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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세미시라]

팥_ 2016. 3. 21. 20:00





  제 눈앞까지 쌓인 서류더미를 뒤적거리던 시라부는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는 손짓에 고개를 들었다. 

  “안녕, 좋은 아침.”

  그러자 오이카와가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건네며 시라부의 책상 위로 종이컵을 올려놓았다. 시라부는 작게 인상을 쓰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제 밤 샜어요.”

  “그래? 그럼 뭐.”

  시라부의 말에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이며 올려놓았던 종이컵을 도로 집어 들더니 자연스레 제 입가로 가져갔다. 책상에 걸터앉아 서류더미에서 서류 하나를 뺀 오이카와는 커피를 홀짝이며 설렁설렁 서류를 넘겨보았다. 크게 울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시라부는 눈을 치켜뜨고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해서 서류를 뒤적거렸다.

  “저기,”

  “긴장 좀 해야 할 걸.”

  참다 못 한 시라부가 한 소리를 하려는 찰나, 이미 전부 눈치 채고 있었다는 듯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시라부는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할 말이 있으면 그냥 하면 될 것을,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부러 살살 사람 속을 긁어놓고 화를 낼라 치면 그제야 치고 들어온다. 함께 일을 한지 몇 년이 흘렀어도 짜증스러운 부분이었다.

  “도쿄 지부에서 센티넬 하나를 보낸대.”

  “…….”

  시라부는 말없이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나 큰 하자가 있을지 기대되네요.”

  도쿄 지부에서 보내오는 센티넬이라 함은, 그 좋은 시설을 갖춘 곳에서도 버티지 못한 센티넬이란 뜻이다. 오이카와가 시라부가 근무하는 연구소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연구소지만 실은 나름대로 국가의 비밀 기관이었다. 이 나라에는 몇몇 개의 큰 센티넬 연구소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도쿄 지부는 연구소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연구소이며, 그답게 가장 좋은 시설을 자랑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도쿄 지부는 위험하다고 분류되는 센티넬들을 맡아 연구하고 있었다.

  반면에 이곳은 비밀 기관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다르게 시설은 평범한 연구소 수준에 속했다. 그럼에도 굳이 비밀스러운 기관으로 분류된 이유라 하면, 이곳은 정부에 의해 ‘쓸모없다’고 판단되어진 센티넬을 자유롭게 ‘처리’하는 곳이었다. 센티넬을 대상으로 원하는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엔 나라가 처리해주었고, 성공적으로 실험을 마쳤을 경우엔 다시 다른 연구소로 보내졌다. 

  “아직 안 읽어 봤어?”

  오이카와는 방금 전까지 제가 훑어보던 서류를 시라부의 앞에 가볍게 던져주었다. 시라부는 서류를 받아들어 첫 장을 넘겼다. 밀린 잔업을 하느라 아직 읽어보지 못한 서류였다. 이른 아침에 어린 보조 연구원이 전해주고 간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세미 에이타.”

  “스물다섯 살.”

  “……그 때 그 사건?”

  시라부의 물음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센다이 시에서 일어난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 일반적인 연쇄 살인사건과 다른 점이라면 열세 명의 죽음이 단 5분 만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는 없었고, 경찰은 용의자를 추리기가 힘들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센티넬의 위험성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마치 헐리우드의 히어로 영화처럼 센티넬들을 히어로로 만들고 싶어 했다. 센티넬 중에서도 잘생긴 센티넬을 추려 광고까지 찍게 만들며 그들의 ‘좋은’ 활동들을 부각시켰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둠은 전부 꽁꽁 감추고서.

  그러니 센티넬이 일으킨 살인 사건을 은폐하는 일은 당연했다. 실제로 세미가 벌인 대형사건 외에도, 뉴스에 조차 나오지 않고 아예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넘어가는 센티넬의 살인 사건은 수도 없이 많았다. 세미가 저지른 사건의 경우는 워낙에 큰 사건이었기에 사건 자체는 은폐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그딴 짓을 벌인 이유가 단순히 ‘자기 제어’를 못해서? 그거 모든 센티넬들이 다 못하는 일 아닌가요?”

  “일반적인 상태로부터 폭주까지의 텀이 상당히 짧은 편이고, 일단 폭주하게 되면 그대로 이성이 송두리째 날아감과 동시에 기억도 상실. 폭주할 경우엔 웬만한 가이드로도 진정이 안 된대. 도쿄에서는 거의 늘 묶어놓고 지냈다나봐.”

  “당신 같은 부류인가.”

  “농담도.”

  시라부의 중얼거림에 오이카와는 웃으며 책상에서 내려왔다. 시라부는 읽던 서류를 덮고 오이카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이카와는 흰 가운에 달린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네 담당이야.”

  오이카와의 말에 시라부의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농담이시죠?”

  “나는 농담 같은 거 모르는데?”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더럽게 난폭한 센티넬이지. 알아, 나도. 그런데 어떡해? 웬만한 가이드로는 진정이 안 된다는데. 우리 연구소에서 네가 쿨링 능력은 제일이잖아. 아니지, 거의 일본 제일 아닌가?”

  “쓸모없는 능력으로 추켜세우셔 봤자 안 기쁩니다.”

  시라부는 인상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책상 구석에 던져두었다. 

  “오이카와 씨가 맡아도 되는 거 아닌가요. 제가 필요할 때만 부르신다거나.”

  진심으로 담당하기 싫구나. 오이카와는 속으로 생각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리고는 아주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괜히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오이카와가 맴도는 자리 뒤로 경쾌한 발소리가 뒤따랐다.

  “안타깝게도 나는 토비오 때문에 바빠서.”

  토비오? 시라부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아, 엊그제 새로 왔다던……”

  “개화와 함께 시력을 잃은 아이.”

  오이카와는 입술을 씰룩였다. 아마도 시라부가 담당하게 될 ―그가 목숨을 걸고 거절하지 않는 이상― 세미와는 다르게 토비오, 카게야마 토비오는 난폭함과는 거리가 먼 센티넬이었다. 다만 무슨 일인지 센티넬로서의 능력이 발현됨과 동시에 시력을 잃어 폐기처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오이카와는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을 받고 이곳으로 온 아이였다. 

  “분명 회복 불가능이라 했던 것 같은데요.”

  “아냐, 아냐, 내 생각은 달라.”

  오이카와는 검지를 세워 살살 흔들며 발걸음을 멈추고 시라부의 앞에 섰다.

  “일시적으로 닫힌 거지. 능력이 개화하면서, 동시에 그걸 감추고 싶은 거야. 일종의 방어기제랄까. 지금 갖고 있는 능력도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조금 전에 말했 듯이 감추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그게 전부라고는 볼 수 없어. 그게 무엇이든 간에 엄청난 거니 그렇게 자아가 감추려드는 거겠지.”

  그래서 아주 기대가 돼. 오이카와는 웃으며 혀를 내어 입술을 핥았다. 시라부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작게 한숨을 쉬곤 옆에 던져두었던 서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책임감 하나는 강한 녀석이니까. 그럼 수고. 오이카와는 작게 인사를 건네곤 경쾌한 발걸음으로 방을 빠져나왔다. 빨리 카게야마 토비오를 보고 싶었다. 아마 제 연구에 있어 좋은 실적을 올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