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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로우] 균열 (for. 가을 님)

팥_ 2013. 12. 24. 00:36

20131026


  아무리 내가 너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주어도 언제나 너의 시선의 끝은 그 빌어먹을 형제들이었다. 내가 너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찰나의 순간뿐이었다. 내가 너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그 찰나의 순간. 그 순간만이 나는 간신히 네 시선의 끝자락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시선을 다신 도망가지 못하게 묶어놓을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너는 곧장 빼앗아 원상복귀 시켜놓곤 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너를 사랑하는 나도, 너의 사랑을 갖는 형제도, 그들을 증오하는 나도, 그런 주제에 티도 못내는 나도. 조금 지쳤을지도 모른다. 받는 것 없이 무턱대고 무언가를 쏟아준다는 것은 그 어떤 이라도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이 지긋지긋한 싸움에 질려버린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기 보단, 방법을 바꾸는 방식을 선택했다. 내가 널 포기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너에게서 첫 번째로 사랑받을 수 없다면, 첫 번째로 미움 받고 싶었다. 그 어떤 짓을 해서라도 네게 첫 번째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너를 강간했다. 내 아래에서 흔들리는 너는 아름다웠다. 매서운 눈동자에 한 가득 가득 나를 담고, 나를 향해 증오를 표출하는 너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너에게서 첫 번째가 되는 기분은 수도 없이 상상해왔던 그 느낌보다도 수백 배로 짜릿했고, 황홀했으며, 아찔했다. 하지만 내 아래에서 벗어난 너는, 다시 원래의 너로 돌아가 있었다. 증오마저도 나는 네게서 완전하게 받아낼 수 없는 존재였다. 언제나 그렇듯 너의 가슴은 D 형제로, 너의 두 눈은 도플라밍고로 차있을 뿐이었다. 

 

  수도 없이 너를 안았다. 너를 때리고, 협박했다. 하지만 도플라밍고로 검게 메워진 두 눈을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정확히 열일곱 번째 너를 안았을 때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너에게 첫 번째일 수 없구나. 이미 너라는 존재는 애정과 증오로 구석구석 가득 차있어서 나 따위가 함부로 균열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왜 나는 항상 너에게 첫 번째일 수 없는지, 어디에도 물을 곳은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 다음 두 번째, 세 번째도 나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해일처럼 몰아닥친 허망함과 애처로움에 그대로 주저앉아 나를 연민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참 불쌍한 새끼야, 유스타스 키드.

 

 

 

 

 

 

 

 

 

가을님이 주신 감성멘트에 삘이 꽂혀서 지른 글. 금손님은 금손님답게 그냥 던지시는 감성멘트도 퀄이 남달라서;;; 

왜 나는 항상 너에게 첫 번째일 수 없는지, 어디에도 물을 곳은 없었다. 확실한 것은 그 다음 두 번째, 세 번째도 나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이 바로 그 감성멘트... 너무 좋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