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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가아카/화적] 처음이라는 것

팥_ 2013. 12. 24. 00:40

20131118

 

  처음부터 좋아했냐고? 건방지게 자신만만한 표정 짓지마, 타이가. 아니니까. 처음엔 재수없었어. 아, 농담 아니고 진짜로.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를 놈이 테츠야 옆에서 알짱대는게 보기 안좋았거든. 유치하게 질투하지마. 원래 테츠야는 내 말만 들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것 뿐이야. 테츠야가 슬슬 내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 게 다 너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나타난 시점이랑 거의 비슷했거든. 거기에 너랑 테츠야랑 맨날 달라붙어서 서로 빛이네 그림자네 하는 꼴까지 보고 있자니 당연히 둘이 사귄다고 생각했지. 뺏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이해가 안된다고? 테츠야한테서 너를 뺏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러면 테츠야도 예전으로 돌아갈거고, 뺏고 나서는 그냥 버리면 되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마, 타이가. 로맨틱한 시작이 아니라서 실망했어? 지금은 정말 좋아하니까 됐잖아. 아무튼. 그래서 너한테 그렇게 군 거야. 너희 집에서 옷에 물 쏟았던 것도 일부러 그런거고. 설마 몰랐어? 둔하네 정말. 그럼 혹시 네 침대에서 일부러 잠들어 버린 것도 몰랐어? 대단해라, 타이가. 나 아니었으면 누가 널 데려갔을까. 나는 아무데서나 그렇게 잠드는 사람이 아니야. 혹시 이것도 모를까봐 말해주는 건데 너네 집에서 샤워하고 수건 한 장만 두르고 나온 것도 다 계획이었어. 표정을 보아하니 몰랐던 모양이네. 내가 아무한테나 몸 보여주고 다닐 것 같아?

 

  처음에는 정말로 테츠야에게서 너를 뺏어와서 버려야겠다는 목적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어. 근데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무슨 소녀마냥 반응하는 게 웃기더라고.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얼굴 빨개지고 버벅대는게 소녀지 뭐야? 점점 내 행동의 이유는 네 반응을 보기 위해서로 변해갔어. 재밌다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좋았어. 누가 나한테 그렇게 반응하는게. 대체로 내게 보이는 반응들은 충성하거나, 겁을 먹거나, 복종하거나 이런 류였지 너처럼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거든. 너랑 그러고 있으면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어. 또 뭐가 불만이야. 솔직히 내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잖아, 타이가? 인정하기 싫으면 말아. 그렇게 네 반응이 좋았던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네가 좋아져갔어. 안 믿어도 좋아. 진짜니까. 내가 소녀같다고?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지마, 웃기니까. 네가 테츠야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걸 네가 나한테 고백하고서야 알았어. 내가 뭘했던 거지 싶더라. 있지도 않은 일 때문에 이 짓까지 한 거잖아.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네가 좋아졌는데. 

 

  그러는 너는. 당연히 첫 눈에 반했지? 거짓말은 소용 없어. 다 보이니까. 지금 네 얼굴, 내 머리색만큼 빨개졌어 타이가. 아, 테츠야한테 그렇게 붙어다닌 게 다 내 정보 알겠다고 그런거라는 것도 다 알고 있어. 이건 테츠야한테 들은 사실이니까 발뺌하려고 들지 말고. 그렇게 바닐라 쉐이크를 사다 바쳤다며? 서로 첫 감정이 이렇게 다르기도 힘들텐데, 신기해라. …인상 좀 펴, 타이가. 그렇게 실망했어? 내가 널 좋아한 이유가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널 좋아한다는데, 타이가. 정말로. 내가 미안할게 뭐가 있어. 다 사실인데. 널 좋아해준다는데 내가 왜 미안해야 돼? …알았어. 미안하다고 치자. 아무튼 정말 소녀스럽다니까. 이마 이리 대. 뽀뽀해줄게. 옳지. 착하다. 

 

  뽀뽀해줬으니까 삐진 척해도 이제 소용 없으니까 조용히 하고 이리 와서 나를 안아. 응. 잘했어. 이제 그만 자자. 늦었어. 그래. 착하다. 너도 잘 자. 좋은 꿈 꾸고. 좋아해, 타이가. 응. 사랑해. 나도. 정말로 자자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