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짝사랑
“밥 안 먹고 뭘 그렇게 봐?”
감자기 들려온 친구의 목소리에 나는 턱을 괴고서 물끄러미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친구에게로 옮겼다. 친구는 내 앞에서 식어가고 있던 식판을 턱으로 가리키며 감자 샐러드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냐, 먹어.”
언제부터 그곳을 보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내 기억은 고작해야 배식을 받고 자리에 앉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와카토시는 밥 안 먹는대?”
나는 젓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하던 것을 멈추고 친구를 바라보았다. 친구의 시선은 내가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곳을 향해 있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옮겼다.
“당분간 식단 관리 때문에 도시락 먹는다고 했어.”
나에게 했던 말대로 그는 다른 쪽 식탁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쟤는 2학년 아냐?”
시라부 켄지로와 함께.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2학년이랑 원래 저렇게 친했나?”
“…글쎄. 밥이나 먹자.”
나는 일부러 대답을 회피하며 식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게 밥을 퍼서 입에 밀어 넣으면서도 나는 아무런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몇 달 전, 팀에서 많이 겉돌던 후배가 내게 찾아와 조심스레 털어놓았던 말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 같았다. ‘우시지마 선배를 좋아해요.’
시라부는 배구부 1군 중에서는 흔치 않게 일반 전형으로 들어온 아이였다. 그리고 기어코 레귤러 자리까지 따낸 그를 보며 나는 차마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자존심이 유별나게 강한 그에게 괜한 말을 했다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시라부는 언제나 제 몸 주위에 울타리를 하나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것은 단답뿐이었고, 먼저 말을 거는 일 역시 거의 없었다. 이러다 팀 분위기를 해칠까 전전긍긍하며 걱정하던 나에게 한 가지 유일하게 마음이 놓였던 점은 시라부가 와카토시에게만큼은 한층 울타리를 풀고 대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시라부가 내게 찾아왔다. 나는 그가 나를, 와카토시 외의 타인을 먼저 찾아 용건을 전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기에 감독의 지시 같은 것을 전하러 온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시라부는 좀처럼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라커를 정리하며 시라부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특별하게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저, 오오히라 선배.’
내가 라커를 모두 정리하고 문을 닫을 때 까지도 시라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내가 먼저 시라부에게 입을 열자 그제야 시라부는 내 눈치를 살피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로 굴리더니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살짝 숙이고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눈을 맞추었다. 네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기 위한 표시였다. 그가 말하려는 것이 무슨 일이든 간에 나를 먼저 찾아와 말을 꺼내려 한다는 것이 감동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가 않았다. 시라부에게 나는 언제나 우리 부원들의 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좋은 선배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겨우 마음 정리가 된 듯 시라부는 눈동자를 이리저리로 굴리던 것을 멈추고 곧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시지마 선배를 좋아해요.’
오랜 시간에 걸쳐 그가 뱉어낸 말은 정말이지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 대해 되묻거나, 혹은 의심하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시라부의 눈이 무서울 정도로 반듯했고 빛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나를 바라보고 얘기하는 시라부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는 일뿐이었다.
“선배.”
나는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시라부였다. 2학년이 3학년 교실 안까지 들어오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라 몇몇 아이들이 모여 시라부와 나를 바라보며 쑥덕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시라부가 교실에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기에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의자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리고 시라부의 옷자락을 잡고 교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시라부는 순순히 나를 따라 나왔다.
“아까 왜 그렇게 보셨어요?”
시라부는 교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 목소리엔 제법 날이 서있어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곤 시라부를 바라보았다. 날이 서있던 것은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날카롭게 얼어붙은 눈동자가 저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나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우시지마 선배 꾀어내서 홀리기라도 할 까봐?”
“……시라부.”
“혹시 제가 무슨 짓이라도 할 까봐 그렇게 감시하듯 보신 건가요?”
시라부의 눈에는 이제 차가운지 뜨거운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의 냉기가 서려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괜히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본 게 아니야.”
“그럼 뭡니까.”
시라부는 조금도 날을 가라앉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원래 이런 아이였지. 한동안 내게 와카토시와 관련된 고민들을 몇 가지 털어놓았던 일들로 인해 시라부가 내게 완전하게 마음이라도 연 것처럼 착각하고 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짧게 깎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참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
“너 와카토시 앞에 있을 때는 다른 사람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랑은 전혀 다르잖아.”
내 말에 시라부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점심시간까지 같이 있는 건 처음 보니까… 고백한 건가 싶어서 궁금해서 본 거였어. 나도 참 오지랖 넓었네. 신경 쓰게 했다면 미안해.”
나는 눈썹을 팔자로 만들어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만들어보이곤 대답했다. 어느새 시라부의 얼굴에선 냉기가 조금 가셔있었다. 시라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내게서 눈동자를 떼고 가만히 바닥을 내려다보며 이리저리로 눈동자를 굴릴 뿐이었다. 그 모습에 어쩐지 나는 조금 용기가 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물어도 될 것 같았다. 반년이 넘는 시간동안 궁금해 하면서도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던 말이었다.
“시라부.”
“……네.”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고백하지 않는 거야?”
사실 우스운 질문이었다. 시라부가 보통의 남학생들처럼 평범하게 이성을 좋아하고 있는 상태라면 모를까, 한 학년 위의 동성 선배를 좋아하고 있는 이상 고백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시라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주장이 강한 시라부라면 그런 좋지 못한 시선들이나, 후에 닥쳐올 안 좋은 소리들은 전부 무시하고 자신의 뜻을 제대로 전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라부는 저에게 가끔씩 상담 비슷한 것만을 해올 뿐 와카토시에게 직접 마음을 전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실은 늘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희미한 궁금증으로 남아있었다.
“지금 이 상태가 좋으니까요.”
시라부의 눈동자가 똑바로 나를 향했다. 나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서 시라부를 바라보았다.
“이제 우시지마 선배도 저를 봐줘요. 함께 대화하고, 밥도 같이 먹는 사이까지 됐어요. 저는 지금 이 상태가 행복해요. 괜히 욕심을 부려서 이 균형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아요. 딱히 선배랑 그렇고 그런 관계로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
“제가 원하는 건 하나밖에 없어요.”
시라부는 잠시 입을 닫았다. 나는 그의 주먹이 옴찔거리는 것을 보았다.
“우시지마 선배를, 지금처럼 가까운 곳에서 늘 바라볼 수 있는 것. 기왕이면 우시지마 선배가 행복하게, 아무런 걱정도 없이 좋은 일들만 자신을 둘러싼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
“…….”
“제가 고백하면 선배에겐 잔뜩 걱정거리가 생겨버려요. 오오히라 선배도 아시잖아요, 우시지마 선배가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는지. 그 사람 분명 이것저것 잔뜩 생각하느라 힘들어질 거예요. 나는 지금도 행복한데 괜히 욕심까지 부려서 선배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 실례했습니다. 시라부는 그렇게 말을 끝맺고 내게서 등을 돌려 복도의 끝으로 점점 멀어져갔다. 나는 시라부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차마 교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점점 작아지는 그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의 등은 나나 와카토시에 비하면 한참 작은 등이었지만 어쩐지 그 위에 지고 있는 짐만은 그의 키보다도 거대한 것이 올라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시라부가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을 곰곰이 되뇌었다. 정확히는 그의 얼굴을 되뇌었다. 저는 지금도 행복해요. 그렇게 말하는 시라부의 입가엔 분명히, 분명히 미소가 걸려있었다.
“레온, 뭐해! 다음 수업 이동 수업이야, 빨리 가자!”
“아, 응, 잠깐만.”
나는 친구의 부름에 대충 손을 들어 손짓하며 창문 아래로 펼쳐진 교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라부와 와카토시가 나란히 교정을 걷고 있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까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만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뜨거운 초여름의 햇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얼굴들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환히 웃으며 와카토시를 올려다보는 시라부나, 언뜻 보면 평소처럼 딱딱한 얼굴이지만 자신이 보기엔 분명히 평소보다는 편안한 얼굴로 시라부를 내려다보는 와카토시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친구가 나를 불러 재촉할 때까지 한참동안 창가에 몸을 기대고 그 둘을 내려다보았다.
“레온! 안 가?”
“지금 가!”
나는 고개를 돌려 친구를 향해 대답하며 창문을 닫고 돌아섰다. 반짝이던 두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는 이제야 시라부가 내게 했던 말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