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piece/글

[도플로우] The Game

팥_ 2013. 12. 24. 00:13

20130620



  "침입자를 잡았습니다. 지하로 데려갈까요?"

  "여기로 데려와 봐. 구경이나 하자."


  짙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호기롭게 웃으며 잔에 든 술을 들이켰다. 정체모를 침입자에 의해 성은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남자는 눈썹을 씰룩였다. 웬 쥐새끼가… 남자는 성의 주인이었다.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그것이 남자의 이름이었다. 돈키호테 패밀리의 명성에 흠이 갈 만큼 성을 난장판으로 만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작은 소란을 일으킬 정도라니, 직접 얼굴을 봐줄만한 가치가 있었다. 웬만한 쥐새끼들은 제 귀에 작은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저 아래에서 조용히 처리될 터였는데. 꽤 소란스러운 걸 보니 제법 쓸 만한 쥐새끼거나 혹은 아랫놈들이 일을 소홀히 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도플라밍고는 느리게 턱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전자든 후자든 상관없겠지. 전자일 경우 얼마나 미친개인지 살펴보고 재미 좀 보다가 버리면 될 것이었고, 후자일 경우 오랜만에 깨끗하게 물갈이를 해주면 될 것이었다.


  천천히, 멀리서부터 소음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전자이려나. 간만에 성을 울리는 소음이 도플라밍고는 반가운 듯 하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즐거운 미소를 띠고 문만 바라볼 수 없을 터였다. 쾅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억지로 질질 끌려온 줄 알았더니. 정 반대의 상황이었나. 도플라밍고의 얼굴에 좀 더 즐거운 웃음이 만면하게 드러났다. 요란하게 문이 열리고 모습을 나타낸 건 그저 작은 소년이었다. 우락부락한 체구의 남자들에게 강제로 끌려온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양 손에 족쇄가 차여있음에도 소년의 행동은 난폭스러웠고, 좀 전에 문이 소란스럽게 열린 이유도 소년이 거칠게 발로 문을 차고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남자들이 소년을 잡고 있는 것 또한 어떻게 해서든 소년이 도플라밍고에게 달려가려는 걸 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나한테 원한이 있는 쥐새끼였나. 도플라밍고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생각보다 더 재밌겠네. 곧, 씩씩대며 분을 억누르지 못하는 소년이 강제로 도플라밍고 앞에 무릎 꿇려 앉혀졌다. 몇 번이고 일어나려 시도했지만 손이 뒤로 묶인 터라 균형 잡기가 쉽지 않은지 소년은 결국 포기하고 도플라밍고를 노려보는 일에 힘을 썼다.


  "예의가 없는 쥐새끼군."


  도플라밍고가 웃으면서 말하자 소년이 무언가 소리를 지르려는 듯 했으나 도플라밍고의 뒤에 서있던 남자, 베르고가 조금 더 빨랐다.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간 베르고가 소년의 배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노려 발로 차자 소년은 먹히는 신음소리를 내며 옆으로 고꾸라졌다. 도플라밍고가 살짝 고개를 까딱이자 베르고가 소년의 머리채를 잡아 다시 일으켰다. 그만. 베르고가 이번엔 소년의 얼굴을 노려 발로 차려는 찰나 도플라밍고의 입에서 나온 말에 베르고는 그대로 소년을 놓고 다시 도플라밍고의 뒤로 물러섰다. 도플라밍고는 조금 몸을 앞으로 숙였다. 소년은 여전히 눈에 독기가 가득한 채로 도플라밍고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소년은 더 자그마했다. 작고 말라깽이인 소년의 몸에서 그런 독기가 나온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씩씩대던 소년이 입을 열자 옆의 남자들이 다시 소년을 구타하려 들었고, 도플라밍고는 그런 남자들을 가볍게 제지했다. 쥐새끼를 끌고 왔으면 찍찍거리는 걸 들어는 줘야지.


  "돈키호테 도플라밍고…!! 내 엄마 아빠!!! 우리 부모님 어쨌어!!!!"

  "부모님?"

  "얼마 전 납치한 과학자 부부의 아들입니다. 이름은 트라팔가 로우. 13살 입니다. 부부의 배를 습격할 때 지하 비밀 방에 숨겨져 있었나 봅니다. 배에 실려져 있던 주인 모를 의학 서적들이 이 녀석 것인 걸로 판명됐습니다."

  "죽여 버릴 거야 너!!! 당장 풀어줘!!!!"


  발버둥 치는 로우의 옆에 서있던 남자가 경직된 말투로 도플라밍고에게 보고했다. 그러니까, 이 꼬맹이가 숨겨져 있던 걸 발견 못해서 이 사태까지 왔다는 거지? 도플라밍고의 물음에 남자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더듬거렸다. 도플라밍고는 순식간에 표정에서 웃음기를 거둬냈다. 의자 손잡이에 묵직하게 올려져있던 도플라밍고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 경쾌하게 움직였다. 마치 실을 조종하는 듯 한 손놀림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바득바득 소리를 질러대던 로우의 목소리가 멈췄다. 남자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피를 막아내려 몸부림을 치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의 몸에서 튄 피가 로우의 얼굴과 몸으로 쏟아졌다. 몇 번 몸을 떨어대던 남자의 움직임이 그쳤다. 로우의 얼굴에서 남자의 피가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도플라밍고는 다시 입매를 끌어올려 웃었다.


  "일처리 못하는 것들은 질색이라. 미안하게 됐어, 꼬마."

  "우리… 우리 엄마 아빠도…"

  "……."

  "저런…… 저런 식으로…"

  "했다면 어쩔 건데?"


  도플라밍고의 말이 끝나자마자 로우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 도플라밍고마저 살짝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소년의 옆을 지키던 다른 남자가 조금 비틀거렸다. 쥐새낀줄 알았더니 호랑이새끼였나. 도플라밍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패왕색 패기로군. 본인은 모르는 듯 하지만. 잘 키우면 쓸 만한 물건이, 어쩌면 도를 넘어선 괴물로 잘 자라날 것 같았다. 도플라밍고는 조금 더 뒷목이 저릿해짐을 느꼈다. 보통의 패왕색 패기 소유자는 컨트롤 없이 어마어마한 패기를 한 번에 뿜어낼 텐데. 자기도 모르는 주제에 이 정도로 힘을 컨트롤 하는 걸 보면 확실히 탐나는 호랑이새끼였다. 도플라밍고는 손끝을 마주하고 비벼댔다.


  "워, 진정하라고. 살아있으니까."


  로우의 눈동자가 일렁임과 동시에 저릿거림이 걷혀졌다. 트라팔가 부부 끌고 와. 도플라밍고가 애기 전보벌레에 대고 말했다. 흥미롭게 로우를 쳐다보는 도플라밍고의 시선에 로우는 오싹함을 느꼈다. 제 옆에서 피를 뿜어내며 몸부림치던 남자가 도플라밍고의 얼굴 위로 떠올라 겹쳐보였다. 곧, 문밖에 소란스럽나 싶더니 찰랑이는 쇠사슬 소리와 함께 남녀가 방으로 들어와 로우의 옆에 강제로 앉혀졌다. 피투성이가 된 부부는 정신을 못 차리는 듯싶었다. 엄마!! 아빠!!! 로우의 외침에 부부의 눈동자에 초점이 살아났다. 나야 엄마!!! 나!! 기다려 내가 치료해줄게!!! 로우의 외침에 도플라밍고는 즐거워서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로우를 바라봤다. 치료라. 의학 서적이 있었댔지. 저 나이에 의사는 아닐 테고, 준비 중인건가. 도플라밍고는 웃으며 로우의 옆에 서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저 녀석 풀어줘. 수갑이 풀리는 금속음이 요란하게 들렸고, 로우는 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일어나 제 부모에게 달려갔다.


  "로우… 로우 네가 왜… 왜 잡혔어…!! 숨어있으라고 신신당부 했잖아!!"

  "엄마 아빠 풀어주려고, 풀어주려고 왔어! 걱정하지 마, 응? 우리 셋 다 살 수 있어 엄마!!"

  "너 얼굴… 그 피……"

  "이거 내 피 아니야, 나 안 다쳤어 정말로. 나 괜찮아… 나 정말 괜찮아."


  로우의 작은 손이 피투성이가 된 제 부모의 얼굴을 연신 매만졌다. 엄마 아빠야말로 이 상처들… 로우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살기가 잔뜩 서려있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도플라밍고는 흥미로운 얼굴로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로우는 제 몸이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손을 움직이려 애를 써도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 손은 제 어미의 목으로 내려갔다. 어, 엄마… 내 손이 이상해… 로우의 겁에 질린 목소리는 도플라밍고의 즐거움을 만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로우는 어떻게 해서든 손을 떼어내 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로우의 손을 누르고 있기라도 한 듯 점점 손에 힘이 실려만 갔다. 여자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로우의 손도 마찬가지였다. 로우는 이제 발악을 하면서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머리 아래로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로우가 고개를 돌렸다. 짙은 선글라스 뒤로 보이지 않는 도플라밍고의 눈을 마주했다. 로, 로우……. 여자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는 컥컥대며 로우의 손을 할퀴어댔다. 남자가 묶인 몸을 꿈틀거리며 발악했지만 도플라밍고가 다른 손을 움직이자 남자의 몸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로우는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감는 순간 다시 떠질 뿐이었다. 여자의 꺽꺽대는 소리만 방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를 도플라밍고의 웃음소리가 가로질렀다.


  "…도플라밍고!!!!!"


  분노에 찬 로우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분노와 겁에 질린 인간의 목소리를 듣는 건 도플라밍고에게 있어서 이 일을 하는 최대의 쾌감 요소였다. 이 경우는 좀 더 커다란 쾌감이었다. 이제 여자는 입에 거품을 물기 직전이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그만!!!!!"


  도플라밍고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로우 옆의 남자가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더니 결국 실신했다. 도플라밍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열세 살짜리 꼬맹이의 패기에 뭐하는 거야. 하긴, 이번에 로우가 방출한 패기는 조금 강력하긴 했다. 이 느낌이지 역시.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뿜어내는 에너지. 도플라밍고는 늘 이 느낌을 갈망했다. 여자가 눈을 까뒤집기 시작했다. 원하던 에너지를 잔뜩 얻었으니 조금 더 장기전으로 가볼까. 도플라밍고가 웃으며 손을 거뒀다. 로우의 손이 여자의 목에서 떨어졌다. 여자는 쓰러져 미친 듯이 산소를 들이마셨다. 로우는 손을 벌벌 떨어댔다. 살인 직전의 순간까지 갔으니. 그 느낌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게 되겠지. 로우는 허둥지둥 제 어미의 곁으로 가 상태를 살폈다. 목에 손자국이 남은 것 말고는 여자의 상태는 다행히 괜찮은 상태였다. 로우는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로우는 곧장 도플라밍고에게 달려왔다. 너 이 개새끼…!!!! 이런 반응 하나까지 아주 만족스러운 물건이다. 역량과 그릇들을 논외하고서라도 도플라밍고의 지루한 일상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도플라밍고는 저에게 달려드는 로우를 선글라스 너머로 똑똑히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로우의 몸이 멈췄다. 로우는 바들거리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독기가 가득했던 로우의 눈동자에 좌절감이 깃드는 광경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것 역시 즐거운 과정이었다.


  "트라팔가 로우."


  이 느낌을 기억해라. 좌절감, 패배감을 기억해라. 너는 나에게 상대조차 안 되는 작고 약한 새끼 동물일 뿐이라는 걸 기억해라. 너는 호랑이 새끼임이 틀림없지만, 고양이 새끼라고 생각하고 살아라. 자아를 그렇게 가둬 놓고 나에게 복종하며 살아라.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저주스러운 상대에게 복종하는 기분을 기억해라.


  "의학 공부를 하고 있지?"

  "……."

  "내 부하로 들어와라."

  "개 같은 소리 지껄이지 마!!!"


  도플라밍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로우의 아비가 몸을 뒤틀었다. 로우의 눈에 더 짙은 좌절감이 서렸다. 그만해… 그만!! 도플라밍고는 손을 내렸다. 정적이 흐르는 방 안에 아비가 헐떡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럼 네 부모를 살려주지. 내 밑에서 발버둥 쳐. 공부하게 해줄 테니까."

  "……."

  "의사 자격증을 딸 때까지 너희 셋 다 살려줄게."

  "…따면?"

  "네 부모는 이 성에서 내보내 주겠어. 단, 네가 계속 내 밑에 남아 간부 자리를 갖는다는 조건으로."


  로우의 눈이 흔들렸다. 원수의 밑으로 들어가라니, 죽기보다 싫겠지. 하지만 그것이 부모와 제가 살 수 있는 방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터였다. 도플라밍고가 작게 휘파람을 몇 번 불었다.


  "너를 어떻게 믿지?"

  "이래봬도 약속은 지켜. 죽이려면 당장 죽일 수도 있는데 뭐 하러 이런 제안을 하겠어?"


  로우는 고개를 돌려 제 부모를 쳐다봤다. 어느새 둘 다 기절해 있었다. 고통에 못이긴 뇌가 신체를 방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로우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로우의 고개가 작게 위 아래로 움직였다. 도플라밍고는 입을 벌려 활짝 웃었다. 로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환영한다, 트라팔가 로우."


  악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기간의 게임, 그 시작이었다.













뒷 얘기도 있는데 사족으로 달을려다가 그냥 썰이라 간단하게 글로 적기로 했다. 도플라밍고가 좋은 이유는 이런 싸이코같은 면을 캐붕 걱정 없이 마음대로 써댈 수 있어서...

원작에서 로우는 패왕색의 패기따위 없음.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나온 바 없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음. 

증식병은 불치병이라더니. 매일매일 쓰는 글이 분량이 1쪽씩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