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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2/아오테] 아오야기 하지메의 능력

팥_ 2014. 7. 2. 20:24

20140628

 

 

 

 


  아오야기 하지메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었다.

 

  처음으로 제 능력을 깨닫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테시마 준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었다. 제게 자전거를 잘 탄다며 말을 걸어준 그 검은 곱슬머리의 낯선 남자 아이에게 아오야기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제 나름대로 기쁨이 섞인 당황함이었지만 아오야기를 처음 만난 테시마가 알아차릴 리는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오야기에게 오히려 당황한 테시마는 그대로 머쓱해하며 제 가던 길로 떠나갔다. 아오야기는 생각했다. 이게 아닌데. 또 생각했다. 저 애를 붙잡고 싶어. 대화하고 싶어. 말해주고 싶어, 내 이름. 그 순간 세상이 제멋대로 뒤집어졌다.

 

  약간의 두통과 함께 온전히 돌아온 세상에는 아오야기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올라오고, 아까처럼 또다시 테시마 준타가 제게 말을 걸었다. 

 

  “나는 미나미 중학교 출신 테시마 준타야. 너는?”

 

  아오야기는 이번엔 대답할 수 있었다. 

 

  “아오…야기 하지메. …하지메는 일등할 때의 일을 써.”

 

  그렇게 아오야기 하지메와 테시마 준타는 친구가 되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일은 언제나 가능했다. 아오야기가 그 능력을 쓰는 건 언제나 테시마와 관련된 일 뿐이었다. 여전히 아오야기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게 어려웠다. 그 상대가 테시마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아오야기는 시간을 돌렸다.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렸다. 한 열아홉 번쯤 돌렸을까, 테시마가 아오야기의 마음을 맞췄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정확하게 제 마음을 읽어주었다. 그 다음에는 열다섯 번째에, 그 다음에는 열한 번째에, 그 다음에는 여덟 번째에, 그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결국 이제는 아오야기가 시간을 돌리지 않아도 테시마가 바로 아오야기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아오야기는 그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1학년 합숙 이후 처음 있었던 레이스에서 아오야기는 정확히 시간을 스물여섯 번 돌렸다. 우승해야만했다. 테시마가 믿어주고 있었으니까. 쉴새없이 돌리고, 또 돌렸다. 스물여섯 번의 시간을 되감는 동안 테시마는 한결같이 저를 밀어주었다.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된 이상 우승을 해야만 한다고 아오야기는 생각했다. 시간을 열 번쯤 돌렸을 때, 처음으로 3등 안에 들었다. 3등, 3등가지고는 안됐다. 제가 우승을 거머쥐는 것이 곧 테시마도 함께 우승을 거머쥐는 길이었다. 아오야기는 테시마에게 어떻게 해서든 우승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그게 제게 손을 내밀어준 테시마를 향해 보답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3등에서 2등으로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열여섯 번째 시도에 아오야기는 2등이 됐다. 하지만 2등에서 1등이 되는 건 지옥과도 같은 일이었다. 서서히 피로가 누적이 되고 있다는 걸 아오야기는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이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는 완벽히 다른 세계일텐데. 어쩌면 시간을 무리하게 돌린 자에 대한 페널티일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우승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었다.

 

  스물세 번째, 아오야기는 1등과 아슬아슬한 간발의 차로 골인했다. 스물여섯 번째, 마침내 아오야기는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무대 아래에서 저를 향해 웃어주고 있는 테시마의 모습은 스물다섯 번의 시간동안 봐왔던 그 어떤 웃음보다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아오야기는 누적된 피로로 당장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 웃음을 본 이상 그걸로 됐다고 느꼈다. 저 웃음. 저 웃음을 위해 그 수많은 시간을 되돌렸다. 아오야기는 테시마를 향해 함께 웃어주었다.

 

  그리고 아오야기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레이스 중에 시간을 돌리지 않았다. 테시마의 웃음을 보는 건 정말이지 행복했지만, 그 웃음이 제 속임수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죄책감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제가 최고라며 웃어주는 테시마, 역시 우린 둘이서 한 팀이라며 환하게 웃는 테시마, 남은 레이스까지 또 열심히 연습하면 다음에도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웃으며 말하는 테시마, 테시마, 테시마. 아오야기는 더 이상 시간을 돌릴 수 없었다. 테시마의 웃음은, 아오야기의 궁극적인 목표나 마찬가지였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 짓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아오야기는 죽을 만큼 연습했다. 다음 레이스에서 시간을 돌리지 않고도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도록. 테시마의 가장 환한 웃음을 다시 볼 수 있도록. 그것이 저로 하여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음 레이스에서 아오야기는 단 한 번도 시간을 되돌리지 않고 우승컵을 품을 수 있었다. 여전히 테시마의 웃음은 아름다웠다.

 

 해가 바뀌었다. 천재라고 불리는 신입생들이 대거로 들어왔다. 아오야기는 다시 한 번 시간을 되돌릴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제 힘만으로는 테시마의 웃음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합숙 두 번째 날의 고민이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제 다리를 빤히 쳐다보는 아오야기에게 테시마가 말을 걸어왔다. 

 

  “할 수 있어, 아오야기.”

 

  그 말에 아오야기는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테시마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다 읽지는 못했겠지만 아마도, 제 능력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는 것은 말끔하게 읽어냈을 터였다. 테시마는 아오야기의 허벅지에 제 손을 올렸다. 

 

  “이 다리로 몇 번을 우승했는지 알잖아. 이번에도 그럴 거야. 우린 둘이서 한 팀이니까.”

 

  테시마가 웃어주었다. 다른 느낌의 웃음이었다. 평소의 웃음보다 더 강하고 결연한 웃음이었다. 준타, 강해졌네. 아오야기는 그렇게 생각했다. 테시마가 강해졌다면 좋은 것이 분명한데 왜 이렇게 마음이 뭉그러지는 느낌이 드는 건지. 아오야기는 테시마의 그런 웃음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아오야기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바닥에 쓰러진 아오야기는 감각이 없는 제 다리를 살피지도 않고 함께 쓰러진 테시마를 먼저 바라보았다. 테시마는 웃어주지 않았다. 울고 있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서러운 표정으로 엉엉 울고 있었다. 아오야기는 심장이 내려앉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리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의 통증이 우선이었다. 아오야기는 한참동안 테시마를 멍하니 바라보며 져지의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아오야기는 생각했다. 테시마를 웃게 해주고 싶어. 또 생각했다. 이기고 싶어. 이기고 싶다. 이겨서, 이겨서, 어떻게든 이겨서….

 

  세상이 일그러졌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또 마지막 골라인에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테시마가 또 쓰러졌고, 또 울었고, 아오야기는 또 생각했다. 한 번 더. 

 

  단 한 번도, 조금의 결과도 바뀌지 않았다. 열일곱 번째에 들어섰을 때 아오야기는 시작부터 다리가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 페널티인지 뭔지 모를 그것이 또 찾아온 것이었다. 아오야기는 그저 이 페널티가 테시마에게까지 미치지 않기만을 빌었다. 테시마의 울음소리를 스물세 번째 들었을 때 아오야기는 생각했다. 고통스러워.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 테시마가 쓰러지는 걸 스물세 번째 본 것도, 테시마의 울음소리를 스물세 번째 들은 것도, 서서히 제 다리를 갉아먹어오는 고통도, 그런 고통을 느낄 여유가 있는 자기 자신도. 아오야기는 지치지도 않고 시간을 돌렸다.

 

  서른 번째 시간을 돌렸을 때 아오야기는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이러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을까? 아오야기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제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그래도, 이길 수 있다면. 아오야기는 드롭바를 쥔 손에 더 힘을 주어 잡았다.

 

  서른세 번째, 몇 번 낙차 위기를 겪었다. 

 

  서른여섯 번째, 아오야기는 앞이 뿌옇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서른일곱 번째, 낙차했다.

 

  서른아홉 번째, 어떻게 골라인까지 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새하얗기만 했다. 아오야기는 서른아홉 번째 바닥에 쓰러진 테시마를 보았다. 또, 결국. 이제 다리는 더 이상 제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저희들은 팀이었다. 반드시 승리해야했다. 아오야기는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한 번만 더. 서른아홉 번의 시간동안 수없이 외쳐왔던 그 말을 다시 한 번 외치려고 했다. 그러나 제 손을 잡아오는 따뜻한 촉감, 그 새로운 사건에 아오야기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서른아홉 번의 시간동안 처음으로 벌어진 새로운 사건이었다. 아오야기는 제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누군가가 제 손을 잡고 있었다. 뿌연 시야를 헤치고 도달한 그 손의 끝에는, 테시마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테시마는 울고 있었다. 그건 분명 지금껏 봐온 광경과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제 손을 잡고 있었다. 처음으로, 처음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아오야기는 멍하니 테시마를 바라보았다. 테시마가 입을 벙끗거렸다. 제대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오야기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조금 시야가 밝아진 것도 같았다. 테시마의 표정이 아까보다 명확하게 들어왔다. 온 얼굴이 땀과 눈물로 범벅된 테시마는 아오야기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똑바로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테시마의 웃음을 알아챈 아오야기는 한 번 더 시간을 되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테시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승리하지 않았는데도 테시마는 웃고 있었다. 울음이 잔뜩 섞인 웃음이었지만, 어찌됐건 웃고 있었다. 테시마가 입을 열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오야기의 얼굴이 울상으로 일그러졌다. 그러자 아오야기의 손을 잡은 테시마의 손에 더 센 힘이 실렸다. 동시에,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해, 아오야기.”

 

  테시마가 웃으며, 울며 말했다. 

 

  “이제 그만해도 괜찮아.”

 

  그 말에 아오야기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저를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저를 관통하고 뿜어져나간 그것은 다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저를 뒤덮어 흘러나갔다. 그만해도 괜찮은 걸까. 우승하지 않아도 될까. 우승하지 않아도 준타의 웃음을 볼 수 있는 걸까. 아오야기는 고개를 숙였다. 쌓여왔던 것이 터져나갔다. 그것은 고통이자, 절망이자, 설움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전부 터져나갔다고 생각한 순간 아오야기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테시마는 저를 보며 웃어주고 있었다. 아오야기는 테시마의 웃음에 늘 대답했던 그날들처럼 테시마를 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웃었다고 생각한 순간, 아오야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려 땅을 적셨다. 터져나간 것들의 잔해였다. 적막이 내려앉은 땅 위에 아오야기 하지메의 울음소리가 흘러내렸다.

 

 

 

 

  아오야기 하지메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었다. 

  

  이제는 쓰지 않게 된 능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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