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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로우] 편지

팥_ 2013. 12. 24. 00:41

20131216


  포트거스여.

 

  이곳은 혹독한 겨울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섬의 반은 지옥 같은 불구덩이고,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부분만 겨울일 뿐이지만. 애초에 볼일이 있던 쪽이 이곳이기에 반대편은 나와 상관없는 곳이지만 설사 볼일이 있더라도 저쪽으로는 결단코 가고 싶지 않았다. 저곳이 불지옥으로 변한 이유는 네 몸을 녹여버린 그 남자 때문이었으니. 네가 있는 곳은 따뜻할지 모르겠다. 나를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찾아가진 못했지만 신문에서 네 무덤이 세워진 곳을 보자니 따뜻해 보이긴 하더라마는. 하긴, 설사 춥더라도 네가 있는데 추울 리가 없겠지. 너는 언제나 뜨거워서 차가운 사람마저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으니, 그까짓 추운 곳쯤이야.

 

  모든 것이 다 계획대로였다. 너를 그렇게 만든 정부의 개가 되는 것은 끔찍스러웠지만, 더 먼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죽음의 배후가 도플라밍고임을 알자마자 세운 계획이었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변했다고 자책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언젠가는 도플라밍고를 치기 위해 벌였어야 할 일이었다. 다만 그것이 너로 인해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언제나 네가 내게 말하지 않았나. 발목을 감고 있는 실을 끊어버리라고. 발버둥 칠수록 엉켜 얽매여오는 그 실에 네 불이 붙어 그 속도를 빠르게 만들었을 뿐이다. 

 

  도플라밍고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에게서 벗어난 이후 처음으로 내가 먼저 그에게 연락을 했다. 왜 너를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그에게서 나온 말은, 화가 날 정도로 간단했다.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그게 전부였다. 다시 말하면 네가 죽은 이유가 내가 널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도플라밍고는 모든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흰 수염을 들먹거리면 네가 반응할 거란 것도, 네 동생이 위기에 처하면 네가 대신 받아 내리란 것도.

 

  그 이후로 난 최대한 머리를 굴려 계획을 짰다. 넌 내게 뛰어난 지략가라고 했었지. 평소의 몇 배로 머리를 쓰는 작업이었다. 도플라밍고는 나보다 더 미래를 내다보는 남자였으니 그 정도의 계획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딱 하나, 어긋나는 일이 얼마 전에 생겼다. 네 동생이 이 섬에 나타난 것이다. 그를 보는 순간 폭풍처럼 네 생각이 머릿속으로 치고 들어와 하마터면 몇 달간 다잡아왔던 마음을 그대로 내려놓을 뻔했다. 미리 네게 사과하자면, 나는 네 동생을 내 계획에 끌어들였다. 너무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네 죽음의 배후가 도플라밍고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 얘기를 했다간 가뜩이나 높은 네 동생의 텐션이 걷잡을 수 없어질 것 같아서. 네 동생이 내 계획에 도움이 될지, 폐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컨트롤하기 힘들 정도로 이리저리 튀는 사람이니까. 내일이 되어봐야 알겠지.

 

  친형제도 아닌 주제에 너와 네 동생은 닮았다. D라는 것 때문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점부터 언제나 당당한 성격,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전부 너와 닮아있었다. 그래서 네 동생과 지내는 동안 네 생각이 그리도 많이 나더라. 처음에는 조금 후회했었다. 그동안 겨우 네 생각을 지우는 법을 터득했는데, 네 동생의 출현 하나에 와르르 무너져 다시 네가 내 머리를 헤집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네 동생 많이 강해졌더군. 원래도 보통은 아닌 남자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힘을 더 주체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계획은 물밑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작전인데 네 동생은 그 존재감이 너무 커버리니까. 이젠 거의 다 끝났으니 별로 상관없겠지만.

 

  내일이 결전의 날이다. 2년간, 내일을 위해 나는 마음속으로 이를 갈고 또 갈아왔다. 너와 나를 위한 복수. 내일이면 다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 네게 글을 적어 내려간다. 걱정은 마라, 포트거스여.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날 걱정하는 것이라는 거 그새 잊진 않았겠지. 네 주제에 누굴 걱정한다고. 네가 하는 걱정이 내 걱정일지, 네 동생에 대한 걱정일지는 모르겠지만. 네 동생에 대한 걱정이라면, 역시 걱정하지 마라.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네 동생은 살릴 거니까. 어차피 네 동생은 애초에 이 계획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었다. 내 이기심에 참가시킨 것뿐이지. 그러니 네 동생과 그 동료들까지 목숨을 내놓게 하진 않을 것이다. 내 발목에 곰팡이가 핀 채로 엉켜버린 오래된 실을 끊는 일에 그들까지 목숨을 바칠 필요는 없지. 

 

  그리고… 네 목숨으로 살린 네 동생의 목숨인데 그걸 내가 다시 앗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편지는 네게 바치는 처음이자 마지막 글이다. 내가 내일의 결전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네 무덤에 직접 이 글을 바치러 가겠다. 만약 돌아오지 못한다면 누군가 발견해서 그저 불태워 하늘로 날려버리길 바랄 뿐이다. 

 

  하려던 말은 다 적었고, 마지막이니 한 번쯤은 실없고 허황된 소리를 해도 되겠지. 많이 보고 싶다, 네가. 네 스페이드 카드를 챙겨 나갈 예정이다. 그 카드가 내게 무운을 불러다 주길 바라며, 이만 마친다.

 

  사랑해.

 

  트라팔가로부터.

 

 

 

ㅡ 이 글을 발견하는 사람은 부디 태워서 하늘로 날려 보내길 바란다.

 

  반듯하게 접힌 종이에 적혀있는 글이었다. 몽키 D 루피는 그 글이 잘 보이도록 포트거스 D 에이스의 무덤 앞 돌상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밀짚모자를 벗어 잠시간 묵념했다. 이 옆에 곧 새로운 무덤이 놓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에이스를 죽음까지 몰아넣은 상황의 배후가 도플라밍고이고, 도플라밍고에게 복수하기 위해 펑크해저드에 머물고 있는 로우. 그리고 도플라밍고를 치려고 계획한 날 전 날에 편지를 적는다는 배경의 글. 원작이랑 전~혀 상관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