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카게시라]
어쩐지 어디선가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싶었다. 시라부는 목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게야마가 체육관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시라부는 신발끈을 매던 것을 멈추고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꼭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들려 그를 쳐다보기 전까진 아마 고시키와 함께 들어오는 것이려니 짐작했었다. 하지만 체육관 안으로 들어온 카게야마는 혼자였다. 다만 그의 귓가엔 휴대전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시라부는 눈썹을 들썩였다.
시라부는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앉아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었고, 그 덕에 카게야마는 아마 저보다 먼저 온 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통화를 끊지 않은 채로 맞은편 구석에 앉아 손 대신 어깨로 휴대전화를 고정시킨 후 서포터를 착용하고 있었다. 시라부가 체육관에 먼저 와있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는 즉시 통화를 끊었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그만큼 과할 정도로 예의를 중시하는 후배였다. 그의 과한 예우에 우시지마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오오히라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고, 텐도는 즐거워하는 듯했다. 그리고 시라부는 그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고 생각했다. 저 역시도 선배들에게 꽤 딱딱할 정도로 격식을 차리는 편이었지만 ―텐도는 그것에 ‘시라부는 후배가 아니라 할아버지 같다니까.’ 하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카게야마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카게야마가 우시지마를 비롯한 3학년들에게 보내는 눈빛은 분명 선망과 동경이었다. 그들을 향한 예우는 그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라부에게 보내는 눈빛은 조금 달랐다. 선망, 동경. 그래, 그런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저편엔 투쟁심 같은 것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언제나 저에게 선을 하나 그어두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배구에 관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든 나에게서 얻을 수 있는 도움이란 도움은 전부 빼내가려는 것처럼 굴었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달랐다. 카게야마는 항상 저를 불편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것은 특히 시라부가 우시지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더욱 그러했다. 카게야마는 참 읽기 쉬운 타입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시라부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네, 아니, 아니에요. 지금 막 왔어요. 네. 후타쿠치 씨는요?”
시라부는 조심스럽게 신발끈의 리본을 매던 손을 멈추었다. 후타쿠치. 시라부는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올 봄 현민대회에서 만났던 다테 공업 고등학교의 2학년 윙 스파이커. 그 얼굴이 선명했다. 그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사이였나?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봐도 그와 카게야마가 접점이 있을만한 부분은 없었다. 시라부는 후타쿠치의 얼굴을 떠올렸다. 뺀질거리는 구석이 많은 남자였다. 실력도 괜찮았다. 언젠가 텐도가 ‘너와 닮은 얼굴’이라 말한 적도 있었다. 시라부는 그 말에 인상을 찌푸릴 뿐 별 대꾸는 하지 않았다. 텐도 사토리는 언제나 저를 놀리기에 여념이 없는 남자였고, 그 말 역시 그런 의도로 뱉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옆에 있던 오오히라마저 시라부에게 ‘그러고보니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네.’ 하는 말을 건넸었다. 오오히라의 말은 언제나 진심이었고, 시라부는 그의 말에 ‘그런가요.’ 하고 작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한,”
카게야마는 서포터를 신던 손을 멈추었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도 멈췄다. 시라부는 빤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아직 시라부가 그곳에 있는 줄 몰랐고, 지금은 전화 너머의 후타쿠치의 말을 듣기 바쁜 듯했다. 곧 카게야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그 입술 사이에선 소리가 담기지 않은 숨결만 흩어져나올 뿐이었다.
“제가 어제 언제 그랬어요!”
카게야마는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아까보다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시라부는 카게야마의 귀끝이 조금 전보다도 훨씬 새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았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입 끝은 미미하게 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어쩐지 기분이 나빠져 시라부는 저도 모르게 날카롭게 입매를 굳혔다.
“몰라요, 저는 부른 기억 없어요.”
카게야마의 대답에 전화기 너머가 시끄러워졌다. 그 말뜻까지 파악할 정도는 되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흥분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카게야마는 난처한 얼굴을 하고서 휴대전화를 똑바로 고쳐 쥐었다. 그 손끝이 초조하게 휴대전화를 톡톡 두드렸다. 카게야마는 한숨을 내쉬며 구부정한 자세로 무릎에 턱을 괴었다. 체념한 듯한 얼굴이었다.
“알겠어요, 불러요, 부른다구요.”
그러고도 카게야마는 말이 없었다. 시라부는 속이 거북해졌다. 네트 너머에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던 얼굴이 되살아났다. 제가 올려준 공이 그의 손 끝에 막혀 바닥으로 떨어지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도발하듯 저를 내려다보던 시선도 떠올랐다. 뭐야, 우시와카도 별 거 아니잖아?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시라부는 결국 치밀어오르는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켄지,”
시라부가 일부러 부스럭대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의미심장한 얼굴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어내던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뚝 멈췄다. 카게야마의 시선이 시라부의 얼굴로 향했다.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 난감한 듯한 얼굴이 퍼졌다. 카게야마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서 곧장 휴대전화를 닫아 통화를 끊었다.
“……시라부 선배, 어, 언제부터 계셨어요?”
“처음부터.”
카게야마는 동그란 머리를 긁적거리며 시라부의 눈치를 살폈다. 시라부는 그런 카게야마를 잠시 바라보다가 창고로 향했다.
“아침연습 하러 왔으면 빨리 해. 시간도 없잖아.”
“아, 네!”
시라부는 이미 몸을 돌리고 있어 카게야마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피어났으리란 것쯤은 예측할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그만큼 알기 쉬운 타입이었다. 시라부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공이 담긴 카트를 잡았다. 켄지. 카게야마가 마지막으로 뱉었던 그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이제야 떠올랐다. 선배들이 왜 그렇게 저에게 후타쿠치와 닮았다고 말했던 지를. 그것은 비단 닮은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학년, 그리고 비슷한 이름. 후타쿠치 켄지.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시라부는 눈을 감았다. 카게야마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가 제 이름을 부르는 상상을 했다. 켄지로 선배. 카게야마가 제 멋대로 그어둔 선을 밟고 넘어 서서 제 이름을 불러주는 상상을 했다. 붉어진 얼굴로, 뜨거운 목소리로, 제 옷자락을 붙잡고서 그렇게 말하는 카게야마를 상상했다. 그와 동시에 처참한 점수판 앞에서 네트 너머로 입술을 깨물고 돌아서던 후타쿠치의 얼굴을 떠올렸다. 결국 그렇게 질 거면서. 시라부는 삐딱하게 올라가는 입매를 막지 못했다. 과정이 어떨지언정 그 결과만큼은 너희는 결코 우리를, 너는 결코 나를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