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저 왔어요―”
알록달록한 어린이집의 문을 연 오이카와가 신발을 벗으며 큰 소리로 말하자 신발장 옆 구석 벽에서 동그랗고 검은 머리가 빼꼼 튀어나왔다.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신발장 안에 넣은 오이카와가 걸어가 그 튀어나온 작은 머리를 지나치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홱하고 돌아 아이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아이는 조그맣게 딸꾹질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작은 어깨가 눈에 보일정도로 움찔하더니 곧 고개를 돌려 오이카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눈에 띠게 실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 알았어요?”
“거기 숨어도 다 보인다니까, 토비오? 형아 마중 나왔어요?”
“응, 캡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 가득히 지어보였던 실망한 표정은 어디가고 금세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려는 아이의 작은 이마에 오이카와가 잽싸게 아프지 않을 정도로 손가락을 튕겨 아이의 입을 멈추게 했다.
“캡틴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그치만…….”
오이카와의 손가락에 맞은 이마를 작은 손으로 문지르던 아이의 말꼬리가 힘없이 쳐졌다. 오이카와는 그런 아이를 보며 가볍게 웃고는 이마를 문지르는 아이의 손을 잡아 내리고 분홍빛으로 물든 이마에 시원한 입김을 불어주었다. 살짝 울상으로 변했던 아이의 얼굴에 다시 웃음기가 번지자 오이카와는 아이의 겨드랑이 사이에 제 손을 끼워 넣고 구부렸던 다리를 펴며 아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으왓! 아이의 입에서 놀란 비명소리가 튀어나오자 오이카와가 소리 내어 웃으며 아이를 제 어깨에 들쳐 메고는 ‘공 상자’ 라는 글씨가 크게 적힌 상자에 손을 넣었다. 잠시 후, 몇 번 상자를 뒤적거리던 오이카와의 손에 들려 나온 건 알록달록한 배구공이었다.
“오늘은 서브 배울까?”
오이카와의 물음에 어깨에 매달린 카게야마의 고개가 연신 끄덕거렸다.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뜨리며 카게야마를 붙들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신발장으로 향했다.
* * *
오이카와 토오루는 매주 주말마다 이곳 어린이집에 나와 봉사활동을 하는 대학 배구 선수였다. 봉사활동이라고 해봤자 딱 한 아이와 배구를 하고 놀아주는 것뿐이었지만. 시작은 원장님의 가벼운 부탁이었다. 오이카와 역시 초등학교 입학 전,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이 어린이집에서 보냈었다. 원장님의 가정집을 조금 개조해서 만든 시설로 소수의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라 어린이집라고 부르기엔 조금 거창한 곳이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주말까지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부모님보다 어린이집의 원장님과 지낸 시간이 훨씬 많았고, 항상 따뜻하게 저를 대해주셨던 그 기억은 2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오이카와의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안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상쇄하기에 그 따뜻함은 충분히 컸다.
원장님의 부탁은 간단한 것이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아이에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배구를 가르쳐줄 수 있겠냐는 것. 원장님의 말에 따르면 카게야마 역시 어린 날의 저처럼, 혹은 저보다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는 아이라고 했다. 그래서 주말에도 늘 돌봐주고 있는데 요즘은 대부분 주말까지 일하는 부부가 거의 없어서인지 주말까지 어린이집에 나오는 아이는 카게야마 혼자라 홀로 앉아 책을 읽거나 블록을 쌓고 있는 것이 영 쓸쓸해 보여 원장님이 먼저 카게야마에게 물었다고 했다. 토비오, 뭔가 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게 있니? 평소에 별로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던 카게야마라 딱히 대답하지 않겠거니 싶었는데 조금 골똘히 생각하던 카게야마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서. 배구요! 그 목소리에 원장님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 바로 여전히 연락을 이어가고 있는 오이카와였다고 했다.
배구도 그렇지만, 토오루랑 토비오는 비슷한 게 많은 것 같아. 쟤도 영 친구들이랑 잘 못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 토오루는 잘 극복해냈었으니 토비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부탁하는 건데 어떠니?
이어진 원장님의 말에 오이카와는 묻어두었던 옛 기억을 잠시 꺼내야만 했다. 오이카와는 그 어린이집에 다녔던 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캡틴’이라는 별명으로. 그것이 꽤나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대학 배구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지금조차도 오이카와는 동료들에게 캡틴이라 불리는 것을 지극히 꺼려했다. 그것을 동료들은 위계질서를 싫어해서 그런 거라고 저들끼리 추측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순전히 제 과거 때문이었다. 괴롭힘을 당한 이유는 간단했다. 늘 어린이집에 홀로 남아있는 오이카와의 모습을 보고 멋대로 오이카와의 부모님은 안 계신 게 분명하다며 저들끼리 말을 지어낸 아이들이 오이카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편을 나눠 놀기를 좋아했고, 그 때마다 오이카와를 끼운 팀의 아이들은 항상 오이카와를 캡틴 역할로 세웠다. 아이들의 괴롭힘에 위축된 오이카와가 그 역을 제대로 해낼 리가 없었고, 그러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캡틴이 뭐 이래? 엄마 아빠가 없는 애들은 다 이런 거야?’ 라며 오이카와를 놀려대기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기 그지없는 괴롭힘이지만, 어린 아이들의 괴롭힘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카게야마 토비오를 처음 만난 날 카게야마에게 들은 첫 마디가 바로 ‘캡틴?’ 이었다.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더니 그 모습이 무서웠는지 카게야마의 어깨가 급격히 움츠러들었다. 오이카와는 아차, 싶은 마음에 급히 표정을 풀고 카게야마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카게야마에게 물었다.
‘내가 왜 캡틴이야?’
그러자 카게야마는 쭈뼛거리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도록도록 굴리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원장선생님이 형아가 배구 선수인데 주장이라고 하셔서….’
공연히 첫 만남에 아이에게 겁을 준건가 싶어 오이카와는 최대한 상냥한 표정으로 웃으며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건 맞지만 형아는 그 말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냥 이름이나 형이라고 불러줄래?’
카게야마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거렸고, 오이카와는 조금 놀랐던 가슴을 추스르며 카게야마의 볼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이미 오이카와를 캡틴이라 부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었는지 그 후로도 오이카와만 보면 초롱초롱한 눈으로 캡틴이라고 부르고 싶어 했다. 오이카와의 발아래에서 옷자락을 붙들고 올려다보며 ‘캡틴이라고 부르면 안돼요?’ 라고 묻는 카게야마에게 웃으며 ‘안 돼.’ 라고 말을 하면 시무룩한 표정으로 제 발끝을 내려다보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안아드는 것은 이미 일상이 된지 오래였다. 사실은 카게야마에게서 열 번쯤 그 질문을 들었을 때부터 ‘캡틴’ 이라는 단어가 주는 껄끄러움에서 거절하는 마음 반, 거절했을 때 카게야마가 보여주는 반응이 귀여워서 거절하는 마음 반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오는 질문이니 지금까지 대략 삼사십 번쯤 들었을까? 이제는 슬슬 허락해줄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아직은 그 반응이 귀여워 허락해주는 것을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다.
본래 카게야마에게 배구를 가르쳐주기로 한 것은 일주일에 한 번, 두세 시간 정도였지만 이제는 거의 주말 내내 카게야마를 돌봐주고 있었다. 겸사겸사 원장님의 일도 돕고, 배구 말고도 카게야마와 다른 놀이를 찾아 함께 놀아주는 것이 꽤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어린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던 저를 도와준 게 원장님이었다면, 카게야마에게는 그것이 제가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처음 왔을 때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제 눈치를 살피던 것과는 다르게 점점 얼굴에 즐거운 웃음이 늘어가는 카게야마를 보는 것이 최근 오이카와의 행복 중 하나였다.
* * *
“미안, 미안, 늦었… 자네?”
모래투성이가 된 카게야마를 씻기고 밖으로 나와 잠시 원장님의 일을 봐주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던 것이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 오이카와는 부랴부랴 카게야마에게로 향했다. 뭔가 그림 연습이라도 하려고 했던 건지 카게야마는 작은 연필을 손에 꼭 쥐고서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이 들어 있었다. 오이카와는 웃으며 카게야마의 옆에 앉았다. 그림을 그리고는 싶었지만 종이를 찾진 못했던 건지 책상 위에 삐뚤빼뚤한 낙서가 몇 개 그려져 있었다. 공과 네트, 그리고 두 사람이 웃고 있는 얼굴로 점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와 카게야마인 듯 했다. 오이카와가 흐뭇하게 웃으며 카게야마를 깨워 다른 곳으로 옮겨 재우려는 찰나, 낙서 밑에 역시 삐뚤게 적힌 글씨가 오이카와의 눈에 들어왔다.
‘오이카와 캡틴이랑 나’
기어코 이놈의 캡틴 소리는.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깨지 않게 소리를 죽여 웃으며 조심스럽게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요하고 일정한 숨소리가 새록새록 카게야마에게서 새어나왔다. 입 벌리고 자면 안 좋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여 카게야마의 통통한 한쪽 볼에 가볍게 뽀뽀를 한 후 손에 쥐어진 연필을 빼서 잡아 책상에 무언가를 적었다. 삐뚤빼뚤한 글씨 옆에 정갈한 글씨가 새롭게 적혀졌다. 연필을 내려놓은 오이카와가 담요를 가져와 카게야마의 등에 덮어주곤 몇 번 등을 토닥였다. 잘 자, 토비오.
‘토비오쨩만의 오이카와 캡틴이랑 나’
#하이큐_글_전력_60분
주제 ; 책상 위의 낙서, 캡틴
오이카와 생일 미리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