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퍄님이 주신 키워드 '손톱, 양말, 가방'으로 적었던 140자 단문 '늘 정갈하게 다듬던 손톱이 내 등에 파고드는 기분은 참 색다른 것이었다. 나는 카게야마의 입에 물려놓은 양말을 더욱 깊숙히 밀어넣으며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미처 가방조차 벗지 못한 후배가 내 밑에서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원망스런 눈을 하고서.'의 앞이야기.
* 시라카게는 시라부 이름이 나오기 전에 적었던 글입니다.. 그래서 글에 이름이 없어요 ^^;
* 카게야마 in 시라토리자와
카게야마는 늘 연습 전후로 손톱을 다듬었다. 누구보다 먼저 와서, 그리고 누구보다 늦게 남아서 다듬곤 했다.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행위처럼 보였다. 늘 같은 손톱처럼 보이는데도 카게야마는 미간에 잔뜩 주름을 만들곤 진지한 얼굴로 섬세하게 손톱을 다듬었다. 카게야마의 손톱은 언제나 살에 파묻힐 정도로 바싹 깎여 있었다. “아프지 않아?” 언젠가 내가 물었었다. 내 말에 카게야마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손톱 말이야.” 나는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아, 카게야마가 작은 소리와 함께 제 손톱을 내려다보았다. “잘 모르겠어요.” 카게야마는 그렇게 대답하며 손톱을 만지작거리다가 더 할 말이 생각났는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프지만 몇 년 동안 적응이 돼서 못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카게야마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렸다. 저 손톱에 등을 긁히기라도 하면 꽤 자국이 오래 가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나는 어느 날부턴가 카게야마가 손톱을 다듬고 있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게 되었다. 카게야마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어 체육관에 왔고, 카게야마가 마지막까지 남아 정리하는 것을 기다리며 홀로 연습을 했다. 처음 카게야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에 변명이라도 하듯 괜히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연습이 부족한 것 같아서.” 그런 내 말에 카게야마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존경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의 얼굴만으로 그가 생각하고 있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역시 강호교의 정규 세터는 다르다느니, 자신도 더 열심히 해서 얼른 정규 세터가 되고 싶다느니 하는 말들일 게 뻔했다. 나는 들려오는 카게야마의 생각들 속에서 애써 검은 마음을 한 쪽에 숨기고 배구공을 만지작거렸다.
연습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카게야마의 그 의식은 어느새 내 일상의 일부가 되어갔다. 나는 멍하니 서서 배구공을 만지작거리며 카게야마에게 시선을 두었다.
카게야마는 체육관 구석에 앉아 손톱을 다듬었다. 학교에서 지급한 연습용 반바지를 입고서, 발목에는 덜렁이는 서포터를 걸고,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벌린 채로 양쪽 무릎에 팔을 올려 하나하나 손톱을 다듬는 모습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익숙해져 마치 체육관의 일부가 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그 자연스러운 모습을 느리게 훑어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다.
운동하는 남자 고등학생 치고는 얇은 발목을 철저하게 방어하듯 감싼 서포터가 어쩐지 야하다고 생각했다. 1군 부원들 중 서포터를 차는 사람은 리베로를 제외하곤 카게야마가 유일했다. 자연스럽게 발목에 걸쳐두었던 서포터를 다시 신기 위해 손으로 잡아 끌어올리는 광경이 마치 스타킹을 신는 여자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서포터가 걸린 발목을 지나 위로 올라가면 훤히 드러난 허벅지가 있었다. 연습용 반바지는 경기복보다 조금 더 짧은 길이였다. 그런 길이의 바지를 입고 카게야마가 앉은 자세를 취하면 자연스레 허벅지 깊은 곳이 속속들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나는 평소보다 짧은 치마를 입고 온 선생님의 치마 속을 훔쳐보려 애를 쓰는 남학생이 된 기분으로 연신 카게야마를 힐끗거렸다. 단단하고 두꺼운 다리를 가진 삼학년 선배들과 달리 카게야마는 조금 더 부드럽고 얇은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저 허벅지를 쓰다듬는 상상을 했다. 살이 별로 없어 주무르기엔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느릿한 손길로 천천히 안쪽 허벅지를 쓰다듬고,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더 깊은 곳을 파고드는 상상을 한다. 운동부 남자 후배를 데리고 야릇한 상상들만 하는 내가 우습기도 했지만 그것들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되돌리기엔 시커먼 마음이 나를 전부 먹어치운지 오래였다. 더 이상 나는 자책이란 것을 몰랐다. 손톱을 다듬느라 살짝 꺾인 손목의 뼈가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것을 보며, 세터라는 포지션에 알맞게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보며, 고개를 숙인 탓에 티셔츠 안쪽으로 살짝 보이는 쇄골과 가슴을 보며, 나는 시커먼 마음이 내 모든 것을 먹어치우다 못해 더욱 크기를 늘려 카게야마에게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카게야마는 제 행위에 집중한 탓에 내가 무엇을 하는 지도 몰랐다. 나는 조금 더 여유롭게 그를 하나하나 뜯어 희롱했다. 다시금 상상을 이어나갔다. 그의 손가락이 내 것을 쥐고 흔드는 상상을, 손목뼈에 입을 맞추고 혀를 내어 간지럽히는 상상을, 저 바짝 깎인 손톱이 내 등을 파고드는 상상을. 쏟아지는 상상들 속에서 나는 천천히 카게야마를 구석구석 음미하고, 희롱하고, 나를 가득 채운 욕망들을 전부 그 안에 쏟아냈다.
그러나 그 진득한 희롱의 상상들 후에 남는 것은 결국 해소되지 못하고 오히려 보란 듯이 더욱 커져버린 갈증들뿐이었다. 결국은 악순환이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벗어나질 못했다.
“선배.”
검고 끈적끈적한 덩어리 속에서 나를 끄집어낸 것은 카게야마의 목소리였다. 우두커니 배구공을 들고 서 있던 내 앞에 다가온 카게야마가 나를 불렀다. 나는 제대로 초점이 돌아오지 않은 눈으로 느리게 카게야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 가세요?” 카게야마가 물었다. 그래, 너도 익숙해졌구나. 손톱을 다듬고 나와 함께 체육관을 나서던 일상이 그도 이제 익숙해졌다는 게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짧은 전율과 함께 미약한 쾌감이 전신을 관통했다. “…가야지.” 나는 작게 대답했다.
나는 느리게 옷을 갈아입으며 내 뒤에 서서 옷을 갈아입는 카게야마를 흘낏거렸다. 내 라커는 카게야마의 라커와 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있어서 옷을 갈아입는 카게야마를 들키지 않고 훔쳐보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물론 바로 옆에 있었다 하더라도 카게야마는 아마 내가 저를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그리 썩 눈치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티셔츠를 벗은 카게야마는 곧장 다른 옷으로 갈아입질 않고 무슨 연락이 온 건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천천히 그의 등을 훑을 수 있었다. 카게야마의 몸은 선이 굵은 편은 아니었다. 운동을 많이 한 탓에 그래도 적당히 벌어져 여자들이 선호할 만한 몸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노력을 거듭해 근육을 늘렸기 때문이지 태초의 선이 두꺼운 덕분은 아니었다. 보기 좋게 잡힌 자잘한 근육들과, 남자다운 어깨에 비해 마른 허리, 도드라진 어깨뼈와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사이의 움푹 팬 곳. 나는 다시금 넘쳐흐르는 검고 뜨거운 욕망을 느끼며 혀를 내어 입술을 핥았다. 아무런 흉터조차 없는 저 등에 내 흔적이 새겨진다면 얼마나 짜릿할지, 혀를 세워 척추를 따라 핥아 내렸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전신이 뜨거워져왔다. 하체에도, 머리에도 열이 올라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저 등에 코를 박고 한껏 숨을 들이쉬어 진한 향기를 마시고 싶다고, 흰 피부라곤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곳에 잇자국을 남겨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게 주먹을 쥐었다. 한계라고 생각한 순간, 카게야마가 휴대전화를 닫고는 티셔츠를 꿰어 입었다.
날이 제법 더워진 탓에 카게야마는 바지를 갈아입지 않고 가려는 생각인지 연습용 바지를 입은 채로 라커에서 가방을 꺼내고 문을 닫았다. 내심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슬슬 나도 마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티셔츠를 벗고 있는데 가방에서 운동화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은 후, 다시 어깨에 가방을 메고 배구화를 벗던 카게야마가 잠시 행동을 멈췄다. 아마도 신발을 벗으며 양말이 반쯤 벗겨진 듯했다. 나는 티셔츠를 벗던 것을 멈추고 도로 입어버리곤 물끄러미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인상을 쓴 카게야마는 느리게 허리를 숙이고 벗겨진 양말을 다시 신기 위해 발꿈치를 들었다.
아, 나는 침을 삼켰다. 깊게 허리를 숙인 탓에 짧은 바지 밑으로 허벅지 전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한쪽만 들린 발꿈치 덕에 더욱 묘한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래, 마치 성인 잡지에서 연출인 듯 아닌 듯한 컨셉으로 촬영한 화보를 보는 기분이기도 했다. 진작 뜨거워진 뇌는 더 이상 이성에 의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집어 삼킨 그 시커먼 덩어리가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나가는 걸 느꼈다. 돌이킬 수 없고, 후회할 수조차 없다. 이젠 아예 내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그것은 끔찍하게 흘러 넘쳐 라커룸의 바닥을 가득 메우고 카게야마를 향해 끈적거리는 손을 뻗고 있었다.
“…선배?”
그 목소리는 다시 한 번 더 나를 깨웠다. 카게야마는 허리를 숙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카게야마의 엉덩이 부근에 바싹 붙어 서있었다. 옷도 갈아입다 만 상태로, 그렇게 바싹 붙어 서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게야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 나를 죄고 있던 검고 끈적끈적한 덩어리가 터져버린 것을 느꼈다. 아까 전, 카게야마가 나를 그 속에서 꺼냈던 때와는 다르다. 이건, 한계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 기어코 터져버린 상황이었다. 산산조각나 이리저리로 흩어져버린 욕망은 더는 주워 담을 수 없다. 흩뿌려진 욕망에 점칠된 나는 뜨겁고, 탐욕스러웠다. “선배,” 다시 한 번 카게야마가 나를 불렀다. 그래, 이 목소리였다. 스위치를 누르는 목소리.
나는 그대로 카게야마의 머리카락을 쥐고 일으켰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비명이 들렸다. 나는 늘 상상했다. 너의 바싹 깎인 손톱이 내 등을 파고드는 상상을, 너의 허벅지를 쓰다듬는 상상을, 온몸에 내 잇자국을 새기는 상상을, 네가 내 밑에서 발버둥 치며 울고 있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상상들을 실현시킬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욕망에게 잡아먹힌 가련한 인간이 아닌 그저 하나의 욕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