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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카게]

팥_ 2015. 7. 25. 02:13





  "우시지마 씨, 사살해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탈출해 정보를 빼돌릴 지 모르는,"

  다급하게 외치던 남자는 우시지마의 손짓에 입을 다물었다. 우시지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 앉은, 정확히 말하자면 강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저를 노려보는 앳된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고등학생인가? 아마 끽해야 20대 초반이겠지. 시한폭탄이 터지기 만을 기다리는 적막 속에서 우시지마는 천천히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단단하게 물린 재갈 사이로 마지막 발악 같은 비명이 새어나왔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일 뿐이었다. 적막 속에 울리는 비명은 더더욱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성할 뿐 그 이상의 역할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우시지마는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저를 노려보는 아이의 턱을 쥐고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이는 거칠게 몸부림을 쳤고, 아이를 둘러싸고 있던 수십 개의 총구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아이의 몸부림은 우시지마의 악력을 이길 수가 없었다. 꽁꽁 묶인 몸으로 발버둥을 쳐봤자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아이는 곧 얌전해졌지만 그 눈매만큼은 얌전해질 기색이 없었다. 한참동안 아이를 내려다보던 우시지마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반인이 아니군."

  작게 내뱉어진 말에 요동치는 것은 아이도, 우시지마도 아닌 주변인들이었다. 아이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던 이들 중 몇몇은 총구를 내리고서 저들끼리 쑥덕거리기 바빴다. 아이는 여전히 우시지마를 노려보았고, 우시지마는 여전히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얼굴로 아이를 응시했다. 둘을 둘러싼 웅성거림이 점점 커져갔지만 아이와 우시지마는 미동조차 없었다. 커져가는 웅성거림 사이에서 우시지마가 아이의 목덜미를 낚아채 바닥으로 짓누른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이의 얼굴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웅성거림을 압도했고 자연스레 이목은 다시 집중되었다. 아이는 우시지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지만 역시나 우시지마를 이길 수는 없었다. 한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바닥에 짓누른 우시지마는 다른 손을 입가로 뻗어 아이의 입에 물려있던 재갈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동시에 악에 찬 고함이 튀어나왔다.

  "이거 놔!!"

  우시지마는 아이의 고함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티셔츠 목부분을 잡아 늘리며 아이의 목덜미를 살피기 시작했다. 

  "여, 역시, 사살을…!"

  "안 돼."

  사살을 요청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우시지마는 손짓 대신 입을 열었다. 티셔츠를 강하게 잡아 늘리는 우시지마의 손길에 마침내 아이의 낡은 티셔츠는 거친 소리를 내며 찢어지고 말았다. 이, 거, 놔…! 아이의 목소리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대신 모두의 시선이 닿은 곳은, 티셔츠가 찢어지며 드러난 아이의 등이었다.

  등과 목을 잇는 부분에 선명하게 작은 바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우시지마는 그것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옆에 선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멍하니 아이의 등을 바라보던 남자는 우시지마의 손짓에 그제야 부랴부랴 묵직한 기계를 내밀었다. 우시지마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기계를 받아들고는 그대로 바코드 위에 가져다대었다. 

  "힉…!"

  차가운 감촉에 잠시 몸부림을 멈추고 몸을 떨던 아이는 이내 조금 전보다 더 거세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싫, 어, 놔! 아이는 소리쳤지만 우시지마는 오히려 더 강하게 누를 뿐이었다. 곧, 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우시지마는 그제야 아이에게서 손을 떼고 기계가 띄운 화면을 바라보았다.

  "카게야마 토비오, 17세…"

  우시지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역시 가이드였군."

  그리고 이어진 우시지마의 중얼거림에 다시 한 번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지만 온몸이 묶여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째서 일반인의 편에 섰지?"

  우시지마는 몸부림을 치는 아이를 보며 조금 전보다도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는 바닥을 기던 것을 멈추었지만 바닥에 얼굴을 묻고 있어 그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대답해라."

  우시지마는 아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품에서 작은 권총을 꺼냈다. 다시금 적막이 흘렀다. 그 적막을 찢고 흐른 쇠붙이의 소리는 무엇보다도 처참했다. 아이도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머리를 겨누는 죽음의 소리를. 아이는 한참동안 대답이 없었다. 방아쇠에 걸린 우시지마의 손가락이 느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낡은 권총이 끼익대는 소리를 내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아이가 입을 열었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당신네들은 센티넬밖에 모르잖아!"

  적막이 울음에 스며들었다.

  "가이드는 그저 센티넬을 살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지! 여기저기 불려가서 섹스나 하는 그런 도구! 당신들이 그렇게 취급하면서, 가이드가 같은 편이길 바라는 거야? 뻔뻔한 건 알았지만 도가 지나치시네."

특히 우시지마, 당신. 아이는 흙투성이가 된 얼굴로 우시지마를 노려보았다. 아이를 겨누고 있던 우시지마의 총이 서서히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이의 눈동자 역시 그것을 따라 서서히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곤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3분 남았어."

  아이는 총에서 시선을 떼고 우시지마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얼굴에 피어나는 뜻모를 미소를 가만히 보고 있던 우시지마의 얼굴이 아이를 만난 후 처음으로 급격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다 끝이야. 이 전쟁도, 당신들도, 나도."

  "…피해라."

  우시지마가 중얼거렸다. 예? 옆에 서있던 남자가 되물었다. 하지만 우시지마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단도를 빼어드는 것을 대신했다.

  "생체 폭탄이군."

  빠른 목놀림으로 아이의 목에 칼을 겨눈 우시지마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아이는 그런 우시지마를 똑바로 노려보며 입가에 걸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죽이면 곧장 터질 거야."

  아이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우시지마 역시 그 사실을 알았다. 우시지마는 아이의 목에 가져다 댄 칼에 조금 힘을 주었다. 아이의 살갗에서 방울방울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우시지마를 지켜보았다. 우시지마는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