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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로우] 버킷리스트

팥_ 2013. 12. 24. 00:28

20130706


  기말고사가 끝나고 수업 들을 의지가 없는 아이들에게 내려진 과제는 버킷리스트 작성하기였다. 나는 멍청하게 칠판에 써진 '버킷리스트 10가지 쓰기' 라는 글자와 내 앞 책상에 놓여진 하얀 A4 용지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다 쓰고 나면 짝이랑 바꿔 보는거야, 짝이 앞으로 네 버킷리스트 도우미라고 생각하면 돼. 낭랑한 여선생의 목소리에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슬쩍 옆자리의 유스타스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나와 같이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유스타스는 열심히 적고 있었다. 죽기 전에 꼭 해야할 일이라. …모르겠다. 여전히 유스타스는 고개를 푹 파묻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유스타스도 저렇게 열심히 쓰는데 나는 왜 아무 것도 생각이 안나는 건지. 나는 결국 샤프를 들고 아무거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 의사 되기

 

  …그리고 더 이상 적을 게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딱히 목표란 걸 갖고 사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것보다도 유스타스 저 녀석은 대체 언제부터 저렇게 할 게 많았던 거지. 나보다도 더 목표의식 없이 그 때 그 때 하고 싶은 대로 살던 놈이 아니었던가. 흐음. 나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유스타스의 것을 엿보려 했으나 녀석이 은근슬쩍 팔로 가리는 턱에 결국 엿보기에 실패하고 말았다. 

 

  "어차피 짝이랑 바꿔 보는 건데."

  "미완성 작은 보여주는 거 아님."

 

  작게 투덜거렸더니 또 작게 대꾸해온다. 혹시 버킷리스트 100가지라도 쓰고 있는 건가. 나도 뭔가 적긴 해야 할텐데. 그냥 열 가지만 채우면 되겠지. 

 

2. 밥 먹기

3. 잠 자기

4. 샤워하기

5. 가슴 한 가운데에 타투하기

6. 애완 곰 기르기

7. 책 읽기

8. 고등학교 졸업하기

9. 대학교 입학하기

10. 

 

  마지막 문항을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떠오르지 않아 계속 머리를 쥐어 짜내고 있는데 시간 종료를 알리는 여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각자 짝이랑 바꿔보도록. 이 정도면 뭐. 많이 노력했으니까 괜찮겠지. 나는 유스타스에게 내 종이를 넘겨주며 유스타스의 종이를 건네받았다. 어디, 얼마나 포부가 큰 목표들이길래 그렇게 감췄나 볼까.

 

1. 너랑 눈 마주치기

2. 너랑 대화하기

3. 너랑 영화 보기

4. 너랑 밥 먹기

5. 너랑 데이트 하기

6. 너랑 손잡기

7. 너랑 포옹하기

8. 너랑 뽀뽀하기

9. 너랑 키스하기

10. 너랑…

 

  나는 유스타스의 종이를 건네받자마자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막아냈다. 여태껏 이런 걸 쓰느라 그렇게 숨기고 흥분해서 열심히 써댄 거야? 저 덩치로 이런 소녀 같은 짓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게다가 대체 녀석은 나한테 뭘 기대한 건지, 내 버킷리스트를 받자마자 옆에서 꿍얼꿍얼 난리가 났다. 너는 인생에 목표도 없냐, 죽기 전에 해야할 일이 겨우 이런거냐, 어떻게 이렇게 포부가 없냐, 어쩌고 저쩌고. 그러는 자기는 죽기 전에 해야할 일이 나랑 스킨십이면서. 게다가 10번은 또 왜 말줄임표람. 누가 봐도 진행상 들어갈 말이 떡하니 보이는데. 답지 않게 수줍어한 게 보이는 유스타스의 글씨에 나는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수줍음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녀석이 나를 두고 별의 별 상상을 해가며 저렇게 수줍어했다는게 정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는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않고 펜을 들었다. 마무리는 지어야지. 몇 글자를 끼적이고 고개를 드니 유스타스가 여전히 심통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내게 종이를 건네고 있었다. 

 

  "뭐 임마."

  "너 말이야 진짜… 진짜…… 아니다."

 

  입술을 잔뜩 삐죽거려놓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는 유스타스에게 제 종이를 건네주고 내 종이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받자마자 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7살이랑 사귀는 것도 아니고 정말. 슬쩍 유스타스의 얼굴을 보니 제 머리색처럼 새빨개져선 입술을 씰룩거리는 게 아주 봐줄만한 표정이었다. 

 

  "애도 아니고 정말."

  "……야!! 내가, 내, 내가 쓰려던 거 이거 아니거든?!"

  "시끄러워, '키드'."

 

  이름값 한다니까 정말. 나는 웃으며 내 삐뚤빼뚤한 글씨로 완성된 버킷리스트의 마지막을 천천히 만져보았다. 

 

10. 유스타스랑 결혼하기

10. 너랑 섹스하기

 

 

 

 

 

 

 

 

 

 

 

연애 극초반의 키드로우라는 설정. 의식의 흐름으로 쓴 조각글 주제에 오래걸렸다. 이유는... 로우 버킷리스트 쓰는게 힘들어서. 최대한 의욕없어 보이게 뭘 써야할지... 의식의 흐름으로 글쓰는 버릇 들여서 큰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