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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도우시] 나는 아직도 너를

팥_ 2016. 2. 27. 21:36


우시른 합작에 제출한 글입니다.

http://hw1793.wix.com/ushijima-right#





  이맘때쯤이면 꼭 청승맞게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날짜를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몸이 먼저 기억을 떠올렸다. 갑작스레 떠오르는 옛 기억에 날짜를 확인하면 꼭 그 즈음이었다. 텐도는 헛웃음을 지으며 거칠게 일어난 얼굴을 쓸어내렸다. 오늘은 심지어 그 기억이 꿈에 먼저 나타나 저를 깨웠다.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켜 날짜를 확인해보면 역시나였다.

  오늘은 우시지마 와카토시와 헤어진 지 5년 째 되는 날이었다.



  당연하게도 시작은 텐도였다. 키 189cm에 몸무게 84kg, 누구도 함부로 덤비지 못할 정도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주제에 그 속내는 오로지 배구로만 가득 차 새하얗기 그지없다는 사실이 퍽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잘 모르는 이는 그가 무서울 정도로 무뚝뚝한 사람이라 말하겠지만 조금이라도 그의 곁에 함께 있었던 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우시지마는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우시지마의 행동엔 어떤 계산도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이렇게 행동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고, 저렇게 행동하면 저런 결과가 나올 것이고, 하는 것들이 없었다. 우시지마는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혹자는 그런 우시지마의 ‘언행’들이 필요 이상으로 솔직해 상처를 준다고 말하겠지만 그에게서 한 번이라도 칭찬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여태껏 들어온 수많은 칭찬들보다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짧은 한 마디가 훨씬 더 매혹적이라는 걸 인정할 것이다. 우시지마의 말은 전부 진심이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법이었다. 

  텐도가 갓 입학했을 때, 우시지마는 같은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선배들과 동급생들 모두에게서 신뢰를 받는 스파이커였다. 물론 거기엔 우시지마가 시라토리자와 중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도 한 몫을 했겠지만, 중요한 건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우시지마가 1학년 주제에 모두에게서 신뢰받는 스파이커였다면 텐도는 모두가 반신반의하는 1학년 블로커였다. 시라토리자와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1학년들은 모두 견디기 힘들어했지만 우시지마만은 묵묵하게 전부 해내었고, 텐도는 다른 1학년들보다도 더 빨리 탈진했다. 언제나 제일 먼저 구토를 하러 달려가는 텐도를 보며 모두가 수군거렸다. 기초 체력도 부족하고 블로킹도 제멋대로 감에 의존해서만 하는 녀석을 어째서 감독님이 데려온 건지 모르겠다고. 그 수군거림들 사이에서 우시지마는 언제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처음으로 우시지마와 같은 조에 편성돼 함께 연습 경기를 치렀을 때, 텐도는 우시지마에게 물었다. “괜찮아?”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 우시지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텐도를 바라보았다. “내 블로킹.” 텐도의 덧붙임에 우시지마는 그제야 작게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제대로 막기만 한다면 상관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그 무덤덤한 얼굴에서 튀어나온 말은 참 직설적이고도 틀린 곳 하나 없는 말이었다. 텐도는 자신이 우시지마에게 단번에 반한 계기가 있다면 아마 그 답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태껏 만나온 고리타분하고, 쓸데없이 제 주장만 관철하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모든 게 즐거웠다. 시원하게 상대의 코트 위로 내리 꽂는 우시지마의 스파이크도, 올리는 족족 자신에게 읽혀 분한 얼굴을 하는 상대팀의 세터도, 제 손에 맞고 떨어진 공을 받아내기 위해 몸을 던졌지만 눈앞에 떨어진 공을 보며 허탈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얼굴들도, 전부 즐거웠다.

  그 날 텐도는 거의 대부분의 공을 완벽하게 막아내었고, 그 날 이후로 수군거림은 들을 수 없었다. 우시지마는 조용히 텐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이 텐도를 덮쳤다. 그 어떤 블로킹을 성공했을 때도 느껴본 적이 없는 전율이었다. 


  텐도가 우시지마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텐도는 굳이 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우시지마의 일이라면 제일 먼저 팔을 걷었고, 언제나 우시지마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거는 것도 텐도였다. 어느 날은 세미가 텐도에게 문득 말을 던졌다. 어떤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해서 던진 물음은 아니었다. 농담에 가까운 어조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은 말이었다. “너 꼭 와카토시 짝사랑 하는 애처럼 군다?” 그 물음에 텐도는 크게 웃으며 세미의 등을 가볍게 때렸다. “그렇게 티 났어?” 자연스럽게 들려온 대답에 세미는 당황한 얼굴로 ‘농담이지?’ 하고 되묻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텐도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더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우시지마도 알았을까? 텐도는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했다. 텐도뿐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우시지마가 배구 외의 것에 관심이나 준 적이 있었던가. 

  그랬기에 텐도의 고백은 졸업식 날 이루어졌다. 나름대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원래는 평생을 제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려 했던 감정이었다. 우시지마는 이미 대학 진학 대신 실업 팀과의 계약을 마친 상태였고, 텐도는 아마 앞으로 다시는 코트 위에 설 날이 없을 터였다. 졸업을 하고 나면 우시지마와 자신 사이의 공통점은 ‘한 때 배구를 했던 사이’ 정도로만 남게 될 것 같았다. 어쩌면 동창회 같은 지루한 모임이 아니고서야 다시 만나게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우시지마가 동창회에 나올 지도 의문이었다. 이런 답지 않은 걱정들은 텐도로 하여금 제 마음을 고백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거라면 이런 마음을 품은 사람이 한 명쯤은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우시지마에게 고백했던 ‘여학생’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도 제 고백은 그 수많은 고백들보다는 조금 더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자신감이 동기부여에 한 몫을 했다. 

  

  “있지, 와카토시군.” 텐도의 부름에 우시지마는 언제나처럼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고 텐도를 바라보았다. 우시지마는 텐도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지만, 그래도 언제나 최선을 다해 텐도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 점 역시 사랑스러웠다. 텐도는 밝은 얼굴로 제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우시지마에게 건넸다. 장난스러운 몸짓에 우시지마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텐도가 건넨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꼭 청혼하는 기분이네. “지금까지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 긴장되진 않았다. 이상하게도 생각보다 술술 흘러나왔다. 원하는 것도, 잃을 것도 없는 고백이었기 때문일까. 텐도는 손을 뻗어 우시지마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짧은 머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그럼 갈게.” ‘또 만나자.’ 같은 소리는 사치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굳이 뒷말을 잇지는 않았다. 텐도는 뒤를 돌아 발을 옮기려고 했다. 그러나 제 소매 끝을 붙잡는 손길에 차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텐도.”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는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와카토시 군, 나 안 들을래.” 텐도는 괜한 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대답했다. 우시지마는 대답하지 않았고, 잡은 소매를 놓지도 않았다. 결국 텐도는 한숨을 쉬며 느리게 뒤를 돌았다.

  “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텐도를 똑바로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뭘?” “네가 말한 이야기 말이다.” 텐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시지마가 제대로 제 말을 이해하긴 했는지 의심이 되었다. ‘좋아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니까. 아마도 그는 통상적으로, 친구 사이에서 사용하는 그런 의미로 이해했을 게 뻔했다. 텐도는 머뭇거리다 손을 뻗어 우시지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내가 와카토시 군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리고 태연하게,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떠들었다. “세미가 말해주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우시지마의 말에 마냥 장난스러운 목소리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에이타 군, 쓸데없는 말을…… 텐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서 계속해서 생각해봤다.” “언제 알았는데?” “삼 개월 전쯤.” 삼 개월 전이라 함은 아마 그날따라 유독 세미가 진짜 고백하지 않을 거냐며 계속해서 물었던 날일 것이다. 텐도는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과는 정 반대로 펼쳐진 상황에 아무리 저라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네가 좋다.” 그 말을 뱉는 우시지마의 얼굴은, 고백에 대답하는 사람의 얼굴이라기엔 너무나도 경직되어있었다. 저렇게 설렘도, 흥분도 없이 좋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다른 사람이라면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등을 돌릴 수 있었겠지만 우시지마의 경우는 달랐다. 말했듯이 우시지마는 무조건 제 진심만 말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시답잖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우시지마의 말에는 흥분한 얼굴도, 달아오른 얼굴도 전부 필요 없었다. 중요한건 ‘우시지마’가 대답했다는 사실이었다. 텐도는 결국 우시지마를 와락 끌어안고 말았다. “혹시 에이타 군이 그렇게 대답하라고 한 건 아니지?” 농담이 반 정도 섞인 질문에 우시지마는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됐어.” 그리고 텐도는 더욱 우시지마를 세게 끌어안았다. 


  그 후로는 순탄한 생활이었다. 다툼도, 싸움도 없었다. 종종 텐도가 토라지는 일은 있었지만 길어봐야 하루였다. 텐도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꼬박꼬박 우시지마의 경기를 챙겼고, 우시지마는 연습을 마친 후 제 집 대신 텐도의 집으로 찾아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정말이지 영원할 것만 같은 나날이었다. 


  이별은 우시지마의 해외 프로리그 진출과 함께 찾아왔다. 정확히는 텐도의 마음에 거센 돌풍이 찾아왔다. 텐도는 당연히도 진심으로 우시지마를 축하해주었다. 정말로 그가 자랑스럽고, 대단하고, 또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우시지마는 정말로 자신이 목표한 것을 이루어냈다. 텐도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다. 재능의 유무와는 상관없었다. 모든 목표를 이루는 일에는 크나큰 노력이 뒤따랐다. 텐도는 우시지마의 바로 옆에서 우시지마가 제 목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전부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그러니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텐도에게 있었다. 우시지마가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한다는 건 못해도 반년은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텐도는 자신의 성격을 잘 알았다. 연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로 느긋하게 ‘믿음’ 운운하며 기다릴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분명 초조해하고, 또 초조해하고, 발을 동동 구를 것이다. 저만 괴로운 건 상관없었다. 문제는 우시지마였다. 그 초조함은 자연스레 우시지마에게 흘러갈 것이다. 겨우 우시지마가 원하는 곳에 왔는데, 이제와 그의 발목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혹여 저 때문에 우시지마가 제 꿈을 접는다거나, 혹은 연습에 지장이 간다거나 한다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텐도는 그렇게 혼자서 이별을 결심했다. 

  “와카토시 군, 우리 헤어질까?” 고백을 했던 날처럼 이별을 고한 날 역시 다소 뜬금없는 말로, 그리고 직설적인 말로 말문을 열었다. 우시지마는 대답이 없었다.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텐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텐도는 차마 그런 우시지마의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텐도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우시지마는 대답했다. 텐도는 고개를 들어 우시지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역시 평소와 같은 얼굴이었다. 우시지마는 텐도에게 이유를 묻는 듯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꼭, 이미 예견하고 일이었던 듯 덤덤한 얼굴로 텐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텐도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우시지마가 저를 싫어해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긍정하는 대답을 주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 우시지마는, 텐도가 어떤 이유 때문에 자신에게 이별 선언을 했건 간에 그게 합리적인 이유라 생각하고 순순히 텐도의 말에 응했을 것이다. 사실 우시지마의 대답은 텐도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위해서’에 가까운 대답이었을 것이다. 혹은, 어쩌면 제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몰랐다. 우시지마는 사람의 감정을 파악하는 데에 서툴렀다. 그래서 우시지마는 조금이라도 텐도가 기분이 나빠 보인다 싶으면 꼭 먼저 텐도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미안하다.’ 우시지마가 그렇게 물어올 때면 그 원인이 진짜로 우시지마였건, 아니건 텐도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스무 살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저렇게 하나하나 물어오는 것이 순수한 아이처럼 보여 사랑스러웠다.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우시지마 와카토시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자꾸만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끝을 낸 관계이니 제가 서운해 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 어떤 질문도 묻지 않고, 꼭 텐도의 말을 기다려왔다는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우시지마 속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우시지마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닐지도 몰랐다. 제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시지마는 저 무덤덤한 얼굴 뒤에서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급속도로 텐도의 머리를 채워나갔다. 텐도는 입술을 깨물었다. 될 수 있는 한 얼굴을 더 보고 싶었다. 한 번 안아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꾸만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정복하고 휘저어댔다. 텐도는 고개를 숙이고 급하게 등을 돌렸다. 뒤에서 우시지마가 우두커니 제 등을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텐도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갔다. 다리가 풀릴 것만 같았다. 



  이 날이면 꼭 텐도는 술 약속을 잡았다. 괜히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5년이나 지나버린 일에, 그것도 제가 자초한 일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건 너무 한심스러웠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잡념이 자꾸만 솟았다. 

  텐도는 높아진 목소리로 친구들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고는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주머니에 넣은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슬쩍 확인한 액정엔 ‘에이타 군’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텐도는 다시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어차피 들려올 소리는 뻔했다. 굳이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텐도는 고개를 젖혀 단번에 잔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때였다. 그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텐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저를 새 주장으로 선발해주신 감독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동료들을 한 데로 모아……’ 텔레비전에서는 우시지마의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의 하단엔 ‘남자배구 국가대표 새 주장 우시지마 와카토시’라는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계속해서 네가 신경 쓰인다 했지. 이러려고 그런 걸까? 결국 우시지마는 국가대표의 주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섰다. 전부 다 5년 전에 내가 놓아줬던 덕분이지. 텐도는 애써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사실은 그 일과는 상관없이 결국 우시지마는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전부 성공적으로 해냈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가슴이 시큰시큰했다.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결국 용기가 없었던 건 자신이었다. 우시지마라면, 해외에서 프로 생활을 하면서도 저와의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텐도는 자신이 없었다. 우시지마가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을 거라 생각했고, 그런 제 마음을 우시지마에게 감출 수 있으리란 자신도 없었고, 결국은 우시지마에게 칭얼대며 어리광을 부리고 짐을 지어주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끊어낸 관계였다. 우시지마는 자신이 있건 없건 결국 저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그게 너무나도 대단하고, 또 서글펐다. 물론 그래서 널 좋아했지만. 

  텐도는 쓰게 웃으며 화면을 바라보다 간신히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나 쟤랑 옛날에 같은 팀이었다?” 텐도의 친구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이것저것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텐도는 웃으며 빈 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아까 전보다도 더 잡념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하나씩 질문해, 하나씩. 텐도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친구들은 제각기 하고 싶은 말들을 시끄럽게 뱉어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서서히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어갔다. 왁자지껄한 술집 안에서 텐도가 앉은 테이블만이 유일하게 조용했다. 

  “야, 너 왜 울어?” 적막을 깬 건 어느 한 친구의 목소리였다. “내가 왜 울어?” 텐도는 웃으며 손을 들어 눈가로 가져갔다. 뜨겁고, 축축했다. 친구들은 모두 당황스러운 얼굴로 텐도만 바라보고 있었다. 텐도는 소리 내어 웃으며 주먹을 쥐고 눈가를 닦았다. “나 안 울거든? 무슨 소리야, 진짜.” 농담처럼 말을 던지고 텐도는 계속해서 웃었다. 웃고, 눈가를 비볐다. 그러나 물기는 잦아들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텐도의 손을 적셨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 말했고, 이제는 5년이 지났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어. 이미 그게 일상이 되어서 일상인 줄도 몰랐다.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아직도 너를 좋아하는구나.

  텐도는 결국 작은 목소리로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떨어져 바지를 적셨다. 텐도는 결국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희미하게 떨려오는 텐도의 어깨 뒤로 우시지마의 인터뷰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