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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아카/흑적] 변하지 않는 것

팥_ 2013. 12. 24. 00:38

20131104

 

  뭐 해요?


  저 다시는 안 볼 겁니까?


  대답 해주세요.


  연락 좀 받아요.


  아카시군.


  보고 싶습니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빛이 큰 창 아래로 스며들어왔다. 아카시는 그 햇빛 아래에서 턱을 괴고 앉아 핸드폰을 들어 문자함을 천천히 읽고 있었다. 약 한 달 전부터의 문자였다. 발신인은 전부 같았다. 쿠로코 테츠야. 문자는 전부 그 쪽에서 보낸 것들뿐이었다. 아카시가 보낸 문자는 단 한 통도 없었다. 한 달 동안 하루에 서너 통씩 꾸준히 도착한 문자는 벌써 백여 통에 이르렀다. 마지막 문자는 사흘 전에 도착한 문자였다. 한 달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카시의 핸드폰을 울렸던 문자는 어찌된 일인지 지난 사흘 간 한 통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지금 아카시가 문자함을 공연히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일지도 몰랐다. 아카시는 핸드폰의 액정을 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곧 책상 위에서 진동이 울리며 핸드폰이 움직였다. 불이 꺼졌던 핸드폰의 액정에 팝업창이 띄워졌다.


  지금 신칸센 탔습니다.

 

* * *

 

  한 달 전, 라쿠잔은 세이린에게 졌다. 아카시 인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패배는 놀랍도록 무덤덤했다. 경기가 끝남과 동시의 모든 눈들이 아카시에게 집중됐었다. 라쿠잔의 다른 부원들은 물론이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람한 기적의 세대들과 그들의 파트너들, 그리고 카가미와 쿠로코까지. 모든 것에서, 심지어 가위바위보마저도 진 적이 없는 아카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은 패배였다. 아카시는 그저 우습기만 했다. 승자도 아닌 패자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꼴이라니, 아직 멀었네 테츠야. 그렇게 생각하며 나른한 표정으로 전광판의 점수를 쳐다볼 뿐이었다. 정말이지 담담했다. 

 

  “아카시군.”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세이린 멤버들을 뒤로 하고 쿠로코가 아카시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카시는 내밀어진 손을 쳐다도 보지 않은 채 팔짱을 끼고 웃으며 대답했다. 결국 우승했네, 테츠야. 제 이름이 불리자 쿠로코는 어쩐지 움찔하는 것처럼 보였다. 곧 아카시 앞에 내밀어진 손이 거두어졌다. 

 

  “이제 만족해, 테츠야? 우리들을 다 이겨서?”

 

  악의 같은 건 없는 질문이었다. 순수하게 궁금할 뿐이었다. 

 

  “…아직 입니다.”

 

  쿠로코는 울적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땅을 쳐다본 채 말했다. 울적해 보이는 표정이라는 건 상당히 주관적인 표현이었지만, 누가 봐도 승자의 표정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카시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카시가 경기의 승자라고 생각할 만큼 둘의 표정은 상반되어 있었다. 아카시는 뒤에서 하야마가 건네는 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으며 쿠로코를 쳐다봤다. 하얗게 질려 굳게 주먹을 쥐고 있는 손이 아카시의 시야에 들어왔다. 

 

  “누가 보면 네가 진 줄 알겠어, 테츠야. 또 뭐가 남아 있는 건데?”

  “…쿠로코라고 불러주지 않는 겁니까?”

 

  쿠로코의 말에 아카시는 잠시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아카시를 올려다보는 쿠로코의 눈빛은 그 어떤 시선보다도 진지했다. 아카시는 웃으며 제 손을 쿠로코의 뺨 위로 얹었다. 열기가 가시지 않은 뺨이 뜨끈뜨끈했다. 쿠로코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아카시는 당황한 쿠로코의 표정을 보며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중학교 시절의 것과도 같아 쿠로코는 잠시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네, 테츠야. 내가 너한테 지면 다른 녀석들처럼 뭔가 변할 줄 알았던 거야? 그래서 그렇게 이기려고 들었어?”

  “…….”

  “안타까워라. 나는 더 이상 변하지 않아, 테츠야.”

  “…….”

  “다른 녀석들은 애초부터 변했기 때문에 다시 변할 수 있었던 거겠지. 하지만 나는 이게 원래부터 나였어. 그러니까 변할 수가 없는 거지. 과거에 집착하는 짓은 이제 그만 두는 게 좋아, 테츠야.”

 

  쿠로코의 뺨을 쓰다듬은 아카시의 손이 아래로 떨어졌다. 쿠로코의 하늘색 눈동자 속에 걷잡을 수 없는 검은 소용돌이가 아우러졌다. 아카시는 쿠로코에게서 등을 돌려 단 한 번도 다시 뒤 돌지 않았다. 그대로 라쿠잔 벤치 쪽으로 가서, 패배의 충격 속에 있는 부원들을 독려할 뿐이었다. 다섯 명 중에서 아카시가 가장 덤덤했다. 아카시, 아카시, 괜찮아? 울면서 내 걱정할 시간에 네 걱정이나 해, 코타로. 아카시, 눈알 도려낸다거나 그런 얘기 하면 안 돼! 알았지?!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해줘. 아카시와 라쿠잔 부원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바람을 타고 쿠로코에게 흘러들었다. 쿠로코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걸렸다. 더 이상 저를 성으로 부르지도 않고, 따뜻하게 웃어주지도 않지만 저들과 있을 때면 꼭 테이코 시절의 아카시를 보는 것 같아서. 쿠로코는 등을 돌려 세이린 벤치로 향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담담했던 아카시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에게 뺨을 맞았다.

 

* * *

 

  건물 뒤쪽 큰 나무 아래입니다. 눈 많이 오니까 빨리 와주세요.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아카시가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역시나 발신인은 쿠로코였다. 한숨을 쉰 아카시는 챙기던 가방을 마저 챙겼다. 아마 도착은 진작했을 터였다. 일부러 수업이 다 끝날 시간에 맞춰 문자를 보낸 게 틀림없었다. 창밖을 쳐다보니 정말로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점심시간만 해도 겨울답지 않게 햇빛이 따사롭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도 눈이 많이 내려 이미 발목까지 쌓여 있는데 또 함박눈이 오면 정말 무릎까지 쌓일 지도 몰랐다. 게다가 쿠로코가 기다리고 있는 곳은 햇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그늘이라 이 날씨에 그 곳에서 기다린다면 금세 눈사람이 될 터였다. 아카시는 핸드폰을 들었다. 오늘 부활 늦어, 미안.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서. 못 갈지도 모르겠으니까 나 없이 연습해. 레오에게 문자를 한 아카시는 어깨에 멘 가방끈을 움켜쥐고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익숙한 하늘색 머리색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사복을 입은 사람이 서있는 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지 아무도 쿠로코를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아카시는 깊게 숨을 쉬고 쿠로코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오래 기다렸는지 어깨 위에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추위에 떨던 어깨가 아카시의 손이 닿자 흠칫 쪼그라들더니 곧 쿠로코가 뒤를 돌았다. 한 달 만에 보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용건이 뭐길래 그 비싼 걸 타고 여기까지 와.”

  “아카시군이 한 통만 답장해줬어도 제가 아르바이트로 기차표 값을 모으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죠.”

  “…….”

  “그렇게 담담하게 굴어놓고 왜 연락 안 했습니까?”

  “답장할 의무 같은 거 없잖아, 테츠야. 우리가 옛날 같은 사이도 아니고.”

 

  아카시도 알고 있었다. 답지 않게 논리에 어긋나는 대답이었음을. 옛날 같은 사이가 아니게 된 후로도 쿠로코는 가끔 문자를 해왔었고 아카시는 짤막한 대답이어도 답장을 해주곤 했었다. 이렇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적은 이번, 윈터컵에서 패배한 후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카시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쿠로코의 문자에 답장하고 싶지 않은 건지. 그 때나 지금이나 패배에 충격을 받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하지만 답장만 하려고 들면 속이 울렁거렸다. 참을 수 없이 울렁거려서, 아카시가 할 수 있는 일은 핸드폰의 액정을 끄는 일 뿐이었다. 

 

  “너한테 이기면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먼저 헤어지자고 한 게 누군지 가끔 까먹는 것 같아 테츠야는.”

  “그래서 다시 이런 것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쿠로코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차가운 손이 차가운 볼에 닿았다. 아카시는 표정에 일말의 변화도 주지 않고 물끄러미 쿠로코를 바라보았다. 살짝 보랏빛으로 변한 입술이 달싹였다. 그리고 곧, 달싹이던 입술이 아카시의 입술에 닿아왔다. 차가웠다. 아카시는 눈을 감고 묵묵히 쿠로코가 입을 맞추는 대로 몸을 맡겼다. 다물린 입술 사이를 따뜻한 것이 파고들었다. 아마 쿠로코와 닿은 몸 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일 터였다. 쿠로코의 몸이 좀 더 가까이 닿아왔다. 아카시의 볼을 천천히 쓰다듬던 차가운 손이 이내 아카시의 뒷머리로 옮겨갔다. 어느새 눈이 조금 쌓인 아카시의 머리카락을 쿠로코가 손가락으로 빗질하듯 쓸어내렸다. 이러고 있으니까 조금 옛날 생각 나기도 하네. 아카시가 생각했다. 곧 쿠로코의 입술이 떨어졌다. 

 

  “…그랬는데. 그렇게 덤덤한 척 해놓고 왜 그랬어요.”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테츠야.”

  “거짓말 하지 마요.”

  “기어오르려 들지 마.”

  “덤덤하다는 사람이 연락은 왜 안 받는데요!”

 

  쿠로코가 아카시의 멱살을 잡고 제 무게로 밀어 붙였다. 당연히 아카시라면 가볍게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움직임을 다 읽고서도 아카시는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몰랐다. 쿠로코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구는 건 옛날, 이별을 선언할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카시는 그대로 쿠로코의 무게를 전부 받아 눈이 가득 쌓인 바닥으로 넘어졌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기에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차가울 뿐이었다. 넘어진 아카시 위로 쿠로코가 올라탔다. 멱살을 쥔 손은 놓지 않은 채였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은 하얗게 질려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정말 걱정이 돼서, 혹시 이상한 생각이라도 품었나 해서…!”

  “…테츠야.”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사람이 그렇게 덤덤하게 구니까 정말 안 좋은 생각이라도 하나 해서… 그래서…”

  “…….”

  “…이럴 줄 알았으면 너한테 이기려고 기를 쓰지 말 걸 그랬습니다. 연락마저도 못하게 되고, 예전처럼 돌아가지도 못하고. 얻은 게 뭡니까 내가. 나는 정말이지, 아카시군을 이기면 다시… 다시…….”

 

  말을 다 끝내지 못한 쿠로코가 입술을 깨물고는 아카시 위로 엎어졌다. 엎어진 쿠로코 위로 눈송이가 내려앉는 풍경이 아카시의 시야 안에 가득 들어찼다. 아카시는 진한 한숨을 뱉고 쿠로코의 등 위로 손을 얹었다. 차가웠지만, 차가움 속에서도 감출 수 없는 생명력이 아카시의 손을 타고 전해졌다. 

 

  사실은 덤덤하지 못했다. 덤덤했기에, 덤덤하지 못했다. 패배를 한 사람이 덤덤할 리가 없었다. 아카시만큼이나 패배에 익숙지 않을 다른 라쿠잔 부원들도 윈터컵 결승 직후에 눈물을 비췄었다. 그런데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사람이 덤덤할 리가 없었다. 덤덤하다는 것부터가 덤덤하지 못하다는 거였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패배했을 때 피가 끓어오르고, 억울하고, 분할 것이다. 하지만 아카시는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그 감정의 한계선을 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그 감정들을 버티지 못한 정신이 아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도록 깨부숴버렸기에 담담했고, 담담하지 못했던 거였다. 아카시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잠가놓은 감정들의 마지막은 제 뺨을 때리는 아버지였고, 그걸 푸는 열쇠가 쿠로코에게 답장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카시는 답장할 수 없었다. 기껏 제어해놓은 모든 것들이 풀려 제멋대로 뛰쳐나가 버릴까봐. 

 

  하지만 결국 쿠로코를 만났다. 그것은 그 자물쇠가 열리는 것보다도 더했다. 자물쇠는 쿠로코의 얼굴을 마주함과 함께 산산조각난지 오래였다. 아카시도 그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덤덤할 수가 없었다. 저 끝부터 요동치는 무언가가 아카시를 좀먹고, 몸 밖으로 탈출하려 했다.

 

  “테츠야.”

  “…….”

  “결승전 날, 집에 가자마자 아버지한테 뺨을 맞았어.”

  “…아카시군.”

  “농구부도 그만둘 뻔했는데 말이지.”

 

  쿠로코가 고개를 들어 아카시의 눈을 마주했다. 아카시는 살짝 미소를 띤 채였다. 쿠로코의 일렁이는 눈동자가 고스란히 아카시의 눈에 담겼다. 아카시는 쿠로코의 등에 얹은 손을 움직여 천천히 쓸어내렸다. 차가운 눈송이가 손가락 끝에 닿아 녹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은 덤덤하지 못했어.”

  “…….”

  “네 문자에 답장하려고만 하면 울렁거려서. 날 내려다보던 아버지 눈빛이 생각나서. 거짓말 했네. 미안해.”

 

  쿠로코는 말이 없었다. 아카시는 등을 쓰다듬던 손을 올려 쿠로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송이가 손에 닿으며 녹아 이내 머리카락을 젖게 만들었다.

 

  “꼭 내가 예전으로 돌아가야만 우리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야, 테츠야.”

  “…….”

  “내가 너를 쿠로코라고 부르든, 테츠야라고 부르든 나는 아카시 세이쥬로야. 네가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면 돼. 나는 네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했을 때나, 그 후나, 너에게 졌을 때나 늘 같은 마음이니까. 너만 나를 받아들이면 돼. 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연락 안 한다고 기어오르는 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카시는 쿠로코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아직도 제 멱살을 붙들고 있는 쿠로코의 손을 잡았다. 진작 힘이 빠졌는지 힘없이 떨어진 손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아카시가 살짝 몸을 떨었다. 교복은 오래 전에 다 젖어있었다. 차가운 손을 들어 아카시가 제 입술에 가져다 댔다. 갑자기 느껴지는 온기에 쿠로코가 손가락을 반사적으로 접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나, 그 후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이에요.”

  “…….”

  “단지… 이렇게 하면 다시 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했습니다. 그 뿐이었어요. 네가 나를 뭐라고 부르는 건 중요치 않아진 지 오래입니다. 그 날은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한 번쯤은 옛날로 돌아가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지금은 필요 없어요. 그냥 네가 내 옆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접혔던 쿠로코의 손가락이 펴졌다. 차가운 손끝에 다시 온기가 맞닿았다. 

 

  “따뜻한 마음 같은 거 없어도 따뜻하게 날 수 있어, 테츠야.”

  “…….”

  “네가 있으면 돼.”

  “…….”

  “아버지한테 버려진 것도 괜찮아. 네가 그 이상의 것을 나에게 주면 돼.”

 

  아카시의 입술에서 손을 뗀 쿠로코가 고개를 숙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들과 쿠로코의 얼굴이 함께 아카시의 위로 가까워졌다. 그럴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럴게요. 쿠로코의 속삭임이 아카시의 차게 얼은 얼굴 위로 흩어졌다. 따뜻했다. 곧 열기가 도는 입술이 서로 겹쳐졌다.

 

  어쩌면 아카시의 자물쇠 안에 쿠로코에 대한 한결같았던 제 마음까지 넣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아카시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자물쇠가 산산 조각난 지금, 굳이 생각할 거 없었다. 

 

  아카시의 손이 쿠로코의 얼굴을 감쌌다. 눈송이가 감긴 눈꺼풀 위로 떨어졌다.

 

 

 

 

 

 

 

 

 

흑적데이 때문에 시간에 쫓겨서 썼더니 개연성이고 뭐고 없는 똥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