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네가 말했다.
좋아해, 아키라.
11살. 네가 말했다.
좋아해, 쿠니미.
16살. 내가 말했다.
좋아해, 카게야마.
너는 말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고 우리 집에 맡겨져 자랐던 카게야마는 동갑인 나를 유독 의지하고 따랐었다. 어린 카게야마는 겁이 많은 편이었다. 정이 많고 따스했던 우리 부모님조차도 낯선 어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말을 나누지 못하고 피하기 바빴던 카게야마가 유일하게 말상대를 하는 것이 바로 나였다. 어렸던 나는—물론 지금도— 딱히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카게야마는 나를 붙들고 사소한 이야기를 종알댔고 잠자리에 들 때 역시 나를 꼭 끌어안고 자곤 했다. 나는 작은 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고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뱉으며 잠든 카게야마의 얼굴을 보며, 그보다 조금 더 천천히 잠자리에 들곤 했다. 두 눈을 곱게 감은 채로 잠든 카게야마의 얼굴이 언제나 내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곤 했다.
어린 나는 카게야마를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면 조금 귀찮긴 해도 어쨌든 친한 친구라는 정도로 생각했던 듯했다. 어릴 때부터 귀찮은 것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내가 그래도 카게야마만은 꼬박꼬박 챙겨 다녔던 것이 그 증거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겁이 많은 성격에 비해 활동적이던 카게야마를 위해 읽던 책을 덮고 나가 뛰어 놀았고, 또래보다 글씨를 읽는 것이 서툴던 카게야마에게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나보다 많은 밥을 먹는 탓에 늘 늦게까지 식탁에 앉아있던 카게야마를 기다렸다가 함께 학교에 가고, 낯을 많이 가리던 카게야마가 혹시 점심을 혼자 먹을까 싶어 먼저 반에 찾아가 함께 점심을 먹고, 가방을 챙기는 것이 느렸던 카게야마를 기다려 함께 하교를 하는 것이 그 시절의 내 일상이었다. 카게야마는 그 때 마다 수줍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뱉어내곤 했다. 그리고 수시로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카게야마의 목소리를 귀에 담고, 또 흘려보냈던 시절이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13살,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이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었다. 카게야마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싫거나, 귀찮다거나, 짜증이 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어린 나는 그 감정을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몰랐다. 같이 있으면 기묘하게 심장이 쿵쿵대었고 분명 평소와 같은 카게야마의 웃는 얼굴을 이상하게 마주볼 수가 없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어 카게야마가 언제나처럼 내 품에 안겨올 때 역시 그랬다. 카게야마의 손이 내 어깨를 쥐고 있는 것을 느끼며, 감긴 눈꺼풀을 보며, 작게 새어나오는 숨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쿵쿵대었다.
나는 두려워졌다.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싶었다. 심장이 쿵쿵대는 것이 카게야마에게 새어나갈까 봐, 카게야마가 그로 인해 나를 전염병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볼까봐, 애초에 이 병이 카게야마 때문에 생긴 것일까 봐 나는 두려워졌다. 나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카게야마와 한 방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따스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간곡한 아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는지, 혹은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카게야마에게도 따로 방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해서인지 그 날 부로 카게야마에게 새로운 방을 내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카게야마와 함께 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는 것도 우리 반은 등교 시간이 더 빠르다는 이상한 핑계를 대고선 카게야마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집을 나섰고, 집에 돌아오는 길 역시 다른 친구들과 볼 일이 있다며 카게야마를 먼저 집으로 돌려보냈다. 카게야마는 그 때마다 서운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목소리로 ‘알겠어, 쿠니미.’ 하고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검은 눈동자에, 그 작은 목소리에 어쩐지 또 다시 심장이 쿵쿵댈 것만 같아 서둘러 그 눈을 피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저녁 시간, 그 뿐이었다. 사실 나는 그것마저도 따로 하길 바랐지만 어머니께서 저녁만은 가족이 다 같이 먹는 것을 원하셨기에 어쩔 수 없이 카게야마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해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심장이 쿵쿵대었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15살. 더 이상 카게야마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가끔씩 방문을 두드려 ‘쿠니미, 이거 어머니가 전해 주라셔.’ 하는 것을 빼고는. 그러고 보면 카게야마는 언제부터 나를 쿠니미라고 부르게 됐을까. 우리 집에 막 왔을 때의 카게야마는 늘 나를 ‘아키라’라고 부르곤 했다. 고마워, 아키라. 좋아해, 아키라. 그렇게 말하던 목소리가 선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카게야마는 언제나 아키라라고 부르며 내 뒤에 서서 옷자락을 잡아오곤 했었다. 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있지 않아 카게야마는 나를 쿠니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중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을 수 없었다. 여전히 나는 카게야마를 보면 심장이 쿵쿵대었고, 카게야마와는 이제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서글펐지만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대화를 하지 않으면 심장이 쿵쿵댈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15살 여름, 나는 깨닫고 말았다. 카게야마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쿵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급격하게 두려워졌다. 잠도 이룰 수 없었다. 이대로 심장이 터져 죽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나는 하루에 채 두 시간도 잠들지 못하는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나갔고, 어머니는 나날이 안색이 검게 변해가는 나를 걱정스러워하셨다. 원래부터 밥을 잘 먹지 않는 나였지만 그 시절에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의 반도 먹지 못했고, 어머니는 그런 내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는 거냐 묻곤 하셨다. 그리고 그럴 때면 카게야마는 슬쩍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아주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모든 감각이 카게야마에게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초능력자라도 된 것처럼 카게야마의 움직임이 극대화되어 보였고, 느리고 자세하게 보였으며, 그의 목소리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고, 그의 향기 역시 멀리서부터 맡을 수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죽음의 징조라고 여겼다.
여름의 끝자락쯤에 어머니는 결국 나를 따로 안방으로 불러내셨다. 나는 닫힌 문 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카게야마의 발소리를 들었다. 나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털어 놓으리라 결심했다. 아들이 곧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아버린 어머니의 절망적인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더는 숨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을 더 세게 쥐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말보다 눈물이 앞섰다.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 손을, 다리를, 바닥을 적셨고 어머니는 다 자란 후 처음으로 보인 내 눈물에 많이 당황하신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눈물을 그치려고 노력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끝없이 눈물을 쏟아내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카게야마에 관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서. 몇 년째 지속된 이유모를 심장의 쿵쿵거림과, 감각의 극대화, 그런 것들을 이야기했다. 카게야마라고 지칭하진 않았다. 혹시나 어머니께서 카게야마가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카게야마를 내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치 힘겹게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처럼 어머니의 앞에서 오랜 시간동안 눈물과 함께 숨겨왔던 비밀들을 토해내었다.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내 어깨를 감싸고, 등을 두드리며 내 이야기들을 들어주셨다. 나는 긴 시간 끝에 이야기를 마친 후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어머니를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절망스러운 표정도, 걱정스러운 표정도 아닌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어머니는 작은 입술을 열어 고운 목소리를 뱉어내셨다.
우리 아키라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구나.
가을이 지나도록 나는 집 안에선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원래도 말이 없던 나였지만 그 시절에는 더욱 심했다. 나는 주로 방 안에 틀어박혀 공부를 하거나, 혹은 공부를 위해 책을 펼쳐놓고 카게야마의 생각을 하곤 했다. 어머니께 충분한 설명을 들었음에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나를 쓰다듬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가셨다. 좋아한다는 것은 사람이 지닐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감정이라고도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이렇게 괴로운 걸요? 내 물음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웃으셨다.
그건 좋아하는 감정이 너무나도 커져 그걸 더 이상 몸에 다니고 있을 정도가 되지 못하게 될 때 아프게 되는 거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죽나요?
아니, 좋아하는 감정이 몸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거니까 나가게 해주어야지.
나가게요?
그래. 그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해본 적 있니?
……없어요.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카게야마가 내게 그런 말을 했던 적은 있어도 내가 먼저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가서 말해보렴. 훨씬 나아질 거란다.
…그 사람이 저를 좋아하지 않아도요?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야. 그 사람을 좋아하는 너의 마음이지.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 너를 좋아해주지 않으면 힘들고 아플 수도 있지만 결국 그것들은 너를 자라게 할 거야, 아키라. 좋아하는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자라게 만들어 줄 거란다.
…….
두려워 하지 마렴, 아키라.
…….
그건 일종의 성장통이란다.
…….
마음의 성장통, 그런 거야.
나는 가을이 지나도록,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더 이상 검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봐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해가 다 가도록 어머니가 표현했던 ‘마음의 성장통’을 계속해서 앓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내 안색은 좋지 않았고, 점점 말라갔지만 더 이상 어머니는 내게 뭐라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다. 결국 네가 선택할 일이란다, 아키라. 우리들은 언제나 선택하며 살아가고, 그 선택으로 한 걸음 더 큰 세상에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거야.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말들이었다. 선택의 시간은 아주 짧을 수도, 아주 길 수도 있다고도 하셨다. 이것 역시 내게 달린 거였다.
그리고 해가 바뀌었다.
16살. 나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카게야마의 방문을 먼저 두드렸다. 네. 작은 목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아마도 나인 줄 모르고 대답한 것이 뻔했다. 나야. 나는 다시 대답했다.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곧 닫혀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그곳엔 카게야마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서있었다. 쿠니미? 심장이 쿵쿵대었다. 검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나갈 것처럼 쿵쿵대었다. 지금까지 느꼈던 진동 중 가장 거대한 울림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옷자락을 꾹 쥐었다. 울렁거림이 심해져갔다. 왜 그래, 쿠니미? 문득 뜨거운 것이 벅차올랐다. 네가 나를 부른다. 네가 내게 말을 건다. 너의 모든 관심이 나에게로 쏠려있다. 지금이야. 지금이다.
좋아해, 카게야마.
나는 카게야마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대답이 없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잊은 사람처럼,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카게야마의 검은 눈동자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어둠이었다. 새삼스레 직면한 사실이 나를 아프게 했다. 그 검은 눈동자는 나도, 무엇도 담고 있지 않았다. 울고 싶었다. 나는 느리게 몸을 돌렸다.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과연 이것으로 나는 자랄 수 있나요, 어머니? 그렇게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필요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도 싶었다. 고통이 내 안에 뿌리를 내려 싹을 피우는 과정으로 내가 자랄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영원히 어린 아이이고 싶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몸을 돌리고 발을 내딛었다. 낡은 마룻바닥이 삐걱대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옷자락을 쥐는 손길. 익숙한 손길. 어린 시절 내 어깨를 잡던, 그, 손. 나는 차마 돌아보지 못했다. 카게야마가 내뱉는 작은 숨소리가 거대한 바람이 되어 내 귓가에 몰아쳤고, 따뜻한 열기가 거대한 불로 번져 나를 태웠다. 나는 그 뜨거움 속에서 차가운 심장 위로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나는 허리를 감싸는 온기를 느꼈다.
좋아해, 아키라.
허리에 둘러진 온기가 잘게 떨렸다. 아, 열이 진동할 수도 있는 물질이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를 감싼 열은 아주 미미한 것이었지만 곧 커다란 불길이 되어 이미 활활 타오르는 나를 다시 한 번 덮쳤다. 뜨거웠다. 뜨거운 열기는 차가운 심장까지 감쌌다. 나는 순간 그것이 타올라 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딱딱해진 심장이 말랑말랑해지고, 차가웠던 심장이 따뜻해지고, 더욱 크게 쿵쿵거리며 제 존재를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커다란 불길 속에서 익숙한 향기를 맡았다. 너의 향기. 그것이 카게야마 토비오의 향기임을 깨닫던 순간 나를 감싸던 불길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는 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잿더미 사이에서 느리게 뒤를 돌았다. 검은 눈동자. 내가 그저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나는 어리석었다. 코끼리의 다리를 기어가는 개미는 제가 기어오르는 것이 코끼리인줄도 모르고, 그저 땅인 줄 알고 기어갈 뿐이다. 나는 개미였다. 나는 개미여서, 그 검은 눈동자에 담긴 거대한 것을 모르고 한낱 어둠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내 허리를 감싼 카게야마의 손길처럼, 나 역시 카게야마의 등을 감쌌다. 카게야마의 눈동자가 더욱 또렷하게 나를 향했다. 나는 그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검은 눈동자에 담긴 것은 나였다. 거대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