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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카게오이]

팥_ 2015. 5. 3. 00:59





  "토비오쨩!"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이름에 우시지마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시지마는 인상을 쓰고서 느리게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잘생긴 얼굴로 교내 여학생들에게 꽤나 인기를 끌고 있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있었다. 우시지마의 수업을 들은 적은 없는 학생이었지만, 워낙 유명한 얼굴과 이름이었기에 우시지마 역시 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부른 이름의 주인공은… 우시지마는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그란 두상, 그리고 윤이 나는 검은 머리카락.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카게야마가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이카와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카게야마의 어깨에 묵직한 제 팔을 걸칠 뿐이었다. "어디 가?" 오이카와가 친근하게 물었다. 그러나 카게야마의 표정은 한결같이 무덤덤했다. 우시지마는 그나마 그거 하난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그둘을 바라보았다. "밥 먹으러요." "혼자?" "따로 약속 있어요." 오이카와는 샐쭉한 얼굴로 카게야마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따로 손을 들어 내치지는 않았다. 우시지마는 못마땅한 얼굴로, 그러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은 채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토비오쨩이랑 언제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거야? 카레 사주려고 했는데!" 언제부터 저 녀석이 카게야마를 달래는 최고의 방법까지 알게 된 거지. 우시지마는 흘러내린 안경을 신경질적으로 추켜 올리다가 결국엔 벗어 거칠게 안주머니 안에 집어 넣었다. '카레'라는 단어 하나에 변해있을 카게야마의 표정을 최대한 흐릿하게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색하게도 카게야마와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에게 더욱 가까워졌고, 우시지마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카레요?" 하며 오이카와를 쳐다보는 카게야마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응, 카레! 정문 쪽에 맛있는 카레 집 생겼대.  점심에 가면 반숙 계란 토핑 공짜! 어때? 갈래? 내일 갈까?" 카게야마는 입술을 비죽이며 생각에 잠긴 듯 인상을 찌푸렸다. "오이카와 씨 말야, 그렇게 밥 잘 사주는 사람 아니거든? 토비오만 특별히 사주는 거야! 내일 가자, 응? 갈 거지?" "…알겠어요, 그럼 내일," 천천히 흘러나오는 카게야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우시지마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았다. 카게야마는 놀란 얼굴로 제 손목을 잡은 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 교수님…!"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던 오이카와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가는 것을 보았다. "카게야마. 늦었다." 우시지마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카게야마는 당황한 얼굴로 저를 끌어안은 오이카와의 팔에서 슬쩍 벗어나고는 우시지마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가는 길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오이카와는 한 쪽 눈썹을 들썩였다. 점심 약속이라는 게 교수님이랑 약속한 거였어? 아마 그런 생각 같은 것을 하고 있겠지. 우시지마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똑바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매서운 눈초리에 오이카와가 몸을 움찔거린 것도 같았지만 그렇다고 우시지마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곧게 마주할 뿐이었다. "얘기 중이었던 것 같은데 미안하군. 카게야마 군이랑 선약이 있어서, 이만 데려가도록 하지." 우시지마는 그렇게 말하곤 오이카와의 대답을 들으려는 척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카게야마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카게야마는 어쩔 줄 몰라하더니 오이카와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정신 없이 우시지마가 이끄는 대로 그를 따라 쫓아갔다.


  우시지마가 이끄는 대로 거의 뛰다시피 하며 따라간 카게야마가 도착한 곳은 잘 닦여 번쩍거리고 있는 우시지마의 차였다. 우시지마는 급하게 문을 열고 카게야마를 조수석에 밀어 넣더니 자신은 운전석으로 돌아가려 하지도 않고서 그대로 조수석에 올라 탔다. 카게야마가 당황한 얼굴로 우시지마를 부르려 했지만 그것은 곧 급하게 카게야마의 입술을 집어 삼키는 우시지마에 의해 목구멍 안으로 파묻혀 사라졌다. 우시지마는 한 손으로는 목 끝까지 단단하게 매어진 제 넥타이를 헐겁게 푸르며 다른 한 손으로는 의자의 각도를 조절하는 버튼을 눌러 조수석 의자를 한계까지 눕혔다. 자연스레 뒤로 누운 자세가 된 카게야마와, 그 위에 올라타 급하게 카게야마를 탐하는 우시지마의 입술을 카게야마는 어떻게든 받아내려 애를 써보았지만 결국 산소를 원하는 뇌의 긴급 신호에 낑낑대며 우시지마를 밀어내었다. 우시지마는 카게야마의 위에 단단하게 버티고 서서 절대로 비켜주지 않으려 했지만 제 가슴을 밀어내는 카게야마의 힘이 점점 필사적으로 변해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떼어주었다. 카게야마는 눈가가 붉어진 얼굴로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우시지마는 무표정하게 그것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오해, 후으, 오해, 예요, 교수님…" 그 둔한 카게야마도 우시지마가 무엇 때문에 제게 이러는 지를 눈치 챘는지, 카게야마는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우시지마에게 다급하게 변명을 해왔다. 그러나 우시지마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우시지마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카게야마의 어깨가 흠칫 들썩였다.

  우시지마는 조금 헐렁한 정도로 만들었던 넥타이를 완전하게 풀어 내리고는 뒤이어 목 끝까지 채우고 있던 셔츠 단추를 딱 두 개 풀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까지 거칠게 쓸어 넘겨 엉망으로 만들고서야 우시지마는 의자를 짚고 카게야마를 끈덕지게 응시했다. 카게야마는 절로 움츠러드는 몸을 겨우 버텨냈다. 우시지마는 조금 전보다는 천천히 카게야마의 얼굴 위로 제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카게야마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러나 우시지마의 입술은 닿아오지 않았다. 닿아오는 것은 그의 낮고, 축축하고, 서늘한 목소리와 뜨거운 숨결이었다.

  "카게야마." 

  카게야마는 살짝 눈을 떠보았다. 우시지마의 올리브 색 눈동자가 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내일, 갈 건가?"

  우시지마의 물음은 밑도 끝도 없었지만 카게야마는 그의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깨물고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말로 해야지." 우시지마의 엄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카게야마는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열어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었다. "…오이카와 선배랑 같이 안 먹을," 그러나 그 용기가 무색하게도 우시지마의 입술이 다시 뜨겁게 카게야마의 입술을 삼키고 말았다. 카게야마는 살짝 열었던 눈꺼풀을 다시 닫고는 아까 전보다는 조금 차분해진 우시지마의 혀를 능숙하게 받아들이며 느리게 팔을 뻗어 우시지마의 목을 감싸 안았다. 우시지마의 소유욕이 뜨겁게 저를 태우고, 발목을 묶고, 삼키는 느낌. 카게야마는 그것이 좋았다. 카게야마는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우시지마를 끌어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