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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카게] 두 번의 이별

팥_ 2015. 6. 20. 22:28



  몸을 옭아오는 서늘한 감촉에 쿠니미는 감겨있던 눈꺼풀을 느리게 들어올렸다. 잠들어있던 다섯 가지의 감각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쿠니미는 제 몸을 파고드는 서늘한 온도에 그것을 확인하려 눈동자를 돌리는 것보다도 먼저 청각을 곤두세웠다. 툭, 투둑, 툭, 쏴아아아… 역시 비가 오는구나. 쿠니미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일이었다. 

  “쿠니미…….”

  품속에서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흡사 어미를 잃은 어린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소리였다. 쿠니미는 눈을 감은 채로 몸을 돌렸다. 비 때문인지 끈적거리는 공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몸이 맞닿은 부분만은 끈적거림도, 눅눅함도 없었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울 뿐이었다. 쿠니미는 조용히 제 품에 들어온 서늘한 몸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 몸뚱어리는 그에 화답하듯 쿠니미의 옷자락을 꾹 쥐고서 깊게 얼굴을 묻었다. 쿠니미는 느린 움직임으로 그것의 등을 쓸어내렸다.

  “조금만 더 자자.”

  쿠니미가 중얼거렸다. 그것이 품에서 조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떨림까지도 고스란히 전부 전해지고 있었지만 쿠니미는 애써 그것을 무시하며 억지로 다시금 잠에 빠져들었다.



두 번의 이별



  쿠니미가 가늘게 눈을 떴다. 흐린 시야 사이로 곤히 잠든 얼굴이 들어왔다. 쿠니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늘 이렇게 카게야마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감각에 눈을 떠보면 카게야마가 제 몸을 꼭 끌어안고 잠들어있었다. 처음에는 꿈인 줄로만 알았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몸에 닿는 그 차가운 감촉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처음으로 카게야마가 찾아왔던 날 쿠니미는 진지하게 이 일을 기뻐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기뻐하자니 너무나도 현실적이지 못했고, 기뻐하지 않자니 사랑했던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제가 드디어 미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얼굴이며, 몸이며, 목소리, 그리고 그 촉감, 전부 다 카게야마 토비오 그 자체였다. 단 한 가지 체온만 제외하고. 쿠니미가 알던 카게야마는 늘 열기를 품은 아이였다. 오히려 쿠니미의 몸이 서늘하다면 서늘한 편이라 여름에는 카게야마가 쿠니미의 품을 파고들었고, 겨울에는 쿠니미가 카게야마의 품을 파고드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 카게야마는 쿠니미보다도 서늘한 체온을 가지고 있었다. 서늘하다는 표현보다도 싸늘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어느 여름 날, 먼지가 가득한 깊은 지하실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 눅눅하고도 퀘퀘하고 차갑고 섬뜩한 그 느낌. 그것이 카게야마를 뒤덮고 있었다. 쿠니미는 그런 것들을 느낄 때면 다시금 우울해졌다. 역시 내가 알던 카게야마와는 다르구나. 말도 안 되는 이상 속에서 현실로 끌어내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카게야마가 이렇게 쿠니미에게 나타나는 것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카게야마는 꼭 비가 오는 날에만 쿠니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강하게 부는 그런 날. 잠든 쿠니미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카게야마가 나타나곤 했다. 카게야마가 처음 나타났던 날도 그런 날이었다. 천둥이 요란하게 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일어난 쿠니미가 창문을 닫기 위해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쿠니미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번개가 비춘 제 침대에, 아무것도 없어야 할 침대에 카게야마가 누워 있었다.


  “쿠니미……”

  카게야마의 웅얼거림에 쿠니미는 생각에 잠겨있던 정신을 다시 현실로 돌려놓았다. 카게야마는 몸을 크게 떨며 쿠니미의 품 안으로 더욱 제 몸을 밀어 넣었다. 쿠니미는 익숙하게 그런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익숙해질 만도 했다. 카게야마가 찾아온 지도 벌써 십 년째였다. 

  “…자꾸 냄새가 나.”

  한참을 떨던 카게야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던 쿠니미의 손이 멎었다. 

  “무슨 냄새?”

  쿠니미가 조용히 물었다. 쿠니미의 목소리는 잔뜩 긴장한 사람처럼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처음 듣는 소리도 아니었다. 매번 들어온 말이니 아마 이어질 말도 늘 들어온 것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그럼에도 쿠니미는 항상 이렇게 긴장을 하고 물었다. 물을 때마다 코끝이 시큰거리고 심장이 저릿하게 울려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비 냄새…”

  카게야마는 그렇게 말하며 쿠니미의 가슴팍에 제 얼굴을 더욱 깊게 묻었다. 쿠니미는 그 말에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용히 다시금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코끝이 시큰거리고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쿠니미는 조금 더 힘을 주어 카게야마를 끌어안았다. 늘 생각하지만 그가 제 얼굴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카게야마가 세 번째로 왔던 날, 쿠니미는 카게야마에게 물었었다. 비 냄새가 싫으냐고. 그 말에 카게야마는 조심스레 쿠니미의 품 안에서 얼굴을 들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게야마의 눈을 마주한 쿠니미는 몸을 흠칫 떨었다. 그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그것이 그대로 비수가 되어 쿠니미의 가슴을 찔러왔다.

  싫어.

  ……왜?

  쿠니미가 힘겹게 되물었다. 

  눅눅하고, 퀘퀘하고…

  하지만 곧 그는 그것을 후회했다.

  시체 썩는 냄새랑 비슷해.

  그 순간, 쿠니미는 심장이 추락하는 소리를 들었다.


  카게야마가 네 번째로 왔던 날, 그 전날 쿠니미는 미리 일기예보로 태풍이 온다는 사실을 듣고 제 옷과 침대에 잔뜩 향이 짙은 탈취제를 뿌려댔다. 이렇게 하면 그가 냄새를 지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있던 곳은 유독 여자들이 많았어. 화장품 가게가 있던 층이었나 봐.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품에서 얼굴을 떨어뜨리고 말했다. 쿠니미는 제 방법이 틀렸음을 바로 직감했다.

  화장품 냄새, 향수 냄새… 그것들에 시체 썩는 냄새가 섞여서 났었어.

  ……미안, 미안해.

  쿠니미는 뜨겁게 차오르는 덩어리를 꿀꺽 삼켜내고 간신히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산산조각나 흩어질 것처럼 무섭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쿠니미 냄새면 돼.

  카게야마는 다시 쿠니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꼭 그러쥐고 그의 동그란 머리 위로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알겠, 알겠어, 미안해. 안 그럴게. 미안해…

  그 때부터 쿠니미는 샴푸, 바디샤워, 심지어는 세탁기에 넣을 세제마저도 향이 적은 것으로 고르기 시작했다.


 “나가려고?”

  쿠니미가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발을 딛고 일어서자 카게야마가 다급하게 따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쿠니미는 말없이 옷장으로 향했다. 나갈 거야? 카게야마가 뒤에서 한 번 더 물었지만 쿠니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쿠니미는 잘 정리된 옷장을 뒤적거려 옷걸이에 걸린 옷 하나를 빼어들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만의 정장이 필요했던 날, 카게야마가 조용히 선물해줬던 옷이었다. 십 년 전 그 일 이후로는 한 번도 꺼내 입었던 적이 없었지만 옷은 여전히 구겨진 곳 하나 없이 반듯했다. 

  왜 네가 내게 오는 지 알 것 같아. 쿠니미는 생각했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까짓 제 용기와 두려움보다도 다른 중요한 것이 있었다. 

  너의 안식.

  “카게야마.”

  쿠니미는 옷을 들고 카게야마에게로 걸어와 허리를 낮추었다. 카게야마의 눈이 쿠니미가 들고 있던 정장에 쏠렸다가 다시 쿠니미의 얼굴로 돌아왔다.

  “너도 같이 갈 거야.”



  돌아온 카게야마와의 외출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없을 테니 아마 마지막이기도 할 것이다.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팔 안에서 오들오들 몸을 떨며 걸었다. 쿠니미는 천천히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무서워… 카게야마가 중얼거렸다. 괜찮아, 카게야마, 괜찮아. 쿠니미는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내린 곳에서 쿠니미는 작은 꽃집으로 들어갔다. 백합 한 다발 주세요. 카게야마는 말없이 그런 쿠니미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꽃집 주인이 분주하게 꽃다발을 만드는 동안 쿠니미는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쿠니미와 카게야마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을 때 쿠니미는 차마 눈을 돌리지 못했다. 다시는 보지 못할 얼굴일테니. 쿠니미는 착잡한 마음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채 가리지 못하고 주인이 내민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꽃집에서 나온 쿠니미는 조용히 걷기만 했다. 카게야마 역시 조용히 쿠니미를 따라 걸었다. 카게야마는 이미 이곳을, 이 걸음의 목적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쿠니미는 아마 자신이 눈을 감고도 이 길을 찾아 걸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공동묘지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쿠니미는 차마 더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매번 여기서 실패했었다. 카게야마를 만나야한다는 생각에 이곳까지 오고, 오고, 또 왔었다. 한 때는 매일같이 왔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쿠니미는 결정적인 용기가 부족했다. 이 많은 비석 사이를 헤치고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름을 찾아 헤맬 용기가, 그리고 그 비석을 맞닥뜨릴 용기가 없었다. 이미 그의 장례까지 치렀으면서도 묘는 찾아갈 용기가 없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만 매번 쿠니미는 이 입구에서 주저앉고 말았었다. 비석에 적힌 그의 이름을 보게 될 순간이 두려웠다. 정말로 카게야마가 죽었다는 것이 현실로 들이 닥칠까봐. 간신히 지탱해나가던 세계가 한 순간에 무너질까봐.


  카게야마는 십 년 전, 정확히는 십일 년 전에 죽었다. 무섭게 폭풍우가 불던 날, 백화점에서. 카게야마가 백화점에 큰 스포츠 용품점이 들어왔다며 가보자는 것을 졸리다는 이유로 거절해 결국 카게야마 혼자 보냈던 것이 그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백화점이 무너졌다. 살아있는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까. 카게야마의 시신을 찾은 것은 꽤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까지도 살아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쿠니미는 심장이 수천 갈래로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그 어두운 곳에서 구조대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차라리 즉사했다면, 그랬다면… 

  비 냄새가 싫어. 무서워. 시체 썩는 냄새랑 비슷해.

  카게야마는 그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냄새를 맡으며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 우리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쿠니미는 죽고 싶어졌다. 너는 왜 나에게 왔을까. 무서운 곳에서 홀로 기다렸는데, 차가운 땅에 묻혀서까지 홀로 기다려야 해서? 와주지 않는 나를 네가 직접 보러 왔어? 그랬어, 카게야마? 


  쿠니미는 카게야마의 손에 우산을 쥐어주고 그의 비석 앞에 섰다. 차가운 비가 순식간에 전신을 흠뻑 적시고 흘러내렸다. 그래도 카게야마보다는 안 차갑네. 쿠니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품에 안고 있던 꽃다발을 비석 앞에 내려놓았다. 진한 백합 향기가 비 냄새에 묻어 이리 저리로 흩어졌다.

  “카게야마.”

  쿠니미는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는 쿠니미의 우산을 쥐고 우두커니 서서 쿠니미를 보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

  “쿠니미.”

  “백합…… 샀어. 이거면 충분히 비 냄새가 나도 괜찮을 거야. 내 냄새보다는 아니겠지만…… 괜찮을 거야.”

  쿠니미는 떨리는 입술을 열어 또박또박 말을 뱉어냈다. 카게야마의 얼굴 위로 어둠이 드리워졌다고 생각했다. 

  “쿠니미.”

  쿠니미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그의 얼굴을 끝까지 피하지 않고 보기 위한 노력이었다. 

  “내가 갔으면 좋겠어?”

  카게야마의 목소리에선 비 냄새가 났다. 

  “내가 오는 게 싫어?”

  눅눅하고, 퀘퀘하고, 서러운 냄새였다.

  “카게야마, 나는……”

  쿠니미는 몇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나는… 카게야마의 시선이 저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움츠러들어선 안 됐다. 첫 번째 이별도 제대로 봐주질 못했는데, 최후의 이별까지 이럴 수는 없었다. 쿠니미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최대한 힘을 주어 버텼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카게야마가 살아있건, 혹은 살아있지 않건 상관없었다.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바라. 쿠니미는 시야가 뜨겁게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 

  “응, 쿠니미.”

  카게야마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쿠니미의 앞으로 걸어왔다. 카게야마의 손에 쥐어줬던 우산은 어느새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쿠니미는 눈을 감았다. 온몸을 적신 비보다도 차가운 손이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차가운 입술이 느리게 제 입술을 덮어왔다. 나이 서른 먹고 비 맞으면서 우는 일이 생길 줄은 몰랐네. 쿠니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뻗었다. 손안에 동그란 머리가 익숙하게 감겨왔다. 온통 차가운 것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뜨거운 물기가 눈가에 자꾸만 어렸다. 첫 번째 이별은 갑작스러웠지만, 두 번째 이별은 제가 먼저 선언한 것이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자만이었다.

  서서히 차가운 기운이 사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쿠니미는 끝까지 눈을 뜨지 못했다. 제 입술에서, 코끝에서 비 냄새가 났다. 눅눅하고, 퀘퀘하고, 서럽고, 사랑스러운 냄새였다.







#카게른_전력_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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