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는 한숨을 내쉬며 제 팔을 끈덕지게 붙잡아 오는 과 동기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스테이지도 안 나가게? 동기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카게야마에게 되물었다. 카게야마는 붙잡힌 팔을 돌려 빼보려고 했으나 오히려 점점 더 팔을 잡아오는 힘이 강해지는 탓에 결국 팔을 빼내는 것을 포기하였다. 애들은 벌써 갔는데 우리만 뭐야, 빨리 가자, 응? 카게야마는 짜증스런 얼굴로 스테이지를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답답할 정도로 사람이 가득 찬 무대에서 서로의 사이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붙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대체 왜 저런 곳에 사서 들어가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도 오늘 함께 모인 동기들의 물살에 휩쓸려 반강제적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고, 일단 들어온 이상 어쩔 수 없으니 얌전히 자리에 앉아 혼자 안주나 축내고 있으려 했는데 저 문제의 동기가 계속해서 끈질기게 카게야마를 졸라대고 있는 것이었다.
“갈 거면 너 혼자 가면 되잖아.”
“혼자 가는 게 무슨 재미냐!”
어차피 내려가면 다 따로 따로 흩어져 혼자서 놀게 될 거면서. 카게야마는 꿍한 표정을 지어보았지만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안 오고 뭐 해! 자리를 잡고 술과 안주를 시키자마자 신이 나서 스테이지로 뛰어갔던 동기들 중 한 명이 제 쪽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카게야마 데리고 갈게! 그를 향해 따라 소리를 지른 동기가 다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고, 그 눈에 한가득 담긴 처절한 애처로움에 결국 카게야마는 깊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게야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 동기는 언제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고 거의 뛰다시피 스테이지 쪽으로 향했다. 카게야마도 왔어! 그의 목소리에 다른 동기들이 놀리듯 대답하는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뭐야, 결국 올 거면서 빼기는. 시끄러워, 스즈키. 카게야마는 툴툴대며 대답했다. 그러나 요란한 음악 소리 때문에 카게야마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일단 따라가서 적당히 서 있다가 자기들끼리 신나게 논다 싶으면 다시 빠져나오면 되겠지. 그 때는 그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야, 쟤 좀 봐.”
지루한 눈으로 빨대를 입에 물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보던 보쿠토는 쿠로오의 목소리에 곧장 쿠로오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 보쿠토는 스테이지 쪽을 향해 목을 쭉 뻗은 채로 쿠로오가 가리킨 이를 찾기 위해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저기 검은 머리 있잖아, 딱 봐도 얼떨결에 끌려 나온 것처럼 보이는 애. 쿠로오의 설명이 조금 더 붙고 나서야 보쿠토는 아, 하고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확실히 딱 봐도 이곳의 분위기와 많이 이질적인 남자가 있었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부비적거리며 인파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우두커니 서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기 바쁜 남자. 전혀 눈에 띄지 않을 법한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잔뜩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니 오히려 더 눈에 잘 보이는 것도 같았다. 스테이지와의 거리가 조금 있었던 지라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을 온몸에 휘감고 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귀엽지?”
“귀엽네.”
이어진 쿠로오의 물음에 보쿠토는 입에 물었던 빨대를 손으로 잡아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쿠로오는 턱을 괴고 한쪽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몇 번이고 계속해서 사람들 틈을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써보는 듯했지만 다시금 제 쪽으로 밀려오는 인파에 결국 더 깊은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렇게 뻣뻣하게 서있으니까 당연히 못나오지. 쿠로오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도와주게? 보쿠토는 남자를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쿠로오를 향해 돌렸다.
“그럼. 너랑 내가 도와줘야지.”
쿠로오는 보쿠토를 바라보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이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절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누군가가 억지로 저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지시라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곳까지 자신을 끌고 왔던 동기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흩어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카게야마만이 홀로 이곳에 떨어져 거칠게 몸을 흔들어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어떻게든 빠져나가보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자꾸만 제 앞으로 다가와 찰싹 달라붙어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반쯤 벗어젖힌 여자들을 밀어내는 것도 지긋지긋했고, 체격 좋은 남자들이 여기저기서 어깨로 부딪쳐 오고 괜히 밀어대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또 시작이네. 카게야마는 뒤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몸으로 충분히 느껴지는 좋은 체격의 남자가 제 뒤에 바싹 붙어 저를 밀어대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내쉬며 사람들 사이의 좁은 틈을 파고들어 남자를 떨쳐내려 했다. 보통은 이 정도로 몸을 움직이고 나면 사라져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나 몸을 비틀어대며 자리를 피했는데 제 뒤에 따라붙은 남자는 여전히 굳건하게 서서 제 등에 바싹 몸을 붙이고 있었다. 아, 진짜. 카게야마는 어떻게 생긴 놈인지 얼굴이라도 보자 싶어 고개를 돌려보려 했으나 워낙 남자가 가깝게 붙어있는 탓에 얼굴을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저보다 약간 더 큰 키에 훨씬 좋은 체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리고 카게야마가 다시 한 번 남자를 피해 움직이려는 순간, 뭔가 조금 이상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카게야마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제 엉덩이 쪽에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은 역시 남자의 그것이 분명했다. 키가 180cm에 달하는 자신을 여자로 착각했을 리는 없고, 어쩌면 이 남자도 인파의 물결에 휩쓸려서 어쩔 수 없이 제게 붙어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제가 어떻게 자세를 바꾸건 꼭 붙어서 따라오는 것을 보았을 때 후자 역시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점점… 남자의 움직임은 노골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묵직하고 딱딱한 것이 엉덩이를 찔러대고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남자는 이제 엉덩이 골에 노골적인 몸짓으로 그것을 부벼대고 있었다. 위 아래로 느릿하게 비비는가 하면 마치 성관계를 하는 것처럼 앞뒤로 움직이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음 같아선 뒤로 발길질을 하며 욕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여긴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곳이 아니었다. 아무도 제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게 뻔했고, 주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제가 비정상으로 취급받을 것이 뻔했다. 카게야마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나 할 것 없이 야릇한 몸놀림으로 서로 몸을 비비적대고 있는 광경이 흔하게 펼쳐져 있었다. 마치 지금 제 뒤의 남자처럼.
그래도 역시 이건 아니지. 카게야마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피며 남자를 떨쳐내고 도망칠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약간의 틈이 있는 곳을 발견한 카게야마가 급하게 그곳을 향해 몸을 움직이려는데 이번에는 저보다 훨씬 키가 큰 남자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 제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는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들었고 그 덕에 카게야마는 앞으로 전진하기는커녕 남자에게 밀려 아까 전보다 더 뒤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자 뒤에 닿아오는 그 불쾌한 감각이 더욱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방금 전의 그 뒷걸음질 때문에 이제는 아예 남자의 성기가 엉덩이 사이에 파묻히다시피 들어가 있었다. 그러자 남자는 카게야마가 제게 몸을 먼저 부벼온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한 건지 조금 전보다 더 과격한 몸짓으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자의 성기가 뒤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앞으로 들어와 엉덩이사이를 찔렀다 하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깨물며 어떻게든 몸을 앞으로 빼내려고 했지만 조금 전 제 진로를 가로막았던 그 키 큰 남자가 더욱 저를 밀어 붙이고 있어 카게야마는 두 남자 사이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 저기요! 결국 카게야마가 용기를 짜내어 제 앞을 가로막은 키 큰 남자에게 목소리를 내어 보았으나 음악 소리에 묻히고 만 건지 남자는 여전히 저를 밀어대었다. 결국 카게야마는 두 남자 사이에 꼼짝없이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어느 정도로 밀착한 상태였느냐면, 뒤에 선 남자는 이제 허리를 움직일 공간이 없는 건지 엉덩이 사이로 깊숙하게 밀어 넣은 것을 더 이상 앞뒤로 움직이지 않고 느릿하게 돌려대기만 하는 상황이었고, 앞에 선 남자 역시 한껏 카게야마를 밀어대고 있어 카게야마는 그의 어깨 위로 간신히 얼굴만 내밀고 있는 상태였다.
도저히 안 되겠어. 뒤에 선 남자가 주는 불쾌한 감각도 감각이지만, 이러다간 질식해서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앞에 선 남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던 카게야마는 그대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뻣뻣하게 굳고 말았다.
앞의 남자가 제 어깨를 붙잡고서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 아래를 부딪쳐왔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나 카게야마를 뒤로 밀어붙인 쿠로오를 보며 보쿠토는 슬쩍 손을 들어 엄지를 치켜세웠다. 보쿠토가 한 번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카게야마는 불쌍할 정도로 몸을 움찔대고 있었다. 보쿠토는 웃으며 카게야마의 엉덩이 사이에 제 성기를 끼워 넣고 느릿하게 허리를 돌렸다. 슬슬 아래쪽이 뻐근해져 당장이라도 지퍼를 내려 성기를 꺼내 이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를 실컷 괴롭혀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흣, 보쿠토는 이 시끄러운 공간 속에서 아주 작은 신음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카게야마가 조금 전보다 더욱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서 떨고 있었다. 보쿠토는 고개를 들어 거의 제 바로 앞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는 쿠로오와 눈을 마주했다. 동시에 쿠로오가 한쪽 입꼬리만을 올려 그 특유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쿠로오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 제 아래를 카게야마에게 천천히 비비적대고 있었다. 그 자극에 카게야마 역시 반 강제적으로 슬슬 성기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보쿠토가 뒤에서 준 자극이 낯설고 불쾌한 것이었다면, 앞에서 부딪쳐오는 쿠로오의 자극은 익숙하고도 평범한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카게야마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뒤에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의 성기가 제 엉덩이 사이를 찔러대고 있었고, 앞에서는 웬 또 다른 남자가 자신의 것을 제 아래에 끈적끈적하게 부비적거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밀쳐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 원초적인 자극은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꾹 깨물고서 고개를 숙였다.
“입술 깨무는 거 습관이야? 별로 안 좋은데.”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조금 고개를 뒤로 뺀 쿠로오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카게야마는 뭐라 항변이라도 하려는 듯 분한 얼굴로 입술을 떼려 했으나 이번에는 뒤에서 보쿠토가 다시 허리를 쳐올려 왔다. 읏, 카게야마는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래, 키스하는데 다 터진 입술은 별로잖아.”
이번에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카게야마는 흠칫 몸을 떨며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또 앞이었다. 쿠로오의 얼굴이 카게야마의 얼굴 바로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히 웃음을 걸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알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 넘쳤다. 카게야마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하려고 했다.
“응, 나는 부드러운 입술이 좋아.”
쿠로오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뒤에서 보쿠토가 대답했다. 이 사람들, 서로 아는 사이였어? 카게야마는 점점 거대해지는 불안감이 저를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뒷걸음질을 칠 수도, 앞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다, 당신들이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카게야마는 도마 위에 올라온 물고기가 한 번 펄떡여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분명 부질없는 일일 테지만.
“무슨 상관이냐니.”
쿠로오가 섭섭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우리가 키스할 거니까 상관있지!”
이번에는 보쿠토의 경쾌한 목소리였다. 뭐라고요? 카게야마는 그렇게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갑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감각에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따끔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쿠로오는 마치 주사를 놓는 간호사와 비슷한 말투로 카게야마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간호사는커녕 새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의 표정과 비슷한 그것이었다. 어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생각에 들뜸과 설렘으로 가득 찬 그런 표정. 그리고 카게야마는 그 표정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입술은 마음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몸도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모든 힘이 전부 빠져나가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휘청이는 상태가 되었다. 어이쿠, 약빨 잘 듣네. 쿠로오가 그렇게 말하며 무너져 내리는 카게야마의 몸을 들어 올려 보쿠토에게 기대게 만들었다. 카게야마는 그런 쿠로오의 손길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미 몸은 말을 듣지 않는 상태였다. 묘한 열기, 나른함과 함께 원초적인 공포가 찾아왔다.
“사진 찍게?”
흐릿한 의식 사이로 보쿠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로오는 왼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붙여 오케이 표시를 만들어 보이고는 오른손으로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어때? 괜찮아? 카게야마의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 보쿠토가 들뜬 목소리로 카게야마의 어깨에 제 턱을 괴고 물었다. 어, 완전. 쿠로오가 실실 웃으며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으려고 자세를 잡더니 곧 다시 손을 내렸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휴대전화를 들지 않은 손을 들어 카게야마의 턱과 볼을 한 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그러자 이미 전신의 힘이 빠져버린 카게야마의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카게야마는 멍한 눈빛으로 쿠로오를 바라보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어떻게 해서든 도망쳐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쿠토에게 기대 쿠로오가 만지는 대로 움직이고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쿠로오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세게 볼을 누르더니 벌어진 입 안으로 그대로 손가락 두어 개를 넣어 뜨겁게 달아오른 카게야마의 혀를 꾸욱 눌렀다. 몰캉몰캉한 감각이 고스란히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쿠로오는 이제야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그 상태 그대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쿠로오가 단단히 입을 벌리게 해놓고 손가락까지 넣어 놓은 탓에 곧 카게야마의 입가로 침이 흘렀다. 쿠로오의 손가락은 이미 흥건하게 침에 적셔진 후였다. 쿠로오는 살살 손가락을 움직였다. 쿵쾅대는 음악소리가 가득한 이곳에서 질척한 소리가 유독 생생하게 들려왔다.
“보쿠토, 브이라도 좀 해봐.”
“응! 얘도 시켜줄까?”
보쿠토는 한쪽 손으론 제 눈가 가까이에 브이를 만들고, 다른 손으로는 카게야마의 손을 들어 브이 모양을 만들어 그의 얼굴 옆에 가져다 댔다. 카게야마는 붉어진 얼굴로 눈물이 고인 눈을 간신히 반쯤 뜬 채 보쿠토의 손에 이끌려 브이를 하고 있는 모양으로, 보쿠토는 그런 카게야마의 어깨에 제 턱을 괴고 환하게 웃으며 역시 브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 좋아. 딱이야. 그렇게 말한 쿠로오는 웃으며 카메라 어플을 실행시켰다. 하나, 둘, 셋— 쿠로오의 목소리와 함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카게야마는 거의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그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너무 무서워하지 마, 어차피 너 여기 나가고 싶어 하는 거 같던데.”
쿠로오의 목소리였다. 카게야마는 눈을 감았다.
“그래, 우리가 도와주러 온 거야. 다시 눈 뜨면 여기서 나간 후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카게야마의 몸이 보쿠토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려는 것을 가까스로 보쿠토가 그의 겨드랑이 사이에 제 팔을 끼워 붙잡으며 유쾌한 목소리로 쿠로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럼, 도와주려는 거야. 뭐 아주 약간의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카게야마가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카게야마는 그 뒷말을 듣지 못하고 결국 의식의 끈을 놓아주었다. 암흑 속으로 모든 것이 멀어져갔다.
“눈을 떴을 때 집이 아니라 호텔일 거라는 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