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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키카게] 의문점

팥_ 2014. 7. 18. 03:59





  처음엔 그냥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츠키시마의 눈동자가 힐끗 카게야마를 향했다가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만 잘난 줄 아는 독단적인 코트위의 왕. 그런 주제에 배구 시합에서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해 열을 내는 꼴까지 더더욱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그 독재자의 콧대를 꺾어주고 싶었다. 별다른 뜻은 없었고 그저 제 방식이 틀렸다는 걸 알고, 그래서 시합에 패배하고, 그 때문에 코트에 무너져 충격 받은 얼굴을 하는 게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처럼. 하지만 보란 듯이 카게야마는 저를 이겨 보였다. 그것도 놀라운 방식으로. 그 카게야마가 다른 이에게 맞춰준다? 중학교 3학년, 카게야마의 마지막 경기를 봤던 츠키시마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놀랍게도 카게야마는 차근차근 변해갔다. 츠키시마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그 변화가 아주 흥미로웠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를 따라 시선을 옮겨 다녔다. 거기서 내린 첫 번째 결론은 애초에 성격이 그렇게 막되어먹은 놈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저 못지않게 직설적인 말을 던지는 녀석이긴 했지만 일부러 그런 소리를 자극적으로 던지는 저와는 다르게 단순히 아둔해서 말하는 방법을 몰랐고, 거기에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 지도 몰랐을 뿐이었다. 배구에서는 그렇게 천재소리만 듣고 사는 녀석이 다른 부분, 특히 인간관계나 커뮤니케이션에는 허무할 정도로 멍청이라니. 참 우스운 일이었다. 


  두 번째 결론은 카게야마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 저를 제외한 팀원 전체라는 것이었다. 애초에 이 팀이 히나타를 주축으로 그 독재자를 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시 깨닫게 된 건, 그 변화의 원동력에 츠키시마 저 자신은 전혀 끼어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 팀에서 저 카게야마에게 무슨 존재일까? 두 번째 결론을 내렸을 때 츠키시마에게 찾아온 새로운 의문점이었다. 츠키시마의 눈이 다시 바쁘게 카게야마를 쫓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된 추적에서 내린 결론은 의문의 시작과는 생뚱맞다 싶을 정도로 다소 동떨어진 결론이었다. 그 결론은, 어쩌면 제가 변화한 카게야마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더 이상 카게야마를 쫓는 시선엔 이유가 담겨있지 않았다. 의문이고 뭐고 그런 것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습관처럼 쫓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해진 건, 카게야마를 보는 것이 좋아서 쫓는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한곳에 시선을 둘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카게야마를 힐끗거렸다가, 엄한 창가를 쳐다봤다가, 애먼 신발을 노려봤다가. 카게야마와 단 둘이 있는 상황은 정말로 불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침묵만 흘러 어색하고 갑갑한 것은 둘째치고라도 이렇게 제대로 시선을 둘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학교 전체적으로 진로상담이 진행되는 날이라 다들 늦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하필이면 카게야마와 저, 딱 이렇게 둘만 일찍 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무도 없는 부실의 문이 처음으로 열리고 들어온 얼굴이 카게야마일 줄 알았더라면, 그 후로 장장 삼십분 간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을 것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일찍 오지 않았을 텐데. 츠키시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다시 한 번 시선이 카게야마에게로 붙었다. 카게야마는 지루했는지 이제 벌렁 드러누워 굴러다니는 낡은 배구공을 가지고 허공으로 오버토스를 올리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허공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배구공을 잠시 쳐다보다가 이윽고 누워있는 카게야마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장난처럼 공을 올리고 있어도 확실히 배구공을 만지고 있어서 그런지 카게야마의 얼굴은 꽤 진지한 얼굴이었다. 입매를 굳게 다물고, 미간에 인상을 쓰고서 단 한 번도 공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 광경을 빤히 바라보던 츠키시마는 주객전도가 된 근래의 상황 덕에 까맣게 잊고 있던 의문점 하나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츠키시마는 조금 자리를 옮겨 카게야마의 옆에 가까이 앉았다. 아까보다 더 카게야마의 얼굴이 눈에 가득 차게 들어오자 괜히 더 심장이 팔랑대는 것 같았다.


  “야, 왕님.”


  츠키시마의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한 번 허공으로 높이 공을 올리더니 다시 가볍게 붙잡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츠키시마를 바라보았다. 


  “왜.”


  삐딱한 대답이었다.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너한테 나는 뭐지?”


  별 다른 생각 없이 머릿속에 떠돌던 의문점을 입밖에 내고나서야 츠키시마는 저 물음이 꽤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소름 돋는 대사 같잖아. 속으로 생각한 츠키시마가 바로 카게야마의 얼굴을 살폈으나 이런 쪽에 둔한 탓인지 카게야마는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지, 혹은 티를 내지 않고 있는 건지 가만히 배구공만 끌어안고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는 너는?”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카게야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츠키시마의 생각 내에 전혀 들어있지 않았던 질문이라 츠키시마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언제나 단순하고, 읽기 쉬운 놈이라고 생각했던 카게야마의 표정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츠키시마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심각한 얼굴도, 그렇다고 가벼운 얼굴도 아니었다. 그저 대화를 하고 있을 뿐인 건가. 


  “…처음에는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지.”


  흐음. 살짝 일그러진 카게야마의 얼굴이 무미건조한 감탄사를 뱉어냈다.


  “그럼 지금은?”


  정말이지, 당최 파악할 수가 없는 질문이었다. 츠키시마는 짜증이 난 듯한 표정으로 조금 흘러내려온 안경을 바로 올렸다. 사실은 눈빛을 가리기 위한 동작이었다. 멀쩡한 척을 하고서 초조하게 흔들리고 있을 눈동자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꼴사나운 얼굴일게 뻔했으니까.


  “지금도 당연히 똑같이 재수 없는 놈.”


  그 말에 카게야마는 자세를 살짝 고쳐 다리 위에 올린 배구공에 팔꿈치를 받치고 턱을 괴었다. 일그러졌던 얼굴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변해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표정의 변화에 츠키시마는 순간 사고가 멎는 것 같았다. 알고 있어. 그 얼굴은 분명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카게야마에게서 나올 다음 말이 두려웠다. 정확히는 그 말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취할 행동이 두려운 것이었다. 츠키시마는 제 성격이 그다지 인내심이 좋지 않은 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턱을 괴고서 츠키시마를 오목조목 뜯어보듯 빤히 관찰하는 카게야마의 노골적인 시선에 츠키시마는 그만 카게야마에게서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돌리려고 했는데, 그 찰나를 노리듯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츠키시마는 결국 카게야마에게서 시선을 떼어낼 수 없었다.


  “그것 뿐?”


  그 말을 듣는 순간 츠키시마는 제 안의 무언가가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창문으로는 부실을 쪼아대고 있는 지는 석양의 빛이 들어와 카게야마를 비췄고, 카게야마는 고스란히 그 빛을 받으며 저를 쳐다보고 있었으며, 길게 늘어진 카게야마 한 사람의 그림자가 유난히도 검었고, 부실 밖 복도는 소름 돋게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말라버린 입술을 손으로 한 번 쓰다듬고서 혀를 내밀어 입술을 축였다.


  “아니.”


  더는 생각하지 못하겠다고, 인생에서 몇 없을 그런 결론을 내린 츠키시마가 그대로 카게야마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딪쳤다. 츠키시마의 힘을 못이긴 카게야마가 뒤로 넘어졌다. 휑하니 비어있던 츠키시마의 뒷목에 천천히 카게야마의 팔이 둘러졌다. 이제는 검붉다 싶을 정도로 붉어진 석양의 빛이 여전히 창문 너머로 들어와 부실을 비췄다. 타오르는 붉은 빛의 광경 사이로 두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