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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게]

팥_ 2014. 9. 18. 01:42


키워드 : 흙냄새, 초저녁, 풀벌레







  카게야마에게선 늘 같은 냄새가 났다.

  히나타는 까치발을 들어 카게야마의 저지 뒷목덜미를 잡아 끌어내린 후 그 틈새에 코를 밀어 넣고 킁킁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럴 때면 카게야마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펄쩍 뛰곤 했지만 결국 히나타가 냄새를 맡는 것을 그만둘 때까지 피곤한 얼굴로 몸을 숙여주곤 했다. 그러면 히나타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카게야마를 바닥으로 밀어 넘어뜨린 후 올라타 이번에는 쇄골께에 코를 묻고 한껏 숨을 들이마시곤 했다.

  사실 카게야마에게는 그것이 불쾌하다거나, 싫은 일은 아니었다. 다른 이였다면 그러고도 남을만한 행동이었지만 카게야마는 그런 감정에 둔감했기에 그저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문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부활동 중에도 물론이고,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칠 때나 하굣길에서 마저 그렇게 저를 넘어뜨려오니 카게야마는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냄새가 나는데 그래?”


  히나타는 한 번도 카게야마에게 그 냄새의 종류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저렇게 좋아하며 맡는 것을 보니 나쁜 냄새는 아니겠지 하고 무덤덤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히나타의 그런 행동들에 대해 처음으로 물은 카게야마의 질문에 히나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한참동안 카게야마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밀.”


  말해줄 것처럼 굴어놓고는. 히나타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허무한 말에 카게야마는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히나타의 머리에 손을 얹어 세게 눌렀다. 히나타는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간신히 그 손아귀를 벗어나와 늘 그랬듯이 카게야마를 밀어 넘어뜨리고 올라타 쇄골부근에 코를 묻었다. 야, 너 진짜…! 카게야마가 어쩐지 분한 듯한 목소리를 내거나 말거나 히나타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익숙한 향기가 흘러들어왔다. 젖은 흙냄새. 히나타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카게야마에게선 이슬에 젖은 흙냄새가 났다. 딱히 그것을 감출 이유는 없었지만 어쩐지 고작 흙냄새에 그렇게 좋아서 반응했다는 것이 부끄러워 히나타는 저도 모르게 비밀이라며 둘러대고 말았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맡았던 냄새와 비슷한 것이었다. 열심히 밖에서 바쁘게 뛰어 놀며 맡았던 그 흙냄새가 언제나 카게야마에게서 풍기고 있었다. 그 흙냄새가 불러일으키는 향수, 안정감, 편안함 같은 것들에서 히나타는 행복을 느꼈다. 아주 특별한 냄새도 아니었다. 그래, 맡고자 한다면 동네 잔디밭에 코를 박고 맡아도 충분히 맡을 수 있을 만한 냄새였다. 그러나 어쩐지 카게야마에게서 맡는 그 향은 특별하다고만 생각되었다. 조금 더, 뭐랄까, 아름다운 냄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리저리 재고 따져서 내린 생각이 아닌 지극히 본능적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그렇게 카게야마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대는 히나타에 모두가 익숙해졌을 무렵, 히나타와 카게야마에게 사와무라의 명령 하나가 떨어졌다. 당분간 부활동 이외의 시간에 자율연습을 하지 말 것. 언제나 늦게까지 남아 호흡을 맞춰보던 둘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억울한 얼굴로 항변을 해보아도 사와무라는 효율적으로 쉴 줄 아는 것이 연습보다도 중요하다며 단호한 얼굴을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체육관을 쓰지 못하게 되자 학교 주변의 공원이나 공터를 찾아 연습을 하곤 했지만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몰래 연습을 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사와무라가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불러 혼을 내곤 했다. 그렇지만 연습이 하고 싶은데. 히나타는 울상이었다.

  답지 않게 축 처진 어깨로 느릿느릿 자전거를 끌고 가는 히나타를 보며 카게야마는 골똘히 무엇인지 모를 생각에 빠졌다.


  “충분히 쉬어줘야 한다니, 우리는 한 삼십 분만 쉬어도 다시 완벽하게 충전되잖아? 안 그래 카게야마?”


  억울한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히나타의 말에도 카게야마는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카게야마에게 한 말이 아니라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말이었는지 히나타는 그것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울상인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히나타는 홀로 떠들고, 카게야마는 가만히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금세 히나타와 카게야마가 갈라서서 헤어지는 갈림길이 등장했다. 


  “내일 봐, 카게야마. 부활동 때 절대 쉬지 말고 하기다!”

  폴짝폴짝 뛰어대며 결의를 다지곤 홱 뒤를 돌아 자전거에 올라타려는 히나타의 어깨를 카게야마가 붙잡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히나타는 안장에 다리를 걸친 어정쩡한 자세로 제 어깨를 붙든 카게야마를 돌아보았다.

  “…들킬지 안 들킬지는 모르겠지만, 연습하고 갈래?”


  초저녁의 서늘한 바람이 히나타의 머리를 휘젓고 지나갔다. 그 바람 새로 히나타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 보다도 반짝거렸다.


* * *


  카게야마가 히나타를 이끈 곳은 제법 외진 곳에 있는 풀밭이었다. 좁고 구불거리는 오솔길을 지나 높게 자란 잡초들을 헤치고 들어가자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한 모양새의 작은 풀밭이 히나타와 카게야마를 반겼다. 카게야마는 익숙한 듯 구석에 놓인 작은 갈색 바구니로 다가가 그 안에서 배구공을 꺼내 들고 걸어왔다.


  “집 근처에서 연습하면 잡념이 많아져서 가끔 여기서 하거든.”


  카게야마는 가볍게 배구공을 몇 번 던졌다가 받아들며 말을 꺼냈다. 히나타는 멍하니 그런 카게야마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보라색과 짙은 푸른색이 애매하게 섞인 초저녁의 하늘엔 어느새 보름달이 빼꼼 나와 빛을 비추고 있었고, 원래는 꽤 어두워 앞을 보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 이곳은 그 달빛 덕에 그럭저럭 밝은 시야를 유지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빠르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익숙한 듯 하늘에 대고 공을 높이 올렸다가 받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무섭도록 고요한 침묵 속에서 카게야마가 손으로 공을 쳐내는 소리와 풀숲에 숨은 풀벌레들이 울어대는 가을을 알리는 소리만이 공기 중에 넘실대고 있었다.

  히나타는 물끄러미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익숙한 향기가 났다.

  늘 제가 카게야마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맡았던 그 향기. 축축한 흙냄새. 그것이 이곳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카게야마는 홀로 이런 곳까지 찾아와 연습을 하기 시작했을까?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주시하던 시선을 내려 젖은 풀밭을 바라보았다. 아까 전, 멀리서 봤을 때 다른 곳과는 다르게 사람의 손을 타서 정리된 것 같다고 생각했던 풀밭은 사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까이서 본 풀밭은, 전부 잔뜩 짓눌린 채였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밟아댔던 것처럼.


  “야 히나타, 받아!”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히나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카게야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카게야마의 손에서 떨어진 공이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히나타의 머리 위로 정확하게 떨어졌다. 


  “멍청아! 연습하고 싶다더니 왜 여기까지 와서 딴 생각,”


  씩씩대며 히나타 쪽으로 걸어온 카게야마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히나타는 카게야마를 넘어뜨리고 올라탔다. 카게야마는 이젠 정말 질렸다는 표정으로 히나타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비죽대고 있었다.

  히나타는 이제, 어째서 카게야마에게서 맡는 흙냄새가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흙냄새가 아니었다.

  배구에 대한 카게야마의 애정, 열정, 노력. 그 모든 것들이 배어있는 흙냄새였다. 

  그 냄새가 몸에 밸 때까지 카게야마는 이곳에서 혼자 연습을 하고, 하고, 또 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고등학교, 중학교, 어쩌면 초등학교. 카게야마는 그렇게 이 어두컴컴하고 외로운 곳에서 끝없는 연습을 해왔을 것이다. 그렇게 이곳의 냄새가 배었고, 밴 것은 비단 냄새뿐만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전부 함께 배어있었다. 그것이 바로 카게야마에게서 나는 흙냄새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히나타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카게야마의 흙냄새를 좋아한 게 아니야. 

  카게야마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또 늘 하던 대로 쇄골에 코를 박고서 제가 만족할 때까지 한껏 킁킁대겠지. 

  히나타의 머리가 천천히 카게야마 쪽으로 숙여졌다. 역시나. 카게야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순간 카게야마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히나타의 입술이 카게야마의 입술 위로 내려앉았다. 아, 좋아하는 냄새. 히나타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늘 맡던 목덜미의 냄새보다도 훨씬 짙고 아름다운 향기가 퍼져 나왔다. 히나타는 더 이상 그것을 ‘흙냄새’라는 이름으로 정의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 속에서 여전히 풀벌레는 울어대고 있었다. 시간이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지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눈을 감아버린 카게야마의 얼굴 위로 서서히 흙냄새가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