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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밤 04

팥_ 2014. 1. 11. 01:53

가을님과 함께 하는 로른쪽 릴레이로 제 홈에는 짝수 편들만 올라옵니다.

모든 글을 보시려면 이 쪽으로 가주세요. 





* PC로 보시면 BGM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트라팔가 로우와 유스타스 키드가 만났단 말이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앉은 조로가 기지개를 크게 편 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서류를 주워들었다. 사이 안 좋기로 유명한 두 패밀리가 왜 만났담. 무슨 목적으로 만났든 간에 일반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은 절대 없겠지. 아직 딱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니니 상부에 팀을 꾸려 달라 요청하기 전에 일단 정보부터 더 모으는 게 좋겠고. 지금까지의 서장의 태도로 보아 겨우 두 패밀리의 한 번의 접점가지고 팀을 꾸려달라고 했다간 단박에 퇴짜 맞을 일이 뻔했다. 조로는 크게 하품을 하며 서류를 넘겼다.


  새벽부터 유스타스 키드가 돈키호테 패밀리의 저택에 찾아갔다는 건가. 보통 새벽부터 약속을 갖진 않지. 조로는 볼펜의 뒤꽁무니를 입에 물었다. 게다가 보고된 서류에 의하면 도플라밍고는 키드가 저택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다른 볼일로 저택을 비운 상태였다. 그렇다면 사건의 정황을 두 가지 전개로 일축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사전 약속이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키드가 충동적으로 저택을 방문, 도플라밍고는 이미 저택을 떠난 상태라 아쉬운 대로 로우와 접촉했다. 두 번째, 도플라밍고의 눈을 피해 키드와 로우가 만나기로 약속했다. 첫 번째의 경우라면 대체 무슨 일이길래 키드가 사전 약속도 없이 그 새벽부터 도플라밍고의 저택을 찾아갔느냐가 문제고, 두 번째의 경우라면 돈키호테 패밀리의 2인자인 로우가 적이나 다름없는 키드를 만나는데 어째서 도플라밍고의 눈을 피해야 했느냐가 문제였다.


  일단 가능성이 큰쪽은 첫 번째 전개인가. 조로는 입에 문 볼펜을 빼 서류의 여백에 대충 글씨를 휘갈겨 적었다. 어릴 적부터 돈키호테 패밀리에서 자라온 트라팔가 로우가 도플라밍고의 눈을 피해 라이벌 구도에 있는 조직의 수장을 만났다는 가설보다는 유스타스 키드가 일방적으로 찾아왔다는 가설이 좀 더 가능성 있겠지. 조로는 휘갈겨 적은 어느 문장 밑에 거칠게 밑줄을 몇 번 그었다. 아무래도 이쪽을 찾아봐야겠군. 조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새벽부터 급히 찾아갈 정도의 용건이라면 예삿일은 아닐 것이었다. 저들 세계에서 꽤 한 획을 그을 만한 일이겠지. 그 정도의 일이라면 찾아내는 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죠니나 요삭을 부르자. 그렇게 생각한 조로가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려는 찰나,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뭐지? 인상을 쓴 조로가 통화 버튼에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머뭇거렸다. 중요한 전화일지도 모르니까 받아볼까. 조로의 엄지손가락이 액정을 스쳤다. 


  - 롤로노아 형사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에 조로가 저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고 앉았다. 괜히 받았군. 조로는 신경질적으로 목 끝까지 채워 올렸던 점퍼의 지퍼를 조금 내렸다. 뭐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리도 없을 테고, 분명 소파 얘기를 하며 귀찮게 굴 것이 뻔했다. 


  “예, 맞습니다만.”

  - 트라팔가 로우입니다. 기억하시죠?

  “예예, 마음 같아선 기억 안 난다 하고 싶지만 말입니다.”


  다분히 비꼬는 투가 반영된 조로의 목소리에 건너편에서 로우가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비꼬고 시비를 걸어대도 저렇게 여유롭게 구니, 어째 비꼬면 비꼴수록 더 부아가 치미는 건 오히려 조로였다. 더러운 돈과 권력만 믿고 저렇게 떵떵거리면서 사는 놈들에게 휘말리는 꼴이라니. 조로는 거칠게 짧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마도 그 생각과 동시에 제 소꿉친구인 루피의 생각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 다름이 아니라, 소파는 잘 받으셨나 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먼저 연락해주실 줄 알고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휴게실 증축 공사도 해드리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소란스럽잖아요? 소문나기도 쉽고.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 이 바닥에서 이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관할 경찰서 형사 하나의 번호를 알기란 식은 죽 먹기죠. 걱정하지 마세요, 악용할 일은 없으니까. 그저 소파가 잘 도착했나 싶어서 연락드린 겁니다. 그래도 꽤 비싼 소파인데 다른 곳으로 잘못 전해졌으면 억울하잖아요.

  “번호 알려준 적도 없는 마피아한테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거 참 걱정할 필요 없겠습니다. 소파는 잘 도착 했으니까 이만 끊읍시다. 더 통화하고 싶으면 이번엔 내 의자라도 좀 바꿔주든가. 허리 아파 죽겠네.”

  - 저런. 민중의 지팡이가 고작 의자가 안 좋아 허리가 아프면 쓰나요. 바꿔 드릴 테니 더 통화해도 되겠습니까?


  조로는 로우가 농담을 하는 건지 진담을 하는 건지 도저히 의뭉을 읽을 수가 없었다. 농담이건 진담이건 간에 바꿔 달라 하면 당장 바꿔 주겠지만, 이런 요청이 저들에게 손톱만큼의 피해도 안 줄뿐더러 마치 제가 구걸하는 듯한 느낌임을 안 이상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굳이 더 통화하겠다니. 소파라든가, 이런 시답잖은 소재를 질질 끌고 가려는 것은 아닐 터였다. 그를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수화기 너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어있었다.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전화통화를 하고 있을 뿐인데 건너편의 날이 선 분위기가 이쪽까지 전해지다니. 실로 놀라운 카리스마였다. 도플라밍고에게 몸을 대주는 조건으로 그 자리를 꿰찼을 거라느니, 말이 오른팔이지 허수아비일 거라느니 하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조금 전의 압도적인 분위기 전화 능력만으로도 조로는 그 소문들이 전부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애초에 믿었던 적도 없었지만. 트라팔가 로우를 실제로 만나 한 번이라도 대화해본 적이 있는 자라면 그런 소문을 믿을 리가 없지.


  “미천한 제 의자까지 신경 써주실 필요는 없고요. 무슨 용건입니까?”

  -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형사님. 유스타스 키드가 저희 쪽에 일방적으로 접근한 건 저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괜히 저희 쪽을 파헤치진 말아주시겠습니까? 아, 물론 유스타스 쪽을 파헤치는 건 대찬성이지만 말입니다. 귀중한 경찰 인력이 이런 곳에 쓰이는 게 아까울 만큼 정말 별거 아닌 일이었거든요. 괜히 저희 쪽 건드려서 일에 지장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형사님이 비밀리에 일을 작업한다 하시더라도 이 바닥에선 다 퍼져나가게 되어있거든요. 제 입장이 좀 곤란해집니다. 저희 보스는 유스타스가 왔던 걸 모르셔서 말입니다.. 그 말은, 보스한테 알리지도 않을 만큼 별거 아닌 일이라는 말이죠. 이제 와서 유스타스가 저택에 멋대로 방문했다는 걸 아시게 된다면 벼락이 떨어질 겁니다. 보스의 벼락은 꽤 무서우니까 그만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사님.


  조로는 순간적으로 짧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걸 느꼈다. 키드와 로우가 만났다는 정보를 알게 된 지 고작 사흘이었다. 뭔가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거나 한 적도 없었다. 그저 말단 경찰들에게서 그 둘이 만났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로우가 독심술사 일리는 없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각자 자기 일 하기 바쁜 사무실에서 조로 혼자 생각했을 뿐인 일을 지금 로우가 고스란히 입으로 말한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경찰이 저희 둘의 접촉 사실을 알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직감적으로 저에게 전화한 것일 터였다. 독심술사는 아니더라도 단시간에 사람을 파악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더불어 상황 판단 능력도 말이다. 나는 아직 저쪽에 대해 아는 거라곤 도플라밍고의 오른팔이라는 것밖에 없는데, 나는 전부 간파당했다는 말이로군. 정보 수집력 역시 저쪽이 한 수 위겠지. 조로는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분한 기분이었다.


  “경찰이 알았다는 정보를 금방도 입수하고, 정보 수집력이 아주 좋으신가 봅니다? 아니면 스파이라도 심어놨다거나?”

  - 스파이라 할 만큼 거창한 건 아닙니다만, 경찰이라는 직업이 워낙 박봉이잖아요. 다 그런 거죠. 

  “마피아 양반. 근데 말입니다, 아직 전 아무것도 이 일에 대해서 나선 게 없는데.”

  - 그래서요?


  흠흠. 조로는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선제공격을 한다고 내가 순순히 말려들 것 같으냐, 트라팔가 로우. 휴대폰을 잡은 손에 힘이 실렸다.


  “이쪽에선 아무것도 벌인 일이 없는데, 먼저 건드리지 말라고 직접 친히 전화까지 하신다는 건 그게 별거 아닌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조사하면 뭔가 켕기는 일이 나오니까 미리 막아두려고 그런 거 같은데 말입니다. 틀립니까?


  알려준 적도 없는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수고까지 해가면서 먼저 접촉해왔다는 증거는, 그만큼 상대가 초조하다는 뜻이겠지. 지금껏 쌓아온 경험을 이용해 넘겨짚어 도발한 조로는 침묵에 둘러싸인 휴대폰 건너편에서 어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침묵의 의미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른 상대였으면 정곡을 찔린 데에 대한 침묵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고 넘어갈 텐데, 이 경우는 차마 그렇게 단언하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얼굴이라도 마주 보고 있었으면 모를까 목소리만 듣고 상대를 판단하자니 조로는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곧 휴대폰 너머에서 로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조로의 인상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 형사님. 2년 정도 근신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감이 살아 계신가봅니다? 역시 베테랑이시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제 말엔 겉으로 보이는 뜻 그 외엔 아무 속뜻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형사님은 다사다난한 수도 쪽에 계셨으니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이곳은 아주 평화로운 곳입니다. 쉽게 일이 터지진 않죠. 세력 다툼이란 게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 돈키호테 패밀리는 압도적인 세력이고, 유스타스 패밀리는 확실히 요즘 떠오르는 조직이긴 하지만 감히 저희와 견줄 정도는 아니죠. 그런 이곳에서 일은 무슨 일이 나겠어요. 끽해야 로비, 마약, 청부살인? 그냥 푹 쉬시면 됩니다, 형사님.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기껏 오셨는데 또 근신 당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어찌 되건 말건 그쪽이 신경 쓸 바 아닐 텐데.”

  - 전 항상 어떻게 하면 형사님들이 편히 업무 보실 수 있을지 생각하는 걸요. 전 용건 끝났습니다만, 형사님은 어떠신지?

  “…댁한테 볼일 없습니다. 나중에야 생길지도 모르지만. 수색영장 나와도 놀라지나 마시죠.”

  - 과연 영장을 받으실 수 있을지 기대되네요. 이만 끊겠습니다. 아, 소파가 너무 좋아도 소파에서 주무시지 마시고 집에 가서 주무세요.


  그 말과 동시에 전화가 끊겼다. 조로는 구겨진 인상을 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휴대폰을 손에 세게 쥐었다. 빌어먹을 놈. 어떻게 해서든 이 일을 파헤쳐서 보란 듯이 영장을 들고 찾아가 주지. 애초에 얌전히 살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이렇게 확실한 동기가 생기고 말았다. 조로는 루피와 나눴던 대화를 생각했다. 나더러 조용히 살랬었지, 루피. 조로는 지금 제 마음속에서 깊이 타오르는 반감이 로우를 향한 것인지, 루피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찌 됐건 목표는 같았으니 상관없었다. 조로는 부서뜨릴 듯 쥐고 있던 휴대폰을 들어 키패드를 눌렀다.


  “요삭. 트라팔가 로우와 유스타스 키드가 접촉했다는 그 얘기, 더 자세히 알아와.”


* * *


  “뭐하는 거야, 에이스.”


  로우가 잠긴 목소리로 말하며 손을 뒤로 뻗어 제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있는 에이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파고드는 로우의 손길에 에이스가 슬쩍 고개를 들고는 앞으로 내밀어 로우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 뺨에 닿는 온기에 로우가 눈을 감은 채로 살짝 미소 지으며 몸을 돌려 에이스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따뜻한 체온이 저를 감싸는 느낌에 로우는 눈을 떠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다. 에이스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벌써 일어났어?”

  “네가 그렇게 목에 쪽쪽 대는데 어떻게 안 일어나. 너야말로 웬일이야,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어쩌다 눈이 떠졌는데 눈앞에 보이는 목선이 좀 예뻐야지.”


  말은 잘해요. 로우가 웃으며 에이스의 가슴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몸을 일으켰다. 정확히는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에이스가 팔을 뻗어 다시 눕게 만들었지만. 어디 가려고. 다시 로우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에이스는 아예 로우의 몸 위로 올라타 로우를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었다. 로우는 헛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어 에이스를 밀어내려 했지만 에이스의 손에 양손이 그대로 붙들릴 뿐이었다. 에이스는 몸을 숙여 로우의 가슴 한가운데 자리한 하트 모양의 문신에 조심스레 선을 따라 입을 맞췄다.


  “휴일이잖아. 조금만 더 누워있어.”

  “아냐, 괜히 늦어서 꼬투리 잡힐 일 만들지 말아야지.”

  “……알았어. 근데 그 꼴로 갈 건 아니지?”


  졌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인 에이스가 로우의 위에서 내려오더니 슬쩍 로우를 흘겨보았다. 로우는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풀어헤쳐진 가운의 앞섬을 대충 여몄다. 


  “휴일까지 정장을 입을 순 없잖아.”

  “정장을 입으란 건 아니고, 그 꼴은 안 된다고.”

  “질투하긴. 내가 미쳤다고 이 꼴로 그 사람 앞에 설까. 사자를 만나러 가는 건 잠긴 사자 우리 앞에 서서 만나는 걸로 충분해. 뭐하러 내가 자물쇠를 열고 안에 들어가는 짓을 하겠어.”


  질투가 아니라 걱정한 거거든? 부루퉁한 에이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로우가 보이지 않게 웃으며 여몄던 가운의 앞섬을 다시 푸르고는 뒤돌아 입을 비죽 내밀고 있는 에이스의 얼굴을 마주했다. 


  “뭘 봐. 빨리 씻으러나 가. 자꾸 보고 있으면 붙잡고 못 가게 하고 싶어지니까.”

  “나 너 때문에 예정보다 일찍 일어났던 거 기억 안 나?”


  벽에 기대선 로우가 웃으며 가운을 벗었다. 고급 실크 원단으로 만들어진 가운이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로우의 몸에서 천천히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운이 완벽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자 로우의 손은 곧 검은 드로즈의 밴드 부분으로 향했다.


  “빨리 일어나야 한 번 하고 안 늦게 맞춰 가지. 얼른 일어나.”


  볼에 바람을 넣고 심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한껏 온 얼굴로 표현하던 에이스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걸렸다. 이래서 널 사랑해. 이거 때문에 날 사랑한다고? 아니, 아니, 사랑하는 수많은 이유들 중에서도 한 1%의 비중 정도? 그렇다고 쳐줄 테니까 키스나 해. 엉덩이부터 만지면 안 돼? 응, 안 ㄷ, 잠깐, 만, 에이스, 흣……


* * *


  로우는 도플라밍고의 방 문가에 완벽하게 차려입은 정장차림으로 넥타이를 들고 서 있었다. 오늘 고른 넥타이는 도플라밍고가 가장 좋아하는 넥타이로, 고급스러운 느낌의 분홍색 원단에 명품 브랜드의 마크가 연하게 엠보싱처리 되어 무늬로 새겨진 넥타이였다. 로우는 다른 손에 들린 넥타이핀을 손에 땀이 차도록 쥐었다. 무의식적으로 도플라밍고가 가장 아끼는 넥타이를 고른 건 아마 저 넥타이핀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끼는 넥타이로 조금이라도 넥타이핀에서 시선을 돌리게 해보려는 로우의 무의식이 발현된 것이다. 로우가 준비한 넥타이핀은 도플라밍고가 평소 가지고 있던 넥타이핀과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만든 제품이었지만, 도플라밍고는 괜히 돈키호테 패밀리의 수장이 아니었다. 단 0.1%의 오차로도 충분히 이상함을 알아낼 수 있는 게 도플라밍고였다. 로우는 자꾸 손에서 미끄러지려는 넥타이핀을 간신히 움켜쥐었다.


  여비서들의 도움으로 정장을 전부 갖춰 입은 도플라밍고가 책상 위에 놓인 커프스 링크를 들었다. 미리 준비한 넥타이핀과 세트로, 역시 로우가 미리 준비해 놓은 커프스 링크였다. 커프스 링크를 들었으니 이제 로우에게 다가올 차례였다. 로우는 언제 긴장했느냐는 듯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도플라밍고를 향해 걸어갔다. 준비한 넥타이핀을 잠시 책상 위에 올려놓고, 로우는 넥타이를 들고 손을 뻗었다. 이제는 눈을 감고도 반듯하게 맬 수 있는 넥타이를 로우는 오늘도 최대한 정성스러운 손짓으로 도플라밍고의 목에 옭아매기 시작했다. 따가울 정도의 시선이 얼굴 위로 느껴졌지만 로우는 굳이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로우. 부쩍 더 말랐네.”


  도플라밍고의 목소리가 로우의 머리 위로 흩어졌다. 로우는 넥타이를 매던 손을 잠시 멈췄다가 이내 다시 유려하게 움직여 완벽하게 넥타이의 매듭을 마무리 지었다.


  “글쎄요. 몸무게를 안 재봐서 저는 모르겠습니다.”


  손을 뻗어 책상 위에 놓인 넥타이핀을 집으려던 로우가 그대로 균형을 잃고 도플라밍고의 품으로 고꾸라지듯 안겼다. 도플라밍고가 갑작스레 로우의 허리를 잡아챈 탓이었다. 로우는 다시 몸을 바로 세우고 도플라밍고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도플라밍고가 강하게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탓에 벗어날 수 없었다. 도플라밍고는 다른 쪽 손을 들어 여비서들을 향해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 곧,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며 방 안에는 완벽하게 로우와 도플라밍고만 남게 되었다. 도플라밍고의 손이 로우의 정장 마이 안으로 들어가 검은 셔츠 위로 로우의 허리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로우는 잠시 몸을 움찔거렸지만 곧 금세 여유로운 표정을 되찾고 고개를 들어 도플라밍고의 눈을 바라보았다. 


  “오늘 스케줄이 빡빡하신 걸로 아는데요, 보스.”

  “잠깐인데 뭐.”


  도플라밍고가 웃으며 비어있는 손을 들어 로우의 뺨을 쓰다듬었다. 크고 마디가 굵어 투박하면서도 남자다운 손이었다. 로우의 뺨을 몇 번 쓰다듬던 손은 곧 단정하게 정리된 로우의 뒷머리로 향했다. 천천히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고 내려와 도착한 곳은 로우의 뒷목이었다. 로우는 그가 제 뒷목을 지금처럼 움켜잡을 때면 상상하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뒷목의 급소를 그가 쳐내리진 않을까 하는 상상을. 도플라밍고의 손에 제 뒷목이 한가득 들어차 움켜잡히는 느낌은 수백 번을 느껴봤어도 낯설고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이윽고 도플라밍고가 허리를 숙여 로우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붙였다. 로우는 역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팔을 들어 도플라밍고의 목에 두르곤 끌어안았다. 로우의 허리춤을 배회하던 도플라밍고의 손이 익숙하게 엉덩이로 내려가 적당하게 근육이 잡힌 엉덩이를 그러잡았다.


  “확실히 살 빠졌네. 요즘 바빠?”

  “…딱히 특별하게 바쁜 일은 없습니다만. 새로 온 형사 일도 있고 해서 그런가 봅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스타스 키드 일도 있고 말이지.”

  “…….”


  로우는 저도 모르게 딱딱해진 표정을 애써 풀었다. 경찰이 안 이상 당연히 도플라밍고 역시 알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로우는 혹시나 도플라밍고와 맞닿은 가슴에서 빠르게 뛰는 제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질까 조금 간격을 두고 떨어졌다. 정작 도플라밍고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로우는 그래서 더 무서웠다. 도플라밍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도저히 아무것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별 일 아닌데다가, 괜히 내가 알면 짜증내면서 다른 일 못 볼 게 뻔하니까 말 안 했겠지. 역시 내 똑똑한 로우.”

  “…네, 보스. 보스한테 말할 가치 없는 일들은 다 제 선에서 자르니까요. 딱히 유스타스 키드라고 해서 보스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판단하진 않았습니다. 유스타스의 도발 방식 아시잖아요. 쓸데없고, 유치한 것들입니다. 어차피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보스께 알려서 괜한 일에 신경 쓰게 하시기 싫었습니다. 미리 말씀 안 드린 점 죄송합니다.”

  “됐어. 원래도 어차피 웬만한 건 너 혼자서 처리했잖아. 네 말대로 유스타스 키드라고 해서 굳이 내게 알릴 필요는 없지.”


  로우의 허리를 한 번 강하게 끌어안은 도플라밍고가 로우의 이마에 짧게 입 맞추곤 떨어졌다. 로우는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릴 뻔한 걸 간신히 힘을 실어 버텨내곤 침착하게 넥타이핀을 집어 들었다. 잘 넘긴 걸까, 잘 넘긴 거겠지. 그래야만 한다.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본 이 시점에서 겨우 이런 일로 걸릴 수는 없었다. 


  “보스, 넥타이핀 마저 채우셔야죠.”

  “아아. 깜빡했군.”


  로우는 도플라밍고에게 다가가 떨리는 손을 겨우 잠재운 뒤 분홍색 넥타이를 잡아 넥타이핀을 끼웠다. 아침 내내 쓰러질 것처럼 긴장했던 것이 허무할 만큼 짧고 빠른 순간이었다. 허리를 숙여 로우의 입술에 다시 한 번 짧게 키스한 도플라밍고가 거울 앞으로 다가서서 짧은 금발 머리를 정리했다. 


  “로우.”

  “예, 보스.”

  “오늘 밤에 스케줄 비워놔. 일찍 들어올게. 내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머리를 다 정리한 도플라밍고는 옷매무새를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하고는 곧 문을 열고 나섰다. 거대한 방 안에 홀로 남은 로우가 물끄러미 침실 입구를 쳐다보았다. 어릴 적부터 참 많이도 드나들었지.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도 어쩐지 저 침실 입구만 보면 꼭 괴물이 살고 있는 성의 입구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게 트라우마라는 건가. 로우는 쓰게 웃으며 방문을 열고 나섰다. 일찍 들어와야 했으니, 키드를 만날 시간이 얼마 없었다. 로우는 펭귄이 구해다 준 대포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입력했다. 유스타스, 지금 시내에서 만나도록 하지. 


* * *


  저희로는 돈키호테 패밀리나 유스타스 패밀리의 보안망을 뚫는 게 도저히 무리입니다, 형님. 정 더 자료가 필요하시면 미호크 형ㅅ, 아 이제 탐정이라 불러야 하나. 아무튼 그분이 돈키호테 패밀리 쪽으로는 전문이시니까 찾아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주소는 문자로 찍어드릴게요.


  요삭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조로는 인상을 쓰고 휴대폰에 적힌 주소와, 제 눈앞에 있는 약간 허름한 건물의 철문을 바라보았다. 쥬라클 미호크. 한때 이 지역의 형사였다가 사퇴를 권유받은 후 사직서를 내고 지금은 사립탐정 일을 하고 있다고 했었다. 사퇴를 권유받은 이유는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돈키호테 패밀리를 무너뜨리려다 실패했다고 했다. 더 눌러 붙어앉아 경찰 일을 해봤자 결국 압박받는 일밖에 더 있냐며 사직서는 꽤 덤덤하게 낸 듯했지만, 여전히 돈키호테 패밀리를 무너뜨리는 걸 목표로 이 지역에서 사립탐정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경찰 일을 관두고 나니 정보를 수집하는데 더 범위가 넓어져서 이 분야의 정보 수집가라면 단연 최강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래서 별명은 매의 눈 미호크라고.


  조로는 조심스럽게 건물의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조금 물러나 기다렸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조로는 나름대로 참을성 있게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자리에 없는 건가. 괜히 허탕 쳤군. 조로는 짧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뒤돌아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순간, 철문이 끼익 하고 열리는 듣기 싫은 금속음이 들려왔고 조로는 본능적으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쥬라클 미호크 씨… 아니 음. 선배님 맞으십니까?”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조로는 가죽 재킷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경찰 신분증을 꺼냈다. 경찰 일에 종사했던 사람이라면 이편이 확실히 빠를 터였다. 


  “롤로노아 조로입니다. 이 구역에 새로 배정된 형사입니다.”

  “……그래서 내게 선배라는 호칭을 붙였군. 딱히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래서요?”


  조로는 크게 한 번 침을 삼켰다. 부디 관심을 가져줘야 할 텐데. 그리고 부디 필요한 정보를 서로 줄 수 있기를. 한쪽만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래가 파기되기 십상이었다. 쌍방 간에 이익이 되는 점을 서로 줄 수 있어야만 거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공통된 목표를 향해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기 마련이었다.


  “돈키호테 패밀리 건으로 찾아왔습니다. 협력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미호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조로는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나이스. 조로의 입가에 그제야 조금 여유로운 미소가 피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기어코 일주일이나 걸린 저... 분량 조절도 실패해서 죄송합니다... 쓸데없이 양만 많고 뭔가 진도는 하나도 안 뺀... 그런 퀄이라서 죄송합니다... 키드 안 내보내서 죄송합니다... 원래 콘티에는 키드가 있었어요 진짜에요... 근데 맨 처음의 조로우 부분이 너무 길어져서... 키드까지 넣으면 10,000자 거뜬히 넘을 거 같아서 분량조절 때문에 잘랐습니다 ㅠㅠ 키드는 가을님이 멋있게 보여주시겠죠...! (처맞는다) 아무튼 늦어서 정말 정말 죄송하고 중간에 나온 에이스는 그냥 끼워넣어 보고 싶었던 에이로우의 행복했던 한때입니다. 넥타이핀은 1편에서 나왔던 펭귄이 공수해준 특수 제작 넥타이핀으로 도청기 기능이 있는 넥타이핀입니다 1편을 참조해주세요 ㅇ.< 자 그리고 이제 4편 내용은 모두 지우시고 5편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