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piece/글

[도플로우] 낙인

팥_ 2013. 12. 24. 00:12

20130619


  왠지 모르게 목덜미가 간지러운 기분에 고개를 돌렸더니 역시나 집요한 시선이 잔뜩 나를 간질이고 있었다. 책에 빠져 조용한 줄만 알았더니. 하여간 뭐 하나에 빠지면 다른 건 생각도 안하고 그대로 집중해 버리는 저 집중력은. 이번엔 뭐에 빠졌길래 집중력 대상 1순위인 책을 꺾었으려나. 고개를 돌려 부러 눈동자를 쫓아가 마주하는데도 꿈쩍을 안한다. 결국 내가 먼저 얼굴을 붙잡고 가볍게 입술에 입 맞추고 나서야 꼬마 녀석의 시선을 내 눈으로 겨우 돌려냈다… 고 생각한 것도 잠시. 다시 눈동자가 돌아가는 게 너무나도 똑똑히 보여 나는 그냥 꼬마 녀석의 턱을 잡고 억지로 내 얼굴을 들이댔다.


  "이번엔 또 뭐에 빠지셨을까, 꼬마 의사양반."

  "……이거."


  그리고 꼬마 녀석의 손이 닿은 건 내 귓불이었다. 고무찰흙을 가지고 놀 듯 몇 번 가볍게 조물거리더니 결국 손가락이 닿은 곳은 내 귀걸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꼬마 녀석의 귀를 쳐다보았다. 아무런 자국도 없는 맨질맨질한 귀가 눈에 들어와 자연스레 손을 뻗어 몇 번 만지작거렸다. 부드러운 감촉이 꼭 어린애의 볼과도 같았다.


  "왜 두 개씩이나 해?"

  "멋있잖아."

  "안 무거워?"

  "이게 뭐 얼마나 한다고."


  흐음. 꼬마 녀석은 그러고도 몇 번을 더 내 귀걸이에 손을 대고 장난을 쳐댔다.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곧장 고막을 타고 전해졌다. 너도 하고 싶어? 꼬마 녀석에게 묻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답이 없었다. 나는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드리워지는걸 막지 못하고 꼬마 녀석의 검은 머리카락에 손을 집어넣어 잔뜩 헤집어 놓았다. 점점 일그러지는 표정이 꽤 보기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싫다고 대답하지도 않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는 건 긍정의 표시니까. 저 꼬맹이는 언제쯤 제대로 YES라는 대답을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깊게 골이 패인 미간에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 떼었다. 꼬마 녀석은 입술을 비죽 내밀고선 제 머리를 정리하더니 다시 내 귓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하고 싶다고 하는 편이 빠르겠네.


  "어울리겠는걸, 너한테도."

  "……."

  "혹시… 아플까봐 겁먹은 거 아니지?"

  "아니거든!!"


  역시 YES라는 말을 못한다니까. 나는 킬킬거리며 일어나 서랍으로 향했다. 두 개의 귀걸이 중 좀 더 높은 쪽의 위치한 귀걸이를 가볍게 빼내고 소독약으로 꼼꼼히 소독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아껴서 착용했던 귀걸이니만큼 반질거리는 광택이 꼭 새 것 같았다. 깨끗해진 귀걸이를 들고 나는 다시 꼬마 녀석이 웅크리고 앉은 소파로 향했다. 이리 와. 내 무릎을 탁탁 두드리니 또 입술을 비죽거리다가도 내 무릎에 앉아 품에 기대어 오는 게 꼭 애교에 서툰 애완동물 같았다. 그대로 녀석을 품에 끌어안고 왼쪽 귓불을 만지작대자 녀석이 품 안에서 화들짝 놀라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 지금 하려고?"

  "안 아프다니까 정말?"

  "그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럽…!"


  더 말을 듣고 있다간 몇 시간이 지나도 이 상태 그대로일 것 같아 나는 그냥 그대로 귀걸이에 힘을 주어 꼬마 녀석의 귓불을 관통시켰다. 좀 서두른 감이 있는 것도 같지만, 사실 생각하면 조금 흥분되는 점도 있었다. 이 귀걸이는 내가 20년이 넘도록 소중하게 다룬 귀걸이였다. 내 몸의 일부와도 같은 귀걸이로, 내가 직접, 저 꼬맹이의 몸에 흔적을 남긴다는 게 꼭 소유물에 도장을 찍는 기분이었다. 더 구체적이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노예에게 인장을 찍는 기분과도 같았다. 상처 하나 없던 귀에 내 귀걸이가 박혀 들어간다는 건 꽤 큰 기대감을 안겨 주었고, 그 기대대로 살이 튿어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쾌감이 주위를 휘몰아쳤다. 덜 여문 꼬마의 처녀지를 정복했을 때와 비슷한 쾌감이었다.


  "…잖아."

  "아프냐?"

  "……아니."

  "이거 꽤 소중한 거야. 20년이 넘게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데."

  "……."


  이 말에 꼬마 녀석도 나와 비슷한 쾌감을 느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멍하니 내 품 안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시선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날 올려다보는 꼬마 녀석의 이마에 키스하자 꼬마 녀석의 눈이 느리게 감겼다 다시 떠졌다. 그리고 나는 빠르게 반대쪽 귀에도 내 낙인을 남겨냈다. 살을 찌르는 그 느낌과 함께 꼬마 녀석의 몸이 내 품 안에서 움찔거리는 게 좀 더 쾌감을 증폭시켜주고 있었다. 다 됐다. 나는 발갛게 달아오른 꼬마 녀석의 귓불을 입에 담아 귀걸이까지 느리게 핥아낸 뒤 가볍게 깨물고는 거울을 건넸다.


  "마음에 들어?"

  "……응. 나한테도 꽤 어울리네."

  "나보다도 어울리는걸."


  나는 꼬마 녀석의 귓불에 손을 얹고 달아오른 온도를 즐기며 만지작거렸다. 아까의 맨질거렸던 귀와는 다르게 흔적이 생긴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반대쪽 손으로 내 귓불을 만져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귀걸이가 있던 곳이, 귀걸이 대신 움푹한 구멍만 남아있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귀걸이를 뺌으로서 흔적을 얻었고, 꼬마 녀석도 귀걸이를 함으로서 흔적을 얻은 셈이었다. 몇 번 계속 제 귀를 만지작거리던 녀석이 혼잣말처럼 작게 한 마디 뱉어냈다. 신기하네. 나는 꼬마 녀석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신기하네, 그 말 속에 감춰진 의미는 굳이 직접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신에게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아. 그리고 그 의미는 사실이고, 사실이 될 터였다.











20년 전 도피는 귀걸이가 두 개고 20년 후 도피는 한 개인걸로 영감을 받아 쓴건데... 사실 그냥 다음날 도피가 로우의 책상에 귀걸이 상자를 놓는다든가 할 생각이었다. 증식병이 도질 줄이야.

그리고 그냥 달달하게 갈 생각이었는데 끝에 와서 이렇게... 손 가는대로 막 쓰면 이런 꼴이 나오는구나. 그렇지만 도플로우는 달달과 집착을 넘나드는게 매력이니 나쁘지 않다.


로우의 귀걸이가 두개로 변한 이유는... 사랑싸움 한 번 거하게 하셔서 반항의 의미로 하나 더 뚫고 집나왔다 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