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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지아카마유/홍적먹]

팥_ 2013. 12. 24. 00:40

20131124


  짜증이 났다. 3학년인 나에게는 턱턱 이름에, 반말을 해대면서 2학년인 그 녀석한테는 성 뒤에 꼬박꼬박 '씨' 자를 붙이면서 경어를 하는 꼴이라니. 그걸 또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다른 2학년도 웃기기 짝이 없었다. 자존심도 없는 건가. 니지무라 슈조. 인기 많은 녀석이었다. 나와 같은 포지션으로 농구 실력도 그 '무관의 오장' 수준이었고, 성격도 좋아서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가 많았다. 그것까지는 나도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 버릇없는 부잣집 도련님이 니지무라 슈조에게만 경어를 쓰는 이유는 존경이라 했다. 비웃음이 절로 나왔다. 존경? 고작 2학년 짜리에게? 대체 뭘? 아버지에 대한 효성? 그딴 걸 아카시 세이쥬로가 존경할 리가 없지. 실력? 출중한 실력이었지만 아카시가 존경할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차라리 좋아한다고 하지 그래. 


  나는 내가 짜증이 나는 이유가 순전히 2학년에게는 경어를 쓰는 주제에, 3학년인 나에게는 반말을 쓰는 게 무시당하는 거 같아서인 줄로만 알았다. 당연히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 아카시가 니지무라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고나니 어쩐지 모든게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니지무라와 대화하면서 다른 사람인 것처럼 웃는 아카시라든가, 부활이 끝난 후에도 남아있는 둘이라든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니지무라의 손길에 얼굴을 붉히는 아카시라든가. 낯설기 짝이 없었다.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이는 그 낯선 모습들에 짜증이 났다. 결국 나는, 니지무라에 대한 나와는 다른 아카시의 취급에 짜증이 났던거였다. 나는 다른 이들과 똑같이 대하면서 니지무라에게만은 다른 차원의 사람처럼 대하는 것에 짜증이 났던거다. 이제 내가 네 말대로 순순히 그 빌어먹을 환상의 식스맨인지 뭔지가 됐으니 관심 밖이라는 건가. 나는 본래 누군가를 따라한다든가 하는 것을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전혀 티는 내지 않았지만 거의 처음으로 누군가의 관심 속에 든다는 것에 사실은 조금 기뻤다. 그래서 아카시의 훈련 프로그램을 순순히 따랐던 거였다. 쿠로코 테츠야의 영상을 보며 이런 걸 따라해야 한다는 데에 짜증이 치밀었지만 너, 아카시 세이쥬로가 나를 네 영역 안에 두는 한 버틸만 했었다. 그렇게 내가 쿠로코 테츠야의 대신이 된 후, 그렇게 너는 나를 가차없이 영역 밖으로 밀어냈다. 


  사실은 네 영역 안에 들어있는 사람에 처음부터 나는 없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페이크같은 거였다. 겉으로는 영역 안에 들어와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애초부터 영역 밖이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숨겨진 네 영역 속에 들어있던 것은 니지무라 슈조, 오로지 그 녀석 하나였다. 그 사실을 깨우치자마자 아카시를 만나고 해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내려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파도가 지나간 백사장의 낙서처럼 흔적도 없이, 그렇게.


  그리고 나는 우연히 들어간 휴일의 체육관에서 니지무라 슈조와 아카시 세이쥬로가 키스하고 있는 걸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