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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우시시라] S와 S의 차이

팥_ 2016. 1. 11. 01:30





0.

  세미 에이타와 시라부 켄지로의 차이.


1.

  세미 에이타는 적당히 우시지마를 타박할 줄 알았다. 우시지마가 사흘째 점심 메뉴로 하이라이스를 고르는 걸 보곤 그의 식권을 뺏어 자신의 것과 바꾸었다. “이거 사흘째 먹는 거지?” 우시지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세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미는 찡그리고 있던 표정을 바꾸어 웃으며 우시지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른 방면에서는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왜 하이라이스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쓸까, 우리 와카토시는.” 우시지마는 제 손에 들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미의 식권이었던 것을 바라보았다. A정식이었다. 세미는 이미 하이라이스를 받기 위해 우시지마의 곁을 떠나있었다. 


2.

  시라부 켄지로는 우시지마를 타박하는 법을 몰랐다. 고시키가 시라부에게 수학 숙제를 물어보러 왔을 때, 시라부는 그의 말에 반응하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 텐도가 시라부에게 문학 숙제를 물어보러 왔을 때, 냉랭한 얼굴로 “3학년이 왜 2학년한테 물어보시는 건지 모르겠는데요.”라 대답하곤 역시 등을 돌렸다. 하지만 우시지마가 시라부에게 다른 것도 아닌 수학 숙제를 물어봤을 때, 시라부는 단번에 그를 제 옆자리에 앉히곤 샤프 펜슬을 꺼내 들었다. 뒤에서 텐도가 “켄지로 진짜 너무하다니까.”라고 다 들릴 정도로 투덜댔지만 시라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빠르게 움직이는 시라부의 손을 바라보고, 다정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3.

  세미 에이타는 가끔 우시지마를 때렸다. 심각한 의미의 폭력이 아니라, 가벼운 주먹 장난 같은 것들이었다. 3학년들끼리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대부분의 경우 대화는 텐도가 주도했다. 다른 아이들이 맞장구를 치거나 텐도를 타박하며 대화를 이어나갈 때 우시지마는 그 속에 앉아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그럼 세미는 우시지마의 등을 찰싹 때렸다. 우시지마가 흠칫 놀라 세미를 돌아보면 세미는 씨익 웃고 있었다. “혼자 딴 생각 했지?” 우시지마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아니다.” 우시지마의 대답에 세미는 짐짓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럼 뭔데?” 어느새 대화는 멈춰 있었다. 모두가 우시지마와 세미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돼서.” 요즘 인기가 많은 여자 아이돌의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우시지마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음악을 듣는 일도 없었다. 그러니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세미는 웃으며 주먹으로 우시지마의 팔을 가격했다. “진작 말하지.” 그리고 세미는 지난 주에 있었던 대학 배구 리그 이야기를 꺼냈다. 우시지마가 입을 열었다. 세미는 제법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우시지마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4.

  시라부 켄지로는 가끔 우시지마에게 맞았다. 당연히 우시지마가 직접 손을 댔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스파이크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시지마는 종종 서브 컨트롤의 정확도를 위해 홀로 연습을 했다. 그럴 때면 시라부가 나타나 “제가 리시브 해드릴까요?” 하며 도움을 자처했다. 우시지마는 “페트병을 세워 두고 하면 되니 너는 무리하지 말고 쉬어라.”라고 한 번은 거절했지만, 시라부의 고집은 우시지마가 꺾을 것이 못 되었다. “그래도 사람이 서 있는 거랑 느낌이 다르잖아요.” 시라부는 우시지마가 언제 거절을 했냐는 듯 태연하게 페트병을 치우고 섰다. 우시지마는 잠시 시라부를 바라보다가 자세를 취했다. 시라부 역시 제대로 리시브를 하기 위한 자세를 취했다. 곧 제법 큰 소리와 함께 공이 시라부의 팔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우시지마는 살짝 눈을 크게 뜨고 시라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리시브 실력이 많이 늘었군.” 우시지마의 말에 시라부는 잠시 멈칫 했으나 이내 활짝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흰 팔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5.

  세미 에이타는 레귤러였다. 제대로 코트에 서게 된 건 2학년 때부터였다. 우시지마는 종종 세미에게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를 사용해라.” 세미는 우시지마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곤 한쪽 눈썹을 들썩였다. “어떤 상황에서건?” 세미는 우시지마의 말을 되풀이했다.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황이라는 게 뭔데?” 아무래도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세미는 조금 더 말을 풀어서 물었다. 우시지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세미의 물음에 대답할 만한 예시를 고르는 듯했다. “내가 굉장히 지쳐있을 때 말이다.” 대답을 고른 시간에 비해 나온 답은 꽤 간소했다. “조금이라도 더 뛰면 쓰러질 것 같을 때?” 그래서 세미는 우시지마의 말을 보충해주었다. “그래.” 우시지마가 대답했다. “싫어.” 세미는 우시지마가 대답하기 무섭게 거부 의사를 표했다. 우시지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다.” 세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세미는 우시지마를 빤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배구공을 위로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실수로 놓친 공이 외로이 바닥을 굴렀다. “왜 코트 위에 서는 일곱 명 중에 윙 스파이커가 셋이나 되는 줄 알아?” 세미는 허리를 숙여 공을 주우며 물었다. “그것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우시지마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세 명의 공격수, 한 명이 힘들어 하면 남은 두 명이 도와주라는 뜻이지.” 세미는 다시 공을 위로 던졌다. “그러니까 나는 네가 지치면 다른 스파이커를 쓸 거야.” 그리고 중얼거렸다. 우시지마는 세미의 등을 바라보았다. 

  다음 해, 세미는 레귤러에서 벤치 선수가 되었다.


6.

  시라부 켄지로는 벤치 선수였다. 우시지마와 조금씩 호흡을 맞추게 된 건 2학년 때부터였다. 우시지마는 시라부가 1학년일 때부터 종종 하던 말을 다시금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를 사용해라.” 시라부는 우시지마의 말에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어떤 상황에서건 이라뇨?” 시라부는 우시지마의 말을 되풀이했다.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황이라는 게 무슨 상황인가요?” 아무래도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시라부는 조금 더 말을 풀어서 물었다. “내가 굉장히 지쳐있을 때 말이다.” 우시지마는 시라부의 물음을 예상했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쓰러지기 직전, 같은 상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시라부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래.” 우시지마가 대답했다. 시라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시지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너도 싫다고 대답할 건가?” 우시지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시라부는 우시지마를 쳐다보았다. “아니요.” 그리고 대답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으니까요.” 시라부는 그렇게 말하곤 땅에 내려놓았던 공을 들어 올렸다. “우리 팀은 우시지마 선배가 주축이 되어,” 시라부는 공을 바닥에 튕겨내어 다시 잡았다. “우시지마 선배를 믿고 따르며 반드시 승리하는 팀이니까요.” 몇 번 더 시라부는 공을 튕겼다. 공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 해, 시라부는 벤치 선수에서 레귤러가 되었다. 


7.

  세미 에이타는 고백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곧 저의, 우시지마의 졸업이었다. 우시지마는 도쿄의 대학으로, 세미는 교토의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졸업한 후에는 사실상 다시 만나기 힘든 거리였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뤄왔던 일들을 전부 처리하고 싶었다. 


8.

  시라부 켄지로는 고백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곧 우시지마의 졸업이었다. 우시지마는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할 예정이었다. 시라부는 대학에 가서는 배구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니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고백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졸업식 날에 고백하는 일은, 정말로 모든 게 끝이라는 걸 뜻하는 것 같았다.


9.

  세미 에이타는 고백했다. 따로 우시지마를 불러내거나 하지도 않았다. 무수한 인파의 틈바구니에서 우시지마를 불렀다. “와카토시.” 우시지마가 느리게 세미를 돌아보았다. 한 손에 졸업장을 든 세미가 밝게 웃고 있었다. 그 뒤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세미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주변이 시끄러워 우시지마는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미안, 못 들었다.” 우시지마가 인상을 쓰고 말했다. 세미는 웃으며 손을 뻗었다. 세미의 손이 우시지마의 넥타이에 닿았다.


10.

  시라부 켄지로는 고백하지 않았다. 대신 인사는 건네고 싶어 우시지마를 찾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전부 다 하지는 못 할 말들이었다. 그래도, 다만, 이 말만은 하고 싶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언제나 승리로 팀을 이끌어주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당신이 제 스파이커라서 행복했습니다. 시라부는 우시지마를 찾아 인파를 헤쳤다. 시선에 세미와 우시지마가 닿았다. 시라부는 멈춰 섰다.


11.

  세미 에이타는 우시지마의 넥타이를 잡아끌었다. 우시지마는 얼결에 세미에게로 끌려왔다. 세미의 입술이 우시지마의 귓가에 닿았다. 우시지마는 어정쩡한 자세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좋아해, 와카토시.” 세미는 이게 우리의 끝이 아니길 바랐다. 끝이라고 생각했기에 고백했으면서도 끝이 아니길 바랐다. 세미는 우시지마의 넥타이를 놓아주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세미에게 허리를 숙이고 있던 우시지마가 천천히 허리를 폈다. 세미는 웃으며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우시지마의 입술이 느리게 떨어졌다.


12.

  시라부 켄지로는 우시지마의 넥타이를 잡아끄는 세미 에이타를 보았다. 그들은 한참동안 그렇게 몸을 겹치고 인파 속에 서 있었다. 세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라부는 주먹을 꾹 쥐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라부의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그들은 시라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시라부는 세미와 우시지마를 한 가득 눈에 담았다. 세미가 우시지마를 놓아주었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서 그가 눈부시게 웃고 있었다. 우시지마의 입술이 느리게 떨어졌다. 시라부는 몸을 돌렸다. 


13.

  세미 에이타는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좋아한다.


14.

  시라부 켄지로는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좋아했다.







#우시른_전력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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