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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테츠] 계속 너와 있고 싶어

팥_ 2017. 1. 26. 00:28




쿠로테츠 합작에 주제 '새해'로 참가한 글입니다.

http://hqahngae.wixsite.com/kurotetsu1





  올해의 시작은 조금 특별했다. 키류의 아버지가 새해를 맞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며 집을 비웠고, 그러자 덩달아 들뜬 여동생까지 친구의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하겠다며 ―물론 키류가 붙잡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해 기나긴 설교를 늘어놓았지만 그녀는 이미 귀를 닫아버린 듯했다.― 집을 나섰다. 이 사실들을 마침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나구모에게 털어놓자 그는 수십 가지의 이모티콘과 알아보지도 못할 오타들을 쏟아내더니 급기야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나구모는 조금 시간이 흘러서야 간신히 제대로 된 문장 하나를 뱉어내었다.


  - 대장과 함께 새해를 맞고 싶슴다…….


  키류는 다소 난감해졌다. 우선 벌써 열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평소의 나구모였으면 슬슬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게다가 키류의 집 주변은 치안이 좋지 않았다. 낮에도 불량배가 어슬렁거리는 곳이니 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사실들을 나구모에게 달래듯 설명하자 곧 다소 추욱 늘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럼 데리러 와주시면 안 됨까……?

  “테츠, 그건……”


  역시 곤란한 질문이었다. 키류는 알게 모르게 나구모의 집에 가는 것을 피해왔다. 나구모의 집은 비는 날이 드물었고, 그 말은 곧 항상 집에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뜻했다. 키류는 저처럼 험악해 보이는 사람이 사랑받고 자란 집의 외동아들과 어울린다는 걸 알면 그 어떤 부모님이라도 걱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구모가 종종 부모님이 안 계시다며 부르기도 했지만 키류는 웬만하면 응하지 않았다. 언제 갑자기 돌아오실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구모는 그 때마다 다소 실망한 기색을 보였지만 키류는 애써 모른 척 했다. 나구모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어찌됐건 연인이었고, 키류 역시 연인의 집에 놀러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 네에? 대자아아앙……

  “…….”

  - 대자아아아아아아앙―

  “……알겠으니 조용히 좀 해라, 테츠.”


  칭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저를 길게 늘어져라 부르는 목소리에 키류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대신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 앞에서 만나자는 말도 했지만 나구모는 과연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크게 대답을 해왔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귀엽게 느껴지는 탓에 키류는 작게 웃음을 뱉어냈다. 그 후로도 나구모는 계속해서 전화를 끊지 않고 무얼 사가면 좋을지,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등등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키류는 한숨을 내쉬며 됐으니 제발 침착하게 넘어지지 말고 오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 말에 나구모는 곧장 ‘물론임다!’ 하고 우렁차게 대답했지만 뒤이어 발을 헛디뎠는지 ‘으아앗!’ 하는 비명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테츠, 많이 졸려 보이는데. 어서 씻고 자라.”

  “엑, 하지만 아직 자정도 안 됐잖슴까?”

  “자고 일어나면 새해라고. 그것도 분명히 같이 맞는 거지.”

  “……아니, 틀린 말은 아님다만…… 그, 그래도 보통은 함께 새해를 맞는다고 하면 같이 카운트다운도 하고 그런다구요?!”

  “알고 있어. 당연히 농담이다.”


  키류의 마지막 말에 나구모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까, 대장은 농담도 너무 진지하게 하심다…… 나구모가 중얼거리는 말에 키류는 씨익 웃으며 나구모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휘젓듯 쓰다듬었다. 


  “그럼 우선 씻고 와라, 테츠.”

  “……또 재우시려는 검까?!”

  “아니, 네가 씻고 오면 적당히 새해일 것 같아서.”


  키류는 웃으며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켰다. 시계는 열한 시 사십 분 가량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구모는 그제야 멋쩍게 웃어보였다.


  “우음…… 그럼 대장이 먼저 씻으시는 편이 어떻슴까? 거의 제가 억지로 찾아온 거나 마찬가지고……”

  “아니, 테츠가 손님이니까 먼저 씻어야지. 그리고 딱히 억지로 들인 것도 아니야. 나도 테츠랑 있는 게 좋은 게 당연하잖아.”

  “그럼 매일 놀러 와도 됨까?”

  “아니.”


  키류가 단번에 거절하자 나구모는 축 어깨를 늘어뜨리고 입술을 작게 비죽였다. 키류는 웃으며 살짝 튀어나온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차마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너와 단 둘이 있으면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힘들다는 말을 어떻게 직접 말 할 수가 있을까. 2년이나 어린 후배다. 연인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린 녀석을 상대로는 조금 심하다. 두 명 다 성인이라면 모를까, 키류가 먼저 성인이 되고도 나구모가 성인이 되려면 일 년하고도 반 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여전히 어깨를 늘어뜨리고 축 쳐져있는 나구모를 키류는 억지로 밀어 욕실로 집어넣었다. 샤워를 하는 도중에도 ‘집이 닳는 것도 아니잖슴까―’와 같은 불평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키류는 그저 ‘빨리 씻고 나오기나 해라, 그러다 자정 지난다.’ 하고 작게 웃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나구모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땐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키류는 빤히 그를 위 아래로 훑어보았지만 그는 당당한 자세로 키류에게도 티셔츠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평범한 검은색 반팔 티셔츠인듯 했지만 제대로 펼쳐보면 커다란 사자 일러스트가 인쇄된 티셔츠였다. 


  “얼른 입어주십쇼! 제 회심의 잠옷임다! 커플잠옷이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대장 것도 준비했다구요?”


  나구모는 그렇게 말하며 뿌듯한 얼굴로 가슴을 활짝 피고 제 가슴께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나구모의 손가락 끝에는 호랑이 일러스트가 인쇄되어 있었다. 


  “뭐…… 나쁘지 않구나.”

  “마음에 쏙 든다고 해주십쇼?”

  “흐음, 바꿔서 입는 게 더 좋지 않았으려나…… 어쩔 수 없지, 내가 테츠의 티셔츠를 입을 수는 없으니까.”


  키류는 그렇게 말하곤 그 자리에서 곧장 제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제끼고 나구모가 건네준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순간 나구모의 몸이 흠칫 떨린 것도 같았지만 키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옷 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똑바로 나구모의 앞에 섰다.


  “역시 대장! 뭘 입어도 잘 어울리심다!”

  “아니, 테츠가 골라준 거라 그런 거지. 다음에는 내가 선물하도록 하지. 테츠에게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걸……”

  “앗, 아님다! 제가 드리고 싶어서 드리는 건 걸요…… 헤헤, 저는 대장만 곁에 있어주시면 됨다. 그게 최고의 선물임다!”


  나구모는 싱글벙글 웃으며 키류를 꼬옥 끌어안았다. 키류는 제 품에 매달리듯 안긴 나구모를 내려다보며 아직 채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테츠가 내 곁에 있어주는 건 내게도 큰 선물이니까 역시 나도 보답을 해야지. 그러고 보니 테츠, 따로 목도리 안 하지?”

  “네, 없슴다. 아앗, 떠주려고 하시는 검까? 영광임다! 떠주시면 매일매일 두르고 다니겠슴다! 봄에도, 여름에도 두를 검다!”

  “……그건 좀 자제해 줘.”


  키류가 머릿속으로 대강의 디자인을 구상하고 있을 때, 바깥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근처 회관에서 새해를 맞는 행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구모는 창가로 다가가 바짝 창가에 붙어 섰다. 키류 역시 덩달아 나구모의 옆에 서서 창문 밖을 내려다보았다.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위해서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 10! 9! 8! 7!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키류는 슬쩍 손을 뻗어 나구모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회자의 목소리를 따라 즐겁게 카운트다운을 외치던 나구모가 흠칫 몸을 떨며 입을 다물고 키류를 올려다보았다. 


  - 6! 5! 4!


  “대장……”


  나구모의 중얼거림과 함께 키류는 잡은 손을 들어 손등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 3! 2! 1!

  “해피 뉴 이어, 테츠.”

  - 해피 뉴 이어!


  키류의 새해 인사와 동시에 바깥에서 거대한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키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꽃이 밤하늘을 별처럼 장식하고 있었다. 키류가 잠시간 거대한 불꽃에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중, 문득 그는 제 허리춤에 갑작스러운 무게감을 느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나구모가 저를 와락 안고 얼굴을 묻고 있었다.


  “대자앙……”

  “오냐, 테츠.”

  “……역시 곁에 있게 해주셔서 정말, 정말, 정말, 많이 감사함다…… 올해는 최고의 해가 될 것 같슴다. 정말로 기쁘고, 행복함다…… 우으, 이럴 때는 뭐라고 표현하면 좋은지 모르겠슴다. 제가 머리가 나쁘다는 게 실감나서 서럽슴다……”

  “바보냐, 쉽잖아.”


  가만히 나구모의 중얼거림을 들어주던 키류가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아 살며시 들어 올려 저를 마주보게 했다.


  “으, 죄송함다. 그러니까……?”


  나구모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 간신히 키류의 눈에 제 눈을 마주했다. 키류는 천천히 나구모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했다. 나구모는 꿀꺽 침을 삼켰다. 시선을 어디로 두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심장이 어찌나 빠르게 뛰는지,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냥 좋아한다고 하면 되잖아?”

  “…….”

  “좋아해, 테츠.”


  그렇게 말한 키류는 웃으며 고개를 살짝 틀어 나구모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나구모는 목각인형처럼 굳어 움직일 줄을 몰랐다. 키류는 나구모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그러자 그제야 그 손짓에 조금 정신이 든 듯 나구모는 간신히 숨을 쉬듯 입술을 살짝 벌렸다.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나구모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갔다.


  “저도, 좋아함다…… 좋아함다, 대장. 정말 많이……”


  나구모는 눈동자를 이리저리로 굴리다 눈을 질끈 감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평소에는 온 몸으로 시도 때도 없이 좋아한다고 말하던 아이가 답지 않게 수줍어하는 게 퍽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래, 테츠. 그럼 머리부터 말릴까? 감기 걸린다고.”

  “아, 아앗……! 마, 말려주실 검까……?”

  “아니.”

  “에……”

  “역시 농담이다.”


  ……역시 농담도 너무 진지하게 하심다! 나구모는 잔뜩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렸지만 표정만큼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키류는 그런 나구모의 머리카락을 제법 거칠게 헤집고는 가볍게 들쳐 메듯 안아 들었다. 호, 혼자 갈 수 있슴다. 내려주십쇼?! 나구모가 계속해서 쫑알거렸지만 키류는 대답 대신 홀로 생각에 빠질 뿐이었다. 어찌됐든 함께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고. 키류는 그렇게 생각하며 콧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