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게야마를 처음으로 왕이라고 부른 것은 나였다. 처음엔 그저 작은 혼잣말로 시작된 것이었다. 내 토스 속도에 맞추라고! 2군과의 합동 연습경기에서 화를 내던 그를 보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왕이 따로 없네. 내 혼잣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다음 연습부터 카게야마는 ‘왕’이 되어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그 혼잣말을 꼽을 것이다.
“카게야마.”
미닫이문을 열며 카게야마를 불렀지만 카게야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다. 최근 몇 달간 내가 가장 많이 본 그의 모습이었다.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 전부인 창밖을 뭐가 그리 재밌다고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는지 모를 그의 옆모습. 카게야마가 내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감히 화를 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그의 옆에 다가가 잘 정리되어 책상 위에 얹어져있는 가방을 집어들뿐이었다.
“가자.”
이어진 내 말에도 카게야마는 묵묵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축구부가 운동장을 거침없이 활보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괜한 죄책감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끼며 그것을 강제로 억누르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카게야마의 책상 옆에 놓인 목발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매서운 손길이 순식간에 내게서 목발을 낚아챘다.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고개를 느리게 들어올렸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싸늘하게 요동치는 카게야마의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요한 교실에서 그의 숨소리만이 커다랗게 들려왔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 그 와중에도 나는 그가 저번처럼 과호흡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차마 몸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동자만 굴려 어디 봉지가 없나 찾아보았다. 그러나 곧 머리 위에서 축축히 젖은 한숨이 쏟아졌다.
“…가자.”
카게야마는 진정된 호흡으로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두 먹을래?”
오늘도 카게야마는 말이 없었다. 몇 달째 겪는 일이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둘만의 하굣길은 언제나 무섭도록 고요했다. 처음에는 나도 괜히 이것저것 혼잣말을 떠들어보기도 하고, 카게야마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대부분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거나 혹은 단답으로 대화를 가차 없이 잘라내곤 했다. 그런 대화가 며칠, 몇 주를 반복하여 나타나자 나 역시 결국 입을 열지 않게 되었다. 익숙해질 법도 했다. 아니, 익숙해져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묘하게 공기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다시 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평소와 같이 조용히, 느리게 제 갈 길을 걷는 카게야마와는 다르게 나는 혼자 초조함에 안달이 나있었다.
뭐가 그렇게 다른데? 모르는 이가 봤다면 물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가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대답할 자신은 없었다. 원체 내 말재주가 서투르기도 했지만, 딱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래, 눈. 눈동자였다. 근래 몇 달간 카게야마의 눈동자에서는 초점이란 것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공급받은 전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로봇과 같은 느낌이었다. 하다못해 로봇은 사람이 조종하면 그 말이라도 들었다. 하지만 카게야마의 머릿속엔 그 어떤 명령도 들어있지 않았다. 전원이 들어오긴 하니 입력받았던 명령대로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한다. 그 뿐이었다. 최근의 카게야마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눈동자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비록 그 생각이 무시무시한 생각일지라도, 비관적인 생각일지라도, 나는 감사했다.
“킨다이치.”
카게야마가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당황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카게야마를 따라 멈춰 서서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고요한 하굣길에서 카게야마가 먼저 나를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 평소와 다른 상황을 반가워해야할지, 무서워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 혼란스러운 얼굴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의 얼굴은 잔잔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카게야마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너 왜 배구 그만뒀어?”
그리고 튀어나온 말은, 카게야마의 얼굴이 어땠던 간에 상관없이 내가 감히 예측할 수 없었던 말이었다.
“…….”
“동정했어?”
“아냐!”
카게야마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카게야마가 배구부를 쉬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곧 배구부를 그만두었다. 나는 아무의 눈도 마주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서,
카게야마가 돌아오면 저도 다시 올게요.
“너, 너 없는 동안에 나 혼자 너무 훌쩍 실력이 늘어날까봐 그랬다! 공평하게 나도 같이 쉬다가 너 다시 하면 나도 할 거야!”
얼굴에 열이 올랐는지 목 윗부분이 후끈거렸다. 카게야마가 이렇게 화를 낼 거라는 건 뻔히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에게 배구부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부활동은 너를 집까지 데려다 준 후에 다시 돌아가서 하면 된다고 어눌한 거짓말로 어설프게 둘러대었었다. 카게야마는 말없이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금 전 저를 동정했느냐고 물었을 때의 그 날카로운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지만 여전히 묘한 기운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이나 카게야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을까, 카게야마는 다시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느리게 앞으로 목발을 짚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움직임을 바로 따라가지 못하고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다가 서둘러 카게야마를 따라 다리를 움직였다.
“그냥 다시……”
카게야마가 또 한 번 무어라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마저도 한 번에 듣지 못했다. 다시 물어봐도 들려줄까? 나는 멍청하게 군 자신을 자책하며 되물었다.
“어? 모, 못 들었어…”
내 물음에 카게야마는 다시 한 번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그냥 다시 시작하라고.”
늘 보던 그의 옆모습이 오늘따라 무거웠다. 차마 이유를 묻지 못할 정도로.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카게야마는 닫았던 입술을 스스로 다시 열어 목소리를 내었다.
“……어제 병원에서 들었어.”
카게야마의 말에는 목적어가 빠져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배구 못 한대.”
그의 말과 동시에 나는 내 안을 메우고 있던 무언가가 우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
어느 날부터인가 모두들 카게야마를 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 별명이 재미있다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카게야마는 그 별명을 아주 싫어해서 어디서든 그 단어가 스치듯 들린다 싶으면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매서운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보곤 했다. 나는 카게야마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재밌어 일부러 몇 번 더 불러보기도 했었다.
이렇게 심각한 사태를 만들 줄은 모르고서.
나는 어느 집단이 한 사람을 단체로 싫어하게 된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인 줄은 몰랐다. 어렸다고 말하면 변명이겠지만 정말로 어렸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카게야마를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왕이라는 그 좋지 못한 별명을 부를 때도 싫어해서 불렀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를 놀리는 게 재밌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카게야마가 병원에 실려 갔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온 쿠니미의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집에서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의자가 바닥으로 넘어진 탓에 부모님이 무슨 일이냐며 놀라 방문을 여셨지만 나는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뒤이어 들려온 쿠니미의 목소리에는 이유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나는 현기증을 느껴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2군들한테 린치를 당했다나봐.
그리고 다음날, 카게야마는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몇 달간 배구를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물론 우리에게 직접 말을 해준 건 아니었다. 나는 고작 감독님에게서 대신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뒤이어 카게야마의 하교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감독님의 말에 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손을 들었다. 무엇이 내 손을 들게 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죄책감. 그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마음이 내 손을 들어올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별명이 없었더라면 다른 이들이 이 정도로 카게야마를 카게야마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무리’라는 개념이 중요했다. 무리라는 것은 자신들을 더욱 강하게 해준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일을 정당화시켜주기도 했다. 그리고 카게야마를 제외한 모두가 카게야마를 ‘왕’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들의 무리를 더욱 쉽게, 그리고 더욱 커다랗게 만들 수 있도록 돕는 행위였다.
나는 그 행위의 시발점이었다.
◈
“내일부터는 데려다주지 않아도 돼.”
카게야마의 집까지 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말이 없었다. 다시 일상으로, 다시 평소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카게야마의 집 대문 앞에 섰을 때 카게야마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왜?”
나는 후들거리는 손을 뒤로 감추고 물었다. 그러나 후들거리는 다리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카게야마가 눈치 채지 못하기만을 바랐다.
“휠체어 샀거든.”
카게야마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살아오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이럴 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도쿄로 이사 갈 거야. 큰 병원으로 옮기면 고칠 수도 있대.”
서늘한 밤바람이 옷깃을 스쳤다. 셔츠자락이 얕게 펄럭였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기만을 반복하며 카게야마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을 내가 말해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이만.”
카게야마는 몸을 돌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대문의 열쇠구멍에 꽂고 열쇠를 돌렸다. 그 뒷모습이 왜 이렇게도 마지막처럼 보이는지. 나는 초조해졌다. 주먹을 쥐었다 펴는 것을 반복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갔다. 마침내 문을 연 카게야마가 조심스레 목발과 발을 문 안으로 내딛었을 때,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카, 카게야마!”
카게야마가 눈에 띄게 움찔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남색 눈동자에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아마도 있었다. 내가 감히 해도 되는지 알 수가 없는 말이. 하지만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듯 나는 누구에게도 이런 것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배우지 않은 것에 도전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
“……이, 이사 가기 전까지 계속 같이 하교해도 돼?”
카게야마는 말없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눈꺼풀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카게야마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몸을 돌렸다. 나는 느리게 다른 쪽 발과 남은 몸을 대문 안으로 옮기는 카게야마를 보며, 닫히는 대문을 보며, 꿈쩍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홀로 집에 돌아가는 길은 초여름의 밤치고는 꽤 추웠다. 차가운 바람이 계속해서 강하게 불어대 나는 몸을 움츠렸다.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는데. 나는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말을 떠올리며 걸었다.
너는 왕이 아니야.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래도 카게야마는 내게 있어선 왕이었던 거다. 그는 1학년 때부터 쭉, 내 안의 왕이었다.
나는 그 하지 못한, 앞으로도 하지 못할 말을 머릿속에서 흘려보내며 코를 훌쩍였다. 손등을 들어 눈가를 비비며 옷깃을 여몄다. 날이 추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여 부모님이 왜 눈과 코가 빨간지 이유라도 묻는다면 변명할 거리가 될 수 있으니까.
#카게른_전력_60분
주제 ;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