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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아카/녹적] 붉음에 대한 그리움

팥_ 2013. 12. 24. 00:33

20130923


  "헤어지자."

 

  먼저 관계를 내리친 건 나였다. 엄밀히 말하면, 잔뜩 금이 가서 더 이상 써먹을 수 없는 관계를 그저 확인사살한 것 뿐이었다. 나를 쳐다보는 너의 눈이 무섭도록 낯설다. 낯설고도, 낯선 노란 눈동자가 물끄러미 나를 향했다. 노란 시선의 덫이 나를 잔뜩 옭아매고 있었다. 나름대로 너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역시 이 노란 시선은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시선의 끝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겉보기에는 태연스럽게 평상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몇십 번이고 너의 시선에 맞닿아있었기에 알 수 있던 흔들림이었다. 사실, 내 말 따위는 너의 살얼음 낀 마음을 감히 건드리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네가 평상심을 깨부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너의 마음에 금이 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너의 시선은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아직 네 마음 구석에 남아있긴 했구나. 씁쓸한 미소가 입가를 웃돌았다.

 

  "무슨 소리야, 신타로."

 

  그 놈의 신타로, 신타로, 신타로. 정말 지긋지긋했다. 내가 아는 너는 나를 신타로라는 이름으로 부른 적 없었다. 내가 아는 너는, 그런 샛노란 눈빛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너에게 신타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는 생각은 수도 없이 해봤지만 이런 식은 결단코,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 웃으면서 신타로라 부르는 지금의 너보다, 차가운듯 해도 다정하게 미도리마라 불렀던 예전의 네가 나는 그립다. 붉은 색임에도 차가운 빛을 내고, 차가운 빛을 내면서도 온기를 담고 있던 너의 두 붉은 눈동자가 나는, 그립다.

 

  "너 날 아직 좋아하잖아?"

 

  그리고 나는 느꼈다. 지금은 아마, 나의 시선이 많이 흔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절대로 네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사실이니까. 사실이기에 관계를 내리쳤을 뿐이다. 위태롭게 오가며 흔들리는 시선 속에서 조심스럽게 너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이 느낌은 아카시, 너 그대로인데 어째서 그 안은 네가 아닌 걸까. 너의 입가에 승기 만연한 미소가 피어났다. 

 

  "아카시."

 

  내가 널 아직 좋아하는 건 맞지만 말이다…. 나는 말 끝을 흐리고 네 노란 눈동자에 눈을 맞췄다. 너는 또 무엇을 간파하기 위해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걸까. 나는 손바닥으로 노란 눈동자를 덮었다.

 

  "이 쪽이 아니라,"

 

  어떤 감정도 없이 날카롭기만 한 노란 눈동자와는 다르게 반대편의 붉은 눈동자는 잔뜩 당황한 빛이 어려있었다. 그리고 나는 입술로 그 눈동자 위의 얇은 눈꺼풀을 덮어내었다.

 

  "이 쪽이다."

 

  좋아하지만, 좋아하지 않기에. 그래서 헤어지자는 거다. 내가 알던 너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카시.

 

 

 

 

 

 

테이코 에피 복습하다가 처음엔 스토리에 멘붕하느라 정신없어서 몰랐는데, 다시보니 미도리마가 아카시의 두 얼굴에 꽤나 상처입은 거 같아서 급 녹적에 영업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