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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미도] 우주와 난파선

팥_ 2016. 12. 23. 00:14




  안녕, 타카미네.

  오늘은 내가 지구를 떠나온 지 딱 삼 년째 되는 날이다.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난 건가 놀라워. 갓 지구를 떠나올 때만 해도 나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참이었는데 말이지. 어느새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가 되었구나. 뭐, 이 정도도 어린 거지만! 

  지금쯤이면 지구의 시간은 정확히 십이 년 삼십삼 개월 네 시간 사십이 분 십일 초, 십이 초, 십삼 초…… 를 지나고 있겠구나. 그 말은 타카미네가 서른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이상한 기분이야. 타카미네는 언제나 나보다 어린 아이였잖아. 돌아가면 내가 타카미네에게 존칭을 써야할까? 물론 농담이다! ……서른 살의 타카미네가 궁금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키는 더 컸을까, 아니면 그대로일까? 더 컸다면 잔뜩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항상 어린 아이 같았던 타카미네였는데, 나보다 일곱 살이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아. 좀 더 어른스러운 얼굴을 하고 어른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러줄까? 

  이곳은 여전히 고요해. 언제부터인가 본부에서 보내주던 음악들도 업데이트가 끊겨버렸어. 처음에는 계속 음악을 틀어놨었지만 이제는 전부 질려버려서 침묵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다. 처음에는 외로운 기분이었지만 이제는 그럭저럭 적응했나봐. 혼잣말을 하는 거야 원래부터 내 특기고!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그 혼잣말에 딴지를 걸어주는 사람들이 없다는 걸까? 이제는 나 혼자서 딴지까지 걸며 열심히 대화하긴 하지만 말이다. 

  우주는 여전히 아름답다. 몇 날 며칠을 보아온 풍경인데도 늘 새로워. 어딘지 모를 곳을 흘러가면서도 어느 한 곳 같은 곳이 없다. 전부 같은 어둠이 아니고 전부 같은 빛이 아니야. 별의 색이 이렇게 다양할 거라곤 우주에 오기 전까진 상상도 하지 못했지. 흰색, 노란색, 붉은색, 파란색, 보라색…… 그것들마저도 어느 한 가지 색으로 정의할 수가 없어. 보라색이라곤 해도 전부 다 다른 색이지. 별은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나를 둘러싸고 반짝이고 있다. 그게 나에겐 조금 위안이 돼. 이 넓디넓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변화거든.

  꽃담배는 잘 자라고 있어. 우주에서 키우고 싶은 식물들을 한 가지 고르라고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전부 장미라든가, 옥수수라든가, 아무튼 잘 알려진 식물을 골랐는데 말이지. 내가 꽃담배를 가져가겠다고 하자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다는 얼굴을 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하지! 나도 타카미네의 탄생화를 찾아보다가 처음 알게 됐으니 말이다. 식료품의 대체제가 되어줄 만한 녀석도 아니고, 화려한 관상용 꽃을 피워내는 녀석도 아니지만 이 녀석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꽤 힘이 돼. 언제부턴가 매일 아침 침묵 속에서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이 녀석에게로 가서 아침인사를 하기 시작했어. 겨우 타카미네의 탄생화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힘이 나. 지금까지 몇십번이고 그리움이 온몸을 타고 흘렀지만 그 때마다 이 녀석을 보며 꽤 힘을 냈었어. 기특한 녀석이지? 그대 있어 외롭지 않네. 이게 이 녀석의 꽃말이래. 물론 모르고 데려온 거지만 참 그럴 듯해서 놀랐다. 그래, 나도 네가 있어서 덜 외로웠다. 

  지구에서 메일이 도착하지 않은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지구의 시간으로는 칠 년쯤 되었나? 아니, 팔 년인가? 내 메일이 전해지지 않는 건지, 타카미네의 메일이 오류가 나는 건지, 네가 답을 주지 않는 건지, 어느 것도 정확히 알 수가 없네. ……답을 하지 못할 상황이 아니기만을 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이유라도 괜찮으니까.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늘어놓을게. 

  지구는 무사해? 누구와도 연락이 닿질 않아서 답답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야. 역시 다들 지구를 지키느라 바쁜 걸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내가 떠나던 날이 떠올라. 나를 붙잡고 서럽게 울던 타카미네가 떠올라서……가끔은 역시 지구에 남았어야 했나 싶어. 히어로가 할 말은 아니지? 나도 알지만 어쩔 수 없잖아, 타카미네가 그렇게 나를 붙잡았는걸. 네가 했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생생해. 선배가 가버리면 지구는 누가 지키냐며 울었지. 그 때의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저 너를 끌어안고 달래기에 바빴지만,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구는 타카미네가 지킬 테니 안심이라고.

  보고 싶어, 타카미네. 열여덟의 너도, 서른의 너도. 내가 잃어버린 너의 십이 년도. 전부 궁금해. 내가 놓쳤을 너를 다시 알고 싶어. 내가 다시 지구로 돌아갔을 때 타카미네는 몇 살이 되어있을까? 나는 기껏해야 삼십대 안팎이겠지. 나는 몇 살의 타카미네를 만나도 사랑할 자신이 있는데 타카미네는 그게 아닐까봐 조금 걱정이다. 하긴, 어쩔 수 없지. 나는 고작 몇 년이었지만 타카미네는 몇 십 년이 되는 걸. 기다림은 무한한 고문이잖아. 슬프지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저 더 많이 늦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그러니까…… 무사히 타카미네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 

  요즘 자주 꽃담배가 휘청거려. 막대라도 대어줘야 할까? 생각난 김에 지금 작업해야겠다. 어차피 한가하고 말이지. 

  나는 지금 새로운 성운 하나를 지나고 있어. 찾아봐도 이름이 뜨질 않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곳일까? 푸른 기운이 살짝 도는 녹색으로 어우러진 게 퍽 아름다워. 기회가 된다면 ‘미도리 성운’이라고 잘 등록해 놓을 테니 지구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너도 함께 볼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럼 이만 줄일게. 사랑해, 타카미네.




  우주에서,

  모리사와 치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