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쩌겠어요, 저러다 제 풀에 지치시겠죠. 저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웃으며 말을 하긴 했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잘생긴 얼굴과 유능한 실력으로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신입사원 오이카와 토오루를 그토록 괴롭혀대는 것은 바로 노총각 팀장이었다. 일이란 일은 전부 아랫사람들에게만 시키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저 자리에 앉아있지? 그런 의문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낙하산이라는 것도 같았다. 얼굴도 그닥, 몸매도 그닥, 실력도 그닥, 거기에 성격까지 최악으로 꼽히던 그 남자는 평소 가지고 있던 모든 열등감들을 오이카와에게 푸는 듯했다. 신입사원에겐 맡기지 않을 어려운 일들을 ‘오이카와 씨는 실력 좋으니까 다 할 수 있겠지? 내일 아침까지 끝내줘.’라며 퇴근 준비를 하던 오이카와의 책상에 한 무더기 쌓아두고 저 홀로 퇴근한다든가, 오이카와가 여직원들과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을 때면 ‘회사에 여자 꼬시러 들어왔나 봐? 하긴, 오이카와 씨는 잘생겼으니까 말만 조금 해도 다들 넘어오겠지?’하는 말을 던진다든가, 하는 일들이 일상처럼 흘러갔다. 참다못한 오이카와가 이건 원래 제가 할 일이 아니며, 저는 집에 어린 아이가 있어 오늘도 야근하는 건 무리니 이만 퇴근해보겠다고 말했던 날엔 아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아냥거리기 바빴었다. ‘역시 오이카와 씨는 대단하네, 결혼도 안했는데 애가 있었어? 어릴 때부터 좀 날렸나봐?’ 이렇게. 기가 찰 노릇이었다. 분명 오이카와가 사정상 맡아 기르는 아이가 있다고 처음부터 말했고,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일부러 다들 들으라는 듯이 저렇게 말한 것이다. 다른 여직원이 그런 게 아니라며 삐딱한 목소리로 사실을 알려 주어도 ‘아아, 그래? 난 또.’ 하고 말 뿐이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 예로 오늘도 오이카와는 아홉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하는 중이었다.
오이카와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 넣었다. 토오루, 오늘도 늦게 와? 그렇게 묻던 아이의 축 쳐진 얼굴이 눈에 선했다. 다행히도 카게야마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의젓한 편이라 오이카와가 늦게 돌아오더라도 홀로 얌전히 잠들어있거나, 일기를 쓰고 있곤 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와 오랜 시간을 저렇게 혼자 보내고 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왔다. 또 저 의젓함이 결국은 어린 나이에 알아버린 고독에서 온 것이라는 것도 오이카와의 입을 쓰게 만들었다. 그 놈의 팀장, 진짜.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일도 이 모양 이 꼴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거운 어깨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섭게 오이카와의 코끝을 스쳤다. 오이카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어깨를 움츠렸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다.
오이카와는 코트 깃을 한껏 여미고 일그러진 얼굴로 힘겹게 이어가던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저 멀리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로 작은 인영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저건 아마도 어린 아이의……
“토오루!”
웅크리고 있던 것은 역시나 아이였는지 오이카와 쪽으로 도도도도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당황한 얼굴로 몸을 낮추고 반사적으로 두 팔을 벌렸다. 그러자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오이카와의 품에 뛰어 들어 작은 팔로 그를 한껏 끌어안았다. 목에 닿아오는 아이의 손이, 볼에 닿는 부드러운 아이의 뺨이, 품에 느껴지는 작은 몸 전부가 무섭도록 차가웠다. 그것을 깨닫자 오이카와는 잠시 멍했던 정신이 급하게 깨어나는 것 같았다.
“……왜 여기 있었어, 토비오.”
오이카와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은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다. 어른들도 추워서 될 수 있으면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아하는 날씨이건만, 이 작은 아이가 어떻게 추위를 견뎌냈을지 걱정이 됐다.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을까. 카게야마의 몸은 그야말로 얼음장 같았다. 오이카와는 품에서 카게야마를 떼어냈다. 카게야마는 찬바람에 빨개진 얼굴로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나름대로 옷을 챙겨 입었는지 카게야마는 두툼한 겨울 점퍼를 입고 얼마 전에 사준 털 귀마개까지 하고 있었다.
“토오루 빨리 보고 싶어서…”
잔뜩 들떠 있던 아이의 얼굴이 살짝 가라앉았다. 우물거리며 뒷말을 흐리는 게 오이카와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였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오이카와는 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랬어? 안 그래도 오이카와 씨 맨날 늦어서 토비오쨩 제대로 봐주지도 못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오이카와는 말을 뱉으면서도 후회했고, 후회 하면서도 말을 멈추지 못했다. 아이는 이제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고서 눈썹을 팔 자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단순하고 착한 아이었다. 이렇게 하면 오이카와가 기뻐할 것이라 생각하고 들떠 나왔을 게 뻔했다. 오이카와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잔뜩 뒤틀린 마음은 자꾸만 제게 화를 내게 만들었다. 카게야마에게 내는 화는 아니었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제대로 돌봐줄 수 없는 자신과,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팀장에게 내는 화였다. 하지만 아이가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아이들은 그저 눈앞의 상대가 무서운 얼굴로 무서운 목소리를 내면 제게 화를 내고 있다고 인식할 뿐이다. 오이카와는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나쁜 소리가 튀어나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뭐 하러 기다렸어, 아침에 분명 늦는다고 했잖아. 그냥 집에서 혼자 자고 있으면 알아서 들어갔을 거라구. 오이카와 씨는 토비오쨩처럼 아이가 아니니까. 내가 언제 오는 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면 어떡해? 내가 열한시에나 왔으면 어떡할 뻔했어? 무서운 사람이라도 나타나서 토비오쨩 납치해갔으면 어떡할 뻔했냐구. 오이카와 씨랑 평생 못 만나도 좋은 거야 토비오는?”
오이카와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퍼 부었고, 그럴수록 카게야마의 몸은 점점 움츠러들었다. 어느새 아이의 밤하늘색 눈동자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오이카와는 말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는 코끝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고개를 푹 숙여 좌우로 저었다. 아이의 작은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잘못, 했어요……. 그치만, 토오루, 힘들다구… 힘들, 힘들다구 해서……”
아이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할 무렵 결국 아스팔트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추위도 추위였지만, 이 골목은 유독 가로등이 적고 인적도 드물어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골목으로 다니지 않고 큰 길로 돌아 길을 걷곤 했다. 납치를 당했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문도 자주 돌았다. 제가 늦은 탓에 카게야마가 저를 보기 위해 이 골목까지 나왔고, 그 때문에 험한 일이라도 당하게 됐다면 오이카와는 아마 죽을 때까지 자책하고 또 자책했을 것이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소름끼치는 생각들을 하니 자꾸만 말이 험하게 나가고 말았다. 오이카와는 손을 뻗어 카게야마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카게야마는 쉽게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계속해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봉지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살짝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카게야마가 제 점퍼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이, 이거, 주고, 싶어서……”
카게야마는 작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오이카와에게 건넸다. 매서운 추위 탓에 카게야마의 상기된 볼 위로 어느새 눈물 자국이 허옇게 남아있었다. 오이카와는 멍한 얼굴로 카게야마가 내민 것을 받아들었다.
“토, 토비오, 때문에, 힘든 거니까…… 미안, 흑, 미아내, 토오루… 앞으로는 안, 그럴, 흑, 게…”
오이카와는 제 손에 들린 것을 내려다보았다. 우유빵이었다. 언젠가 카게야마에게 저 집 우유빵이 제일 맛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 빵집의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순식간에 코끝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작은 손을 마주잡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어디서 돈이 나서 샀을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따로 용돈을 주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전부 말하라고 해서 그 때 그 때 사주는 편이었다. 다만 점심 도시락과 차려놓고 간 저녁밥으로도 배가 차지 않을까봐 좋아하는 카레만두라도 사 먹으라고 챙겨주는 돈은 있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챙겨준 돈으로 꼬박꼬박 학교 앞에서 파는 만두를 사먹으며 집으로 돌아온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집 만두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너무너무 행복한 얼굴로 오이카와에게 말했었다.
“……토비오, 오늘 카레만두 안 먹었어?”
입술을 꾹 깨물고 있던 오이카와가 입을 열어 물었다. 카게야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으, 응, 웅, 토오루 주, 려구, 대신, 끅, 이거, 끅, 사서,”
오이카와는 머뭇거리던 손을 가만히 아이의 동그란 머리 위에 얹었다. 카게야마는 마치 딸꾹질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어깨를 들썩이며 조심스레 오이카와를 올려다보았다. 카게야마의 얼굴은 눈가와 코끝이 전부 빨개져 눈물로 엉망이었다.
“토오루, 끅, 이제, 흑, 토, 비오, 시, 러?”
카게야마는 작은 손으로 눈을 비비며 물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카게야마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카게야마의 눈가에 더욱 눈물이 차올랐다. 아, 이게 아닌데. 오이카와는 서둘러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이의 몸은 좀 전보다도 차가웠다. 오이카와는 필사적으로 카게야마를 끌어안고 제 품에 얼굴을 묻게 했다.
“아냐, 아냐, 토비오쨩이 제일 좋아. 토오루가 잘못했어요. 토오루가 미안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귓가에 마치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더욱 더 세게 카게야마를 끌어안았다. 아이에게서 겨울 냄새가, 그리고 빵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그럼, 흐으, 토, 비오, 안, 버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코트 깃을 꼭 쥐고 물었다. 작은 목소리가 가슴에서 웅웅거렸다.
“절대로! 토비오쨩 좋아한다고 했잖아. 너무 너무 좋아, 정말로. 좋아해, 토비오. 아까 토비오한테 화낸 게 아니라 걱정돼서 나도 모르게 그런 거였어. 미안해, 오이카와 씨가 바보야. 혹시 토비오한테 나쁜 일이 생겼더라면 오이카와 씨 정말 슬퍼서 죽어버렸을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렇게 나와 있으면 안 돼요, 응? 너무너무 춥고 무섭고 위험하다구. 오이카와 씨도 이 길은 무서워한단 말이야. 알았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를 살짝 품에서 떼어내고 물었다. 카게야마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었다. 간간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까처럼 계속해서 끅끅대지는 않았다. 카게야마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부드럽게 웃으며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고 동그란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다음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양 뺨에 각각 뽀뽀를 해주자 카게야마는 눈을 꼭 감고 입술을 쭉 내밀었다. 오이카와는 웃으며 오리를 닮은 그 작은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자, 이제 오늘처럼 혼자서 말도 없이 나와 있지 않겠다고 약속.”
오이카와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카게야마는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손가락을 쥐었다. 아이의 작은 손은 아직 오이카와와 손가락을 걸만한 크기가 못 되었고, 간신히 손가락을 쥘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약속!”
카게야마가 그렇게 말하며 잡은 손가락을 흔들어댔다. 오이카와는 다시 한 번 아이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 웃으며 카게야마를 번쩍 안아들었다. 카게야마는 익숙한 듯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어깨를 쥐었다. 부드러운 뺨이 얼굴에 닿는 것이 행복했다.
“토비오, 그럼 오늘 카레만두 못 먹어서 배고프겠다.”
“으… 음…… 아니야, 아니야, 안 배고파!”
카게야마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고, 동시에 작게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그럼 이 배는 누구 배일까? 오이카와는 키득키득 웃으며 점퍼 위로 카게야마의 배를 쿡쿡 찔렀다. 카게야마는 조금 전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오이카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가득 띠고서 튀어나온 아이의 입술에 뽀뽀를 해주곤 카게야마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대고 부비적거렸다.
“이게 다 바보 오이카와 씨 때문이니까 어쩔 수 없네, 정말. 주말에 카레만두 열 개 사줄게. 그거 사서 소풍이나 갈까?”
“정말?!”
“그럼, 정말이지.”
“역시 토오루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고맙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이카와를 바라보던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오이카와의 목에 팔을 두르고 소리쳤다. 조심해, 떨어질라.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를 반듯하게 고쳐 안았다. 오이카와는 크게 몇 번 코를 훌쩍였다. 아아, 완벽한 오이카와 씨도 역시 어쩔 수 없나 봐. 추우니까 콧물이 다 나네. 오이카와는 밤하늘에 가느다랗게 뜬 그믐달을 쳐다보며 괜히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꾸만 코끝이 시큰거렸다.