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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츠키]

팥_ 2014. 8. 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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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게야마는 내게 딱 그런 존재였다. 나 갖기는 싫지만 남 주기는 더 싫은. 그런 내 의견을 들은 카게야마의 애인, 이름은 까먹었지만, 아무튼 안경잡이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그래서요? 얼음이 다 녹아버린 주스를 빨대로 휘저은 안경잡이가 내게 반문했다. 말했잖아, 남 주기는 더 싫다고. 계속해서 애먼 빨대를 괴롭히던 안경잡이의 손이 멈췄다. 우습네요. 한 박자 말을 멈춘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거 미련인가요? 그의 말에 나는 손등에 턱을 괴고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럼 그냥 순순히 인정하세요. 인상을 찌푸린 그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나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뭘? 내 대답에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정확하게는 노려보았다는 쪽이 맞겠지만.


  당신, 카게야마 좋아하고 있잖아. 한참동안 나를 노려보던 안경잡이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는 한가득 경계심이 꽁꽁 들어차있어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런 내 웃음소리에 그가 몸을 움찔거렸다. 나는 웃음을 멈추고 몸을 한껏 뒤로 빼어 푹신한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누가 언제 인정 안 한대? 그가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이 우습게도 훤히 보였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좋아하기에 남 주는 게 싫었겠지. 그리고 동시에 싫어했기에 나 갖는 것이 싫었을 테고. 아주 간단한 이론이었다. 다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더 있을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와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대화하기 위해 만든 자리가 아니었다. 탐색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카게야마가 저 안경잡이와 왜 만나고 있을까에 대한 탐색.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한 번 열심히 해봐, 안경 군. 그가 모르는 사실 하나. 그것 하나로 그에게는 이미 승산이 없었다. 그것 하나로 카게야마의 애인이라는 그의 현 위치가 주는 어드밴티지 정도는 그저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있었다. 안경잡이는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것을 그에게 알려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금세 생각을 관두고 그대로 카페를 빠져나왔다. 


  나는 카게야마를 싫어했지만, 좋아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저 안경잡이는 과연 알까? 카게야마가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그를 탐색했다. 그에게는 전혀 나와 같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동족은 동족을 알아보는 법이라고들 하지. 카게야마가 나를 바라보는 그 시선은 3년 전과 단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너무나도 똑같아서 알아차리지 못할래야 못할 수가 없는 시선이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어? 그것을 깨달은 순간 어마어마한 도취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안경잡이에게서 카게야마를 뺏어오는 일 정도야 가볍지 않을까? 아마 어리고 순진한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그를 쥐고 흔드는 순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과거와 똑같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내 손아귀 안에서 잔뜩 돋아난 가시들에 한껏 고통스러워하다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바닥으로 떨어져 버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절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안락한 보금자리를 제공해준 그 안경잡이의 품에서 제 발로 벗어나 똑같은 고통을 다시 한 번 느끼러 내게 오는 카게야마라니, 몇 번 생각해도 흐뭇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한 기분좋은 생각의 흐름은 순조롭게 마지막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역시 카게야마 토비오를 좋아하고 있었다.


  다만, 좋아하는 만큼 싫어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