쩍, 쩌억, 쩍…. 귓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는 눈을 감는다. 그 정체모를 소리는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그를 괴롭혀오고 있었다. 무언가 끈적끈적한 것이 바닥에 붙었다가 떨어질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 여전히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눈을 감아봤자 오히려 더 선명한 형체를 띄고 고막을 건드려올 뿐이었다. 그는 느리게 손을 들어 제 얼굴에 손바닥을 얹는다. 움푹 패여 핼쑥해진 볼을 몇 번 문지른 그는 다시 바닥으로 손을 내린다. 아, 그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축축한 것이 바닥에 고여 있었는지 섬뜩한 감각이 그의 몸을 파고든다. 그는 바닥에서 손을 떼어낸다. 쩍, 쩌억, 쩍…. 계속해서 저를 괴롭히던 소리가 이번에는 손바닥에서 튀어나온다. 바닥과 떨어지며 흉측한 마찰음을 낸 손을 그는 조심스레 제 눈앞으로 가져온다. 뜨겁고, 끈적끈적한 느낌. 그것은… 눈앞에 손바닥을 가져온 그는 몇 번 눈을 깜빡인다. 손바닥에 전체를 뒤덮은 검붉은 액체가 야릇한 비린내를 풍겼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다시 눈을 깜빡인다. 그 순간, 손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붉은 방울 하나가 그의 얼굴 위로 떨어진다. 그는 다른 손을 들어 그것을 닦아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 역시 거짓이겠거니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섬뜩한 감각도, 야릇한 비린내도, 물컹대는 검붉은 액체도 전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더 이상 사실을 볼 수 없었다. 그는 환상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보는 것이, 듣는 것이, 만지는 것이, 떠올리는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이름마저도 떠올리지 못한다. 물론 떠오르는 이름은 있다. 오이카와 토오루. 그것이 그가 기억하는 제 이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가 환상 속에서 지어낸 이름인지, 정말로 제 이름인지 그는 알 수가 없다. 그저 그러려니 생각할 뿐이다. 그는 여전히 질척이는 액체가 뒤덮고 있는 제 손바닥을 그대로 다시 얼굴 위로 엎는다. 숨이 막혀온다. 구역질이 난다. 그러나 그는 손을 떼지 않는다. 서서히 고통이 사라져간다. 비린내도, 끈적거리는 감촉도 사라져간다. 그제야 그는 깨닫는다. 다 환상이었구나. 그리고 안도한다. 그는 늘 두려워했다. 제 정신이 아닌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몰라서. 환상 속에서 살기 바빠 현실의 저를 돌보지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 그에게도 가끔씩 찾아오는 이가 있었다. 그는 그 사람이 실재하는 사람인지, 혹은 고독에 몸부림치는 제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그 사람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그 사람이 찾아올 때면 토기가 치밀 정도로 감정이 울렁대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람을 볼 때면 저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무언가가 이 모든 것을 박차고 튀어나오는 기분이 든다고 생각한다. 그는 눈을 감고 읊조린다. 제 목소리 같지 않은 걸걸한 목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다. 카게야마 토비오. 그것이 그 사람의 이름이다. 그 사람은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던 것처럼 대한다. ‘오이카와 씨, 먹을 것 좀 사왔어요.’ 태연하게 다가와 말을 걸고, 태연하게 그의 옆에 앉는다. 언제나 어둠과 습기, 각종 괴상한 소리와 괴물들로 가득 찬 그의 방이지만 그 사람이 방에 들어올 때면 전부 어디론가 숨어 튀어나오지 않곤 했다. 그래서 그는 그 사람이 오는 것을 좋아한다. 제가 물리치지 못한 것들을 물리쳐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이카와 씨, 제가 누구라고요?’ 그 사람은 늘 그렇게 물어왔다. 그의 손을 꼭 붙잡고서, 그렇게 물어온다. 그러면 그는 천천히 대답한다. 카게야마 토비오. 그 이름을 뱉어내면 그 사람은 웃으며 그를 안아준다. ‘잘 하고 있어요. 거의 다 온 거예요.’ 무엇을? 무엇을 잘 하고 있는 거지? 그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무언가 이상한 감정이 스멀거리며 마음을 뒤덮는다. 그것은 절대로 좋은 감정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그도 알 수 있다. 기분이 이상해진다. 토기가 치밀고, 눈앞의 모든 것이 붉게 변하며, 숨었던 괴물들이 튀어나온다. 그러면 그의 몸 역시 튀어오른다. 튀어오르고, 또 튀어오르고, 또 튀어오르며 손에 잡히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댄다. 그 사람은 그걸 온몸으로 막아낸다. 저걸 부숴야해. 그 사람을 보며 생각한다. 저걸, 없애야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노가 타오른다. 카게야마 토비오를 죽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친다. 솟구치고, 솟구치고, 솟구친다. 마음을 전부 집어 삼키는 그 욕구에 그는 목이 말라온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그 어떤 것보다도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목을 긁어댄다. 살갗이 전부 까지도록, 손톱 밑에 붉은 피가 고이도록. 그래도 갈증은 가시질 않는다.
최근에는 그 사람이 오질 않는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을 본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쩍, 쩌억, 하는 괴상한 소리가 저를 괴롭히게 된 것이 그 사람이 오지 않게 된 시기와 맞물리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한다. 쩍, 쩍, 쩌억…. 동시에 다시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잠시 소리에 정신을 돌렸다가도 다시 생각에 깊이 잠긴다. 그 사람이 오지 않게 된 것이 꽤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주체하지 못할 감정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오면 더 이상 끔찍스러운 형상들을 보지 않아서 좋았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오지 않게 된 후로 다시 흉물스런 것들이 집안 곳곳에서 고개를 쳐들고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 구역질나는 냄새를 풍기며 꿈틀꿈틀 온 방안을 기어다니고 있다. 지금도. 그는 제 발밑에서 괴상한 소리를 내는 무언가가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쳐다보지 않는다. 그것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제게 달려들 것을 알고 있었다. 쩌억, 쩌억, 쩌어억…. 다시 들려온 소리에 그는 눈동자를 데구르륵 돌렸다. 이크. 한쪽 벽에 핏덩이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혹여 눈이 마주칠까 그는 다시 눈동자를 돌렸다. 도록도록 굴러가는 눈동자는 마치 유리알과도 같은 소리를 낸다.
아. 그는 무언가를 본다. 쩍, 쩌억, 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는 눈을 뗄 수가 없다. 그의 숨이 가빠진다. 그 사람이다. 카게야마 토비오. 온통 온몸에 붉은 액체를 덮어 쓰고 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집안에 있었다니. 그는 놀라워한다. 그러나 다르다. 많이 다르다. 그 사람이 있는데도 갖가지 괴물들이 이 집을 떠나질 않는다. 그는 의아해한다. 그리고 곧 답을 알아낸다. 그것은, 그 사람이…. 쩍, 쩌억…. 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는 소리의 진원지를 알아낸다. 그 사람의 발. 검붉은 액체를 덮어쓴 그 사람의 발. 그 사람의 발이 바닥에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검붉은 액체가 거미줄처럼 늘어나며 소리를 낸다. 쩍, 쩌억, 쩌억, 하고. 그 사람은, 혹은 그것은 점점 더 그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까워진다. 괴상한 소리를 내며. 가까워진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그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더듬는다. 더듬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것이 가까워지는 속도 역시 빨라진다. 그는 가까스로 구역질을 참아내며 바닥을 훑는다. 그리고 바닥에 붙어 기어가던 흉측한 생물과 눈이 마주친다. 그 순간 곳곳에 숨어있던 모든 생물체들이 전부 그를 향해 기어온다. 사각, 사각, 사각사각, 찌익, 찍, 쩍, 쩌억, 쩍… 그는 절망적으로 변한다. 핏덩이들이 그를 향해 기어온다. 잡아먹힌다. 잡아먹힌다. 잡아먹힌다!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 어!
손톱이 헤질 정도로 바닥을 긁어댄다. 핏덩이 하나가 그의 발에 닿는다. 그는 몸부림친다. 하나가 더, 이번에는 그의 팔에 닿는다. 그는 몸부림친다. 쩌억, 쩍. 그것이 코앞에 다가온다. 그는 몸부림친다. 몸부림치던 그의 손 끝에 딱딱하고 차가운 것이 닿는다. 그는 재빠르게 그것을 잡는다. 아아. 그는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참아내며 그토록 제가 찾아대던 그, 작은 주사기를 잡아 든다. 그 마지막 순간을 노려 모든 핏덩이들이 그의 몸에 올라타려 든다. 그는 팔에 주사기를 꽂는다. 아, 그래, 이 느낌. 익숙한, 환상의 파도가 몸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동시에 모든 것이 사라진다. 쩍, 쩌억, 쩌어억…. 그 소리마저도. 아스라이 사라져간다.
모든 것이 사라진 방은 깨끗하다. 딱 하나, 새하얀 얼굴로 구석에 누워있는 그 사람만 빼면.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핏물을 뒤집어 쓴 아까와는 다르게 놀랍도록 평온한 얼굴이다. 그는 천천히 그 사람을 쓸어내린다. 차갑다. 눈, 코, 입, 볼을 차례대로 쓸어내린 그의 손이 그 사람의 목덜미에 닿는다. 하얗다 못해 파란, 보라색에 가까운 그 목에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있다. 그는 그 손자국에 가만히 제 손을 가져다댄다. 들어맞는다. 그의 몸이 천천히 떨려온다. 철퍽, 소리와 함께 그가 그 사람의 위로 쓰러진다. 차가운 그 사람의 몸 위로 뜨거운 것이 흐른다. 그것은 붉지도, 검지도 않다. 투명한 것이 그의 얼굴을 타고 떨어져 그 사람의 위로 흐른다.
미안해. 미안해, 카게야마. 그의 목소리 사이로 어렴풋이 작은 소리가 스치고 지나간다.
쩍, 쩌억, 쩌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