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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카게] 맹금류의 테이블 매너

팥_ 2016. 1. 25. 20:47

15년 8월 22일 카게른 온리전에 나왔던 

카게른 소설 앤솔 '그림자의 밤' 선입금 예특으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카게야마는 먹는 것을 좋아했다. 본인의 말로는 체력관리를 위해 든든하게 먹는 거라곤 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음식을 보는 그의 눈은 언제나 빛나고 있었다. 특히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경우엔 더욱 그랬다. 카레라이스나 고기 종류가 눈앞에 있을 때면 카게야마의 뒤로 바쁘게 꼬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야말로 어린 아이가 따로 없었다. 

  “카게야마.”

  아카아시는 턱을 괴고서 물끄러미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는 입 안 가득 카레를 밀어 넣기에 정신이 없어 아카아시가 숟가락을 내려놓은 줄도 모르고 있다가 아카아시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네?”

  불룩한 볼이 움직이며 발음이 뭉개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카아시는 저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한쪽 볼에 밥을 밀어놓은 건지 다람쥐마냥 볼을 볼록하게 부풀린 채로 눈은 동그랗게 뜨고 저를 바라보는 얼굴이 웃기면서도 귀여웠다. 

  “그러다 카레에 얼굴 빠지겠다.”

  아카아시의 말에 카게야마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계속해서 입을 우물거렸다. 아카아시는 그런 카게야마를 보며 말없이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동그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곱슬머리인 탓에 이리저리로 뻗치는 자신의 머리카락과는 다르게 윤기가 흐르는 매끄러운 생머리가 손가락 끝에 감겨왔다. 

  “얼굴에 카레 묻었어요?”

  “……아니야. 얼른 마저 먹어.”

  카게야마는 아카아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가도 마저 먹으라는 그의 말에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입 안으로 카레를 밀어 넣었다. 아카아시는 느릿느릿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헤집던 손을 거두었다. 손끝에 산뜻한 향기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은 투정 같은 소리를 하고 싶어서 불렀던 거였다. 아카아시는 카게야마와 함께 밥을 먹는 시간까지 데이트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식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카게야마에게 식사는 그저 식사였다. 식사 내내 아카아시가 볼 수 있는 건 카게야마의 얼굴이 아니라 유난히도 둥글고 검은 머리였다. 카게야마는 의사소통에 있어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아이였기에 아카아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덕분에 아카아시는 언제나 갈등의 기로에 서있었다. 

제 생각을 말하지 않자니 이러다 데이트 때마다 늘 식사 내내 카게야마의 정수리만 보게 될 것 같았고, 말하자니…… 귀여웠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팔불출이라며 혀를 내두를 게 뻔한 소리였지만 귀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밥이 나오면 눈을 빛내며 수저부터 드는 모양새나, 조금 전처럼 다람쥐마냥 한껏 볼을 부풀리고 정신없이 밀어 넣는 모양새나 전부 귀여웠다. 그랬기에 방금 전에도 끝내 말하지 못하고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던 거였다. 아카아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미워할 구석이 없는 연인이었다. 

  카게야마의 동그란 머리가 여전히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은 꼭 말해야지. 아카아시는 또 한 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카게야마를 만나러 오는 동안부터 결심했던 일이었다. 나는 네 목소리가 듣고 싶고 얼굴이 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카게야마.”

  아카아시는 다시 한 번 카게야마를 불렀다. 카게야마의 접시엔 그새 밥이 삼분의 일 가량밖에 남지 않아있었다. 밥을 먹을 땐 다른 데는 관심도 주지 않고 먹으면서도 꼭 아카아시가 부르는 소리에는 번쩍 고개를 드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고개를 들고 아카아시를 바라보는 카게야마는 이번에도 한쪽 볼이 불룩한 채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카게야마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카아시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도 괜히 이름을 불러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더니―아카아시 나름대로 노력해 돌려 말했던 그 말은 카게야마에겐 전혀 내용이 없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지금도 부르고선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됐는지 카게야마는 심각한 얼굴로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표정만 심각했다는 거였다. 

카게야마는 분명 진지한 얼굴이었지만 그의 입가엔 작은 밥풀 몇 알이 매달려있었고, 오른손에는 여전히 숟가락이 꼭 쥐어져있었다. 당장이라도 밥을 퍼 올릴 기세였다. 아카아시는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걸 꾹 참고 그 역시 진지한 얼굴로 카게야마를 마주보았다. 아카아시가 또 한 번 저를 불러놓고도 아무런 말도 않은 채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니 카게야마는 슬슬 초조해졌는지 입술을 비죽거리기 시작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고민할 때 나오는 카게야마의 버릇이었다. 아카아시는 한쪽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갈 것 같은 것을 힘겹게 힘을 주어 굳혔다. 그리곤 슬쩍 한쪽 손을 뻗었다. 

  테이블이 조금 컸던 탓에 카게야마의 뒷머리를 감싸 쥐기 위해 아카아시는 별 수 없이 일어나야만 했다. 아카아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살짝 허리를 숙이자 카게야마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아카아시를 올려다보았다. 적잖이 놀라긴 했는지 비죽 내밀어져있던 입술은 동그랗게 벌어져 있었다. 아카아시는 그대로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동그란 뒤통수를 감싸 쥐었다. 카게야마의 눈동자가 제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어쩐지 사랑스러웠다. 아카아시는 한쪽 손으론 카게야마의 머리를 감싸고, 다른 쪽 손으론 테이블 옆에 놓여있던 메뉴판을 들었다. 그리곤 메뉴판을 펼쳐 얼굴 옆면을 가렸다.

  뭐 하시는 거예요? 카게야마는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제 머리를 감싼 아카아시의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갔고, 정신을 차렸을 땐 아카아시의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큼직한 메뉴판은 아카아시와 카게야마의 얼굴 전부를 가리기에 충분했다. 벽처럼 둘러진 메뉴판을 안쪽에서 그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마주하는 건 상당히 묘한 기분이었다.

  “……아카아시 씨?”

  머뭇거리던 카게야마가 마침내 입을 엶과 동시에 아카아시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입술이 겹쳐질 것이 뻔했다. 카게야마는 질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카아시의 입술이 닿아온 곳은 자신의 입술이 아니라 그 아랫부분이었다. 카게야마는 한쪽만 가는 눈을 뜨고서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짧은 입맞춤을 남기고 몸을 일으킨 아카아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들고 있던 메뉴판을 내리고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렇게 입가에 묻혀가며 먹을 정도로 정신없이 먹는 건 식사 예절에 어긋나.”

  반쯤은 장난이었고 반쯤은 진심이었다. 카게야마는 멍한 얼굴로 아카아시를 쳐다 보고만 있었다. 물론 제 말을 이해했을 리는 없었다. 그를 증명하듯 카게야마의 얼굴엔 여전히 물음표가 떠다니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놔두고 카게야마가 홀로 고민하는 걸 지켜볼 것인지, 애초에 결심했던 대로 똑바로 말해줄 것인지에 대한 거였다. 

  “또 묻히고 먹으면 다음에는 메뉴판 없이 할 거야.”

  아카아시의 목소리에 카게야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아, 안 묻히고 먹어요!”

  새빨개진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아카아시는 결국 오늘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귀 끝까지 붉게 물든 얼굴을 푹 숙이고 카레를 먹으면서도 입가에 묻히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카게야마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괜찮았다. 

  다음에는 또 무슨 핑계를 댈까. 나이프를 쥐는 방법? 음식을 먹는 순서? 아카아시는 즐거운 고민과 함께 살풋 웃으며 내려놓았던 숟가락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