매어져 있었다. 아오미네가 어벙하게 아카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입을 벌리고 있자 아카시가 웃으며 그런 아오미네의 손가락을 잡아 내렸다. 잘 어울리는 건 알겠지만 손가락질은 못써, 다이키. 실제로 목도리는 아오미네의 상상보다 더, 훨씬 더 아카시에게 잘 어울렸다. 머리카락, 눈동자, 목도리로 이어져 내려오는 붉은색이 아카시의 흰 피부와 어우러져 꼭 크리스마스를 위해 전시해놓은 인형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어떻게 알았어?”

  “테츠야라면 알 것 같아서, 테츠야한테 좀 물어봤어. 생각보다 안목 있더라, 너.”

  “…존나 예뻐.”

 

  예쁘다는 말보다는 어울린다고 말해주지 않을래? 가볍게 항의하려던 아카시의 말은 아오미네가 아카시를 품에 와락 끌어안는 바람에 삼켜질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서 해 넌.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오미네가 품에 끌어안은 아카시에게 온 힘을 다해 부비적거렸다. 얼굴도 예쁜데 하는 짓까지 예뻐. 저를 품에 가둬놓고 놔줄 생각을 안 하는 아오미네를 보면서 아카시가 속으로 생각했다. 

 

  뭐,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예쁘다는 소리도 들어줄 만하네. 라고 말이다.

 

 

 

 

 

원래는 새드물이었는데 분량이 너무 늘어나서 + 시험기간인데 마감은 해야겠고 이런 모종의 이유로 자름... 원래 나가려던 전개는 

대학생 아오미네가 달력보면서 아카시 생일 회상 -> 중3 생일 -> 고1 생일 -> 결승전 라쿠잔 패배 -> 아카시 자살 -> 무덤에 생일 선물 놓으러 감

이랬는데 ㅋㅋㅋㅋㅋ 결국 못썼다고 합니다... 합작 글들 중에 제가 제일 존못이라 죄송합니다... 흑흑

★ 아카시님의 탄신인을 경축드리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