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 생일 기념 급조글. 생일 축하해 쿠로오!
[전화해도 돼?]
[어… 안 돼요.]
[아, 왜.]
[지금 못 받아요.]
[그럼 뽀뽀해줘.]
[문자로 무슨 뽀뽀를 해요?]
[이렇게. 쪽쪽 • 3• )~♥]
칼 같이 이어지던 메시지는 쿠로오의 저 메시지를 끝으로 몇 분간 답이 없었다. 쿠로오는 소파에 드러누워 휴대전화의 메시지 목록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띄우고 액정을 살살 쓰다듬었다. 보나마나 잔뜩 빨개진 얼굴로 휴대전화만 꼬옥 붙잡고서 바들바들 떨고 있을 게 뻔했다. 그러고 있을 카게야마를 상상하니 괜히 헤벌쭉한 미소가 피어나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이제는 입 밖으로 이상한 웃음소리 같은 것이 튀어나오려고 해 쿠로오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보아하니 앞으로도 몇 분은 더 답장 안, 아니 못 올 거 같고.
쿠로오는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피며 어기적어기적 부엌으로 걸어갔다. 자기 전에 밀린 음식물 쓰레기나 처리하고 잘까. 쿠로오는 잔뜩 인상을 쓰고서 쌓인 음식물 쓰레기를 비닐봉지 하나에 깔끔하게 담고 밀봉한 후, 철저하게 겉에 검은 비닐봉지까지 둘렀다. 쿠로오가 성인이 되고 자취를 시작한 후로 유일하게 싫어하는 점이 있다면 바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였다. 쿠로오는 한껏 얼굴을 구긴 채로 조심스레 손가락 끝으로 봉지의 손잡이를 잡아 최대한 얼굴을 멀리 하고서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벌컥 문을 여는 순간,
“으, 으아아아?!”
괴상한 비명소리에 하마터면 봉지를 떨어뜨릴 뻔한 것을 간신히 붙잡은 쿠로오가 멍한 얼굴로 문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남자를, 그리고 그 남자가 조심스레 초를 잡고 꽂고 있던 케이크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정확히 3초 후, 쿠로오의 눈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카게야마?”
카게야마는 울상이 된 얼굴로 일어나 쿠로오를 다시 문 안 쪽으로 밀어 넣으려는 것처럼 꾹꾹 밀어대기 시작했다. 쿠로오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집 침대에 누워 저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던 녀석이 왜 이곳, 도쿄에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멍하니 뒷걸음질을 치며 카게야마가 미는 대로 밀리고 있었다.
“아, 진짜! 지금 나오면 어떡해요!”
“아니, 아, 뭐, 왜, 그러는 너는 왜 지금 여기 있어!”
“됐으니까 들어갔다가 삼 분 후에 다시 나와요!”
카게야마는 마지막까지 씩씩대며 쿠로오를 억지로 현관으로 밀어 넣더니 결국 쿠로오의 면전 앞에서 현관문을 쾅 닫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쿠로오는 조심스레 제 뺨을 꼬집어 봤다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고통을 깨닫고 곧 그만 두었다. 삼 분? 그리고 의문점의 화살표가 향한 곳은 카게야마가 말한 ‘삼 분’이었다. 쿠로오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2014년 11월 16일 오후 11시 57분. ……아. 그제야 카게야마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벌써 나오면 어떡하냐며 성을 냈는지, 삼 분 뒤에 나오라고 했는지, 기타 등등의 것들에 대한 이유를 깨달은 쿠로오는 언제 당황했냐는 듯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입술 끝을 실룩거리며 간신히 참아냈다. 정말이지, 제 연인이라서가 아니라 저렇게 귀여운 열여덟 살이 세상 어디 또 있을까 싶었다. 미야기 현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에 교통비도 많이 들었을 거고, 시간 맞춰 오려면 분명 바쁘게 뛰어서 왔을 텐데. 쿠로오는 삼 분이고 뭐고 당장 문을 열고 문 앞에서 열심히 초에 불을 붙이며 기다리고 있을 카게야마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그래도 깜짝 이벤트 한 번 하겠다고 이렇게 꽁꽁 감춘 녀석인데, 장단은 맞춰 줘야지 싶었다.
삼 분이 삼 년 같은 기다림 끝에, 분을 나타내는 숫자가 0으로 변하고, 16일이 17일로 변하는 순간 쿠로오는 참았던 것들을 터뜨리듯 급하게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새, 새… 새앵… 일 축, 하, 합니다아…”
그리고 그런 쿠로오를 맞이한 것은, 붉어진 얼굴로 기다란 초 두 개가 꽂힌 케이크를 들고서 괜히 시선은 다른 쪽으로 돌린 채 생일 축하 노래인지 뭔지 모를 것을 중얼거리고 있는 카게야마였다. 모르는 이가 들으면 우울한 발라드라도 부르고 있는 건가 싶은 노래였지만, 쿠로오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싱글벙글 얼굴 근육이 마비될 것 같은 웃음을 한껏 지어보이고 갈수록 붉게 달아오르는 카게야마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 사, 흠, 사… 랑, 하는 쿠로오…!”
그리고 마침내 노래가 하이라이트에 다다랐을 때, —정확히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다다랐을 때— 쿠로오는 결국 참지 못하고 카게야마의 손에 들린 케이크를 뺏다시피 하여 땅에 내려놓고 그대로 카게야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직 노래 다 안 불렀,”
“나도 사랑해.”
카게야마가 심통난 목소리로 무언가 항의를 해보려 했지만, 빠르게 치고 들어온 쿠로오의 결정적인 한 마디 탓에 카게야마는 결국 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저를 세게 끌어안고서 행복해 어쩔 줄 몰라하는 제 연인을 보며 카게야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품에 몸을 맡기고, 그가 맘껏 행복해 할 수 있도록 가만히 놓아두는 일 뿐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쿠로오의 감동과 기쁨이 조금은 선 아래로 내려갔을 때 쯤, 카게야마는 손을 뻗어 쿠로오의 뺨을 살짝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촛불이나 꺼요.”
“……줘.”
“네?”
쿠로오가 카게야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중얼댄 탓에 그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카게야마가 반문했다.
“뽀뽀해줘.”
“…….”
“내가 아까 뽀뽀해 달랬잖아. 지금은 문자도, 전화도 아니니까 뽀뽀해줘.”
“……하여튼 진짜. 그럼 촛불 꺼요.”
카게야마는 최대한 쿠로오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눈동자를 굴리며 대답했다. 뽀뽀해달라니까? 그런 카게야마에게 억지로 눈을 맞추려고 쿠로오가 몸을 낮춰 카게야마의 시선을 따라가자 카게야마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 그, 촛불 끄면서 소원 빌면 되잖아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쿠로오는 결국 몸을 젖혀 배를 잡고 웃었다. 카게야마가 당장이라도 다시 미야기 현으로 돌아갈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아 그럼 뽀뽀 받지 말든가!’ 하고 소리를 지를 때 까지, 계속. 쿠로오는 더 이상 놀렸다간 생일이고 뭐고 저대로 토라지는 배드엔딩을 보고 말 것이라는 본능적인 직감에 간신히 웃는 것을 멈추고 바닥에 내려두었던 케이크를 들어 올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길게 뻗어있었던 초 두 개는 어느새 케이크에 달라붙을 정도로 짧아져 있었다.
고개는 저쪽으로 돌리고서 눈동자는 힐끗힐끗 이쪽으로 굴려대는 카게야마를 보며 쿠로오는 보란듯이 볼에 한가득 크게 바람을 품었다가 촛불을 향해 뱉어냈다. 밝은 빛을 뿜어내며 흔들리던 촛불은 쿠로오의 입김에 단번에 생을 다하고 말았다.
“나 소원 빌었어, 카게야마.”
“…….”
“안 들어 줄 거야?”
동시에 작은 한숨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쿠로오는 소리 내어 웃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살짝 몸을 낮춘 후 볼을 내밀고 카게야마를 기다렸다. 카게야마는 결국 한숨 끝에 다른 쪽으로 돌렸던 고개를 다시 쿠로오를 향해 돌리더니 볼을 내밀며 삐딱하게 숙인 쿠로오의 양쪽 뺨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생일 축하해요, 쿠로오 선배.”
그리고는 볼이 아닌 입술에, 말캉하고 차가운 듯한 입술이 닿아왔다.
쪽. 귀엽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울림까지 만들어 내는 것을 잊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